영화를 보면 초중반 미미를 잡아가는 어둠속의 그림자가 있다. 이것은 누구이며 그녀를 왜 어디로 잡아가려 하는가? 이명세 감독은 이 어둠속의 그림자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가?

<얼굴은 나오지 않는다>

몇번이나 이연희-극중미미를 잡아가려 하는 이 남자
감독의 의도로 영화의 암부는 철저하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으로 처리된다. 이 속에서 나타나는 이 남자는 미미를 어디론가 데려가려 한다.

내가 읽었던 한 리뷰에는 이 남자를 '저승사자'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미 죽은 미미의 혼이 저승으로 가지 못한채 민우의 주변을 떠도는 것을 잡아가려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지만 내 해석은 다르다.

이 그림자 남자는 영화의 초반에 나타나다가 민우가 친구의 결혼식에서 미미의 존재를 떠올리고는 한동안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친구의 전화로 미미가 죽었다는 사실을 민우가 듣자마자 다시 나타난다.

이 그림자속의 남자는 민우의 죄책감의 형상화이다. 첫사랑이었던 그녀를 버려두고 이사를 온것. 그리고 이후에 그녀를 만나려 했지만 그녀가 죽어버렸다는 사실을 민우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 사실을 자신의 의지로 지워버렸다. 영화의 초반부터 나오는 민우의 건망증이나 심리적 질환들은 모두 거기에서 비롯된다고 보여진다.

자신이 겨우 지워버린 미미의 존재가 또다시 나타나 괴롭히는 것을 막는 민우의 다른 자아의 모습인 것이다.

<미미의 물건을 가져가 버린다>

중간에 나타나 미미를 잡았던 그림자 남자는 그녀를 해치지 않고 물건만 빼앗아서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는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이것으로 관객은 그림자 남자의 목적이 그녀를 해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고 그의 정체와 목적에 대해 더 알 수 없게 되버린다.

그는 왜 그녀의 물건만 가지고 사라지는가? 문맥적으로 해석해 보기위해 이 장면의 앞뒤를 설명해보자. 그림자 남자가 나타나서 미미의 물건을 빼앗기 직전 미미는 민우의 집 앞에서 기다리다가 은혜와 키스를 하는 것을 보고 실망하게 된다. 그리고 직후에 그림자남자가 나타나고 그 다음장면에는 루팡의 성냥을 보고 루팡을 찾아가는 민우가 나온다.

즉, 이것은 민우의 또다른 자아가 그녀를 기억해내지 않기 위해 이 성냥을 훔치려 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녀에게 있지 않고 민우에게 있었던 것이다.

<미미는 그림자 남자에게 쫓기다 자신의 죽음을 만난다>

친구의 전화로 민우가 미미의 죽음을 듣게 되는 직후 그림자 남자는 다시 나타나서 미미를 쫓는다 그리고 그에게 쫓기던 미미는 자신이 죽은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만약 이 남자가 저승사자이고 미미에게 자신의 죽음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 등장한 것이라면 이 장면에서 미미를 데려가야 한다. 하지만 그림자 남자는 이제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

결국 민우가 미미의 죽음을 듣고 그 사실을 떠올리기 전에 미미를 잡아가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실패로 끝나고 미미가 자신의 죽음을 목격한 장면은 결국 민우가 그녀의 죽음을 생각해 냈다는 시적인 표현이다.

<주저리주저리 했지만 명확하게 보여준다>


사실 내가 주저리주저리 엄청 설명했지만 이 장면 하나로 그림자 남자가 민우였던 것이 설명된다. 모자를 쓰고 우산을 들고 있는 그의 모습은 내가 첨부한 세번째 그림에서 미미를 쫓는 모습과 똑같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그림자 남자는 눈물을 흘리며 선글라스를 벗고 자신이 민우임을 미미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보여준다.

그는 여기서 왜 우는 것일까? 이 남자는 민우 자신이기 때문에 그녀가 자신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아니 이미 떠났다는 사실에 우는 것이다. 이것을 민우의 울음으로 보여주지 않고 이 그림자남자의 울음으로 보여주면서 계속해서 궁금하던 이자의 정체를 설명하는 방식도 훌륭하다.

이 꿈의 직후 민우는 개운하게 일어난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자신의 존재를 잊지 말아달라고 외치고 민우가 불행하길 원했던 미미가 떠났기 때문이다. 더이상 그녀를 자신안에서 지우지 않아도 되며 아름다운 사랑으로 간직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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