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는 등장인물이 있다.

그리고 등장인물은 어느 타이밍엔가 관객에게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훌륭한 감독들은 중요 인물이 관객에게 처음 보여질 때 그들의 삶을 보여질 수 있게 설정한다.

단순히 인물이 '등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상황이나 소품을 이용해서 그가 살아온 인생을 짐작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인물이 영화에 처음 등장할 때 장소는 어디 일 것인가?

그는 어떤 표정으로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가?

 

2016/05/30 - [영상문법] - [영상문법] 영화의 시작과 끝 - 건축학개론, 2012

에서 보여지듯 양서연의 첫 등장에 그녀의 내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미장센을 배치한다.

 

하지만 건축학개론의 그것이 내면을 보여주기 위해 설정된 장면이라면 지금 소개할 킹스맨의 장면은 훨씬더 씬을 경제적으로 사용한다.

 

 

<에그시는 어린아이로 처음 등장한다 하지만 이 장면은 미래를 위한 포석이다>

 

영화 킹스맨의 주인공 에그시는 그저 어린아이로 관객에게 처음 모습을 드러낸다.

이 시점에는 그다지 특별한 미장센은 없다. 왜? 아직 어린 에그시는 특별히 드러낼 내면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 까지는 그저 평범한 어린아이 아닌가?

 

이 평범한 어린이에서 17년이 지나고 성인이 된 에그시를 관객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매튜본 감독은 과연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에그시를 보여줄 것인가?

 

 

<어린시절에서 어른으로 점프하는 에그시의 삶은 어땠을까?>

 

 

해리가 준 목걸이로부터 시작되는 어른이 된 에그시의 모습.

매튜본 감독은 그를 제일 잘 보여줄 수 있는 장소인 '에그시의 방'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장소를 옮겨 거실로... 그리고 술집, 길거리로 나가면서 그의 캐릭터를 보여주는데 공을 들인다.

 

17년간 에그시는 어떻게 지내왔는가? 그는 어떤 변화가 있었고 어떤 어른이 되었는가?

물론 이 순간에는 관객들은 그것을 느낄 수 없다. 왜냐하면 아직 해리가 에그시를 조사한 이야기가 나오기 전이니까.

하지만 훌륭한 감독은 뒤에 나올 이야기를 미리 미장센으로 배치해둔다.

 

목걸이로부터 시작된 에그시는 뭔가 인상을 찌푸린채 거울을 보고 있다.

'거울'을 보고 있는 주인공. 이것은 너무나 많이 사용하는 클리셰이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인물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며 무언가 고민하고 있을 때.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르고 내면이 방황하고 있을 때 우리는 거울을 보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에그시 역시 그러하다.

하지만 이 뻔한 클리셰를 썼다고 이 장면이 훌륭해서 이런 분석글을 쓰겠는가?

목걸이로부터 에그시의 얼굴이 비춰지고 컷이 바뀌어 에그시 방의 내부가 보여진다.

그리고 우리는 눈치채지 못하지만 매튜본 감독이 가장 눈에띄는 곳에 배치한 에그시의 내면을 미리 만나볼 수 있게 해준다.

 

당신은 위의 마지막 사진에서 무엇을 보이는가?

눈에 띄는 것은 나이키 신발과 사진이다.

에그시의 방에 있는 사진. 그것은 추후에 밝혀지지만 그의 해병대시절 사진으로 보인다.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해병대를 그만뒀던 에그시는 해병대 시절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포기했기 때문에 꼴도 보기 싫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아직 그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사진을 방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고있다.

물론 이것은 감독이 관객에게 선물하는 에그시라는 인물에 대한 힌트이다.

 

 

<두장의 스크린샷에서 사진의 위치를 보자 너무나 명확하지 않은가?>

 

 

이 시점에서 에그시가 해병대였고 그것을 자랑스러워 한다는 것을 도저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의 내면을 위해서 당연히 해둬야 하는 배치인 것이다.

물론 에그시가 해병대를 그리워 하는지는 명확하게 이야기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미장센을 통해 에그시가 킹스맨의 세계에 고민없이 들어가는 심리적 개연성을 준다.

 

에그시는 해병대로 살고 싶었으나 어머니의 반대로 포기했다. 하고싶은 일을 잃어버린 그는 일도 안하고 인생을 낭비하고 있었다. 그의 삶은 내적으로 외적으로 점점 망가져가고 있었고 그 포화지점의 직전에 해리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에게 킹스맨의 길을 제안한다.

 

이것이 감독이 짦은 몇개의 씬으로 압축해서 전해주는 17년간의 에그시의 삶이다.

 

단순히 사진 몇장 걸어놨다고 이 인물에 대한 깊이가 생긴다거나 영화가 훌륭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식의 프레임에 대한 고민이 모든 장면에 들어있기 때문에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실 상업액션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은 이런 면에서 부족한 모습을 자주 드러내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액션이 의미없고 지루한 것이다.

 

한 컷을 보여주는데도 이렇게 고민하는 감독이 액션씬을 만들 때는 훨씬 많은 고민을 하지 않겠는가?

반대로 초반 설정을 허술하게 디자인하는 감독은 액션도 의미없이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이 고민스러운 방을 나선 에그시는 더 험한 현실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어머니는 깡패두목과 살고있고 에그시가 마음 둘곳이 존재하지 않는다. 감독은 에그시가 간단하게 킹스맨의 길을 택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했다. 영화에서 그가 너무 오랫동안 고민해서도 안되고 납득이 가지 않게 쉽게 선택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리고 그는 킹스맨의 전투를 보고 한눈에 매료되고 만다. 이미 준비가 된 그에게 확실한 한방을 꽂아넣는 해리의 액션씬에 대해서도 추후에 분석해 보고자 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