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물 특히 특정 인물에 관해 다룬 영화라면 기대만큼 스펙타클하지 않은 것이 보통이다. 옛날 김득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챔피언이 그랬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모든 픽션보다 극적 요소를 과하게 집어 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영화를 만들려면 굳이 실제 인물을 기반으로 할 필요가 없다. 현대 영화에서 이런 역사적 인물을 다룬 영화들은 다소 비주류의 느낌을 풍기는 것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카핑 베토벤이 다룬 시점은 바로 베토벤의 인생중 마지막이다. 영화를 시작하면 이미 귀가 멀어있고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며 손가락질 해댄다. 영화에서 이 시점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을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이영화의 내용과 주제가 그려질 것이다.

이 영화는 귀가 멀었음에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함에도 음악에 대한 베토벤의 괴물같은 열정을 다루고 있다. 때문에 영화에서 실제로 베토벤을 괴물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어쩌면 노린걸까)
그리고 그것을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베토벤을 카피하는 여성을 통해 처음부터 끝까지 그를 관찰하고 있다.

하지만 전에 이야기 했듯이 (너무 오랜만에 포스팅이라 언제 어디서 이야기 했는지 전혀 기억이 안나서 링크를 걸지 못하는점은 정말 미안 죄송 쏘리) 영화의 시점은 문학보다 훨씬 가변적이다. 이 영화에서 딱한번 확실하게 베토벤의 시점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이 글에서는 바로 그 장면을 다룰 것이다.

<무려 10분이 넘게 보여지는 오케스트라 장면>


베토벤을 다룬영화라면 음악이 상당히 많이 나올것 같지만 애석하게도 이 장면에서 단 한번 뿐이라고 할수 있다.(사실 조금더 있긴 하지롱) 하지만 그 단 한번에 이영화의 모든 힘을 쏟아 부었다.

무려 10분을 넘는 연주 장면. 이봐 너 상상이나 할수 있겠는가? 100분 정도의 현대 영화에서 한씬이 10분이래도 미칠 지경인데 (보통 한씬은 1분 중요한 씬은 3~5분?) 오케스트라 한 장면이 10분이 넘는다. 과연 관객이 이 장면을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을까?
오히려 영화에서의 이 10분은 다른 90분보다 가슴을 꽉꽉 조여온다.

뭐 아무튼 위 장면을 조금 설명하자면 베토벤이 귀가 안들림에도 지휘를 맡겠다고 고집을 부린다.(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 이때의 음악이란 작곡한다고 자기가 연주하는게 아니라 지휘를 맡아야만 자기 음악이 되는 것이다. 작업실에서 만들어서 녹음해서 다른사람에게 들려줄 수 없으니까)
하지만 귀 때문에 음악을 들으며 박자가 정확한지 음의 세기와 크기는 적당한지를 파악하지 못하는 베토벤을 여주인공이 돕는다. 오케스트라 사이에 앉아서 베토벤과 함께 지휘를 한다.

이 장면이 10분이 넘는데도 불구하고 쫄깃쫄깃한 이유는 바로 이 베토벤과 여성의 음악적 교감이라는 감정적 흐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원래 영화에서 공연 장면은 보여주기 위주여야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이 장면은 둘 사이의 교감에 최대한 많은 할애를 하는 듯 보여진다.

어쨌거나 이렇게 베토벤의 마지막 오케스트라 지휘는 어마어마어마한 감동을 주며 성공적으로 진행된다.

<지휘를 마친 베토벤>


앞에 잔소리(아이유가 부른걸 듣고 싶네)가 길었지만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여기부터다.
오케스트라가 끝나고 영화의 사운드는 흔히 하는 것처럼 잠시의 적막을 들려준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잠시의 적막 후에 퐉~! 하고 터져나오는 함성을 단번에 관객에게 들려줘서 감동을 전하기 위함인데 이 영화에서는 조금더 강력한 방법을 사용한다.

위의 스샷의 첫번째를 보면 오케스트라 중에도 잘 잡아주지 않던 베토벤의 정면 클로즈업이 보일 것이다. 연주가 끝난 직후의 베토벤의 표정인데 영화의 사운드는 이 장면에서 순간 사운드를 사라지게 한다. 아니 베토벤의 시점으로 돌아가 웅~ 하는 공간음 같은 것만을 들려준다. 그리고 그렇게 무음이나 다름 없게 베토벤의 뒤로 관객들이 일제히 기립해서 박수를 치는 화면만을 보여준다. 그들의 함성과 박수는 모두 몇십초 뒤로 양보한다.

베토벤이 아직 모르기 때문에 무엇을? 자신이 힘들게 개쌍욕먹어가며 준비한 공연의 성공여부를. 관객에게도 망할놈들아 니들이 베토벤보다 먼저 느끼면 안되자나. 1인칭 시점을 준비해줄테니 동시에 느껴줘 라고 감독은 말한다. 아니 생각한다. 아니 연출한다.
그리고 멍때리고 있는 베토벤에게 다가온 여주인공이 손을 잡아 뒤로 돌려주는 순간 즉, 베토벤이 관객들을 보는 순간 그가 상상으로만 들을수 있는  함성과 박수소리를 우리는 실제로 듣게 된다.

베토벤 시점이란 우리가 이 박수와 함성을 듣게 되기 전가지의 짧은 순간일 것이다.

영화의 시점을 의도적으로 여주인공을 통한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한것은 바로 이 장면의 임팩트를 위해서였나? 그건 아닐테지만.

연출 의도는 매우 바람직하며 성공적이라고 보여진다. 영화의 감정적 클라이 맥스인 이 부분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극명한 사운드 대비를 이용하며 그것을 마침 귀가 들리지 않는 베토벤의 시점과 동일시 시킨것이다. 아마 꽤나 오랜동안 고민한 연출이라 생각된다.

이 영화가 좋았던 것은 아마 실제 인물을 다룬 영화에서 어느정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스펙터클을 이 10분이 남는 오케스트라 장면이 (특히 마지막 연출이)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내 개인적으로)

영화내내 고집스럽고 병신같은 모습만 보여주던 베토벤을 존경하고 사랑하게 만든다. 바로 이 장면 때문에. 실제로 베토벤이라는 인물이 아직까지도 그렇게 여겨지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씬의 연출이야 말로 카핑 베토벤 영화 자체이며 영화의 주제를 보여준다. 

막상 포스터에서는 여주인공이 뭐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여지지만 (사실 그렇긴 한데...) 그냥 3인칭 관찰자 정도로 생각하고 영화를 감상하면 좋을 것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 영화의 중심은 베토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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