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저격자' 마지막 글.

 

이번엔 아이러니.

인터넷 신조어로, 어떤 상황이 동시에 웃기기도, 슬프기도 한 것을 뜻하는 웃픈

난 이 웃픈에 마음이 끌린다.

채플린의 그 유명한 전언, 모든 건 멀리서 보면 희극이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이 삶의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위대한 문장을 단 두 글자로 옮긴 것 같아 대단할 따름.

 

그래서 내게는 ... ‘웃픈아이러니’ 

 

살면서 분명 몸으로 느끼지만, 머리로 설명하기 힘든 삶의 아이러니한 순간들이 있다. 코엔은 바로 이런 상황들을 영화로 포착한다.

(코엔의 모든 영화에서 아이러니는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고, 이를 대게 '웃픈' 방식으로 표현한다. 우리가 코엔 영화를 보다보면 웃음이 나면 안 될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풋~'하고 웃을 때가 있는데, 난 이게 '웃픈' 방식인 것 같다)

 

이 영화에서 사립 탐정이 마티를 죽이기 전 scene이 이런 상황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마티가 낚시를 해 온 생선들이 책상 위에 놓여 있다.

땀을 흘리며 그 생선들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사립 탐정, 심지어 하필 말을 하자마자 파리가 그의 얼굴에 달라붙는다. 그리곤 파리의 윙윙- 거리는 사운드가 계속해서 그를(관객을) 거슬리게 만든다.

탕!!!

결국, 사립 탐정은 마치 파리에 복수라도 하듯이 급작스럽게 총을 쏴 마티를 죽인다.

 

계속 동어반복이지만, 이 scene처럼 결국 코엔의 아이러니는 우리가 사는 실제 아이러니한 세계’를 가장 잘 표현하기 위한 영화적 방법론인 셈.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언어로 설명하기 힘든, 많은 삶의 아이러니’들이 있다.

이런 '아이러니'들을 표현하기 위해서 코엔은 영화 속에서 그들만의 아이러니’를 더욱 강조하여 재현하는 셈.

코엔 영화를 보다 보면 어떤 기시감이 든다. 반복의 변주들. 이때 반복되는 요소는 웃픈인물이다. (스티브 부세미나 존 굿맨, 존 터투로가 맡는 대부분의 캐릭터들) 그러니 당연히 이런 인물들을 담은 영화들이 다 웃플수밖에.

 

마지막으로, 비틀기.

코엔 형제는 모든 걸 다 비틀어버린다. 영화 속 작은 디테일한 상황에서부터 크게는 장르까지. 그리고 물론, 그 비틀기는 그들의 첫 데뷔작에도 있다.

 

장르 비틀기.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이야기에서 항상 등장하는 건 바로 팜므파탈! 팜므파탈은 항상 주인공을 위험에 빠뜨리게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이야기에 필요한 도구 정도로 그려져 왔다.

 

한데 이 영화에서는 팜므파탈이 능동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심지어 나머지 3명의 남자는 결국 다 죽게 되고, 팜므파탈만이 유일하게 살아남는 새로운 결말로 장르를 비틀었다.

(흥미로운 점은 파고에서도 여성 캐릭터를 갖고 이와 유사한 장르 비틀기를 하고 있는데, 그 영화 역시 여자 주인공이 같은 프란시스 맥도날드라는 점)

 

이렇게 내가 초반에 이 데뷔작 안에는 이미 그들의 모든 세계관이 꿈틀거린다.’라고 한 이유는 바로 이 영화 안에 형식적으로는 하드보일드누아르, 내용상으로는 허무 아이러니 그리고 비틀기, 모두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코엔의 모든 영화 저 요소들이 전부는 아닐지언정, 일부는 들어있기에)

 

이번엔 사운드를 보자.

앞서, 아이러니한 scene에서 파리의 윙윙대는 사운드를 언급했는데, 코엔은 이미지만큼이나 영화에서 사운드를 잘 사용하는 감독이다. 그의 모든 영화에서 사운드를 효과적으로 사용한 scene을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이 영화에서는 파리 소리 말고도, 실링 펜(천장 선풍기) 사운드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애비와 레이, 마티가 각각 다른 장소에 있을 때, 그들을 연결해주는 건 실링 펜의 돌아가는 이미지와 사운드다.

이 실링 펜의 휙- - 하고 돌아가는 위협적인 사운드는 듣는 사람으로 인해서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감을 형성하게 만든다.

 

shot은 이 영화보다 5년 전에 나온 '지옥의 묵시록' 초반 오프닝을 명백하게 오마주했다. 윌라드 대위 얼굴 위로 돌아가는 실링 펜의 이미지가 오버랩 되는 장면으로, 전쟁으로 인한 그의 불안과 긴장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이 shot 역시 레이의 불안과 긴장을 보여주는 한편(보스의 부인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으니), 앞으로 죽음을 맞이할 그의 운명의 복선이기도 하다.

 

여담으로 이 영화 여자 주인공, 애비역의 프란시스 맥도날드는 이 영화의 인연으로 형인 조앨 코엔과 결혼하게 된다.

 재밌는 건, 원래 애비역으로는 홀리 헌터(‘피아노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한)가 내정되어 있었는데, 불가피한 일정으로 인해 홀리 헌터가 직접 프란시스 맥도날드를 감독에게 추천해준 것. 인연은 인연인가보다.

 

이 영화에서 단연 돋보이는 연기와 캐릭터는 M 에멧 월쉬가 분한 사립 탐정. 그가 죽으면서 남긴 기괴한 웃음소리는 후에도 계속 코엔 영화 속에서 변주된다.

 

  (밀로스 크로싱’의 두목 조니와

 

  바톤 핑크’의 살인마 찰리가)

 

코엔 영화 속에서 나오는 이러한 웃음들은 신기하게도 무서운 감정이 들게 만든다.  

당연한 것이 사립탐정은 죽기 전에 웃고, 조니와 찰리는 누군가를 죽이기 전에 웃어대니 무서울 수밖에.

일반적으로 멀리 떨어진 요소인 죽음과 웃음을 같이 사용함으로써 아이러니를 만들어낸 셈.

 

   

 

다음 글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

 


분노의 저격자

Blood Simple 
8.2
감독
조엘 코엔
출연
프란시스 맥도먼드, 댄 헤다야, 존 게츠, 샘 아트 윌리암스, 윌리엄 크리머
정보
스릴러 | 미국 | 99 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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