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만화 '바람의 검심'에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검은 살인 도구 검술은 살인술 아무리 좋은 미사여구를 붙여도 이것은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 검을 쥐고 사용하는 인간의 마음은 다를 수 있지만 검 그 자체는 사람을 베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대부분의 것들은 이것과 다르다
사용하게 따라서 그 의미가 다를 수 있다

수많은 영화의 문법 역시 그렇다

본격적인 이야기전에 이번에 다루는 영화에 대한 소개가 필요하겠다
제목만 이야기해서 모두 알만한 유명한 영화는 아니기 때문에...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스티븐 소더버그, 왕가위 세명의 감독에 의해 2004년에 만들어진 옴니버스 영화다
작년에 봉준호가 참여한 도쿄!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위에 클립해 놓은 것은 첫번째 에피소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작품이다
위에는 40초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실제로는 1분이 넘는 롱테이크이다
여성의 가슴이 드러나서 자르고 올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 장면이 롱테이크의 잘못된 사용이라 해석한다

<여자가 반지 줍는 장면까지 모두 보여준다>

팬티만 입고 일광욕을 즐기고 있던 여주인공은 남편과 싸우고나서 옷을 챙겨 입는다
윗도리를 입고 반지를 주워 손가락에 끼우고 끈까지 묶어야 하는 치마를 입고 구두까지 챙겨 신는다

보면서 생각했다... 대체 이 장면은 왜이렇게 길지??
의도적으로 영화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했던 누벨바그처럼 일부러 관객들을 짜증나게 할 생각이 아니었다면 이 롱테이크는 실패한 것이라 생각한다

<대체 어떤 의도인가?>

이 영화에는 이것 말고도 의미를 찾기가 힘든 롱테이크가 많이 보인다
대체 이유가 무엇인가??
보통 롱테이크의 사용은 2009/01/30 - [video grammer] - 영상문법 - 크레인을 이용한 롱테이크 <아멜리에> 에서 처럼 한씬을 유기적으로 연결할때나 컷을 하지 않으므로써 리얼리티를 강조하거나 영화의 리듬상의 목적으로 행해진다

하지만 이 장면에는 아무것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저 이 장면을 왜 이렇게 길게 찍지?라는 의아심만을 자아내며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지루하게 만든다

영화를 지루하게 만든다는 것은 나는 엄청난 실패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영화는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찍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극장에 걸필요도 없으며 배우를 쓸필요도 없고 그냥 홈비디오로  찍으면 된다

그런 기본적인 목적을 위해서 지루함은 배제해야할 첫번째 문제다
하지만 이 감독은 전혀 그런 것을 염두하지 않고 있다
왜인가?

이 영화에 대한 검색을 해보니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에 대한 인물평을 볼 수 있었다

<60년 칸 영화제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정사>를 두고 관객들 사이에 작은 소란이 있었다. 일부 관객은 길게 늘어지는 이 영화의 화면을 향해 '컷, 컷'하며 야유를 보냈다. 안토니오니는 외딴 섬에 친구들과 야유회를 온 남자가 여자를 만나고 여자가 사라지자 여자를 찾는 과정이 전부인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어떻게 됐는지는 자기도 모른다고 말해 관객들을 신경질나게 했다. '스캔들'이었다.
그러나 곧 이 스캔들이 현대영화의 서막을 알리는 순간임이 분명해졌다. 뚜렷한 이야기도 없고 다음 줄거리가 어떻게 될지 설마 설마 하고 기다렸던 사람들은 끝내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 영화에 분노했지만 안토니오니는 줄거리보다 다른 사람과 마음을 나누지 못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고독한 내면을 영화의 배경인 섬의 황량한 풍경 자체에다 처음부터 끝까지 비유함으로써 기승전결의 이야기의 한계에 갇히지 않는 현대 영화의 서막을 열었다.>                                                         

-DAUM 인물검색에서 발췌

아.. 그런거구나 예술이었구나 라고 하기엔 너무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1960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방식을 2004년에 똑같이 사용하다니
위의 인물 검색을 읽고 놀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의미가 없는 롱테이크인데 왜 대체 이렇게 찍은 걸까 하는 나의 생각에 대한 답변이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즉 안토니오니 감독은 영화안에서 롱테이크의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영화라는 매체 자체와 관객과의 단절을 시킴으로써 사회적인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것이 예술인가?

44년전에는 예술일 수 있었다
그것은 새로운 표현이었으며 영화에 대한 시각을 넓히는 말그대로 예술의 표현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2004년에 만들어진 이 작품은 잘못 만들어진 지루한 영화일 뿐이다
이제와서 변기를 가져다가 철수라고 이름 붙여봐야 예술이라고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다 이것은 그런 문제다

영화 내적으로 쓰인 표현양식은 아직도 예술일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자체를 하나의 표현도구로 쓰는 것은 일회성 예술이다
그것은 만들고, 말하고 나면 사라지는 하나의 퍼포먼스다

너무나 안타깝다
네오리얼리즘의 한 감독으로서 자신의 표현양식을 추구한다고 해석해도 이것은 복제품 밖에 되지 않는다
변기를 가져다가 샘이라고 이름지어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킨 44년뒤에 요강을 가져다가 철수라고 이름 짓는것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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