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14 - [video grammer] - 영상문법 - 슬로우모션 <에로스 - 왕가위>에서 처럼 왕가위 감독이 '슬픔'을 극대화하는데 사용하듯이 슬로우 모션은 항상 극적인 곳에서 사용된다.

길을 가던 마틴과 루디가 바다사진을 보고 짠하는 순간 짠한 음악이 시작된다. 그리고 마틴은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진다. 루디가 약을 꺼내 먹이려 하지만 한알도 남아있지 않고 가까운 약국에서 루디는 마틴을 위해 총을 쏜다.

<처방전이 필요하다는 약사에 말에 뛰쳐나가던 루디의 모습이 갑자기 슬로우가 된다>

처방전이 필요한 약이라 그냥은 팔수 없다는 말에 단념하고 돌아서는 루디. 하지만 그는 총을 쏴서라도 약을 구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영화에서 그의 결심을 순간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 바로 이 슬로우 모션이다. 전에도 설명한바 있지만 고속촬영과 그냥 슬로우 모션은 다르다. 이 부분은 고속촬영이 아닌 슬로우 모션이다. 1초에 15프레임이 두장씩 재생된다.

 바다사진을 보면서 흘렀던 음악은 똑같지만 이제는 비장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돌아서서 앞으로 나오는 루디의 결심을 위한 조명을 보자>

첫번째 사진에서 뒤돌아서 루디는 비장한 표정으로 앞으로 다가선다. 루디가 앞으로 다가선 두번째 사진을 보면 조명에 의한 짙은 콘트라스트를 느낄 수 있다.

당연히 의도적이라 생각되지만 조명은 화면의 오른쪽에서만 강하게 들어오고 왼쪽은 거의 없게해서 루디의 표정을 더욱 심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약사의 컷 이후에 다시 돌아온 3번째 사진을 보면 2번째 장면이 의도적인 조명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문 밖의 빛의 세기도 다르고 루디의 왼쪽에 들어오는 반사광의 강도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즉, 감독은 슬로우 모션으로 돌아서서 다가오는 루디를 램브란트 조명으로 처리하기를 원했다. 강하게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루디가 뛰어가며 시작된 슬로우 모션은 총을 꺼내 발사를 하는순간 멈춘다. 즉, 이 슬로우 모션의 표현은 바로 루디가 총을 쏘게 하는 감정의 흐름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루디가 총을 쏘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형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교통위반 한번 한적이 없이 올바르게 살아온 사람이다. 그것은 루디가 마틴과 처음만난 열차에서의 금연스티커를 가리키는 장면과 마틴이 총을 겨누고 강도질을 하는 것을 말리고 자신은 관여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에서도 알수있다.

마틴은 원래 막나가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제 곧 죽게 되었다. 하지만 루디는 원래 막나가지도 마틴처럼 '곧'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루디는 마틴을 위해 이 순간 총을 쏜다. 얼마 못사는 자신보다도 훨씬 조금밖에 살지 못하는 마틴을 살리기 위해서..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는 죽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주목하는 영화다. 마틴과 루디는 얼마남지 않은 삶을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이장면에서 루디는 마틴을 살려낸다.



영화의 스토리는 어떻게 흘러가는가? 무엇으로 보통 플롯을 구성하는가? 고급스럽고 좋은 영화라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인과 관계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인과 관계를 떠나서 플롯을 구성하고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 진정한 대작이 될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노킹 온 헤븐스 도어에서는 제법 인과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지만 때로는 마틴과 루디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처럼 아무런 이유없이 일어나고 풀어지는 사건들을 구성한다.

<마틴과 루디는 서로가 시한부라는 것을 알게된다>

마틴이 뇌종양이라고 밝히고 루디가 골수암으로 얼마 못산다고 이야기하자 둘만있는 병실은 마치 사형수 감방같은 분위기가 된다. 곧 죽을 사람들을 한 병실에 몰아넣다니... 마틴이 이야기하지만 정말 집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영화는 이렇게 너무나도 슬픈 장면에서 다음 장면으로의 이동을 한없이 쿨하게 이행한다. 마틴이 담배를 피는순간 벽에 걸려져 있던 십자가가 떨어지면서 냉장고 문이 열리고 그 안에는 말도 안되게 보드카 한병이 들어있다.

실제로 영화에서 이야기가 흘러가는 구조는 마틴과 루디가 시한부인생임을 알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천국에서는 바다이야기를 한다는 대목으로 가야한다. 진지하게 표현한다면 그저 둘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바다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것은 너무나 재미없지 않은가?

신의계시라는 상징적인 표현일까? 십자가가 떨어져서 냉장고문이 열리면 그 안에 보드카가 있다. 그들에게 보드카를 마시고 잔뜩 취해서 차를 훔쳐서 바다를 보고나서 천국의 문을 두드리라고 말하는 것 같다.

갑자기 십자가가 떨어지는 것도 굉장한 우연이며 병실에 보드카 한병이 들어가 있는 것도 말도 안되는 설정이다. 하지만 상관 없다. 이들이 술을 마시는 것은 영화적으로 약간의 여흥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즉, 술을 마시지 않아도 플롯을 이끌어갈 수가 있었다. 물론 루디가 술에 잔뜩 취해서 벤츠를 훔치게 된다는 타당성을 만들어내지만 이러한 것들은 극히 작은 부분일 뿐이다.

그리고 영화는 마틴과 루디의 죽음에 대해서 슬프게 진지하게 깊게 생각하지 말기를 권고한다. 심각해지려는 상황에서 십자가가 던져주는 보드카 한병은 다시 영화를 상당히 유쾌하게 만들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이들의 '죽음으로의 여정'이 아닌 '아직은 남아있는 삶'에 대해 주목하게 만든다.

<그리고 또 한번 둘을 동일화 시킨다>

2009/05/05 - [video grammer] - 영상문법 - 끝말잇기 <노킹 온 헤븐스 도어, Knockin on heavens door>에서 마틴과 루디의 이야기를 하나처럼 이어서 동일화 시킨 표현양식이 다시한번 등장한다.

보드카를 마시기 위해 소금과 레몬을 찾던 루디는 무엇인가의 문을 들어올린다. 그리고 그 문이 카메라를 가렸다가 다시 닫히면 자리에 서있는 것은 루디가 아닌 마틴이다.
위의 링크에서 설명했듯이 이것은 라임맞추기 처럼 여흥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마틴과 루디의 처지와 앞으로의 삶이 동일시 된다고 영상으로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2009/03/19 - [video grammer] - 영상문법 - rhyme 맞추기 <트레인스포팅>에서 말했듯이 영상에도 여흥이란게 있다. 시나리오와 스토리적인 여흥이 아니라 촬영과 편집 즉, 영화적인 표현 방식으로의 여흥. 마지막 삶의 여흥을 그리는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 어는 이런 여흥적 표현을 아끼지 않는다.

불치병이라는 공통점으로 만난 마틴과 루디가 한 병실을 쓰고 있는동안 두명의 어리버리한 마피아는 중간보스의 명령을 받아 벤츠를 누군가에게 배달하는 임무를 띄고 있다. 아직 아무런 사건도 벌어지지 않은 이 영화에서 마틴과 루디가 이들의 차를 훔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를 위해 영화는 두명의 마피아와 마틴과 루디를 한 장소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2009/05/05 - [video grammer] - 영상문법 - 끝말잇기 <노킹 온 헤븐스 도어, Knockin on heavens door>에서처럼 연관지어 편집해서 보여준다.

<자동차 타이어에서 나는 연기와 마틴이 뿜어내는 담배연기의 유사성에 의한 몽타주>

자칫 의미없는 장면 같지만 위의 두명의 마피아가 운전자를 바꾸는 실랑이를 하는 것에는 플롯적 의미가 있다. 기본적으로 계속해서 어리버리한 둘의 캐릭터를 설명하고 있으며 중간보스는 분명히 시내에서는 행크가 교외에서는 압둘이 운전하라고 지시한다. 이것은 단순히 아무런 의미없는 명령이 아니라 시내에서 압둘이 운전했을 경우 사고를 낼수 있는 상황에 대한 복선, 씨뿌리기 이며 타당성을 제시하는 정보라는 것이다.

실제로 위의 장면에서 압둘은 행크에게서 운전대를 빼앗는다. 하지만 그 직후 압둘은 이 벤츠를 제대로 운전하지 못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공회전을 하게 만들고 갑자기 차를 후진시킨다. 이것이 단순히 둘의 어리버리함으로 우스움을 전달하는 코메디로서의 기능을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이후에 압둘이 시내에서 아이를 쳐서 ('시내'다 그래서 중간보스는 압둘에게 교외에서 운전하라고 시킨건데..) 마틴과 루디가 있는 병원으로 두명의 마피아를 안내하게 되는 것이다.

단순히 우연히 벌어진 일처럼 보이지만 그 우연에는 약간의 타당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 이 영화의 특징이다. 물론 하필 같은 병원에 가게 되는 것은 우연이지만..

아무튼 행크와 압둘이 실랑이를 벌이고 결국 급출발하는 벤츠의 타이어에서는 도로와의 마찰로 인한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리고 이것은 루디가 죽었나 관찰하던 마틴의 담배 연기로 편집이 된다.

에이젠슈타인의 충돌이론으로 이 장면을 설명해 보자면... 자동차에서 연기가 나는 독립적인 컷과 역시 독립적인 마틴의 담배연기가 충돌해서 의미를 만들어낸다.

그 의미는 크게 2가지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데 첫번째가 앞에서 설명한 영화 외적인 여흥을 위한 것이다. 트레인스포팅의 라임 맞추기 처럼 영화의 플롯에 작용하지 않는 단순한 재미를 위한것. 코메디 영화에는 이러한 여흥이 제법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플롯에 두번째 의미를 부여해 보자면. 마틴과 루디처럼 하나의 실타래로 엮이게 될 두명의 마피아를 이 병원으로 초대하고 있다는 상징이다. 결국 그 둘은 이 병원에 아이를 데려왔다가 마틴과 루디에게 벤츠를 도둑맞고 이 사건으로 인해 영화가 급박하게 전개되기 때문이다.

해석하기에 따라서 억지가 될수도 있지만 감독이 단순한 여흥을 위해서가 아닌 두 씬의 연관성을 제시하기 위해 이 장면을 의도적으로 꾸며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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