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인스포팅으로 10개가 넘는 포스팅을 해왔는데 드디어 이번이 마지막이다. 마지막 장면이라 클립한 동영상이 5분이나 되기도 하고 할 이야기가 참 많기도 하다.
먼저 음악 이야기를 해보자.

<벡비가 마크에게 담배연기를 내뿜는 순간 음악은 시작된다>

벡비가 내뿜는 담배연기를 마크가 맡는 7초부근부터 음악이 시작된다. 이 음악은 마지막까지 나오면서 앞으로 나올 모든 장면의 감정을 조절하고 있다.

먼저 7초부근부터 나오는 음악의 의미는 마크가 돈가방을 가지고 달아나야겠다는 결심을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영화를 보면 이 전의 장면에서 벡비가 술먹고 부딪힌 사람에게 시비를 걸고 피떡이 되게 두들겨 패고있는 동안 마크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채 계속해서 돈가방만을 바라보고 있다. 이 때를 틈타 도망갈까 고민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결국 도망가지 않고 담배를 가져오라는 벡비의 말투와 행동에서는 이미 이 패거리의 우두머리가 된 듯하다. 마크는 당연히 느꼈을 것이다. 벡비는 앞으로도 훨씬 심하게 대장 노릇을 하려고 할 것이다. 그 힘으로 모두를 굴복시킬 것이다. 벡비로부터 벗어나야한다.

이러한 마크의 결심을 감독은 음악의 시작으로 나타낸다.

<음악은 계속 이어지고 마크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가사가 시작된다>

7초에서 시작된 음악이 가사가 없는 약간 짠한 느낌의 음악이지만 마크가 침대에서 일어나는 35초부터는 일정한 리듬으로 읇조리는 듯한 가사가 추가된다. 그리고 이 가사는 앞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음악에서 긴장감을 추가한다. 벡비가 안고 자고있는 돈가방을 훔치기 위해 일어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크가 벡비의 팔을 잡는 순간 일정한 비트가 추가된다>

세면대에서 물을 마시고 돌아온 마크가 벡비의 팔을 들어 가방을 꺼내려는 순간 1분 43초경에는 긴장감의 최고조를 위해서 일정한 비트가 시작된다. 확실히 감독이 이 장면을 긴장되게 구성하기 위해 음악을 조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돈가방을 탈취한 마크가 벡비로 부터 떨어지는 10초간 음악은 또 바뀐다>

1분 45초경에 벡비가 가지고 있던 돈가방을 마크가 가져간다 그리고 잡고 있던 벡비의 팔을 놓는 10초정도의 시간동안 가사는 다시 사라진다. 그리고 방금전에 추가되었던 일정한 비트만이 음악을 장악한다.

집중력있게 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듯이 이 장면에서 긴장감은 최고조가 된다. 마치 심장이 뛰는 것 같은 비트소리가 화면을 장악하기 때문이다. 마크가 벡비의 팔을 놓고 떨어지는 순간에 다시 시작되는 가사는 더이상은 긴장감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마크의 성공의 기쁨을 음악이 표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도 이 음악은 3분정도 계속된다. 하지만 이 음악의 긴장감은 더이상 없다. 같은 음악이 계속되는데도 상황이 바뀜으로써 이제는 마크의 배신의 성공에 대한 기쁨을 화면 가득 채운다.

<감독은 화면을 옆으로 찍는다>

이 장면은 어떤 의도일까?
돈을 가지고 혼자서 유유히 사라지는 마크를 감독은 옆으로 찍는다. 마치 누워서 벽에 붙어 걸어가는 사람처럼... 하늘을 나는 기분이라도 표현한 것일까? 확실히 이 장면에서는 마크의 뛸뜻한 기쁨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벽에 붙어서 걸어갈 수 있을 만큼 나는 듯한 기쁨의 표현이 이 촬영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내부의 거울샷은 또 꽤나 의미가 깊다>

사실 위의 세장의 그림중 첫번째 그림의 클립한 동영상에서 나오는 부분이 아니다. 2009/04/07 - [video grammer] - 영상문법 - 관객을 영화안으로 초대하기 <트레인스포팅, Trainspotting> 의 장면의 바로 다음 장면으로 마크가 벡비와 식보이를 엿먹이겠다는 결심을 하는 장면이다. 식보이에게 도둑 맞을 것을 대비해서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혼자서 떠나겠다는 생각을 한것인지 마크는 자신의 여권을 사물함에 숨겨 놓는다.

사실 이 장면을 처음 봤을때 프레임인 프레임이나 반사된 장면을 통한 미쟝센으로 분석을 하려 했으나 할이야기가 많지 않다고 판단했다. 의미를 부여하기가 좀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의 세장을 나란히 붙여놓으니 제법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의 세장의 그림중 두번째 것만 외곽에서 촬영 되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영화의 제목 때문인지 영화는 반복되는 열차같은 이미지를 미쟝센으로 사용하곤 했다. 이 장면 역시 그런 맥락으로 파악해보자.

맨 처음의 그림과 세번째 그림중 반사가 아닌 실체가 화면의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고 그것을 양옆과 아래 쪽에서 반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두번째 그림의 경우 실체는 화면의 제일 가까운 쪽에 자리하고 반사는 오른쪽으로 멀어지며 나타난다. 나는 이것을 열차의 칸이라고 해석한다.

그런 미쟝센을 구상했을 경우 두번째에서 돈을 훔치는 것을 성공한 마크는 더이상 열차의 가운데에서 앞에서 이끄는대로 따라가는 수동적 인물이 아니다. 마크의 실체는 제일 앞에 있고 자신의 반사들을 이끌 수 있는 인물인 것이다. 스퍼드에게 돈을 놓아주는 이 장면은 그야말로 마크의 의지이며 능동적인 행동이다. 마약처럼 할수밖에 없어서 하는 행동과는 다르다. 하지만 처음에 여권을 숨기는 것은 식보이가 훔치는 것을 피하기 위한 완벽한 능동적 행동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며 이때는 아직 마크가 열차의 가운데 있어서 벡비와 식보이에게 이끌려 다닌다고 상징한다. 

생각해보자 분명 한번에 찍었을 이 세컷을 대니보일은 왜 가운데 장면만 앵글을 비틀어서 찍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의미가 있는 것이다.

마지막에 마크가 숨겨놓은 돈뭉치를 찾아내는 스퍼드의 장면역시 마찬가지다. 스퍼드는 아직도 열차의 가운데에 있다. 아직도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내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그리고 세상에 이끌리고 있다. 마크가 가져다준 돈을 잡는것도 자신이 얻은 것이 아니다 맨 앞열에 있는 마크가 이끌어 준 것일 뿐이다. 



북한이 정보의 통제를 통해서 국민들을 통제하고 있다면 자본주의 사회는 다른 커다란 정보를 이슈화 시켜서 국민들을 통제화한다
라는 이야기를 전에 어디선가 들은것 같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서 정보는 바로 우리의 삶을 만든다
옆집 아들내미가 1등을 했기에 나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하며 tv에서 아이돌 가수가 양산되던 90년대말 청소년들의 꿈 1위는 바로 '백댄서'였다
그리고 쉬리를 필두로한 한국영화의 성공은 수많은 청년들에게 영화학도의 꿈을 키우게 했다
어떠한 정보가 우리게게 전달되면 그것은 인간의 삶을 형성한다

이쯤에서 내가 첨부한 동영상을 봐주길 바란다 1분도 안되는 것이니까 꼭 보세요

<피아노 연주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간수를 피떡이 되게 패버리고 있는 제니를 두고 혼자서 빠져나온 크뤼거 할머니
그녀가 걷는 복도의 샷에서 조심스럽게 피아노 연주곡이 시작된다
그리고 간수가 폭행당하는 것을 알게된 다른 간수가 황급히 제니에게로 뛰어가는 모습을 크뤼거 할머니는 되돌아 본다
하지만 사실은 이것은 중의적인 의미이다

<갑자기 멈춰선 크뤼거 할머니의 시선을 따라가면 미친듯이 연주하는 제니가있다>

크뤼거 할머니가 쳐다본것은 표면적으로 뛰어가는 간수였지만 사실은 관객만 들을 수 있는줄 알았던 피아노 연주 소리였다
이럴수가 다시한번 외재적 내재음이 사용된다
2009/02/15 - [영상문법] - 영상문법 - 페이드 아웃, 외재적 내재음 <이터널 선샤인>
2009/02/21 - [영상문법] - 영상문법 - 사운드 복선 <포 미니츠, Vier Minuten>

나는 이번편의 설명을 외재적 내재음으로 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번은 그런 기술적인 효과보다 이야기 흐름상의 효과가 더 컸기 때문이다
내재음과 외재음은 관객 모두 들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차이는 영화의 캐릭터가 들을수 있는냐는 것으로 구분이 된다

첨부한 동영상의 8초 부근에서 피아노 연주가 조그맣게 시작된다
그리고 이 영화를 처음보는 관객은 그것을 외재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크뤼거 할머니의 시선을 따라서 간수들이 잠긴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가면 사실은 제니가 건반에 피를 묻히며 연주한 곡인 것을 알 수있다

무슨 이야기냐?
결국 이순간 관객은 크뤼거 할머니와 동일한 시점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ost인줄 알았던 피아노 연주는 관객만이 들을 수 있어야 하며 크뤼거 할머니는 들을 수 없어야 한다 그리고 감독은 마치 그런것 처럼 피아노 연주가 시작됐는데도 크뤼거 할머니의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연주의 볼륨이 영화의 모든 것을 장악할 즈음에 그녀는 멈춰서고 그녀의 시점을 따라간다

이것은 의도적인 정보의 통제이다
분명 관객에게 이 피아노 연주가 제니가 하는 것임을 미리 알려줄 수 있다
하지만 카메라는 방을 빠져나온 크뤼거 할머니를 따라가고 그녀가 귀에 들리는 이 음악이 제니의 피아노 연주라는 것을 알아채고 나서야 관객에게 알려준다
정보의 전달을 늦춤으로써 순간적으로 관객과 크뤼거 할머니를 동일화 시킨다

이 연출의 의도는 명확하다
크뤼거 할머니가 받은 소름끼치는 충격을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다친손으로 연주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cd에서 흘러 나오는 것 같은 이 연주곡을 관객에게 일부러 ost처럼 느끼게 해놓고 나중에서야 진실을 알려주어 제니의 피아노 실력을 각인시켜주기 위한 연출이다

<OST라는 느낌을 주기 위한 고속촬영>

감독은 아마도 눈치빠른 관객이 이게 제니가 연주하는거 아니야?라고 알아채는 것을 두려워 했는 모양이다
크뤼거 할머니를 지나쳐서 뛰어가는 간수들의 모습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현장음은 전혀 없다 오직 제니의 피아노 연주만이 점점 크게 들려온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은 본능적으로 이 연주를 OST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명백한 영화적 허용이다
슬로우 모션이 보여진다면 영화의 공간에서 울려퍼지고 있는 제니의 피아노 연주 역시 슬로우로 재생되어야 한다
하긴 이것은 제니의 연주가 간수들의 움직임을 슬로우로 보여줘야 할만큼 빨랐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장면의 연출에 대한 조금 다른이야기를 해보자

<2번의 점프컷이 사용된다>

다시한번 첨부한 영상 50초와 55초 부근을 자세히 살펴보자
크뤼거의 시선을 따라 쾌속질주하며 촬영된 장면에 2번에 점프컷이 존재한다
한번은 문을 열고 들어가서 좌회전 할때이며 (50초부근) 그리고 한번은 제니를 제압하는 경찰의 뒷모습에서 제니를 쓰러뜨릴 때이다

이 점프컷은 관객에게 눈치 채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감을 가지고 순식간에 일어나므로 제니를 제압하는 장면에서의 스펙타클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고전적 헐리우드 스타일에서 정석화 되었던 연속 편집의 체계에서 최근의 영화들은 감정의 떨림, 불안감, 과격함, 영화의 리듬등을 위해서 점프컷을 문법화 시켜서 사용하고 있다

나는 프리즌 브레이크라는 미드를 보고 드디어 점프컷이 완전히 상용화 되었구나라고 느꼈으니 이제는 완전한 영화 문법이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중 고등학교 시절 문학시간에 '복선'이란걸 배우면서 생각했다
대체 이런 쓸데 없는 짓을 왜 하는걸까? (짓 = 복선)
이런 쓸데 없는 행위들이 수많은 영화에도 사용되고 있다
왜?
영화가 예술이냐 산업이냐를 떠나서 지적 유희이기 때문이다

2009/02/15 - [영상문법] - 영상문법 - 페이드 아웃, 외재적 내재음 <이터널 선샤인>
에서 이야기했던 외재적 내재음이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포 미니츠에서도 사용된다

<영화의 포스터와는 안어울리게 매우 다이나믹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이번에 소개할 장면은 이전에 포스팅에서 소개했던 첫번째 시퀀스가 끝나고 오프닝 크레딧이 지난직후의 것이다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보여지는 포스터와는 전혀 다르게도 갑자기 다이나믹한 록 음악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화면은 트럭뒤에 실려진 피아노를 따라서 트럭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흘러간다

<아... 이것 역시 외재적 내재음이었다 아니.. 내재적 외재음인건가? 용어야 어쨌든>

트럭에는 뭔가 클래식한 할머니와 뭔가 펑키한 청년 두명이 타고 있다
시끄러운 음악에 잠이 깬 할머니는 동영상의 42초경에 트럭의 앞쪽으로 몸을 기울여 피아노 연주곡으로 BGM을 바꿔 버린다
오 마이 가드!
이번에도 속았다
똑같이 OST인줄 알았던 음악을 카오디오로 사용하다니 유행이냐?

이터널 선샤인 때도 이야기했던 것이지만 이것은 일종의 사기 행위다
음악은 분명 교도소의 전경씬으로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트럭이 달리는 현장음과 함께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카오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이었고 할머니의 교양있는 손으로 힘없이 틀어쥐기만해도 피아노연주로 바뀔 수 있는 것이었다니

이터널 선샤인때 말했던 외재적 내재음이다
다시한번 설명하면 외재음은 OST등의 관객이 들을 수 있지만 영화 안에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영화속의 캐릭터들은 들을 수 없다
내재음이란 말그대로 영화속에 존재하여 누구나 다 들을 수 있는 소리다
분명 처음에 들판을 달릴때의 시끄러운 음악은 외재음이었다
이것이 내재음이라면 트럭을 촬영하는 위치에 따라서 볼륨이 달라야만 타당하다
하지만 이 음악은 트럭의 수염기른 젊은이가 틀어놓은 것이었고 이것은 할머님의 잠을 방해했다
그리고 42초경에 할머니는 견디지 못하고 OST인줄 알았던 이것을 피아노연주곡으로 바꿔 놓음으로써 한순간에 이것을 내재음으로 만든다

의미를 살펴보자
이터널 선샤인 포스팅에서의 의미와 비교하는 것이 좋겠다
이터널 선샤인은 관객을 속이는데 목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관객을 속이는 이유는 바로 영화의 철학과 밀접한 관련이있었다
당신이 보고 듣고 믿고 있는 것이 진실이 아닐수도 있다는 그 철학은 내재음을 외재음이라 속이고 마지막 씬을 첫씬이라 속이고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서로를 증오한다고 생각하며 매리는 아직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는 오해의 연속으로 펼쳐진다
이해가 안간다면 이터널 선샤인 편을 확인해주세요

하지만 포 미니츠에서의 의미는 다르다
여기서는 관객을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바로 '전환'에 큰 의미가 있다
이터널 선샤인을 잘 기억해보면 조엘이 카세트를 끄고 OST인줄 알았던 음악은 딱 끝나버린다 이렇게 명백하게 음악을 끊어버린 행위는 '관객 너네 속고 있었어'라고 명백히 말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새로운 OST는 그냥 은근슬쩍 흘러나와버린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크뤼거 할머니가 피아노 연주곡으로 바꾼다
속이는 행위를 위해서라면 좀 이상한 상반된 음악의 급작스런 전환에 뭔가 큰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은가?

이 포스팅의 제목처럼 이것은 '복선'이다
교도소에서의 제니의 험악했던 삶이 앞에서의 록 음악이라면 크뤼거 할머니가 손수 바꿔주는 피아노 연주가 바로 곧 바뀌게 될 제니의 삶이다
그것을 굳이 크뤼거 할머니의 손으로 바꿨다는 것이 그녀의 손에 의해 제니의 삶이 바뀔 것이라는 상징의 명백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피아노 연주는 트럭을 타고 교도소로 들어간후 한참을 울리다가 트럭을 운전하던 간수의 손에 의하여 꺼진다
그녀의 삶이 간수에 의해 좌우된다는 상징인지 방해 받는다는 상징인지 결국 감옥으로 돌아온다는 상징인지 아무튼 크뤼거의 손에서 켜지고 간수에 의해서 꺼졌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는 의미심장하다

크뤼거 할머니는 제니에게 말했지
흑인처럼 음악하지 말라고
하지만 크뤼거 할머니와는 다르게 천재였던 제니는 결국 마지막에 흑인클래식을 퓨전해 버리지 이것이야 말로 이영화의 진정한 카타르시스

그나저나 이 영화의 포스터는 좀 의아하다...
포스터에 비하면 영화가 훨씬 재밌기 때문에 누가 그딴 포스터를 만들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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