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법
영화의 표현방식을 영상언어로 대치 시킬때
영화에도 분명히 은유법이라는 표현방식이 존재한다

언어에서 은유란 '나는 개다'와 같이 하나를 다른 하나에 빗대어 표현할때 쓴다
그렇다면 영상에서의 은유란 무엇일까

영화에서 은유법으로 표현되는 장르는 흔히 멜로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은유라는 것은 다분히 시적인 표현이고 영화에서 쓰이는 은유법들은 보통 사람의 감정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 표현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먼저 위에 잘라놓은 영화를 보자
이것은 '아무도 모른다'의 한장면이다
어머니에게 버림받아 생활할 돈이 없어진 소년이 어머니의 옛남자를 찾아가 용돈을 받는 장면이다
중요한 것은 캔음료 위로 돈을 쥐어진 소년의 손이 클로즙업 되고 남자가 들어간뒤
롱샷으로 보여지는 소년의 행동이다

<다마시 커피캔 위로 돈을 쥐고있는 소년의 손 클로즈업>

소년은 다 마신 캔음료를 쓰레기통에 던져서 넣으려고 하지만 벽에 부딪혀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는 그것을 다시 주워 넣는다

<쓰레기통에 커피캔을 던지는 소년 롱샷>

영화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소년은 빈캔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 성격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관객들에게도 느껴지지만 이것은 어머니의 옛남자에게 돈을 얻어낸 소년의 기쁨을 나타내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어째서 '은유' 라고 하는가
영화를 만들때 사람의 기쁨은 표현하는 방법이 여러가지가 있겠다
밝게 웃는 얼굴의 클로즈업을 보여준다면 그것은 다름아닌 '직설법'이 될것이다
그리고 만약 갑자기 하늘을 날아 오른다면 그것은 '과장법'이 될것이다
깡통을 던진다는 행위자체는 앞뒤 문맥이 없다면 결코 '기쁨'이라는 감정을 내포하지 않는 행동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은유'라고 본다
만약 보통의 기쁨을 표현할수 있는 행위 즉, 달리기라던가 점프라던가의 행동이 보여진다면 나는 이것을 '직유'라고 표현 할것 같다

동생들과 밥을 먹고 생활할수 있는 조금의 돈을 얻어낸 소년의 기쁨을 감독은 빈깡통 던지기로 표현한다
기쁜데 왜 깡통을 던지나 라고 말한다면 나는 설명할수 없다
아마 심리학적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할수 있겠지만
하지만 모두들 그런적이 있을 것이다 기분이 업되서 무엇인가를 던져본적이..

감독은 아무것도 아닌 깡통을 던지는 장면을 통해서 주인공의 기쁨을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이 영화 '아무도 모른다'는 마치 제목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것을 표면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하나하나의 사건이 등장인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남모르게 은유적으로 조금씩 표현하고 있다


<씨네마틱에 기사화된 글입니다>

영상 언어를 진짜 언어와 대치 시켜서 생각했을때
영상 문법에도 직설 은유 과장법 같은 것들이 있다
그 중 과장법은 거의 코메디 장르에서 사용된다

위의 영상은 '우리개 이야기'라는 영화의 한 에피소드로서
개밥 광고의 콘티를 만들어낸 감독에게 계속해서 콘티의 수정을 요구하는 이야기이다

처음으로 가져간 콘티는 무척 훌륭했지만
<처음의 정상적인 광고>

클라이언트의 매니저 같은 사람이 여주인공의 섹시 의상을 요구하고
<섹시의상으로 변경된 광고>

클라이언트가 자기네 사장이 엔카(일본의 트롯)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BGM을 엔카로 바꾸고 여배우의 매니저가 자기네 배우의 이미지샷으로 채워달라고 하고
<엔카를 깔고 여주인공의 이미지샷으로 채워진 광고>

마지막으로 클라이언트가 개밥에 들어간 좋은 원료들을 자막으로 넣어달라고 요구한다
<마지막에 좋은 원료의 자막을 넣은 광고>

결국 만들어진 영상은 엔카 BGM에 바다에서 뛰노는 여배우의 이미지샷에 화면을 가득채우는 조잡한 자막으로 채워지고 마지막에 이상한 흑인 트리오 셋이서 춤을추며 끝맺게 된다

실제로 광고가 저렇게 웃기게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말 클라이언트와 일을 하다보면 이런식의 어처구니 없는 요구가 받아들여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 영화는 이러한 사실을 기반으로 하여 수정되는 부분들에다 과장에 과장을 더하여 웃음을 유발하고 있다
이러한 과장법식 코메디에는 주인공도 굉장히 과장스러운 연기를 하는것이 일반적인데
여기 주인공은 처음부터 진지하고 낮은 어조로 이야기한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암담하고 인생이 코메디같은지를 역설하기 위해 이 에피소드의 표현 방식은 오직 광고만이 과장스럽게 바뀐다는 설정을 하고 있다

과장법은 웃음을 유발하는 훌륭한 효과를 보이지만 과하면 우스워지고 징그러워지는 수가 있다 또한 스토리의 진실성을 잃어버릴 우려가 있다
하지만 우리개 이야기에서는 결코 그 진실성을 잃지 않는다
이것은 영화의 한 에피소드일 뿐이고 영화의 전반을 꽤 뚫는 진실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결코 지나친 과장은 하지 않는다

결국 이 에피소드는 진지하게 CF를 만드는 감독과 반대편에서 진지하게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제안하는 사람들
그로인해 어처구니 없이 만들어지는 CF를 통해 웃음을 유발하고 있다
어처구니 없이 요구하는 관계자들이 너무나 진지 하기 때문에 이 에피소드는 실제의 이야기와 같은 진실성을 가지고 결과물에대해 큰 웃음을 유발할 수 있다


이러한 과장법은 앞에서 말했듯이 코메디 장르에서 주로 쓰인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러한 과장으로 도배되어있는 훌륭한 영화들을 소개하겠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나 미국식 패러디 영화들을 봐서 다들 알지 않는가? 훗

<씨네마틱에 기사화된 글입니다>



미국영화에서는 흔하지 않은 어두운 조명 짙은 콘트라스트
영화의 전체를 램브란트 조명으로 뒤덮은 클린트이스트우드 감독의 의도는 명확하다
바로 우울하고 밝지않은 메기(여주인공)와 클린트이스트우드의 삶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이다

메기의 삶은 너무나 우울하다 가난하고 미래는 없고 남자도 행복도 없다
그저 가족에게 돈을 벌어다 주며 자신은 절약하며 살아가야한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하고 싶은 것이 바로 복싱이다
클린트이스트우드의 삶역시 좋지 않다
딸과의 사이가 좋지 않고 자신의 훌륭한 선수를 불안감에 타이틀매치에 내보내지 못해 결국 배신 당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우울하고 꿈없는 이들이 인생을 표현하기 위해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채와 낮은 채도 그리고 콘트라스트가 강한 램브란트식의 조명을 사용한 것이다

이 동영상에 보면 처음에 둘의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에 중간중간 있는 전등에 의해 얼굴이 보였다 안보였다 한다
<실제로 걸으면서 인물이 보였다 안보였다 한다>


실제로 이런식의 전등이 되어있어도 인간의 눈은 저렇게 까지 사람의 얼굴을 구분못하고 실루엣만 남는 식으로 보지는 않는다
때문에 대부분의 상업영화 특히 전체적으로 밝은 조명을 사용하는 헐리우드에서는 결코 이런식으로 영화를 찍지 않는다
이것은 리얼리즘도 아니며 그저 관객을 불편하게 하는 요소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계속되는 이러한 조명은 그들의 삶을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어둡고 우울하게 만들어 준다

<메기의 레스토랑 안쪽의 어두운조명과 바깥의 밝은 빛>

동영상의 41초부터 나오는 메기가 일하는 장면의 경우 레스토랑안은 상당히 어둡다 테이블을 치우기 위해 밖으로 나간 메기를 기다리는 것은 소스가 묻은 돈뿐만이 아니다
바로 그녀의 기쁨을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밝은 태양빛이 기다리고 있다
<소스가 묻은 팁을 잡을때의 밝은조명>

생각해보라 영화의 감독이 당신이라면 굳이 음식점에서 일하는 메기가 테이블을 치우는 장면을 건물내부에서 바깥으로 나가며 찍어야 할필요는 없다
애초에 밖에서 찍던가 안에서  찍는 것이 조명설치, 카메라 워킹 모든것이 편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그러지 않았다
굳이 그녀가 스피드백을 사기위한 마지막 팁을 받는 장면을 어두운 그녀의 직장에서 태양빛으로 가득차있는 야외 테이블로 옮겨감으로써 표현한 것이다
번외적인 이야기지만 테이블위에 있던 지폐에 소스가 묻어있는 것 또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표현이다
굳이 영화의 소품으로 쓰이는 돈에 시나리오에 없던 소스가 묻어있고 그것을 행주로 닦는 장면을 찍었을리 없다 시나리오상에 늦어도 스토리보드에는 의도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왜 돈에 소스를 묻혔을까
그녀가 돈을 얼마나 힘들게 버는지에 대한 메타포일수도 있고 돈을 닦는 그녀의 기쁨을 표현 할 수도 있고 여러가지 상상을 해볼 수 있다
<링위는 링밖보다 훨씬 밝다>

영상의 마지막에 메기가 링위에 올라간다
이영화에서 가장 조명이 밝고 화려한 장면을 꼽으라면 바로 링위이다
이것은 링위에 서고 싶어 하는 메기와 선수가 다치는 것을 두려워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꿈이 바로 링위에 있다는 표현이라고 본다
<링 밖은 흑인의 얼굴이 구분이 안될정도로 어둡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조명을 하지만 사실상 링위까지 어둡게 할수 없어서 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보잘것 없는 이유로 전체적으로 어둡게 한 조명을 죽이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어쩌면 전체적으로 어둡게 조명을 한 것은 바로 이 링위의 밝음이, 링위의 메기가 더욱 빛날 수 있도록 하는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는 링위에서 사고를 당하고 다시 어둡고 침침한 세계로 돌아가게 된다


영화의 특이한 점중의 하나는 처음부터 등장하는 나레이션이 메기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아닌 3인칭 관찰자인 모건 프리먼이 말한다는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메기와 던이지만 영화의 화자는 바로 모건 프리먼이다
이것은 중고등학교때 누구나 들어본 3인칭 관찰자 시점이다
영화에서 시점은 사실상 계속해서 변화한다고 볼 수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모건프리먼의 나레이션은 이 영화를 3인친 관찰자 시점으로 만들어 준다

왜 메기나 던의 시점이 아니었을까
영화에서 메기와 던은 둘다 문제를 안고 있다 그리고 둘이 만나 그 문제에 대해 정면으로 맞서게 된다 비록 결과는 좋지 않게 끝나지만..
이것을 메기나 던의 입장에서 이야기 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친구에게 이야기 듣는 느낌으로 영화를 보게 하기 위해서이다
만약 영화가 메기나 던의 시점으로 진행이 된다면 우리는 당사자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는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건 프리먼의 입을 통해 한번 걸러서 듣게 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너무 슬픈 신파도 너무 감동스러운 극화도 아닌 그저 무덤덤히 말하는 모건 프리먼의 말을 통해서 우리는 그렇게 모든 이야기를 정리하며 들을 수 있다

당연하지만 시점의 선택은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시점을 선택했을때 관객이 받는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감독은 선택을 한것이고
결과적으로 이영화가 호평을 받았으니 옳은 선택이라고 할수도 있겠다

영상이 언어라고 한다면 말하는 방법에는 정답이 없다 그것은 말하는 자의 선택일 뿐이다
 
<씨네마틱에 기사화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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