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정보를 가지지 않은 쇼트는 없으니까 이 글의 제목은 약간 병맛 같기도 하지만 난 멍청이가 아니니까.

보통의 설정샷이 새로운 분위기의 전환 즉, 환기 기능을 하면서 그 씬이 펼쳐질 공간적인 정보를 제공한다면 이번에 소개할 설정샷은 내러티브적 정보를 가지고 있는 설정샷이라 하겠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영화내에서 전혀 보여지지 않은 이야기를 단 한컷으로 어떻게 설명하는지 살펴보자.

<이 컷 이후로 변희봉은 완전히 사라진다>

계속해서 범인의 실마리도 잡지 못하고 심지어 아무죄도 없는 순수한 백광호를 범인으로 몰아 상황재연까지 벌인 책임을 지고 서장(변희봉)이 퇴직한다. 위의 장면은 이 영화에서 변희봉이 나오는 마지막 장면으로 젓가락을 쪼개다가 잘 안쪼개지자 '이런 젓같은'이라고 말하는 대사가 참 재미있다. 마치 지금의 상황과 자신의 앞날에 대해서 말하는 것 같다.

이건 좀 번외적인 이야기지만. 이후로 변희봉의 존재가 전혀 나오지 않는것은 조금 아쉽다. 이후에 극적 전개에 이 캐릭터를 좀더 이용했어도 좋지 않았을까? 어쩌면 사회성 짙은 이영화에서 봉준호는 권력을 내려놓은 자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고 말하고 싶었을까?

<설정샷으로 사용되는 신문>

위의 두 컷은 좀이따 설명하겠지만 자세히 보면 기가 막히다.

아무튼 변희봉의 최후의 컷 이후에 나오는 장면은 누군가가 보고 있는 신문이다. 화면에 가장 눈에 띄는 위치에 배치된 헤드라인은 바로 '경찰 서장 전격 해임'이다. 이 단 한줄의 기사로 인해 사람들은 변희봉이 서장에서 물러났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만약 이 사건을 영화에서 드라마로 표현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을까.
또한 그렇게 설명하려면 물러나는 변희봉에 대한 예우와 동정까지 곁들여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럴만한 시간도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마치 이 신문이 접혔다가 다시 펴지는것처럼 보이지만 동영상을 자세히 보면 사실을 점프컷이다. 갑자기 신문만 나오던 샷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의 왼쪽 어깨를 걸친 오버 더 숄더 샷으로 변하며 신문은 다음장으로 펼쳐진다. 하지만 이 다음장에는 전혀 쓸만한 정보가 없다. 이 샷에서 관객에게 필요한 정보는 갑자기 나타난 이 검은 어깨이다.

봉준호 감독이 굳이 처음부터 어깨를 드러낸 샷으로 이 사람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다가 힘들게 점프컷으로 구성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서장이 해임 되었다는 사실만 관객에게 주고 나서 그 다음에 새로운 등장인물을 등장시켜 이 사람이 바로 새로운 서장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편집인 것이다.

내가 항상 이야기하지만 이러한 점프컷이 애초에 의도되지 않았을리 없으므로 굳이 이렇게 비슷한 사이즈의 2개의 장면을 찍은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어깨처럼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이 서장은 영화에서 어떠한 설명도 없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 서장으로 인해 이야기는 급속도로 김상경 위주로 펼쳐지지만 결과적으로 전혀 의미가 없는 인물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다음샷에서 바로 이 새로운 경찰 서장을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관객이 경찰 서장이 해임되었다고 이 사람이 새로운 서장이라고 생각할리는 없지만 일단 이렇게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방식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굳이 이 인물의 등장에 '경찰 서장 전격 해임'이라는 헤드라인을 때려박아준 이유에 대해서 관객이 고민할 틈도 없이 바로 다음장면에서 송강호의 프리젠테이션을 듣는둥 마는둥 하는 이 남자가 보여진다.

관객들은 불과 1분 정도의 장면으로 변희봉이 해임되고 새로운 경찰서장이 왔으며 그게 바로 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식의 사건 전개를 모두 하나하나 정극으로 보여줄 필요는 없다. 때때로 영화에서는 빠르게 많은 사건들을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영화의 이야기가 버벌키튼의 입으로 전해지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체포장면도 이 심문 장면에도 버벌키튼은 등장하지 않는다. 역시 이것은 버벌키튼이 영화의 진짜 범인 즉, 카이저라는 것을 위한 복선이 아닐까?

아무튼 이 4명의 심문 장면은 2009/05/05 - [video grammer] - 영상문법 - 끝말잇기 <노킹 온 헤븐스 도어, Knockin on heavens door>의 루디와 마틴처럼 하나의 이야기처럼 이어지고 있다.

<이런식의 표현은 영화에서 자주 쓰인다>

끝말잇기 역시 라임처럼 여흥적 의미가 크다. 물론 이런 심문 장면에서 형사들이 이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반복한다는 상징적 의미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연출이 효과적일수는 있지만.. 맥마너스에게 형사가 '네 짝 펜스터가 뭐라 불렀게?'라고 묻자 펜스터로 화면이 바뀌며 '누구라고?'라고 대답한다. 펜스터에 대한 질문을 던졌지만 다시 펜스터가 누구라고? 라고 대답해버린다. 하지만 그 이후의 형사의 대사는 이번엔 맥마너스에 대한 이야기다.

즉 이러한 연출로 형사가 맥마너스와 펜스터에게 니네 둘이 서로 말이 틀린데? 라며 유도심문을 똑같이 하고 있다라는 정보를 전해준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이 장면의 정보들이 가지는 의미는 크지 않으므로 이러한 편집은 영화의 초반에 재미를 위해서라는 측면이 더 크게 작용한다고 보여진다.

<최근엔 대세가 되어버린 점프컷>

장뤽 고다르가 1960년에 네멋대로해라에서 점프컷을 선보였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결코 새로운 문법이 되지는 못했다. 1995년에 만들어진 유주얼 서스펙트에서 사용된 이 점프컷도 아주 잠깐 조심스럽게 들어갔을 뿐이다. 하지만 최근엔 거의 모든영화 그리고 프리즌 브레이크라는 시리즈가 대대적으로 사용하면서 영상의 새로운 문법이 되어버렸다.

아무튼 버벌키튼의 말 - 위의 노란 자막- 이 흘러가는 동안 펜스터는 이야기를 듣다가 립글로즈를 바르고 뒤에 신경질 적인 제스처를 취하는등의 점프컷들이 이어진다. 요즘의 영화들에서는 너무나 흔한 장면이지만 이 당시에는 역시나 아직도 굉장히 낯설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의 오디오가 깔리면서 3컷 정도 아주 조심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최근의 점프컷이 새로운 문법으로 적용되는 이유는 바로 표현의 영역을 확장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컷을 할때는 숏의 사이즈가 변화해야한다는 고전적 헐리우드의 문법 때문에 이런식의 표현이 너무나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치 한 컷을 몽타주 시퀀스처럼 미세하게 분리해 놓은 것처럼 작용하는 이런 점프컷들은 한컷이 들어갈 타이밍에 아주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물론 점프컷의 용도는 아주 여러가지지만 위의 픽스에서의 효과가 고다르가 사용했던 대표적인 것이라 생각된다.

<다시 끝말잇기>

그리고 펜스터가 마지막에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입을 벌리면 이 다음 컷의 하크니가 말하는 'I want my lawer'의 두 음절과 싱크가 일치한다. 즉 앞에서의 끝말잇기가 형사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다음 사람이 하는 식으로 연결 되었다면 이 컷은 뒤 컷의 하크니의 오디오를 선행시키며 의도적으로 펜스터에게 비슷한 입모양을 시켜서 (실제로 펜스터가 뭐라고 했는지는 알수 없다) 싱크를 일치 시키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의 끝말잇기가 같은 유도심문이 반복된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졌지만 이 편집은 정말로 영화적 유흥 이외의 의미는 없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장면이 앞의 장면보다 영화적으로 질이 떨어지는 표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에서 영상의 유희만을 위한 표현 양식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급스러운 스킬인가?(아님말고)

플롯과 관계 없는 영상만을 위한 유희. 이것이 영화를 더 고급스럽고 유쾌하게 만드는 수단이라고 믿는다.(아님말고)


매일 자신의 여자친구에 대해서 자랑하던 사람(나쁜놈)이 갑자기 여자친구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어떨까?(물론 나로서는 기쁠 것이다)
아마 그의 갑작스런 변화에 놀랄 것이다 이것은 분명 그의 일관된 삶의 양식에 어떤 변화가 왔다고 생각 할 수 있다

하지만 친구중에 미친놈 사이코 또라이중에 어떤 별명을 지어야 할지 모르는 괴팍한 친구가 있다면? 우리는 그가 왠만한 이상한 짓을 해도 그러려니 할 것이다
일탈 행위는 분명히 일관된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돌발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이것이 일관성있게 유지가 된다면? 그것은 더이상 일탈이 아니게 된다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서 이와이 슌지는 수평의 파괴, 점프컷을 이미 너무나 자주 사용한다 이것은 이영화에서 더이상 일탈이 아니다 하지만 그 외에도 이 영화에는 수많은 일탈된 표현양식이 있다

2009/03/03 - [video grammer] - 영상문법 - 핸디캠이라는 문체로 말하기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이것이 바로 대표적인 릴리슈슈의 일탈적 표현양식이다
하지만 계속되는 수평의 파괴와 거친 핸드헬드 그리고 점프컷의 사용은 이미 이러한 핸디캠의 사용에도 어느정도 놀랍지 않은 익숙함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그리고 이번의 포스팅하는 인간을 고기로 만들어버리는 색감의 보정에도 우리는 크게 놀라지 않는다

<이미 수평의 파괴는 말해봐야 입만 아플정도다>

반에서 짱을 먹고 있던 이누부시를 격파(?)하고 무언가에 홀리든 걸어가는 호시노의 촬영에는 이전부터 보여졌던 단순한 수평의 파괴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먼저 위의 첫번째 사진을 보자
호시노의 얼굴은 타이트 바스트라고 불러야 될정도로 타이트하다
보통 영화의 경우 이런 인물샷의 경우 초점거리가 매우 긴 망원 렌즈로 촬영된다
그것은 인물에 포커스를 맞춰서 그의 표정에만 집중하게 하기 위함이며 아웃 포커싱 된 화면이 훨씬더 보기 좋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왜 DSLR카메라를 사용하면 사진이 예쁘게 찍히는가?
그것은 자동디카에는 망원 효과를 전혀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단순히 포커싱만으로 이야기 할수 없는 부분들이 있지만 아웃포커싱의 효과는 크다

아무튼 그렇지만 호시노의 인물샷은 똑같이 수평이 틀어져 있는 밑의 유이치의 샷과 다르다 호시노는 광각렌즈로 촬영 되었다
물론 유이치역시 망원으로 촬영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뒤의 배경에 맞는 포커스를 보자 호시노의 뒤는 모두 포커스가 맞아있다 하지만 유이치는 바로 뒤에 있는 친구마저도 어느정도 초점이 날아가 있다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광각으로 사진을 찍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광각에는 왜곡효과가 있다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서 다르지만 이 장면에서는 분명히 호시노를 '또라이'처럼 보이게 하고 있다
다시한번 호시노의 얼굴샷을 잘 보자 분명 평소의 호시노와는 다르게 거리감이 다르게 왜곡되어 이상한 사람처럼 보인다

반면 밑에 있는 유이치의 샷은 살짝 포커스가 날아간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뒤에 있는 친구들의 표정까지도 잡아내려는 의도라고 생각되며 원래 이영화에서 심한 망원렌즈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호시노의 퇴장 장면에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점프컷과 수평의 파괴와 함께 뒤뚱거리는 호시노에 맞춘 카메라 워킹까지 있다
다시한번 잘 살펴보면 멍하니 홀린것 같은 호시노를 표현하기 위해 카메라와 편집이 상당히 연출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누부시의 피부색을 보라색으로 만든다>

위의 사진으로는 구분하기 힘들지도 모르지만  위의 세컷의 이누부시의 피부색은 짙은 보라색이다 이것은 분명히 색감을 보정한 것이다

나는 이 장면에서 호시노의 변신을 극대화 하기 위해서 최대한 이누부시를 불쌍하게 보이기 위한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진흙탕 물에서 벌거벗고 개헤엄이라는 설정에도 모자라서 이누부시의 피부색마저 인간같지 않은 색으로 만들어 버린다 마치 매우 하등한 생물처럼
그리고 중간중간 초점을 나가게 하면서 개헤엄을 치는 이누부시를 모자이크로 처리해야 되는 인권을 보호해줘야 할정도의 불쌍한 인간처럼 만든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계속되는 수평의 파괴와 점프컷 그리고 핸디캠의 사용, 광각렌즈로 왜곡, 색감의 변화까지 계속해서 표현을 상황에 맞춰서 자유롭게 하고 있다

영화가 시작되고 한참뒤에 나오는 갑작스런 핸디캠샷의 시퀀스나 이런 색감의 변화 같은 것이 특별히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는 이유는 이와이 슌지가 이 영화에서 일관되게 기존의 표현 양식을 절대법처럼 지키고 있지 않는 일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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