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007)

 

나 스스로 공부하기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글이라지만 코엔은 역시 버거웠다.

이 영화도 쉽진 않았기에, 원작 소설을 읽어 보았다. 읽다보면 코엔이 어떤 걸 넣고, 어떤 걸 빼고, 어떻게 변형시켰는지 적어도 보이긴 할 테니까.

 

코엔이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각색에 있어서 코맥 맥카시의 소설을 있는 그대로 영화화하는데 집중했을 뿐, 변형시키려고 하진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코엔이 2시간가량의 영화로 축소시키기 위해서 어떤 걸 뺐고 어떤 걸 넣었는지, 이 취사선택에 집중했다.

 

(코엔이 각색하여 영화를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코맥 맥카시였을까? ‘블러드 심플에 영향을 준 제임스 M 케인, ‘밀러스 크로싱에 모자 모티브를 준 데실 헤밋, 레이먼드 챈들러의 빅 슬립에서 영향을 받아 만든 빅 레보스키까지. 이렇듯 하드보일드 소설 작가들에게 영향을 받은 코엔으로서 현 시대 가장 하드보일드한 소설을 쓰는 코맥 맥카시야 말로 영화로 만들기에 가장 적격이지 않았을까)

 

물론, 취사선택 외에 소설과 다른 부분들도 있다. 소설의 텍스트를 영화의 이미지와 사운드로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조금씩 변형된 부분은 있되, 그것이 이야기 자체의 변형을 야기하진 않았다.

 

그럼 일단, 책에는 없고 영화에 있는 부분을 몇 군데 보자면,

1. 영화 초반에 등장한 보안관이 시거에게 수갑으로 목 졸려 죽어가면서 발버둥 쳤던 구둣발의 흔적들. 이미지만으로 전달되는 공포.

 

 

2. 시거가 약을 사러 들어가는데, 갑자기 거리에 세워져 있던 차가 폭파한다. 단순하지만 중요한 영화적 스펙터클.

 

 

3. 웰스가 시거에게 총 맞아 죽기 전, 갑자기 크게 울리는 전화벨 사운드로 긴장감을 증폭시키는 장면.

 

이 세 예시만으로도, 코엔이 좋은 이야기꾼만이 아니라, 좋은 연출가이기도 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반면 굉장히 영화적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알고 보니 책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기도 했다.

 

 

그 중 시거가 주유소 주인과 대화하면서 먹던 캐슈넛 비닐봉지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 꾸겨져 있던 비닐이 펴지면서 나는 괴이한 사운드가 내겐 굉장히 영화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연히 소설에 없고 코엔이 만든 거라고 생각했는데 ... 웬걸, 소설에 그대로 있었다.

 

시거는 남은 캐슈넛을 다 손바닥에 쏟아붓고는 작은 봉지를 손으로 뭉쳐서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꼿꼿이 선 채로 캐슈넛을 씹었다.’

-66p

 

이렇듯 코엔이 충실하게 이 소설을 영화로 옮길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이 소설의 세계관을 코엔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뜻할 것이다.

소설의 세계관은 굉장히 냉혹하다. 이야기 안에서는 피가 낭자하지만, 그 이야기를 이루고 있는 세계관은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만 같다.

 

그렇기에 이 영화 역시, 코엔 영화들 중에서 가장 냉혹하고 하드보일드 하다. 허나 이 소설 때문만은 아니다. 앞서 봤던 그들의 데뷔작 블러드 심플도 이에 못지않았으니까. 즉 코엔의 세계관은 애초에 코맥 맥카시의 세계관과 맞닿아 있었던 셈.

 

이야기는 단순하다. 돈 가방을 우연히 갖게 된 모스(조쉬 브롤린). 그 모스를 쫓는 살인마 시거(하비에르 바르뎀). 그 시거를 쫓는 늙은 보안관 벨(토미 리 존스).

 

이야기의 시점과 화자는 벨이다. 벨은 옛 시대에는 향수를 갖되, 현 시대에는 불만을 갖고 있다. 사실 불만을 넘어선 공포와 불안에 가깝다.

벨에게 현 시대는 시거 그 자체이기도 하다. 당최 불가해하고 어떻게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그런 ...

 

바로 여기서 난 코엔이 떠올랐다. 각각 54, 57년생인 조엘과 에단 코엔. 60대에 접어들기 직전인 2007년에 이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3 년 후, ‘더 브레이브란 영화를 만들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현 시대의 서부극이고 굉장히 냉혹하다면, ‘더 브레이브는 옛 시대의 서부극이고 어쩌면 동화에 가까울 정도로 따뜻하게 그렸다.

 

그래서 코엔은 벨과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벨이 옛 시대에 향수를 갖고 현 시대를 두려워했듯이, 코엔 역시 옛 서부극에는 따뜻한 향수를 품고 있고(‘더 브레이브’), 그들이 현재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서부극은 비정하고 하드보일드한 세계로 그려냈으니(‘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옛 서부극을 다루는데 있어서, 코엔이 그 시대상에 느끼는 향수보다도 그 시대상을 다뤘던 옛 고전 영화들에 대한 향수로 인해 더 따뜻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존 포드나 하워드 혹스에 대한 향수. 코엔도 영화를 좋아하는 한 명의 팬으로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008)

No Country for Old Men 
8.4
감독
에단 코엔, 조엘 코엔
출연
토미 리 존스, 하비에르 바르뎀, 조쉬 브롤린, 우디 해럴슨, 켈리 맥도널드
정보
스릴러 | 미국 | 122 분 | 2008-02-21

 


더 브레이브 (2011)

True Grit 
7.9
감독
에단 코엔, 조엘 코엔
출연
제프 브리지스, 맷 데이먼, 조쉬 브롤린, 헤일리 스타인펠드, 베리 페퍼
정보
어드벤처, 드라마, 서부 | 미국 | 110 분 | 2011-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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