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스테디 캠을 들고 완벽한 동선을 짜서 롱테이크로 찍어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어떤 느낌을 주려고..?

<이 향숙의 대역에서 시작한 롱테이크는 김상경과 백광호에서 멈춘다>

위의 스샷이 6장이니까 편하게 숫자로 부르겠다. 먼저 1번사진을 보면 이향숙의 대역이 거울을 보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이것은 설정샷을 겸한 것으로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이 사람을 보여주는 것이 이 상황을 설명하기에 가장 좋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관객들에게 이 여장한 또라이는 뭐지? 라고 의문을 제기시킨 다음에 2번장면에서 송강호가 불러다가 이향숙 팻말을 목에 걸어주는 것으로 이 상황의 설명을 마친다. 즉, 처음부터 이향숙이라는 팻말을 목에 걸지 않고 있다가 일부러 송강호가 불러서 걸어주는 설정을 한것이다. 이러한 의도는 이후에 카메라가 자연스럽게 여장남에서 송강호로 따라가게 만들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그리고 언제나 시끄럽게 말하고 다니는 송강호의 비중이 확실히 줄어든 3번 샷을 보자. 동영상을 보면 3번 장면에서 변희봉의 목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송강호가 일부러 거의 립싱크를 하고 있는 것을 알수 있다. 롱테이크에서 선택적으로 사운드를 들려주기 위한 설정인 것이다. 분명히 송강호가 뒤돌아서며 씨발이라고 무엇무엇을 말하는데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4번에서 드디어 카메라는 위에서 내려온 김상경을 따라간다. 이 부분이 이 롱테이크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즉, 이 장면을 해석해 보면 이향숙의 대역으로 현장 재연까지 할정도로 범인을 잡았다고 생각하는 송강호와 조형사와 변희봉 이 세명이 주도하는 수사에서 이제 김상경에게 관객을 주목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제까지 송강호 위주로 펼쳐졌던 이야기가 김상경을 위주로 펼쳐질 것이라는 암시이다.

5번 6번을 보면 결국 신문기자에게 사진을 찍는 3명의 멍청이들을 뒤로 하고 김상경이 혼자서 백광호가 진범이 아니라는 논리적 근거를 찾아내는 장면을 보여준다. 순간적으로 백광호의 손으로 줌인해 들어가는 카메라 워킹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중요한 디테일을 놓치게 하지 않는 센스도 보여준다. 그리고 결국 백광호를 용의선상에서 제외시키고 새로운 경찰 서장과 함께 김상경이 수사의 새로운 실권을 잡게 된다.

송강호외 2인과 김상경을 완벽하게 분리하는 이러한 설정을 통해서 둘의 대립관계를 형성 시키고 관객에게 김상경에게 주목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장면이 바로 이 롱테이크의 의미인 것이다. 한 호흡에서 보여주는 실패한 수사와 논리적인 오류를 제기하는 이 장면이 컷으로 나눴을 때는 의미가 훨씬 퇴색한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사실 정보를 가지지 않은 쇼트는 없으니까 이 글의 제목은 약간 병맛 같기도 하지만 난 멍청이가 아니니까.

보통의 설정샷이 새로운 분위기의 전환 즉, 환기 기능을 하면서 그 씬이 펼쳐질 공간적인 정보를 제공한다면 이번에 소개할 설정샷은 내러티브적 정보를 가지고 있는 설정샷이라 하겠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영화내에서 전혀 보여지지 않은 이야기를 단 한컷으로 어떻게 설명하는지 살펴보자.

<이 컷 이후로 변희봉은 완전히 사라진다>

계속해서 범인의 실마리도 잡지 못하고 심지어 아무죄도 없는 순수한 백광호를 범인으로 몰아 상황재연까지 벌인 책임을 지고 서장(변희봉)이 퇴직한다. 위의 장면은 이 영화에서 변희봉이 나오는 마지막 장면으로 젓가락을 쪼개다가 잘 안쪼개지자 '이런 젓같은'이라고 말하는 대사가 참 재미있다. 마치 지금의 상황과 자신의 앞날에 대해서 말하는 것 같다.

이건 좀 번외적인 이야기지만. 이후로 변희봉의 존재가 전혀 나오지 않는것은 조금 아쉽다. 이후에 극적 전개에 이 캐릭터를 좀더 이용했어도 좋지 않았을까? 어쩌면 사회성 짙은 이영화에서 봉준호는 권력을 내려놓은 자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고 말하고 싶었을까?

<설정샷으로 사용되는 신문>

위의 두 컷은 좀이따 설명하겠지만 자세히 보면 기가 막히다.

아무튼 변희봉의 최후의 컷 이후에 나오는 장면은 누군가가 보고 있는 신문이다. 화면에 가장 눈에 띄는 위치에 배치된 헤드라인은 바로 '경찰 서장 전격 해임'이다. 이 단 한줄의 기사로 인해 사람들은 변희봉이 서장에서 물러났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만약 이 사건을 영화에서 드라마로 표현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을까.
또한 그렇게 설명하려면 물러나는 변희봉에 대한 예우와 동정까지 곁들여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럴만한 시간도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마치 이 신문이 접혔다가 다시 펴지는것처럼 보이지만 동영상을 자세히 보면 사실을 점프컷이다. 갑자기 신문만 나오던 샷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의 왼쪽 어깨를 걸친 오버 더 숄더 샷으로 변하며 신문은 다음장으로 펼쳐진다. 하지만 이 다음장에는 전혀 쓸만한 정보가 없다. 이 샷에서 관객에게 필요한 정보는 갑자기 나타난 이 검은 어깨이다.

봉준호 감독이 굳이 처음부터 어깨를 드러낸 샷으로 이 사람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다가 힘들게 점프컷으로 구성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서장이 해임 되었다는 사실만 관객에게 주고 나서 그 다음에 새로운 등장인물을 등장시켜 이 사람이 바로 새로운 서장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편집인 것이다.

내가 항상 이야기하지만 이러한 점프컷이 애초에 의도되지 않았을리 없으므로 굳이 이렇게 비슷한 사이즈의 2개의 장면을 찍은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어깨처럼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이 서장은 영화에서 어떠한 설명도 없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 서장으로 인해 이야기는 급속도로 김상경 위주로 펼쳐지지만 결과적으로 전혀 의미가 없는 인물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다음샷에서 바로 이 새로운 경찰 서장을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관객이 경찰 서장이 해임되었다고 이 사람이 새로운 서장이라고 생각할리는 없지만 일단 이렇게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방식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굳이 이 인물의 등장에 '경찰 서장 전격 해임'이라는 헤드라인을 때려박아준 이유에 대해서 관객이 고민할 틈도 없이 바로 다음장면에서 송강호의 프리젠테이션을 듣는둥 마는둥 하는 이 남자가 보여진다.

관객들은 불과 1분 정도의 장면으로 변희봉이 해임되고 새로운 경찰서장이 왔으며 그게 바로 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식의 사건 전개를 모두 하나하나 정극으로 보여줄 필요는 없다. 때때로 영화에서는 빠르게 많은 사건들을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현대 영화의 컷들의 90%이상이 기본적인 연속 편집으로 되는 것은 어쩔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보이는 점프컷들이나 순간적인 시간을 뛰어넘는 편집이 어렵고 더욱 중요한 것이다.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와 김상경의 첫만남이 그러하다. 관객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은 굳이 보여줄 필요가 없다. 그리고 현대의 관객들은 이제 어떤 시간대를 뛰어넘어 보여줘도 왠만하면 알아듣는다. 관객이 알아채지 못하게 하는게 최근에는 더 어렵지 않나 생각될 정도이다.

<이 장면은 프레임인 프레임이라는 쓸데 없는 이름으로 분류되는 문법>

송강호가 김상경을 두들겨 패서 끌고 오는 장면은 자동차의 백미러로 포착된다. 이것은 프레임인 프레임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이거나 미학적인 장면이라기 보다는 단순한 영화적 유흥이라고 보여진다. 단순히 찍는것보다 더 재미있는 장면이 구성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송강호의 수갑을 보고 김상경은 묻는다. '너 형사야?'>

영화에서 김상경이 송강호에게 너 형사야? 라고 묻는다. 하지만 이 이후의 장면은 굳이 보여줄 필요가 없다. 관객들은 송강호가 이미 형사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봉준호 감독은 과감하게 시간대를 뛰어넘는다. 송강호와 김상경의 오해가 풀린 후로 훌쩍 말이다.

이러한 편집이 가지는 의미는 명확하게 말해서 송강호와 김상경의 첫만남을 '악연'으로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오해는 풀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오해가 생기는 장면은 재미있지만 오해가 풀리는 장면은 재미 없다. 그렇기 때문에 봉준호는 오해를 푸는 장면을 굳이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해가 풀린후에는 다시 재미있는 장면이 있다. 바로 미안해하는 송강호의 모습이다. 때문에 봉준호는 굳이 김상경이 너 형사야? 라고 물은 직후에 송강호의 미안해 하는 모습으로 편집한다.

물론 촬영본이 실제로 얼마만큼 있는지는 알수 없다. 애초에 스토리보드에 이만큼만 찍히도록 계산 되어 있었는지 아니면 좀더 있는지 과감하게 잘라낸 것인지. 하지만 이 부분의 편집이 상당히 깔끔하고 세련되어 보인다.

오해를 푸는 구구절절한 설명씬을 빼버리고 둘의 '악연'만 표현한채로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부딪히게 되는 설정을 위해서 필요한만큼 많지도 적지도 않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렇게 한씬이지만 순간적으로 시간을 뛰어넘는 장면을 구사하기는 쉽지 않다. 장소가 이동한 것도 아니며 인물이 이동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며 이것을 옛날의 많은 단편영화에서는 시계를 보여준다는 촌스러운 설정샷을 이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의 흐름을 끊지 않고 단 한번의 컷으로 넘어가는 이러한 시간의 압축은 수많은 영화 학도들이 배워야할 깔끔한 편집 방법이라 생각한다.

김상경의 질문에 대한 한참 뒤에 나오는 송강호의 대답.
이것이 이 편집의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문답편집이라고 말하면 되려나? 대사는 분명 영화가 가지고 있는 고유하고 강력한 무기이다. 이것을 편집에 이용하는 이러한 방법에 대해서 많은 연구좀 누가 해줬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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