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문'을 지난다.

문이란 무엇인가? 두개의 다른세계를 연결하는 통로이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굳이 문을 통과하는 장면이 보인다면?

우리가 볼일을 보기위해 화장실문을 통과 하는 것.

이런 것이 영화적으로 의미가 있을까?

의미가 없는 것은 굳이 보여줄 필요가 없다.

만약 영화에서 문을 지나는 장면이 있다면 그것은 인물이 다른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상징인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감독이 잘못한 것이다.

 

 

<혼잡하고 방향을 알수 없는 길거리. 에그시의 현재를 상징한다>

 

경찰서를 나와 해리를 만났다가 집에 돌아간 에그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엄청난 분노와 폭력이다. 아무에게도 술집에서 일어난 일을 말하지 않겠다는 에그시를 시험하기 위해 통신기를 붙여둔 해리는 그를 킹스맨의 거점으로 불러들인다.

 

그리고 이제 힘없고 약한 에그시는 킹스맨이 되기위해 수많은 문을 건넌다.

 

 

<양복점부터 킹스맨 훈련소까지 5개의 문을 지나는 에그시 이 시퀀스를 문 시퀀스라고 부르자>

 

 

해리의 부름으로 양복점에 도착한 에그시는 문을 열고 해리를 향해 걸어온다.

그러나 잘 보면 <그림1>과 <그림2>에서 벌써부터 2개의 문을 통과한다.

 

몇백억 이상이 들어가는 영화에서 굳이 문을 두번이나 통과하는 장면을 다 보여줄 필요가 있는가?

집을 나서 바로 해리를 만나는 장면으로 점프해도 되지 않는가?

그렇다 물론 이야기를 진행하는 데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단지 매튜본 감독은 ㅈ밥 에그시가 킹스맨이 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수많은 관문을 일찍부터 보여주고자 한다.

 

그림1,2를 통해 해리를 만난 에그시는 해리를 따라 의상 탈의실?로 들어간다. <그림 3,4>

이 때도 한번더 문을 통과하고 그림 5에서도 고속이동수단을 타기위해 문을 통과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림 6,7>의 문을 통과하면 그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킹스맨이 되기 위해 모인 '라이벌'들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장면은 명백하게 문이라는 클리셰를 도배해서 강조하고 있다.

킹스맨이 되기 위한 어려움을...

 

이 장면에서 문을 통과하는 장면을 생략해 보자.

집을 나와 야마카시를 한 에그시가 다음 장면에서 이미 해리앞에 서 있다면? 또는 아무도 없는 양복점 안에서 해리를 기다리고 있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탈의실문을 통과하고 또 고속이동수단문을 들어갈 필요 없이 킹스맨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다가 그 의자만 지하로 들어가서 바로 고속이동을 해서 훈련기관으로 도착했다면?

그리고 그 곳에 바로 라이벌들이 있었다면? 단 하나의 문도 통과하지 않고 이 장면을 연출 하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문이란 다른세계로의 통로이다.

에그시가 5개의 문을 지나면서 통과해야 하는 것은 물리적인 다른 세계이지만 결국 그가 이겨내야할 고난도 훈련들을 암시한다.

 

그리고 5개의 문을 물리적으로 통과해야 겨우 '귀족'라이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엄격한 차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영화장면의 해석은 언제나 이렇게 시작한다. 왜 이렇게 찍었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문제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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