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N8-ktTL-mC0&t=274s





오늘 소개할 장면은 톰과 썸머의 첫키스 장면이다.

 

반했지만 찌질킹 답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미적대는 톰에게 단숨에 키스까지 돌격하는 썸머.

 

마크 웹 감독은 이 훅들어오는 장면을 어떻게 연출했는가?

 

회사지만 단둘만의 공간을 위해 복사실을 설정하고 그 곳에서 이들의 연애의 시작을 알린다.

 

하지만 그것 뿐인가?

 

잘 보면 감독의 유머러스함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톰과 썸머, 둘 이외에 유일하게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그림1>을 보자.

 

톰과 썸머.. 그 이외에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종이에 벨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포스터다.

 

이 것이 붙어있는게 당연히 우연이 아닌것을 아시겠지요?

 

마치 감독은 톰에게 말하는 듯 하다. "조심해! 너 상처입을거야!"

 

이렇게 해석이 가능한 이유는 영화 초반 이 스토리가 감독이 자신을 상처입힌 한 여자를 생각하며 쓴 것같은 문구가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감독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톰은 훅들어오는 썸머를 도저히 피할길이 없고..

 

<그림2>에서 둘이 키스하는 얼굴 사이에 다시한번 이 포스터를 배치하다니..

 

감독님 ㅠㅠ 마지막까지 톰을 말리려 하셨군요 크흡... 하지만 우리모두 알잖아요 찌질킹인 우리는

 

여자의 키스를 거부할 힘이 없습니다...

 

결국 <그림3>에서의 포스터는 한쪽 구석에서 안타깝게 놓여지고...

 

키스를 마친 그 둘 사이에는 더이상 경고문구 따위 보이지 않는다...

 

아... 감독님.. 이런 미친 디테일은 어떻게 하는겁니까요?

 

 

이게 코미디의 문체인 것이다.

 

감독이 자기가 이야기를 써놓고 자기가 주인공을 상처받게 만들거면서 톰에게 상처받지 말라고 

 

경고 문구를 넣어주다니... 하아...

 

넘나 감동적인 것 

곧 500일의 썸머가 재개봉 하니까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올려보자..

그래서.. 파워블로그가 되고 싶다..

하지만 난 안될거야 아마 난 최근 개봉작 같은거 잘 안쓰니까..

 

오늘의 이야기는 음향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음향을 크게 2가지로 외재음과 내재음으로 분류해보자.

내재음이 극중 캐릭터가 들을 수 있는 소리 즉 대사, 현장음 같은 것이라면 외재음은 극중 인물이 들을 수 없는 OST, 효과음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인물이 듣고 있는 음악은 수많은 영화에서 내재음과 외재음의 경계를 넘나든다. 넘나 경계를 넘나드는 것.

 

2009/09/12 - [영상문법] - 사운드 복선 - <포 미니츠, Vier Minuten>

2009/09/12 - [영상문법] - 페이드 아웃, 외재적 내재음 -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을 참고 하시고.

 

이제 21세기 최고의 변형 로코 500일의 썸머 이야기를 해보자.

시작부터 병신짓을 하고 있는 우리의 주인공 톰은 첫눈에 썸머에게 반한다.

 

 

<첫눈에 반한 톰. 그래 썸머라면 그럴 수 있어>

 

첫눈에 반해놓고 나레이션으로는 운명이라고 생각까지 해놓고 썸머에게 조금도 다가가지 못하는 우리들의 대변인 폭풍병신 톰.

 

<친구에게 썸머가 얼굴값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톰>

 

주인공은 톰이기에 썸머는 철저하게 썸의 시선의 객체로써 보여지게 된다.

 

위에서 첫눈에 썸머에게 반했던 톰이지만 그 즉시 회사동료에게 썸머가 얼굴값하는 싸가지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우리 찌질한 남자들은 모두 눈치채지만 톰은 그녀에게 말을 거는 것 자체를 포기한다.

 

하지만 주인공이 이렇게 행동하지 않아서야... 로맨틱 코메디에서.. 이야기가 진전 되겠는가? 그렇다 진전된다. 그런 면에서 확실히 이 영화는 변형 로맨틱 코메디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 영화가 그렇게나 재밌는 이유는 정말 씬 디자인이 죽여주기 때문이지>

 

 

<그림1>에서 엘레베이터를 타는 톰. 하지만 썸머가 곧바로 따라 탄다.

그녀에게 얼굴값을 하기 때문에 어차피 말걸어봐야 무시당할거라고 생각한 톰은 애써 그녀를 외면하며 다른 곳을 보고 있다. 그렇다.. 톰이야 말로 이 시대의 대변인이 아닌가... ㅠㅠ

 

하지만 썸머는 톰이 헤드폰으로 듣고 있는 스미스의 음악을 눈치채고 그에게 말을 건다.

스미스 음악이 좋다고... 취향이 비슷하다고.. 그저 그런 말을 하고 사라져버린다.

 

썸머의 이 때 마음이 어떤지 모르지만 우리의 톰은.. 이 말 하나로... 썸머에게 반해버린다..

그렇다.. 금사빠.. 아니 이미 반해있었으니까... 심쿵충이라고 불러야겠다...

 

이 대단치 않아 보이는 장면에서 2가지 주목할 만한 감독의 연출력이 있다.

음악과 엘레베이터라는 공간의 연출.

 

대단치 않아 보이는 장면이지만 사실 아주 중요한 장면이다.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이 처음으로 대화를 하는 장면. 이것을 어떤장소에서 어떤 상황으로 관객들에게 어떤 갈등과 결말을 들려줄 것인가?

 

먼저 공간을 살펴보자 <그림3>을 보면 굳이 엘레베이터가 닫힐 때까지 컷을 쓰고 있다.

2016/06/15 - [영상문법] - [영상문법] 클리셰 반복으로 강조하기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2015 매튜본 Matthew Vaughn>

에서 이야기 했듯이 영화에서 '문'이란 다른 세계로 가는 통로다.

 

이 영화에서도 톰은 엘레베이터 문을 통과하고 썸머역시 뒤따라 통과하고 그 문은 닫혀 버린다.

썸머가 뒤따라 왔기 때문이지만 톰이 굳이 엘베문을 통과하는 장면이 꼭 필요한가? 자르려면 자를 수도 있다. 하지만 자르지 않은 것은 바로 톰이 엘레베이터 문을 통과하고 그 공간은 곳 톰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세계가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썸머가 들어오고 문이 완전히 닫혀지고 난 후다.

 

문이 닫히고 둘만이 된 은밀한 공간에서 애써 같은 회사 사람을 무시하고 음악을 듣고 있는 톰. 멋지다.

하지만 썸머는 훅들어온다.. 그렇다 우리가 정말 무서워하는 우리마음에 흙발로 들어와서 마음을 풀어헤쳐 놓는 바로 그런 여자다.

 

그리고 둘만의 대화가 끝나고 썸머는 엘레베이터 문을 통과해 나가고 톰은 그대로인채 문이 닫힌다. 이 장면 역시 끝까지 보여주는 것이 그저 멍하니 바보같이 보이는 연출일 수 있지만 공간에 대한 상징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둘만의 공간에서 썸머는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녀는 이 때 톰을 사랑한 것도 아니고 그저 지나가다 들르는 세계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500일동안 톰은 이 세계에 갇혀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감독은 톰을 이 엘레베이터에서 탈출 시키지 않는다.

 

공간 이야기는 이쯤하고

사실 이 장면이 더 흥미로웠던 음악이야기를 해보자.

 

 

<음악이야기라 동영상첨부. 그런데 톰이 개찌질한 장면이 뙇>

 

 

이 장면이 바로 그렇게 영화들이 좋아하고 클리셰로 써먹은 내재적 외재음이다.

톰이 듣는 스미스의 음악은 썸머도 들을 수 있게 아주 작게 흘러나온다. 그래야 썸머가 이 노래를 듣고 톰에게 말을 거는 개연성이 생기니까.

 

그리고 톰이 헤드폰을 벗었을 때 관객에게 이 음악이 조금더 크게 들린다. 이것도 아직 내재음의 범위지만 카메라가 다시 엘레베이터 밖으로 나와서 문이 닫혀 있을 때도 이 음악의 볼륨은 그대로다.

 

그럼 감독이 이 내재음이었던 음악을 왜 외재음으로 편집 한 것인가? 그런 기술이 없어서? 그럴 턱이 있나 심지어 이 영화는 뮤지컬 영화로 분류되는데..

 

바로 이 스미스의 음악이 관객에게 들리는 순간 썸머가 톰에게 말을 거는 순간 톰이 썸머에게 홀리는 순간이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톰이 듣고 있던 작은 음악은 썸머의 훅공격에 그를 실신시키고 그 감정을 관객이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음악은 이제는 더이상 내재음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문'을 지난다.

문이란 무엇인가? 두개의 다른세계를 연결하는 통로이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굳이 문을 통과하는 장면이 보인다면?

우리가 볼일을 보기위해 화장실문을 통과 하는 것.

이런 것이 영화적으로 의미가 있을까?

의미가 없는 것은 굳이 보여줄 필요가 없다.

만약 영화에서 문을 지나는 장면이 있다면 그것은 인물이 다른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상징인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감독이 잘못한 것이다.

 

 

<혼잡하고 방향을 알수 없는 길거리. 에그시의 현재를 상징한다>

 

경찰서를 나와 해리를 만났다가 집에 돌아간 에그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엄청난 분노와 폭력이다. 아무에게도 술집에서 일어난 일을 말하지 않겠다는 에그시를 시험하기 위해 통신기를 붙여둔 해리는 그를 킹스맨의 거점으로 불러들인다.

 

그리고 이제 힘없고 약한 에그시는 킹스맨이 되기위해 수많은 문을 건넌다.

 

 

<양복점부터 킹스맨 훈련소까지 5개의 문을 지나는 에그시 이 시퀀스를 문 시퀀스라고 부르자>

 

 

해리의 부름으로 양복점에 도착한 에그시는 문을 열고 해리를 향해 걸어온다.

그러나 잘 보면 <그림1>과 <그림2>에서 벌써부터 2개의 문을 통과한다.

 

몇백억 이상이 들어가는 영화에서 굳이 문을 두번이나 통과하는 장면을 다 보여줄 필요가 있는가?

집을 나서 바로 해리를 만나는 장면으로 점프해도 되지 않는가?

그렇다 물론 이야기를 진행하는 데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단지 매튜본 감독은 ㅈ밥 에그시가 킹스맨이 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수많은 관문을 일찍부터 보여주고자 한다.

 

그림1,2를 통해 해리를 만난 에그시는 해리를 따라 의상 탈의실?로 들어간다. <그림 3,4>

이 때도 한번더 문을 통과하고 그림 5에서도 고속이동수단을 타기위해 문을 통과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림 6,7>의 문을 통과하면 그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킹스맨이 되기 위해 모인 '라이벌'들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장면은 명백하게 문이라는 클리셰를 도배해서 강조하고 있다.

킹스맨이 되기 위한 어려움을...

 

이 장면에서 문을 통과하는 장면을 생략해 보자.

집을 나와 야마카시를 한 에그시가 다음 장면에서 이미 해리앞에 서 있다면? 또는 아무도 없는 양복점 안에서 해리를 기다리고 있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탈의실문을 통과하고 또 고속이동수단문을 들어갈 필요 없이 킹스맨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다가 그 의자만 지하로 들어가서 바로 고속이동을 해서 훈련기관으로 도착했다면?

그리고 그 곳에 바로 라이벌들이 있었다면? 단 하나의 문도 통과하지 않고 이 장면을 연출 하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문이란 다른세계로의 통로이다.

에그시가 5개의 문을 지나면서 통과해야 하는 것은 물리적인 다른 세계이지만 결국 그가 이겨내야할 고난도 훈련들을 암시한다.

 

그리고 5개의 문을 물리적으로 통과해야 겨우 '귀족'라이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엄격한 차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영화장면의 해석은 언제나 이렇게 시작한다. 왜 이렇게 찍었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문제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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