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종합예술이라고 불리우는 이유중에 중요한 한가지가 바로 '음악'일 것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영화에서는 배경음악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것으로 유명했다 대단한 일이다 음악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음악은 영화에서 대단한 힘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영화의 분위기와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가장 힘있는 장치이다

일각에서는 영화에서 음악의 사용이 옳지 못하다는 의견이 있다
그것은 바로 노골적인 감정의 세뇌라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음악역시 종합 예술인 영화가 선택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므로 위의 의견과는 좀 다르다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지 무조건적인 배제는 좋지 않다 음악이 있는 부분이 있기에 음악이 없는 부분도 더 살아 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영화음악을 가장 잘 사용하는 감독을 꼽으라면 난 첫번째로 이와이 슌지를 꼽겠다 음악뿐만이 아니라 그는 영화의 사운드를 완벽하게 요리할 줄 안다

먼저 위의 영상을 보도록하자

<조그맣게 피아노 연주가 들리고 있다>

 
스피커의 볼륨을 최대한 키워놓고 잘 들어보자
물건을 훔친 죄로 어머니를 부르게된 유이치 그리고 무엇인가 터져버릴 것 같은 무거운 공기가 흐르는 상담실에는 조그맣게 옆방의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영화를 처음부터 본사람은 알겠지만 이 씬의 처음부터 쿠노가 연주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옆의 상담실로 유이치와 선생님이 들어가게 된다

<어머니가 유이치를 때리기 시작하자 피아노 연주소리가 커진다>

물건을 훔쳤다는 이야기를 들은 유이치의 어머니
유이치를 째려보는 순간부터 쿠노의 피아노 연주소리는 급격하게 커진다

그리고 화면은 쌩뚱 맞게도 이일과 전혀 상관 없는 쿠노의 연주 장면으로 바뀐다
이와이 슌지는 어째서 이런 편집을 사용한걸까 

<다시 돌아온 상담실 음악은 곧 멈춘다>
  
다시 돌아온 상담실에서는 이미 진정한 유이치의 어머니가 있다
그리고 음악은 곧 멈춘다

과격하고 급박한 장면에서 격렬한 bgm을 사용하는 경우는 자주 있다
그리고 릴리슈슈의 모든 것의 경우 상당히 그로테스크한 음악을 하는 릴리슈슈의 음악이 영화의 전반에 걸쳐 사용된다

하지만 도둑질을 하다가 걸려서 어머니에게 맞는 이 장면에 슬프도록 아름다운 드뷔시의 피아노 연주곡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머니의 흥분으로부터 음악이 커지고 진정하자 완전히 사라지는 것으로 보아 이 장면에서 '드뷔시의 아라베스크'는 유이치 어머니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일부러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곡으로 배치한 슌지 감독의 의도는 바로 어머니의 슬픔을 표현한 것이다

유이치를 때리지만 그녀의 감정은 분노라기 보다는 슬픔이다
그렇기 때문에 분노의 음악이 아닌 슬픔의 음악으로 사용된 것이다
포 미니츠의 경우 피아노 연주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tv라는 매체를 자주 사용한다 극중 배우가 연주회 장면을 tv에서 보고 그것을 그대로 bgm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이 슌지는 좀더 노골적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내게는 이런 방법이 더욱 고급스럽게 느껴진다
2008/12/31 - [video grammer] - 영상문법 - 셔레이드 <하나와 앨리스>
에서 경읽는 소리를 이용하기 위해 주인공을 절에 배치하듯이 피아노 연주를 이용하기 위해서 일부러 이 두 장면을 교차로 보여준다

사실 쿠노의 이 첫 등장은 영화에서 큰 의미가 있지 않다
그녀가 연주하는 곡이 드뷔시의 아라베스크로 당시에 릴리슈슈의 '호흡'의 첫번째 수록곡의 오마주 대상이 된다는 정보를 전달하며 쿠노를 관객에게 처음으로 보여주는 의미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을 bgm의 사용을 위해 투입시켰다는 과감함에 나는 찬사를 보내고 싶다

<헨드헬드가 아니다>


잠깐 촬영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하자
영화의 전반에 걸쳐 들고찍기와 점프컷이 사용되는데 오히려 간헐적으로 사용되는 트랙킹이나 크레인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위에 나오는 4명이 모두 보여지는 롱샷의 경우 헨드헬드가 아닌 트랙킹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곧 있을 폭풍 전야의 느낌을 형성하며 어쩔줄 몰라하는 유이치의 상황을 적절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의 매가 시작되자 촬영은 급격한 헨드헬드로 바뀌며 교차편집되는 쿠노의 연주장면은 이것과의 대비를 위하여 아주 부드러운 트랙킹으로 촬영된다

한장면 한장면의 연출을 위해서 샷의 강약을 조절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

  
내가 아는 사람이 전혀 다른외모로 등장하고 장소는 누구의 마음대로인지 아주 쉽게 변한다 그리고 팔을 파닥거리면 낮지만 하늘을 날 수 있다
꿈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자주 펼쳐진다
꿈은 모든것이 표현될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꿈에서도 자주 나타나는 표현들이 있다

위의 장면은 이미 조엘의 꿈속이다
영화의 기능적으로는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사이를 추적해서 관객에게 보여주는 작용을 하지만 플롯상에서는 조엘이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최근 것부터 지워나가는 과정이다

영화에서는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시간과 장소를 마음대로 조절 할수 있다(제작의 실제적 어려움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때문에 이번편에 등장하는 조엘의 클레멘타인이 자신을 못알아 본다는 이야기는 얼마든지 회상등의 교차편집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미쉘 공드리는 그렇게 평범한 감독이 아니다

<서점을 빠져나오는 조엘뒤로 불이 꺼지고 문을 나서자 친구집 거실이 나온다>

조엘의 이야기의 시작은 분명 교차편집이었다
클레멘타인이 왠 젊은놈과 있었고 나를 못알아 봤다고 이야기하자 카메라는 어느새 서점으로 이동하여 클레멘타인과 조엘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것이 가장 무난한 표현법인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은 달랐다
충격을 받은 조엘이 서점을 나서자 서점의 전등들이 하나둘씩 모두 꺼지고 문을 나서자 바로 친구의 집 거실로 연결된다
이것은 분명 공간의 재구성이다
서점과 친구집의 거실이 문하나로 연결 되있을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교차편집과 이러한 표현양식의 효과의 차이를 생각해보자
교차편집이 조엘의 친구들에게 클레멘타인과의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라면 (물론 관객에게는 실제로 보여주게 되지만) 이것은 친구들에게 마치 실제로 보여준듯한 느낌으로 작용한다
물론 보여줄수는 없다 그건 과거의 일이니까
하지만 이것은 조엘의 꿈이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그것을 보여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서점을 걸어나와서 바로 친구집 거실에 계단에 앉아버린 조엘의 슬픔이 공간의 단절이 없이 그대로 거실로 전해져온다
연속편집을 하더라도 컷은 분명히 상대적인 단절이다
특히 교차 편집은 이곳과 저곳을 거의 동시간대에 보여주지만 사실은 동시가 아니다 교차로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이 한컷으로 미쉘 공드리는 동시에 보여주는데 성공했다

과연 이 한컷을 위해서 세트를 이렇게 만든 것일지 아니면 블루스크린등을 이용한 합성이나 cg를 이용한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한컷을 위해 많은 공을 들인 것은 사실이다

<패트릭의 얼굴을 고의적으로 가린다>

패트릭은 이미 영화의 앞에 나왔다
그것도 조엘에게 도와줄 것이 없냐고 묻는 수상한 남자로
그리고 나서 클레멘타인과의 이런 연인 관계가 드러난다면 관객들이 눈치를 챌것과 그 의미를 찾기위해 혼란에 빠질 것을 배려(?)하여 패트릭의 얼굴을 계속해서 숨긴다
영화의 뒤에도 패트릭의 얼굴은 조엘에게 계속하여 보여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두가지 의미가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관객에게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패트릭은 앞에서 조엘에게 도와줄 것이 없냐고 수상하게 묻는다
그것은 클레멘타인의 집 앞이었으며 관객이 느끼기에 둘은 몬탁에서 우연히 만나 그녀의 집앞으로 온것이다 그리고 이 서점 장면은 관객에게 그 이후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 앞에서 수상하게 나온 남자가 조엘을 잊고 클레멘타인이 새로 사귀는 남자라는 연관성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의미는 바로 조엘의 꿈속이기 때문이다
이 꿈은 조엘의 클레멘타인의 기억이다 때문에 패트릭, 그리고 병원의 몇몇 사람들은 얼굴이 뭉개져서 나오기도 한다
클레멘타인을 지우기 위해 들어간 기억 속에는 이들의 기억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엘은 이 젊은남자를 모르기 때문이다 모르는 남자기 때문에 얼굴도 기억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꿈에서는 의도적으로 얼굴이 계속해서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실제로 나중에 기억을 지워달라고 찾아간 병원(?)에서 서류를 떨어뜨리고 뒤돌아 보는 패트릭의 얼굴은 뭉개져있다
이것은 극히 주관적인 조엘의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은 조엘의 꿈이고 그는 패트릭의 존재는 기억하지만 얼굴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에게는 패트릭의 얼굴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왠 젊은남자라고 말할 정도의 이미지면 충분하다

그리고 관객에게도 동시에 적용되는 것이지만 여기저기서 나오는 그의 얼굴로 인해서 흩어진 스토리의 조각이 맞춰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계속해서 플롯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다시한번 설명하지만 플롯은 원래 있던 이야기의 시간적 흐름(즉, 스토리)을 다른 시간으로 재구성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편리하겠다

이번에 첨부한 장면은 영화의 극초반부이다
원래 이런 도입부에서는 영화의 결말이나 나중에 나올 부분들을 교차로 보여주는 시간적 혼재 편집이 많이 등장한다 이번역시 그런 경우지만 조금 색다른 면도 있다

<누군가 퀴즈쇼의 오프닝을 하고 있으며 사회자와 자말은 대기하고 있다>

퀴즈쇼의 오프닝이 진행되고 있으며 긴장한 얼굴의 자말과 쇼의 사회자가 대기하고 있다 이 장면을 보면 쇼의 오프닝을 말하는 남자와 사회자는 다른 사람인듯 보인다
오프닝 멘트가 나가고 있지만 자말 옆에 있는 사회자는 입도 뻥긋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자말옆에 있는 사회자의 멘트였다>

처음에는 분명 오프닝 멘트를 말하는 성우와 자말 옆에 있는 사회자는 다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프닝 멘트가 같은 목소리로 이어지고 마지막 멘트의 중간부분부터 컷이 바뀌면 이것을 쭉 자말 옆의 사회자가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처음부터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오프닝 멘트를 하는 것과 자말에게 '준비됐나? 행운을 비네'라고 말하는 다른 시간대의 사건을 동시에 편집해서 보여준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결국 사회자가 오프닝 멘트를 하는 사운드위에 멘트 직전에 사회자와 긴장한 자말의 영상을 편집해서 보여 준것이라 할수 있다

이러한 것으로 대니보일 감독은 긴 오프닝 멘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려줌과 동시에 그 전에 있었던 사회자와 자말의 대화를 보여줄 수 있다
그리고 오프닝멘트의 떠들썩하고 화려함 대신에 긴장하고 있는 자말에게 낮은 어조로 속삭이는 사회자의 목소리로 긴장감을 높여주고 있다
또한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부분의 편집 자체가 2009/02/11 - [영상문법] - 영상문법 - 스릴러 플롯구성 <슬럼독 밀리언네어,Slumdog Millionaire> 에서 이야기 했던 플롯 구성과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즉 이것은 전체를 닮은 부분적 편집이라고 생각된다

무슨말이냐하면 영화의 전체는 3가지 다른 시간대가 교차로 보여지다가 그것이 하나의 시간대로 합쳐진다
그리고 이 오프닝 멘트 부분의 편집역시 다른 2가지의 시간대가 바로 위의 사진에 나오듯이 둘의 뒷모습부터는 합쳐지게된다
어디선가 들려오던 성우의 목소리는 비로소 자말 옆에 있는 사회자의 입모양과 싱크가 맞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 다른 것은 이장면에서는 2가지 시간대를 교차가 아닌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다른 시간대의 장면이 하나 껴있다>

영화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돈을 까는 장면은 미래의 시간대이다
하지만 백만달러 퀴즈쇼라는 프로그램 제목과 매치되어 이 장면은 아무런 거부감도 없이 이곳에 섞여서 편집된다

하지만 실제로 이 장면은 다음날 연장된 퀴즈쇼와 동시에 일어나는 장면이며 결국 이시점에서는 미래의 이야기이다

결국 내가 첨부한 영상에 등장하는 시간대는 영화의 전체와 마찬가지로 3가지가 된다
이것이 또한 기막힌 우연이라고 생각되지만 감독의 의도인지도 모르겠다

이 미래의 장면을 넣는 것은 다른 의미가 있다
12 몽키즈에서 어린 브루스 윌리스가 미래의 자기자신이 총맞는 장면을 목격하는 것이 영화의 초반에 등장하는 것처럼(12 몽키즈에는 훨씬 많은 의미가 있지만) 이 장면역시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사실상 찍어놓은 샷들중 퀴즈쇼의 오프닝에 맞는 그림이라 넣은것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애초에 오프닝멘트 시퀀스를 위해 존재하는 장면이라고 생각된다

이 돈을 뿌리는 장면은 영화의 초반에 뜻모를 것으로 그저 대사와 매치될 뿐이지만 사실상 이것은 퀴즈쇼를 하게된 자말이 얻는 커다란 결과(돈을 얻는것이 아닌)를 보여주고 있는것이다
당연히 돈을 뿌리는 장면 이외의 더 자세한 부분은 보여주지 않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고나서 다시 이장면을 보면 결국 결말을 암시하고 있는 장면으로 해석된다
이것은 액자식 구성이라는 표현으로 영화적 문법으로 많이 사용되지만 이영화에서는 이것이 대대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부분적으로 살짝 노출되고 있다

결국 이부분의 편집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3가지 시간대를 동시에 보여주면서 영화가 시작하는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사회자가 말하는 준비됐나?는 마치 영화를 보기위해 앉아있는 관객에게 하는 말 같으며 그 속에 영화의 결말을 암시하는 장면을 넣은 것이다

굉장히 많이 쓰이는 장면이지만 이 부분이 좋은 것은 바로 영화의 전체적 컨셉이 부합하는 편집방법이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 대니보일 감독이 너무나 좋아하는 스타일이라서 그냥 묻어 나온 것일수도 있으나 언제나 부분이 모여 전체가 되는 것이고 한 부분을 보았을때 영화의 전체를 느낄수 있는 것이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러한 편집 방법은 스토리의 결말을 기대하며 보기 보다는 그 과정과 순간을 즐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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