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장면은 마치 이터널 선샤인에서 미쉘공드리가 보여주는 표현양식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 캐쉬백이라는 영화역시 상당히 스타일리쉬하게 표현된 영화이므로 이런 방식에 이질감은 없다. 이터널 선샤인에서의 표현이 피하고 싶은 파괴적인 느낌이라면 캐쉬백의 표현양식은 피할수 없이 빨려드는 느낌이다.

<간단하게 사운드 이야기부터 해보자>

수지에게 전화해서 다시 시작하자고 말하는 벤. 하지만 수지는 안된다고 말한다. 전화를 하는동안 천천히 들려주던 스릴러 영화식의 불길한 음조가 벤의 '녀석이랑 잤어?'라는 대사에 귀에 확연하게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수지의 '응'이라는 대답과 함께 벤의 일그러진 표정이 나오자 음조에 슬픈 멜로디가 더해진다.

그리고 결국 수지가 전화를 끊자 5초 정도의 '우퍼'라고 부를만한 쿵쿵쿵쿵 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무기력하게 보이는 벤의 가슴이 심하게 쿵쿵거린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관객의 무의식을 자극한다.

좋은 영화라면 영화의 음악도 이렇게 디테일한 연출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찍은 단편영화에 어쩔수 없이 기존의 곡을 통째로 삽입하는 것이 아닌. 이러한 순간순간의 감정을 디테일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음악이야 말로 진정한 영화 음악이다.

<전화를 끊은 벤은 뒤로 미끄러지더니 어느새 침대에 눕게된다>

꽤나 이터널 선샤인 같은 이런 몽환적인 표현. 수지가 자신을 떠나 다른남자를 만나지만 침대에 드러눕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벤의 심정을 적절하게 표현한다.

전화가 끊긴후 장소가 벤의 방으로 바뀌어 벤이 드러눕는다면 어떨까? 적어도 벤이 걸을 기운은 있구나라고 느껴질 수 있다. 이 표현과 비교하자면 현재의 표현 방법은 벤은 걸을 기운조차 없이 그저 침대에 드러누울 수 밖에 없다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영화의 전반에 걸쳐있는 벤의 무기력한 이미지에 딱 맞는 표현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어떻게 표현한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아마 세트를 하나 만든 것 같다. 학교 복도처럼 보이는 곳 뒤에다 벤의 방바닥처럼 보이는 벽을 만들어서 이동차 같은곳에 벤을 올려놓고 후진하면 찍은 것이라 생각된다. cg를 이용한 기법 같지만 세트라면 미쟝센이라고 생각해서 제목에 썼다.

그리고 전화를 하는 컷은 전체적으로 꽤 긴 롱테이크에 ARC를 사용해서 촬영됐다. 전화를 거는 벤의 쓸쓸한 뒷모습에서 시작해서 얼굴에 환한 빛이 들어왔다가 수지와의 대화가 절망적으로 이어지자 어둡게 처리되는 벤의 얼굴과 젠킨스와 잤다는 그녀의 말을 들은 벤의 표정이 정확한 타이밍에 촬영되도록 구성된 훌륭한 샷이다.

실제로 많은 영화에서 이렇게 인물의 뒷모습에서 시작해서 앞으로 돌아가는 ARC의 샷을 많이 보여주는데 확실히 감정을 전달하는데 효과적인 문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터널 선샤인이랑 비슷한 느낌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꿈에 대한 이야기와 꿈같은 이야기의 영화니까.



영화가 종합예술이라고 불리우는 이유중에 중요한 한가지가 바로 '음악'일 것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영화에서는 배경음악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것으로 유명했다 대단한 일이다 음악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음악은 영화에서 대단한 힘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영화의 분위기와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가장 힘있는 장치이다

일각에서는 영화에서 음악의 사용이 옳지 못하다는 의견이 있다
그것은 바로 노골적인 감정의 세뇌라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음악역시 종합 예술인 영화가 선택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므로 위의 의견과는 좀 다르다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지 무조건적인 배제는 좋지 않다 음악이 있는 부분이 있기에 음악이 없는 부분도 더 살아 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영화음악을 가장 잘 사용하는 감독을 꼽으라면 난 첫번째로 이와이 슌지를 꼽겠다 음악뿐만이 아니라 그는 영화의 사운드를 완벽하게 요리할 줄 안다

먼저 위의 영상을 보도록하자

<조그맣게 피아노 연주가 들리고 있다>

 
스피커의 볼륨을 최대한 키워놓고 잘 들어보자
물건을 훔친 죄로 어머니를 부르게된 유이치 그리고 무엇인가 터져버릴 것 같은 무거운 공기가 흐르는 상담실에는 조그맣게 옆방의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영화를 처음부터 본사람은 알겠지만 이 씬의 처음부터 쿠노가 연주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옆의 상담실로 유이치와 선생님이 들어가게 된다

<어머니가 유이치를 때리기 시작하자 피아노 연주소리가 커진다>

물건을 훔쳤다는 이야기를 들은 유이치의 어머니
유이치를 째려보는 순간부터 쿠노의 피아노 연주소리는 급격하게 커진다

그리고 화면은 쌩뚱 맞게도 이일과 전혀 상관 없는 쿠노의 연주 장면으로 바뀐다
이와이 슌지는 어째서 이런 편집을 사용한걸까 

<다시 돌아온 상담실 음악은 곧 멈춘다>
  
다시 돌아온 상담실에서는 이미 진정한 유이치의 어머니가 있다
그리고 음악은 곧 멈춘다

과격하고 급박한 장면에서 격렬한 bgm을 사용하는 경우는 자주 있다
그리고 릴리슈슈의 모든 것의 경우 상당히 그로테스크한 음악을 하는 릴리슈슈의 음악이 영화의 전반에 걸쳐 사용된다

하지만 도둑질을 하다가 걸려서 어머니에게 맞는 이 장면에 슬프도록 아름다운 드뷔시의 피아노 연주곡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머니의 흥분으로부터 음악이 커지고 진정하자 완전히 사라지는 것으로 보아 이 장면에서 '드뷔시의 아라베스크'는 유이치 어머니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일부러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곡으로 배치한 슌지 감독의 의도는 바로 어머니의 슬픔을 표현한 것이다

유이치를 때리지만 그녀의 감정은 분노라기 보다는 슬픔이다
그렇기 때문에 분노의 음악이 아닌 슬픔의 음악으로 사용된 것이다
포 미니츠의 경우 피아노 연주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tv라는 매체를 자주 사용한다 극중 배우가 연주회 장면을 tv에서 보고 그것을 그대로 bgm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이 슌지는 좀더 노골적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내게는 이런 방법이 더욱 고급스럽게 느껴진다
2008/12/31 - [video grammer] - 영상문법 - 셔레이드 <하나와 앨리스>
에서 경읽는 소리를 이용하기 위해 주인공을 절에 배치하듯이 피아노 연주를 이용하기 위해서 일부러 이 두 장면을 교차로 보여준다

사실 쿠노의 이 첫 등장은 영화에서 큰 의미가 있지 않다
그녀가 연주하는 곡이 드뷔시의 아라베스크로 당시에 릴리슈슈의 '호흡'의 첫번째 수록곡의 오마주 대상이 된다는 정보를 전달하며 쿠노를 관객에게 처음으로 보여주는 의미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을 bgm의 사용을 위해 투입시켰다는 과감함에 나는 찬사를 보내고 싶다

<헨드헬드가 아니다>


잠깐 촬영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하자
영화의 전반에 걸쳐 들고찍기와 점프컷이 사용되는데 오히려 간헐적으로 사용되는 트랙킹이나 크레인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위에 나오는 4명이 모두 보여지는 롱샷의 경우 헨드헬드가 아닌 트랙킹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곧 있을 폭풍 전야의 느낌을 형성하며 어쩔줄 몰라하는 유이치의 상황을 적절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의 매가 시작되자 촬영은 급격한 헨드헬드로 바뀌며 교차편집되는 쿠노의 연주장면은 이것과의 대비를 위하여 아주 부드러운 트랙킹으로 촬영된다

한장면 한장면의 연출을 위해서 샷의 강약을 조절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



말에는 접속사라는게 있다
그리고 그러나 그래서...
하지만 이런 접속사를 압축하는 문장도 또한 만들 수 있다

'나는 그녀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모른다'
'내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그녀는 모른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영상에서도 접속사를 생략할 수 있다

첨부한 영상 23~24초 부근의 씬이 넘어가는 부분을 집중력있게 보자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것이다

<남자는 편집부에는 이야기 할수 없다고 말한다>

제니의 부친과 기자의 대화이다
정확히 무슨 내용이 오고갔는지는 모르지만 맥락상 제니의 부친으로 부터 그녀가 콩쿨에 나갈 수 있게 언론의 노출을 요구한 듯 싶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기자에 말에 자리에서 일어난 제니의 부친에게 교도소장이 할수 있는 일을 찾아보겠다고 아쉬운 소리를 내뱉는다 하지만 편집부에 말할수는 없다는 말을 하고 제니의 부친은 아무말 없이 자리를 떠난다

<현장음이 커지면서 이후의 농구장의 소리와 겹쳐진다>

제니의 부친이 자리를 뜨자 곤란한 얼굴을 하고 있는 기자
그위로 계속해서 들려오던 현장음이 조금씩 커지고 그것은 농구장의 환호소리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 부분이 바로 사운드 디죨브이며 이번 포스팅의 핵심이다

<편집부에는 말 못하지만 어째서인지 기자는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다>

편집부에 말할 수 없다는 기자는 왠일인지 교도소에 와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다
크뤼거와 그녀가 가르치는 제니의 기사를 쓰러 온듯...
앞에서 편집부에 말할수 없다던 씬과 상반된 이 씬을 연결한 사운드 디죨브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이 두씬의 이야기의 텍스트적 의미를 생각해보자
제니의 부친이 기자에게 기사를 써주기를 부탁했지만 기자는 편집부에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기자는 어째서인지 교도소에 가서 크뤼거와 제니를 취재하려고 한다
이런 의미로 정리할 수 있다
나는 일부러 위의 문장에 '하지만'이라는 접속사를 사용했지만 사실은 접속사를 사용하지 않는게 맞다 왜냐하면 영상이 그렇게 편집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하지만'이라는 접속사를 영상으로 표현한다면 아마 교도소의 전경샷이나 하는 설정샹이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취재하러온 기자의 모습으로 넘어왔을 거다

하지만 앞씬의 현장음을 점점 크게 키워 뒷씬과의 사운드를 연결시켜버린 이 편집으로 이 두씬의 거리는 훨씬 가까워지게 된다
'하지만'이라는 접속사로 이야기를 한숨 쉴수 있는 타이밍이 없이 바로 취재를 하려고 온 기자의 모습이 보여지기 때문이다
'기자는 편집부에 말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크뤼거와 제니를 취재하러 나타났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이 영상에 가장 적합한 텍스트일 것이다

그리고 현장음과 이어지는 농구장의 환호소리가 마치 '오~ 그래? 과연 편집부에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라고 들리는 것 같지 않은가? 이렇게 느끼는 것은 조금 과장 해석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나는 감독의 의도가 있었다는 가능성을 전혀 배재할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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