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끝낼 것인가?

 

이것은 시나리오의 문제와는 다르다. 시나리오의 그것이 이야기의 문제라면 영화는 이미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똑같은 이야기라도 어떤 이미지를 선택할 것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영화 <건축학개론>이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것은 이런 이미지의 선택에 있어 훌륭한 지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포스팅을 시작으로 영화 건축학개론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 영화의 첫번째 씬은 굳이 필요한가?>

 

 

위의 장면이 건축학개론의 이른바 오프닝시퀀스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재밌게 본 관객이 과연 이 장면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당신에게 이 장면이 영화에서 꼭 필요할까? 라고 묻는 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이 장면은 왜 필요한지. 영화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지 설명해 보자.

 

먼저 이 씬을 요약하면 어른이 된 양서연이 공사하다가 중지된 부모님의 집을 둘러본다.

그리고 지저분한 거실 바닥에 시멘트가 놓여있는 것과는 대조되게 그녀의 방(으로 추정되지?)은 마치 며칠전까지 사용하고 있었던 것 처럼 깨끗하다.

그리고 집을 살펴본 그녀가 떠나고 집의 외관이 멀리서 보이고 타이틀이 들어간다.

 

대사도, 특별한 스토리도 없는 이 장면이 영화 건축학개론에는 반드시 필요한 장면이다.

그렇지 않다면 관객들이 이 영화를 재미있어 했을리가 없다.

처음부터 불필요한 장면을 나열하는 영화를 좋아해줄 정도로 대중은 멍청하지 않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공사중인 집은 바로 현재의 양서연이다.

원래 영화에서 '집'이란 그 인물의 내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존재이다. 내면이 따뜻한 사람은 따뜻한 느낌의 집에서 살 것이고 성공만을 바라며 냉철하게 살아온 사람의 집은 그것과 다를 것이다.

 

이 집은 양서연의 상황을 어떻게 이야기 하고 있는가?

 

한마디로 얘기하면 부숴져있다.

영화의 시작지점에 그녀의 상태를 생각해 보자.

아버지는 아프고 꿈을 포기하고 했던 결혼은 파국을 맞이하고 있다. 아마 그녀 인생에서 제일 힘든 상황일 것이다. 그 상황에서 그녀는 아주 오래전에 친구였던 승민을 기억하고 찾아간다.

 

하지만 어째서 그녀는 갑자기 승민을 떠올린 걸까?

그가 건축과였으니까? 그렇다면 이 공사를 처음부터 그에게 맡겨도 되지 않았을까?

그녀의 결혼생활이 어땠고 정확히 무슨 이유로 승민을 떠올렸는지는 보여지지 않지만 이 집에서 혼자만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간직된 방이 있다.

이 방이야 말로 서연과 승민의 첫사랑의 기억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영화를 시작하고 서연은 자신의 옛 집을 둘러보다가 바로 그 방의 문을 열어본다. 방의 문을 열었다는 것은 그 때의 기억을 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방에 들어가보지는 않지만 이 방을 열어 보았다는 것이 승민을 떠올렸다고 생각된다.

 

뻥 뚫려있는 문을 통해 집으로는 들어가지만 닫혀 있던 자신의 방에는 들어가지 않고 그저 들여다 본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기 위해 현관문으로 들어가서 그곳에 오랫동안 닫혀 있던 기억을 마주한다고 해석하면 될 것이다.

 

어째서 이 방만 그때 그대로인가?

영화적 리얼리티로는 말도 안되는 책상에 포스트잍이 그대로 붙어 있는...

 

서연의 다른 삶은 그 이후로도 진행 되었고 그로 인해 좋던 나쁘던 변화했지만 승민과의 기억은 그 때 그대로 멈춰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때문에 그녀는 승민을 찾아갔고 자신이 인생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그와의 관계를 진전시킨다.

 

 

 

 

<그리고 서연은 집과 자신을 리모델링 시킨다>

 

 

이렇게 처음과 끝을 비교해보면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이 제법 명확하게 보이는 것 같다.

엉망이었던 서연의 삶과 집이 원하는대로 예쁘게 만들어진 것이다.

 

그녀는 이혼을 했고 아픈 아버지를 모시며 살 수 있게 되었으며 피아니스트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게 되었다. 그리고 집 역시 완벽하게 완성되었다.

영화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았던 피아노 과외를 하는 장면을 보면 정확하게 맥락이 짚어진다.

 

그리고 그녀는 승민이 보내온 택배를 받는다.

서연이 두고간 그것을 승민이 보내옴으로써 둘사이의 이야기가 모두 맞춰진다.

 

과거에 서연에게 그 선배가 없었다면 둘이 이루어졌을지 모르는 것처럼 현재 승민에게 약혼자가 없었다면 둘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렇지 않았고 그것이 이 둘의 인연이었던 것이다.

 

카메라는 오랜만에 씨디를 재생하며 음악을 듣는 서연을 비춰주다가 결국 그녀에게서 떠난다.

그녀의 삶이 안정됐다는걸 확인 시켜주고 승민에게서 그녀를 떠나보내는 것처럼 관객에게도 그녀를 이제는 잊으라고 말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