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가 사냥꾼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치는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이 말은 영화에서 이우진이 계속해서 오대수에게 전하는 말이다. 영화의 표면적인 의미로 노루와 새는 오대수 사냥꾼과 그물치는 자는 이우진을 지시하는 말로 보인다. 결국 이것은 이우진이 오대수에게 스스로 구원하기 위해 발버둥 쳐봐라 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말은 성경에 나오는 말이다. 어째서 박찬욱은 이우진에게 하필 성경에 나오는 말을 인용하게 하는가? 성경에 나오는 말은 아무나 인용할 수 없는 것이다. 자격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인용할 이유도 없거니와 하기도 힘들다. 그렇다면 박찬욱 감독은 이우진의 캐릭터에 어떤 것을 설치해 놓았는가?

<이우진은 카톨릭을 믿는가?>

이우진이 영화에서 카톨릭 신자라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알 수 없다. 다만 감독은 '근친상간'이라는 영화의 소재에 대하여 카톨릭적 배경의 해석을 한 측면에 자리잡게 한 것이다.

특히 이러한 면은 이우진에게 쏠려있다. 이우진이 졸업한 고등학교(물론 오대수도 나왔지만 영화에서 설정한 캐릭터에서 오대수는 완전히 카톨릭과는 배제된다)는 물론 그의 등에 있는 십자가 문신과 옷장이 열리고 닫히는 방식을 보자.

단순히 우연이라고 이야기하기엔 이우진의 등에 있는 문신은 설명할 길이 없고 계속해서 나오던 옷장을 굳이 마지막에 버즈 아이뷰로 보여주는 것 역시 캐릭터적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서라고 생각된다.

영화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 아니었을까? 이우진은 카톨릭 신자였다. 그런 그가 자신이 행하고 있는 '근친상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을까?

일반적으로는 종교적 이유 때문에 죄책감이 더 커졌을 것이다. 때문에 자살하는 누이를 차마 막지 못했고 그 때문에 오대수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산처럼 커졌을 것이다. 평생을 복수를 위해 바친것에 대한 이우진이라는 인간의 캐릭터를 납득 시키기 위한 방법인 것이다.

하지만 또다른 해석을 해보면 어떨까? 성경책 구약성서에 보면 대부분의 유대인의 조상들은 '근친상간'으로 종족을 번식시킨다. 생각해보자 성경책의 말대로 인류의 조상이 아담과 이브라면? 어떻게 인류가 생겼을까? 당연히 '근친상간'을 통해서이다. 이런 식으로 해석해 보자면 이우진은 아무런 죄책감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오직 오대수의 혀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면 문제가 없는 것이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광기어린 복수에 평생을 바쳤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런 해석에서는 마지막에 이우진이 '우린 알면서 사랑을 했지만 너희도 그럴 수 있을까?'라고 오대수에게 말하는 이유를 뒷받침해 주기도 한다. 이우진은 근친상간인 것을 알면서도 사랑을 했다. 그것이 나쁜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지만 오대수는 그것이 나쁜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알면서 그럴 수 있을까?

그 말대로 오대수는 마지막에 최면술사를 통해 자신의 기억을 지운다. 그는 그것이 옳지 않다고 믿기 때문에..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역시 성경에 나오는 말이다. 이우진의 복수 방식 역시 카톨릭적 배경에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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