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참 신기할 정도로 무심하다.
이 영화를 보고 타이틀이 불어로 쓰여있는 것을 보고도.. 한참동안이나 영화가 불어로 나오는 것을 보고도 계속해서 프랑스 영화라는 것을 몰랐다.
중간에 너무 미국영화 같지가 않아서...아 영화가 뭐 이리 유럽식이야? 라고 생각하고 보니 아.. 이거 프랑스 말이네... 라고 알아차렸다..

영화의 시작은 줄리앙의 소년시절 목소리로 설명하면서 시작된다.

<이런 초스피드로 무빙하는 롱테이크는 거의 회고식 영화에서 쓰인다>

실제로 단 한컷으로 찍었느냐 아니냐를 떠나서 아무튼 지금 30초정도의 장면은 단 한컷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런 롱테이크...
보통의 롱테이크와 달리 이렇게 초고속으로 무빙하면서 중간의 장면들에 멈춰서 보여주는 방식은 이 영화에서처럼 주인공의 나레이션이 깔린 회고식 영화에서 주로 보여진다.

당연하겠지만 이런 무빙의 이유는 명확하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있고 수많은 사건이 있지만 그 중에서 기억을 더듬어 내가 보여주고 싶은 장면에서 딱 멈춰서 보여준다는 표현이다. 그래서 영화는 예쁜 집에서부터 시작해서.. (하지만 이게 줄리앙의 집같지는 않은데.. 위치상..) 운전기사가 없는 버스, 상자, 소피, 그리고 줄리앙이 보여진다.

하지만 영화에서 이 장면 직후의 장면으로 알 수 있듯이 사건의 발단은 여기부터가 아니다. 줄리앙의 엄마가 의사로부터 암선고를 받는 장면부터 이야기는 시작이다. 하지만 어째서 영화는 이장면에서부터 시작하는가?

먼저 줄리앙과 엄마의 이야기부터가 아니라 소피와 줄리앙의 만남부터 시작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 이영화는 오직 줄리앙와 소피의 관계에 대한 영화다. 그들이 어릴적부터 사랑을 확인하는 마지막까지가 보여지는 영화다. 영화에서 다른 인물 즉, 소피의 언니라던가 줄리앙의 부모님은 조연오브 조연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굳이 소피와 줄리앙의 내기가 시작된 이장면에서부터 보여진다.

또 하나의 이유는 줄리앙의 어린목소리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마치 뭔가를 이야기하려다가 '아 이걸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전에 이걸 말해야되..'라고 하는 것처럼 과거의 장면으로 돌아간다. 때문에 이런 식의 설정은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좀더 몰입해서 들을 수 있고 이야기가 시간의 흐름이 아닌 인과관계에 의해서 설명된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런류의 크레인을 이용한 카메라 무빙. 특히 이 장면처럼 초고속으로 무빙한 장면들은 당연하지만 영화의 리얼리티보다는 동화적인 느낌으로 구성된다. 아멜리에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크레인샷들을 생각해보자 실제로 우리는 그들의 삶을 하늘에서 무빙하며 볼수 없다. 하지만 수많은 장면에서 보여지는 크레인 샷들은 하나의 이야기를 마치 동화속 이야기처럼 상상속에서 훔쳐보게 해준다.

이 영화역시 마찬가지다. 너무나도 동화적인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 위해 감독은 당연히 동화적인 마음과 표현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빌어먹을 장르 구분 때문에 이 영화가 로멘틱 코메디로 분류되어 있다는게 너무나 안타깝다. 이 영화는 로멘틱 잔혹극이라고 부르고 싶다. 마지막 장면을 생각해보자 얼마나 로멘틱하게 잔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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