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쉬 백은 간단히 설명해서 영화에서 회상씬을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아마도 고전적인 표현양식에서 과거를 회상할 때 플래쉬가 터지는 것처럼 펑하고 과거로 돌아가기 때문에 생긴 용어인것 같지만 현대의 모든 영화의 플래쉬 백은 다 그렇게 터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 로멘틱 코메디의 플래쉬백은 고전적인 스타일과는 다르며 꽤나 재치 발랄하다.

<이별한 피터에게 괜찮냐고 묻는 동생>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5년넘게 사귀어 온 연인에게 버리받은 피터. 그런 그가 괜찮을리 없다는 걸 아는 동생은 계속해서 그가 괜찮냐고 묻는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괜찮다고 그만좀 물어보라고 대답하는 피터. 하지만 이 때의 플래쉬 백은 꽤나 재미있다.

<피터가 TV를 보다 우는 장면을 보여준다>

플래쉬 백이지만 역시 펑하고 터지는 효과는 없이 그냥 무던한 교차편집으로 보여진다. TV 쇼를 보던 피터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 미국 쇼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대충 파악해보면 별로 슬프지 않은 장면에서 펑펑 우는 피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서 피터가 괜찮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관객에게만 알려주고 있다. 사실 플래쉬 백이라는 것 자체가 원래 관객에게 설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표현양식이다. 그것은 말그대로 과거의 이야기를 관객에게만 보여주는 것이지 그런 기억속의 과거를 영화의 등장인물이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화면이 다시 돌아와도 여전히 괜찮다고 말하는 피터>

그리고 나서 다시 현재로 돌아오면 피터는 아주 잘 지낸다고 말한다.
관객은 이 대목에서 피터가 완전 뻥치고 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이 영화에서 이런식의 플래쉬 백은 굉장히 자주 나온다. 스릴러 영화와 달리 플래쉬 백을 이렇게 자주 무던하게 사용하는 것은 역시 로멘틱 코메디가 가질 수 있는 강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이 영화에서 이런 플래쉬 백의 빈번한 사용은 사람이 서로 살아가면서 수없이 반복하는 거짓말에 대한 진실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씩 상대를 속여가는 동안 사랑하는 사이가 점점 멀어진 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의 끝무렵 피터는 갑자기 말하지 않아도 될 마샬과의 헤프닝을 레이첼에게 고백한다. 이 장면이 이 영화에서 주는 의미는 크다. 그동안 계속해서 보여주는 플래쉬 백을 통해서 이 영화는 사랑하는 사이에서도 서로 얼마나 거짓말을 하고 있는 지를 보여준다. 꼭 말로 거짓말 하지 않더라도 싫은 것을 티를 내지 않아야 하며 못마땅한 것도 웃으며 넘기는 과거의 장면들을 통해 감독은 말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이에 거짓말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멀어질 수도 있다.
물론 나는 거짓말을 잘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피터는 마지막에 레이첼에게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다. 피터는 레이첼과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때 솔직하게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이에 속이면 안된다는 주제는 역시 헐리우드의 로멘틱 코메디 답다는 생각이 든다. 전세계의 사람들을 타겟으로 하는 영화인 만큼 가장 안전하고 보편적인 진리라고 믿는 주제를 설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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