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15 - [video grammer] - 영상문법 - 페이드 아웃, 외재적 내재음 <이터널 선샤인>에서 했던 이야기와 비슷한 내용이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
피터가 레이첼에게 상처를 주고 혼자 돌아와서 열심히 준비해서 꿈을 이루는 장면을 그의 인형극의 오프닝곡을 BGM으로 사용하며 보여준다.

<그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는 장면에서부터 음악은 시작된다>

피터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있을때 피아노 연주는 갑자기 시작된다. 그리고 컷이 바뀌면 어느새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피터가 보인다.
그리고 노래는 다시 연주곡으로 바뀐다. 이후에는 피터의 연주이지만 영화에서는 외재음 즉 bgm처럼 사용된다.

<피아노연주를 들려주며 많은 장면들을 보여준다>

아마 이 장면을 몽타주 시퀀스라 불러도 될것 같다.
여러씬의 장면을 잠깐잠깐 보여주는 표현양식을 그렇게 부르니까. 피터의 피아노 연주곡이 계속되면서 보여주는 여러가지 장면들, 운동하는 장면 - 작곡 - 동생부부와 사이좋게 지내는 - 이러한 것들이 그의 삶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그래서 이 몽타주 시퀀스라는 표현양식은 정말 훌륭하며 많이 쓰이는 기본문법이다.
여기서 피터가 운동하고 작곡하고 동생부부와 사이좋게 지내는 장면동안 계속해서 그의 연주곡을 들려준다. 이것은 그동안 그의 인형극을 위한 준비가 되어가고 있다는 의미이며 곡이 완성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레이첼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레이첼에게 편지를 보낸다. 이순간 잠시 레이첼과의 대화가 진행되므로 음악은 잠시 줄어든다 하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다. 사실 이 장면에서 음악을 페이드아웃 시키고 다시 시작해도 무리는 없다. 하지만 감독은 이 장면역시 몽타주 시퀀스의 일부로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계속되는 음악은 레이첼이 편지를 받는 순간에도 피터가 계속해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는 상징이 된다.

<그리고 연주곡은 바로 인형극으로 이어진다>

연주곡이 계속되다가 결국 인형극으로 이어진다. 몽타주 시퀀스의 마지막에 인형극이 있다는 것은 결국 앞의 모든 장면이 이 극을 위한 준비였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음악이 흐르는 것과 동시에 장면들을 보여주는 것은 이 음악이 점점 완성되어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감독은 비로소 완성된 음악과 인형극을 마지막에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둘사이의 오해가 풀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 시간만 흘려보내고 나서 결말을 맞이 하게 하는 것. 그것은 둘이 서로 좋아하는 마음을 확인한 상태에서 오해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풀린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아마 감독은 의도적으로 이렇게 구성한 것이 아닐까?

중간에 피터가 그녀의 오해를 풀기위해 애쓰는 장면 따위를 뺀것 그리고 레이첼이 뚱보의 말에 그냥 쉽게 넘어가서 피터를 만나러 온것 모두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감독은 그저 피터가 열심히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레이첼이 찾아오게 한다.

이 영화가 괜찮다고 느낀 것은 이렇게 사랑의 감정을 영화적으로 잘 표현해냈기 때문이다. 2009/04/17 - [video grammer] - 영상문법 - 플래쉬 백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에서 처럼 플래쉬백을 보여줘서 진실을 보여주고 그동안 쌓인 오해에 대한 것을 관객에게 알려주거나 시간의 흐름이란 것이 사랑에서 얼마나 중요한 변수가 될 수있는지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로멘틱 코메디에서 로멘틱으로 속이다가 코메디가 되는 장면이다.
꽤나 재미있고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는 이 장면을 보자

<여자의 감정에서 대화는 진행된다>

위의 네 컷을 잘 보면 여자와 남자 둘다 오버더 숄더 샷(O.S.S)로 촬영 되지만 앵글이 조금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여자의 경우 남자의 어깨를 걸친 반면 남자는 여자의 얼굴이 걸쳐 나온다. 이것은 양쪽다 여자의 눈높이에서 촬영된 것으로 결국 여자의 감정으로 이 대화가 진행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샬에게 차여서 괴로워하던 피터는 자신은 이제 무감각 해졌다면서 이 바위에서 뛰어내려도 아프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레이첼은 뛰어내리라고 한다.
하지만 이 대사는 갑자기 피터의 입장에서 관객들에게 들린다. 

<컷은 전형적인 멜로의 느낌으로 진행된다>

전날 밤에 레이첼에게 키스하려다가 거절당한 피터는 그녀와의 썸씽을 접으려 한다. 하지만 그녀가 뛰어 내리라고 하고 그냥 은유적인 표현일 뿐이라는 피터의 말 뒤에 샷이 전형적인 멜로의 컷으로 바뀐다. 이제껏 오버더 숄더로 찍히던 것이 위를 보면 레이첼의 단독샷(그것도 남자의 시점으로 약간의 하이앵글), 피터의 단독샷 (레이첼의 시점으로 약간의 로우앵글) 그리고 아름다운 옆에서의 투샷으로 촬영된다.

그리고 34초에 레이첼이 '아무일 없을거에요 뛰어내려요'라고 말하면서 사랑의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나온다. 피터와 관객 모두 레이첼의 말이 어제 거절했던 키스를 지금 다시 하라는 의미로 이 '뛰어내려요'를 듣게 된다.

그리고 피터는 당연한듯 그녀에게 키스를 하려고 다가간다.
 
하지만 이것은 관객과 피터를 속인 것이다.

<갑자기 레이첼이 뛰어내린다>

갑자기 음악은 약간 스펙타클하게 변하면서 레이첼은 바다로 뛰어내린다.
아.. 그녀의 말은 정말로 뛰어내리란 말이었다.. 그저 사랑의 슬픔을 잊기 위해 자신을 보호하지 말고 차가운 물속으로 내던져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피터는 그녀에게 관객은 감독에게 속고 말았다.
전형적인 멜로샷의 흐름 그리고 그녀의 말에서부터 새어나온 피아노연주곡이 우리의 마음을 그렇게 흔들어놨다.

<시간의 확장>

이것은 위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이 마지막 뛰어내리는 3컷의 장면은 분명히 시간이 확장되어 있다.

첫번째 장면에서 레이첼은 분명 반이상 떨어진다. 하지만 그후 피터의 샷이 나오면서 그가 왓더헬!?이라고 외친후에 3번째 컷으로 가면 레이첼은 또 한참을 떨어진다.
사실 실시간이라면 왓더헬 외치기도 전에 그녀는 바다에 빠졌어야 맞는 것이다.

하지만 헐리우드 영화에서는 종종 이런식의 추락 장면등을 조금씩 반복해서 보여준다. 실시간으로 보여주기엔 너무나 짧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3번째 장면은 살짝 슬로우가 걸린것을 알수 있다 레이첼이 떨어지는 것과 바닷물이 튀기는 것이 조금 느리기 때문이다.

편집은 기본적으로 시간을 압축하기 위한 것이지만 (영화안에서의 시간은 실제 영화시간인 2시간보다 훨씬 길기 때문이다.) 이렇게 종종 부분적으로 시간을 확장하는 장면들을 포함하기도 한다.



플래쉬 백은 간단히 설명해서 영화에서 회상씬을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아마도 고전적인 표현양식에서 과거를 회상할 때 플래쉬가 터지는 것처럼 펑하고 과거로 돌아가기 때문에 생긴 용어인것 같지만 현대의 모든 영화의 플래쉬 백은 다 그렇게 터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 로멘틱 코메디의 플래쉬백은 고전적인 스타일과는 다르며 꽤나 재치 발랄하다.

<이별한 피터에게 괜찮냐고 묻는 동생>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5년넘게 사귀어 온 연인에게 버리받은 피터. 그런 그가 괜찮을리 없다는 걸 아는 동생은 계속해서 그가 괜찮냐고 묻는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괜찮다고 그만좀 물어보라고 대답하는 피터. 하지만 이 때의 플래쉬 백은 꽤나 재미있다.

<피터가 TV를 보다 우는 장면을 보여준다>

플래쉬 백이지만 역시 펑하고 터지는 효과는 없이 그냥 무던한 교차편집으로 보여진다. TV 쇼를 보던 피터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 미국 쇼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대충 파악해보면 별로 슬프지 않은 장면에서 펑펑 우는 피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서 피터가 괜찮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관객에게만 알려주고 있다. 사실 플래쉬 백이라는 것 자체가 원래 관객에게 설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표현양식이다. 그것은 말그대로 과거의 이야기를 관객에게만 보여주는 것이지 그런 기억속의 과거를 영화의 등장인물이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화면이 다시 돌아와도 여전히 괜찮다고 말하는 피터>

그리고 나서 다시 현재로 돌아오면 피터는 아주 잘 지낸다고 말한다.
관객은 이 대목에서 피터가 완전 뻥치고 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이 영화에서 이런식의 플래쉬 백은 굉장히 자주 나온다. 스릴러 영화와 달리 플래쉬 백을 이렇게 자주 무던하게 사용하는 것은 역시 로멘틱 코메디가 가질 수 있는 강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이 영화에서 이런 플래쉬 백의 빈번한 사용은 사람이 서로 살아가면서 수없이 반복하는 거짓말에 대한 진실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씩 상대를 속여가는 동안 사랑하는 사이가 점점 멀어진 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의 끝무렵 피터는 갑자기 말하지 않아도 될 마샬과의 헤프닝을 레이첼에게 고백한다. 이 장면이 이 영화에서 주는 의미는 크다. 그동안 계속해서 보여주는 플래쉬 백을 통해서 이 영화는 사랑하는 사이에서도 서로 얼마나 거짓말을 하고 있는 지를 보여준다. 꼭 말로 거짓말 하지 않더라도 싫은 것을 티를 내지 않아야 하며 못마땅한 것도 웃으며 넘기는 과거의 장면들을 통해 감독은 말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이에 거짓말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멀어질 수도 있다.
물론 나는 거짓말을 잘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피터는 마지막에 레이첼에게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다. 피터는 레이첼과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때 솔직하게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이에 속이면 안된다는 주제는 역시 헐리우드의 로멘틱 코메디 답다는 생각이 든다. 전세계의 사람들을 타겟으로 하는 영화인 만큼 가장 안전하고 보편적인 진리라고 믿는 주제를 설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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