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호풍운 (1988)

City On Fire 
9
감독
임영동
출연
주윤발, 이수현, 손월, 장요양, 유강
정보
범죄, 액션 | 홍콩 | 101 분 | 1988-12-16
글쓴이 평점  



저수지의 개들 (1996)

Reservoir Dogs 
8.2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출연
하비 키이텔, 팀 로스, 마이클 매드슨, 스티브 부세미, 쿠엔틴 타란티노
정보
범죄 | 미국 | 99 분 | 1996-03-23
글쓴이 평점  


왜 연도가 이따위로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용호풍운은 87년작 저수지의 개들은 92년작으로 알려져있다.


홍콩영화를 좋아했다던 타란티노는 용호풍운의 '범죄자로 가장한 경찰측 스파이'라는 모티브를 그대로 가져왔으며 또한 그로인해 무너져버리는 갱들의 이야기구조 또한 똑같다. 정말 쿨하게도 자신이 베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했으며 그렇다면 그가 '오마쥬'해서 변이시키고자 했던 두 영화의 연출 방식의 차이를 살펴보자.


<영화의 주인공은 누가봐도 '주윤발'이다>



우리는 영화 용호풍운을 주인공 '고추'의 시점으로 따라다닌다. 물론 영화가 대부분 그렇듯이 항상 고추의 시선만을 따라다니는 것은 아니다. 비밀경찰이었던 고추는 자신이 배신한 범죄자를 죽음으로 내몰고 그로인해 마음의 상처를 안고 은퇴한 인물이다.


하지만 영화의 내러티브가 항상 그러하듯 그렇게 지내고 있는 고추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비밀경찰 한명이 정체가 발각돼 죽임을 당하고 때문에 유경감은 믿었던 고추를 다시 이 세계로 끌어들인다.



<저항하는 고추를 다시 비밀경찰로 끌어들이는 것 역시 그의 '감정'때문이다>





자신이 속였던 범죄자와 정을 나누고 또 결과적으로 그를 배신하여 죽음을 맞게 했다. 그로인해 고추의 마음은 괴로웠고 그래서 비밀 경찰을 은퇴했다. 고추가 이세계를 떠난 이유가 '내적 갈등'이었다면 이번엔 똑같은 이유로 비밀경찰의 세계로 돌아온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죽어버린 비밀경찰의 장례식에서 울고있는 아내와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들고있는 아들을 바라보는 고추.


물론 이 외에도 유경감의 상황과 부탁이라든지 그런 외적 압력도 존재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를 강인하게 끌어당기는 것은 언제나 그의 '마음'이다. 이것은 영화가 개연성을 가지기 위한 일종의 일관성이다. 자신의 마음이 괴로워 경찰을 그만둔 고추가 다시 돌아오려면 다른 이유에서는 안된다. 아직까지 괴로운 자신의 마음에 무언가 매듭을 짓기 위해서 그는 경찰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영화의 표면상 이 장면에서 고추는 죽어버린 비밀 경찰의 유가족을 보며 동정심이나 아픈마음으로 비밀 경찰로 돌아가는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에서 죽음이 임박하자 자신의 정체를 밝히며 속시원하게 죽는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어쩐지 이 장면에서 고추는 무의식중에 임무수행중에 순직하기를 바란 것은 아닐까?

그가 그렇게 바라지 않았더라도 영화의 결말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버린다. 그것은 결국 이 영화가 매듭지어야할 방식이며 바로 고추의 정신적 갈등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방법인 것이다.


<한번 정을 주고 괴로워했던 고추는 다시한번 범인에게 정을 준다>





어째서인지 고추는 괴로워했던 과거를 잊고 다시한번 범인 무리의 한명에게 정을 준다. 물론 이것이 논리적으로 정을 끊을수 없는 고추라는 인물의 설정이며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캐릭터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너무나 바보같다. 정을 주게 되면 언젠가 자신은 경찰아니면 친구 둘중 하나를 배신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되며 고추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고추의 배신으로 갱들은 서로 총을 겨눈다>


이쯤에서 쿠엔틴 타란티노가 오마쥬한 <저수지의 개들>을 보자.



<이 영화의 주인공은 없다>


수많은 영화와 그것을 분석해놓은 서적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말한다. 영화의 첫씬은 매우 중요하며 해야 할 일도 많다.

영화의 시공간적 배경을 설명해야 하며 주제를 넌지시 드러내고 주인공과 특정 인물의 캐릭터를 설명해야 한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이 점을 과감하게 버림으로써 첫씬에서 영화의 주제를 드러낸다.


어떻게 드러내는지 궁금할 테지만 잠깐 용호풍운의 첫번째 씬으로 돌아가면 임영동 감독 역시 아주 평범한 스타일은 아니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인 고추를 등장시키지 않고 대신 주요한 살인 사건을 일으켜서 유경장을 등장시키며 고추는 그이후에 등장한다. 용호풍운의 첫 시퀀스는 주변의 상황으로 부터 고추를 찾아내서 따라가게 만드는 방식인 것이다.


다시 저수지의 개들로 올아오자. 영화가 시작하고 타란티노를 포함한 10명 남짓의 남자들이 커피숍에서 의미없는 수다를 떨고있다. 이건 뭐 여성 독립영화도 아니고 대체 이 수다의 종착지는 어디이며 목적은 무엇인가? 이 영화의 주인공은 누구이며 영화가 이 첫씬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 첫 번째 씬에는 영화의 시공간의 배경은 어느정도 있다.(미국말을 쓰며 팁을 주는 문화권이며 옷차림을 보면 현대라는 것을 알수있다.) 하지만 당최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수 없으며 이 씬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대사의 목적을 모르겠다. 영화 시나리오를 공부한 사람은 알겠지만 대사는 간결할수록 좋으며 적을수록 영화답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영화적 관점에 쿠엔틴 타란티노는 똥을 먹인다. (그래서 영화속 그의 닉네임이 똥 색깔인 '브라운'인지도 모르지..)

그는 이야기한다 "웃기지마 영화가 꼭 그래야만해? 아니야 영화 감독에겐 자유가 있고 모든 영화가 그러기에 그렇지 않은 영화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거야" 물론 이것은 진짜 그가 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냥 내가 들은 영혼의 대화랄까?


주인공도 없으며 대체 라이크어 버진이 걸레같은 여자의 이야기인지 팁을 줘야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그런 문제는 이 영화에서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타란티노는 정말 대담하게도 영화의 첫씬의 수많은 시간을 '허비'해버린다.

무의미하게 소비함으로써 영화 첫 씬의 의미를 재창조한다.


<스파이가 총에 맞고 그를 보살피는 친구가 있고 그 때문에 서로 총을 겨누는 이 모티브를 그대로 가져왔다>




그리고 영화는 같은 결말을 맺는다.


하지만 이 영화의 연출 방식이 다르고 주제가 다르듯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다르다.


<주인공인 '고추'와 주인공은 아닌듯 한 화이트>



똑같은 이야기를 가지고 영화의 시작이 달랐듯이 마지막 역시 다르다. 용호풍운이 마지막까지 감정적인 연출로 '고추'의 내면을 중시했다면 타란티노는 오렌지가 비밀경찰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총에 겨누지만 경찰에게 포위된 상황에서 그의 얼굴을 보여준다. 


영화의 해석은 저마다 다르고 타란티노 감독의 뜻을 완벽하게 알수는 없겠지만 <저수지의 개들>은 영화 내내 심각하지 말라고 한다. 영화가 한 인물을 따라가며 감정이입하는 체험이 될 수도 있지만 단순히 맥주를 마시며 잡답하면서 보는 오락거리도 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영화속에 특별한 주인공을 설정하지 않았으며 한 인물에게 감정이입할 틈을 주지 않았다.(이 부분은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지만 인물을 촬영하는 방식이나 물리적 시간을 어느 인물에게 오랫동안 부여했는가와 관련있다.)


용호풍운이 고추의 삶을 간접체험하여 그의 내적 갈등을 느끼게 하는 영화라면 저수지의 개들은 그야말로 저수지에서 개들이 싸우는 장면을 보는 단순잼이다. 체험잼vs단순잼.




어쩌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쿠엔틴 타란티노가 아닐까? 첫씬에 등장하고 죽었다는 말만 나오는 '브라운'이라는 인물은 사실상 '영화'를 고지식하고 무겁게 바라보는 인물들에게 똥을 끼얹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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