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연속 편집의 개념을 짚고 넘어가자
2008/12/19 - [영상문법] - 영상 문법 - 편집 : 시간의 압축,확장 <하나와 앨리스>
링크된 내 포스트를 보면 연속 편집의 개념에 대해서 잘 적혀 있다
하지만 이번에 소개할 '릴리슈슈의 모든 것'이라는 영화의 이 장면에는 (물론 전체적으로 이장면뿐만은 아니다) 연속편집의 개념이 너무나도 쉽게 무너지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이 포스트의 제목을 연속편집의 파괴라고 붙이고 싶었으나 그것은 나중에 꼭 한번 이야기 해보고 싶은 점프컷의 사용을 위해 아껴두고 싶다

아무튼 위의 동영상 클립을 보자

<연속편집의 개념을 무너뜨린 연속된 컷>

기본적인 문법을 무시한 이 컷팅을 보자
첫번째 스샷에 보면 맨앞에 걷고 있는 녀석이 바로 아래에 나오는 밀리터리 티를 입은 놈이다 분명 앞의 컷에서 밀리터리 티셔츠녀석은 걷고 있었다
그렇다면 기본적인 문법에서는 다음컷에 밀리터리 녀석이 프레임인 해야만 시간적으로 맞다고 할수 있다
하지만 이런 낡은 문법에 이와이 슌지는 얽매이지 않는다
그것이 뭐가 중요한가
그러한 낡은 방식을 일일이 지켜나가다가는 영화의 리듬도 느낌도 잃는다고 판단한것 같다
위의 스샷의 경우 분명히 맨 앞에서 걷고 있던 녀석이 다음컷에서는 프레임의 한복판에 서있고 '이상한 취미'라는 말을 내뱉는다
이것은 분명 명백한 연속편집의 위반이지만 그런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와이 슌지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그들이 걷다가 주인공을 보내고 그 뒤에서 그가 그림을 가지고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상한 취미 라고 말하는 장면 뿐이었다
그들이 굳이 걸어가다가 인사를 하고 주인공 혼자 자전거를 타고 지나치고 밀리터리 티셔츠를 입은 소년이 그뒤를 바라보며 '이상한 취미'라고 말하는 것을 모두 보여줄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도 보여주고 싶은것만 짧게 보여주는 이와이 슌지가 다음에는 너무나도 관대한 롱테이크를 보여준다

<주인공이 릴리슈슈의 포스터 그림을 보는 이장면은 1분동안이나 지속된다>

첨부된 동영상 17초에서 1분 15초까지 58초나 보여지는 이 롱테이크는 앞에서 아낀 샷들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이다
앞에서 굳이 걷다가 멈추는 장면도 아껴서 바로 멈춰있게 연속편집을 파괴한 감독이 어째서 이런 재미도 없는 샷에 58초나 할애한 것일까
단순하게 말하자면 감독은 이장면을 더 많이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장면이 영화에서 큰 의미를 가지는 장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영화내내 주인공은 릴리슈슈의 음악을 듣고 좋아하지만 그가 얼마나 릴리슈슈를 좋아하는지는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의 극초반인 이장면에서 58초동안이나 멍하니 그림을 바라보는 이장면을 삽입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주인공이 릴리슈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무의식중에 알려주는 컷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와이 슌지는 앞에서 컷을 아끼고 보여주고 싶은 것들만을 보여주면서도 정작 자신이 보여주고 싶어하는 장면은 그것이 설사 재미없더라도 아끼지 않았다

 릴리슈슈의 모든것과 마찬가지로 이와이 슌지의 영화가 훌륭한것은 바로 이런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는 영화에서 보여주고 싶은것과 보여줄 필요가 없는것을 구분하여 마치 시처럼 음악처럼 흘러가며 보여준다
때문에 관객들은 그가 보여준 것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보여지지 않은 압축된 부분들을 상상하며 영화를 더욱 재미있고 깊게 받아들일수 있는 것이다

이영화가 3시간이나 되는 영화지만 아무런 무빙도 없이 58초간 보여주는 컷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보자


릴리슈슈의 모든것에 나오는 이 장면은 처음부터 끝까지 수평이 파괴되어 있다

한국에서 영화를 배울때 우리는 수평을 맞추는 법부터 배운다 기본적으로 수평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계속해서 수평을 맞추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을 이와이 슌지는 보여준다
하지만 아주 많이 틀어서 눈에 띄게하는것이 아니라 미묘하게... 관객이 알아차리지는 못하지만 느낌으로만 전달할 수 있게 한다

<레코드점에서 CD를 훔치는 장면 수평이 틀어져 있다>

위의 스샷을 보자
카메라에서 제일 먼 벽 부근을 보면 프레임의 윗 라인과 그 밑에 진열된 선반이 수평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이 화면은 수평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 화면은 오른쪽 위로 틀어져서 왼쪽과 오른쪽의 높이가 다르다

영화의 초반에 등장하는 이 장면은 주인공이 친구들과 CD를 훔치는 장면이다
이장면이 전체에 작용하는 의미를 제쳐 두고 말하자면 결국 탈선 장면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와이 슌지는 이 장면을 계속해서 틀어진 수평으로 보여준다

<주인공이 CD를 훔쳐서 나가고 점원이 그뒤를 따라 나가자 수평은 맞게 된다>

솔직히 이야기 해서 첨부한 동영상 18초 부근에 나오는 이 장면이 의도한 것인지는 확신 할 수 없다
하지만 의도했다는 가정하에 이야기를 해보자
주인공들이 CD를 훔쳐 달아나고 그것을 발견한 점원은 소리를 치며 그들을 뒤따라 나간다
점원이 문밖으로 뛰어나가고 있는 첫번째 스샷을 보면 분명 수평이 틀어져 있다
하지만 점원이 나가고 나서 가게안이 계속 비춰지지만 카메라가 미세하게 움직여 두번째 스샷처럼 수평을 맞춘다
이것이 만약 의도한 장면이라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그들의 범죄 현장만을 수평을 틀고 그들이 사라진 가게는 더이상 그렇게 촬영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와이 슌지는 단지 그들의 탈선행위만을 틀어진 수평으로 잡고 싶었을 뿐이다

<그들이 CD를 파는 장면의 마지막까지 수평은 틀어진다>

윗 스샷을 보면 수평이 상당히 틀어져 있다
이런 평평한 바닥에서 대체 누가 이렇게 촬영을 하겠는가
하지만 놀랍게도 관객들은 이러한 수평의 틀어짐은 눈치를 잘 채지 못한다
그저 이 장면이 조금더 스펙타클하다고 느낄 뿐이다
밑의 주인공의 클로즈업 역시 뒤의 가게 라인을 보면 수평이 틀어진 것을 알 수 있다
계속해서 반복해 말하지만 이렇게 틀어진 촬영은 100퍼센트 의도라는 것이다

<그들이 가게를 나와서 도망가는 장면에도 경고음은 계속해서 들린다>

수평이야기는 그만하고 CD를 훔쳐 달아나는 20초 부근의 이 장면을 다시 보자
가게에서는 그들의 탈선에 걸맞는 비트가 강한 음악이 흐르고 있고 주인공이 CD를 가방에 넣고 문을 통과하는 순간 도난방지경고음이 울린다
재미있는 것은 컷이 바뀌어 장소가 도로가 된 위의 스샷부분이다
당연하지만 가게의 음악은 들리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도난 방지 경고음은 계속해서 울린다 그리고 그들이 씨디를 팔러 가는 장소 전까지 계속해서 멈추지 않는다

어째서 이소리는 멈추지 않는가
이소리는 분명 OST와 같은 외재음(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듣지 못하고 오직 관객만 듣는 소리)가 아닌 내재음이다
그렇다면 장소가 바뀌었을때 가게의 음악과 같이 사라져야 하는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전에 하나와 앨리스의 사운드 셔레이드와 마찬가지로 이와이 슌지는 이 경고음을 이용한다 2008/12/31 - [영상문법] - 영상문법 - 셔레이드 <하나와 앨리스>
주인공들이 도망가는 이 장면을 계속해서 급박하게 만들기 위해서 이 경고음을 없애지 않는다
그리고 이 없어지지 않은 내재음은 관객들로 하여금 이들이 잡힐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계속해서 만들어준다


<이글은 씨네마틱에 기사화된 글입니다>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도 히치콕 형님은 영화의 카메라는 누군가를 훔쳐보는 창(windows)이라고 말씀하셨지
솔직히 정확히 뭐라고 말씀하셨는지는 잘 기억 안나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어
히치콕 형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데에는 역시 '스릴러'라는 장르에 대한 연구 때문이었지
스릴러라는 장르는 긴장감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 영화의 카메라는 관객들에게 무서운 장면을 훔쳐보게 했다고 생각하셨으니까

하지만 난 장르를 불문하고 영화의 촬영은 모두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공부하다보면 '시점샷'이 분명히 따로 있고 그에 따른 반응샷도 분명히 있지만 사실상 난 모든 샷이 시점샷이라고 본다
다만 구분을 하자면 영화에서 부르는 '시점샷'은 등장인물의 시점이고 내가 말하는 의미는 영화에 등장하지 않아도 가상적으로 존재하는 시점이라고 할수 있다

예를들어 본다면 로우앵글은 어째서 사람을 위대하고 무섭게 만들며 하이앵글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걸까
정말로 단순하게 말해서 키가 작은 사람이 올려다 보는것과 키가 큰사람이 내려다 보는것의 차이가 아닐까
그리고 흔히 bird's eye view라고 부르는 것을 나는 이렇게 부르고 싶다
'신의 시점' 이라고..
다들 알겠지만 살인의 추억에서도 반복해서 나오듯이 사람이 죽은 장면을 머리 꼭대기에서 찍는 것은 흔한일이다
나는 이것이 주는 느낌이 바로 신의 시점에서 인간의 무력한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릴리슈슈의 모든 것에서 자살한 아오이 유우>

이 사진을 보면 물론 아오이 유우가 높은곳에 떨어져서 위에있는 철선에 피를 묻히고 떨어졌다라는 상황 설명도 되지만 느낌상 그녀의 죽음은 같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도와줄수 없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여하튼 본론으로 들어가서 첨부한 동영상은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이 처음으로 사랑을 확인하는 씬이다
둘의 키스가 이루어지고 카메라는 마치 하늘을 날아가는 새처럼 위로 올라가며 그둘을 비춰준다

<하늘위로 날아가면 둘을 비추는 카메라>

이런식의 촬영은 특이한 것이 아니다 흔히들 이렇게 표현한다
하지만 이 컷이 넘어가면서 여주인공은 마치 자기가 이 카메라의 시점으로 자신과 남자의 키스를 보면서 하늘을 나는 느낌이었다고 이야기 한다
놀랍지 않은가?
사실 이러한 촬영 자체는 여주인공의 행복한 심리를 나타내기 위한것이긴 하다 하지만 그것을 대놓고 제3자에게 이야기 한다
이것은 고전적 헐리우드 스타일의 현대 영화에서는 아직은 문법화 되지 않은 표현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보통의 영화에서는 카메라는 선택적으로 순간순간 시점을 바꿔서 촬영할뿐 그 컷이 누구의 시점이었는지 말로 설명해 주지 않는다
사실상 이러한 3인칭의 시점은 설명할수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독은 이시점을 카메라 안에 있는 여주인공의 시점이라 설정하고 그것을 또 다시 관객들에게 이야기 해줌으로써 여주인공의 행복한 심리를 더욱더 극대화 한다고 할수있다

이러한 표현은 비유적으로 설명하자면 내가 느낀 행복을 남들이 보고는 잘 모른다 그것을 내가 남에게 이야기 해주는 장면을 또 봤을때 더 진하게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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