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면은 러브레터 이후 아오이 유우를 우리나에 격하게 알린 이와이 슌지의 하나와 앨리스 라는 영화의 첫 부분이다

오늘 소개할 내용은 영화의 편집과 시간의 관계에 대해서이다
위의 동영상 내용을 설명하기전에 먼저 기본적으로 영화에서 어떤식으로 시간을 다루는지에 대해서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

장편영화를 90분정도라고 치면 영화밖에서의 시간은 말그대로 리얼타임 즉, 90분이 된다.
하지만 영화 안에서의 시간은? 말그대로 며칠이 될수도 있고 몇년이 될수도 있고 심지어는 몇백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영화도 간혹 있다.
이런식으로 대부분의 영화는 스토리상의 시간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물론 90분의 시간동안 똑같이 90분을 보여줄수도 있으며 흔치 않게 90분동안 더 짧은시간 예를들어 단 5분간의 시간만 보여줄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영화들이 존재하며 실험정신으로 훌륭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시간의 압축과 확장은 어떻게 하는가?
간단하게 말하자면 편집을 통해서 이다
시간의 확장은 오히려 간단한 편이다 90분동안 보여주고 사실은 5분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시계를 보여주면 된다(영화안에서)
물론 5분동안 일어날 수 없는 사건들을 다루는 것은 너무 뻥같아서 안되겠지만 실제로 시간확장류의 영화들은 말도 안되는 사건들을 더 짧은시간안에 이루었다고 표현할수도 있다
시간 확장의 똑같은 방법은 평행편집이다
5분동안 일어나는 일 18개를 적당히 섞어서 보여준다고 생각해보자
5x18 = 90 즉, 90분을 보여줄수 있다
이것은 리얼타임이므로 4~5개 정도의 사건을 뒤죽박죽 보여주고 스토리상 플래쉬 백이라던지 그런것으로 보여준 장면을 반복함으로써 90분을 채울수도 있다

그렇다면 시간의 압축은? 기본적으로 영화에서 행해지는 것이므로 더 디테일하게 작업된다
대부분의 영화가 90분보다 훨씬 긴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그러므로 영화는 매씬마다 매순간마다 시간을 압축한다고 볼수 있다
기본적으로 영화가 씬이 나뉘어 지는 이유가 바로 시간의 압축이다
씬의 정의가 무엇인가? 바로 시간이나 장소가 바뀌어지면 씬이 바뀐다는 것이다
시간이 바뀐다는 것은 중간의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며 씬이야 말로 시간 압축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그리고 한 씬 안에서 시간을 압축하는 수단이 있다 바로 편집이다.
이번에 소개할 내용은 바로 이것에 관해서이다
내가 첨부한 동영상을 보면 처음에 하나와 앨리스가 앞뒤로 열심히 걷고 있다
그리고 컷이 바뀌고 전철역이 나오고 화면멀리서 화면안으로 하나와 앨리스가 뛰어들어온다

<화면안으로 뛰어들어오는 하나와 앨리스>


어째서 그녀들은 굳이 화면밖에서 안으로 뛰어들어오는가 (프레임 인 하는가?)
결론을 이야기하면 시간의 압축이다
처음에 하나와 앨리스가 걷고 있는 곳은 길거리이다 그장면에서 그녀들은 어떤 문이나 건물을 만나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장면에서 바로 기차역안에 들어와 있다면? 그것은 관객을 놀라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들은 길거리에 있다가 컷이 바뀌고 2~3초후에 화면안으로 들어옴으로써 그 중간의 시간을 뛰어넘는다

같은 방식으로 또 그녀들은 화면밖으로 사라진다 (프레임 아웃한다)
그리고 컷이 되고 그녀들은 또 밑에서 부터 위로 화면안으로 들어온다 육교를 올라온 것이다

<화면 안으로 밑에서 뛰어들어오는 하나와 앨리스>


여기서도 똑같은 시간 압축이 행해진다 실제로 육교를 올라오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아무리  빠르고 체력이 좋은 여고생이라도 10초는 걸리지 않을까?
10초동안 육교를 오르는 모습을 보여줄수는 없다 그래서 이렇게 편집된다
문안으로 들어와서 왼쪽으로 뛰어사라진 컷직후 그녀들은 육교를 오르고 있다
그리고 컷이 된후 화면밑에서부터 등장하기 전까지 그녀들은 육교를 오르고 있었다
단순한 표현이지만 이런식으로 모든 영화는 시간을 압축한다

다시한번 그녀들은 육교를 오른후 화면 오른쪽으로 빠져나간다
이번에는 그 직후 전철의 역이름이 표시된 판이 보여진다 (사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어떤 텍스트적 의미도 없다고 볼수 있다)

<그녀들이 육교위를 뛰어가고 역의 간판이 보여진다>


<그리고 나온 컷에서 그녀들은 화면안으로 들어오지도 더이상 뛰고 있지 않다
멈추어 서있다>

생각해보자 만약 그녀들이 육교를 뛰어올라와 오른쪽 화면밖으로 뛰어 사라진후 컷이 되고 역이름이 나오지 않고 바로 육교를 내려와 멈춰서 있는 모습이 나온다면?
사실 그녀들은 화면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시간압축이라고 볼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을 그렇게 편집할수도 있다
하지만 계속 뛰다가 갑자기 멈춰서있는 그 쌩뚱맞은 느낌은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감독은 그 사이에 그녀들이 이미 육교를 내려와서 입김을 불며 장난을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전철역의 이름이 표시된 설정샷을 집어 넣는다

사실 방금 설명한 마지막 컷은 시간의 압축을 위해서라면 굳이 집어 넣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시간을 압축한다고 그냥 마구마구 해버린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의 장르적 씬별 느낌에 맞게 압축해야 한다
이와이 슌지는 달리로 촬영한 전철역 이름 설정샷 하나를 넣음으로써 그녀들이 육교를 뛰어내려와 숨을 고르고 입김을 불며 장난을 칠수 있는 시간을 리드미컬한 시처럼 압축했다

바로 이것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연출할때 신경써야할 부분이다
영화의 시간적 압축은 영화의 리듬을 만든다
리드미컬하지 않은 영화는 딱딱하고 머리아픈 책을 읽는것 만큼이나 재미 없다



<씨네마틱에 기사화된 글입니다>


 


어법
영화의 표현방식을 영상언어로 대치 시킬때
영화에도 분명히 은유법이라는 표현방식이 존재한다

언어에서 은유란 '나는 개다'와 같이 하나를 다른 하나에 빗대어 표현할때 쓴다
그렇다면 영상에서의 은유란 무엇일까

영화에서 은유법으로 표현되는 장르는 흔히 멜로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은유라는 것은 다분히 시적인 표현이고 영화에서 쓰이는 은유법들은 보통 사람의 감정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 표현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먼저 위에 잘라놓은 영화를 보자
이것은 '아무도 모른다'의 한장면이다
어머니에게 버림받아 생활할 돈이 없어진 소년이 어머니의 옛남자를 찾아가 용돈을 받는 장면이다
중요한 것은 캔음료 위로 돈을 쥐어진 소년의 손이 클로즙업 되고 남자가 들어간뒤
롱샷으로 보여지는 소년의 행동이다

<다마시 커피캔 위로 돈을 쥐고있는 소년의 손 클로즈업>

소년은 다 마신 캔음료를 쓰레기통에 던져서 넣으려고 하지만 벽에 부딪혀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는 그것을 다시 주워 넣는다

<쓰레기통에 커피캔을 던지는 소년 롱샷>

영화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소년은 빈캔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 성격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관객들에게도 느껴지지만 이것은 어머니의 옛남자에게 돈을 얻어낸 소년의 기쁨을 나타내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어째서 '은유' 라고 하는가
영화를 만들때 사람의 기쁨은 표현하는 방법이 여러가지가 있겠다
밝게 웃는 얼굴의 클로즈업을 보여준다면 그것은 다름아닌 '직설법'이 될것이다
그리고 만약 갑자기 하늘을 날아 오른다면 그것은 '과장법'이 될것이다
깡통을 던진다는 행위자체는 앞뒤 문맥이 없다면 결코 '기쁨'이라는 감정을 내포하지 않는 행동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은유'라고 본다
만약 보통의 기쁨을 표현할수 있는 행위 즉, 달리기라던가 점프라던가의 행동이 보여진다면 나는 이것을 '직유'라고 표현 할것 같다

동생들과 밥을 먹고 생활할수 있는 조금의 돈을 얻어낸 소년의 기쁨을 감독은 빈깡통 던지기로 표현한다
기쁜데 왜 깡통을 던지나 라고 말한다면 나는 설명할수 없다
아마 심리학적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할수 있겠지만
하지만 모두들 그런적이 있을 것이다 기분이 업되서 무엇인가를 던져본적이..

감독은 아무것도 아닌 깡통을 던지는 장면을 통해서 주인공의 기쁨을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이 영화 '아무도 모른다'는 마치 제목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것을 표면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하나하나의 사건이 등장인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남모르게 은유적으로 조금씩 표현하고 있다


<씨네마틱에 기사화된 글입니다>



미국영화에서는 흔하지 않은 어두운 조명 짙은 콘트라스트
영화의 전체를 램브란트 조명으로 뒤덮은 클린트이스트우드 감독의 의도는 명확하다
바로 우울하고 밝지않은 메기(여주인공)와 클린트이스트우드의 삶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이다

메기의 삶은 너무나 우울하다 가난하고 미래는 없고 남자도 행복도 없다
그저 가족에게 돈을 벌어다 주며 자신은 절약하며 살아가야한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하고 싶은 것이 바로 복싱이다
클린트이스트우드의 삶역시 좋지 않다
딸과의 사이가 좋지 않고 자신의 훌륭한 선수를 불안감에 타이틀매치에 내보내지 못해 결국 배신 당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우울하고 꿈없는 이들이 인생을 표현하기 위해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채와 낮은 채도 그리고 콘트라스트가 강한 램브란트식의 조명을 사용한 것이다

이 동영상에 보면 처음에 둘의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에 중간중간 있는 전등에 의해 얼굴이 보였다 안보였다 한다
<실제로 걸으면서 인물이 보였다 안보였다 한다>


실제로 이런식의 전등이 되어있어도 인간의 눈은 저렇게 까지 사람의 얼굴을 구분못하고 실루엣만 남는 식으로 보지는 않는다
때문에 대부분의 상업영화 특히 전체적으로 밝은 조명을 사용하는 헐리우드에서는 결코 이런식으로 영화를 찍지 않는다
이것은 리얼리즘도 아니며 그저 관객을 불편하게 하는 요소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계속되는 이러한 조명은 그들의 삶을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어둡고 우울하게 만들어 준다

<메기의 레스토랑 안쪽의 어두운조명과 바깥의 밝은 빛>

동영상의 41초부터 나오는 메기가 일하는 장면의 경우 레스토랑안은 상당히 어둡다 테이블을 치우기 위해 밖으로 나간 메기를 기다리는 것은 소스가 묻은 돈뿐만이 아니다
바로 그녀의 기쁨을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밝은 태양빛이 기다리고 있다
<소스가 묻은 팁을 잡을때의 밝은조명>

생각해보라 영화의 감독이 당신이라면 굳이 음식점에서 일하는 메기가 테이블을 치우는 장면을 건물내부에서 바깥으로 나가며 찍어야 할필요는 없다
애초에 밖에서 찍던가 안에서  찍는 것이 조명설치, 카메라 워킹 모든것이 편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그러지 않았다
굳이 그녀가 스피드백을 사기위한 마지막 팁을 받는 장면을 어두운 그녀의 직장에서 태양빛으로 가득차있는 야외 테이블로 옮겨감으로써 표현한 것이다
번외적인 이야기지만 테이블위에 있던 지폐에 소스가 묻어있는 것 또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표현이다
굳이 영화의 소품으로 쓰이는 돈에 시나리오에 없던 소스가 묻어있고 그것을 행주로 닦는 장면을 찍었을리 없다 시나리오상에 늦어도 스토리보드에는 의도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왜 돈에 소스를 묻혔을까
그녀가 돈을 얼마나 힘들게 버는지에 대한 메타포일수도 있고 돈을 닦는 그녀의 기쁨을 표현 할 수도 있고 여러가지 상상을 해볼 수 있다
<링위는 링밖보다 훨씬 밝다>

영상의 마지막에 메기가 링위에 올라간다
이영화에서 가장 조명이 밝고 화려한 장면을 꼽으라면 바로 링위이다
이것은 링위에 서고 싶어 하는 메기와 선수가 다치는 것을 두려워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꿈이 바로 링위에 있다는 표현이라고 본다
<링 밖은 흑인의 얼굴이 구분이 안될정도로 어둡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조명을 하지만 사실상 링위까지 어둡게 할수 없어서 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보잘것 없는 이유로 전체적으로 어둡게 한 조명을 죽이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어쩌면 전체적으로 어둡게 조명을 한 것은 바로 이 링위의 밝음이, 링위의 메기가 더욱 빛날 수 있도록 하는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는 링위에서 사고를 당하고 다시 어둡고 침침한 세계로 돌아가게 된다


영화의 특이한 점중의 하나는 처음부터 등장하는 나레이션이 메기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아닌 3인칭 관찰자인 모건 프리먼이 말한다는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메기와 던이지만 영화의 화자는 바로 모건 프리먼이다
이것은 중고등학교때 누구나 들어본 3인칭 관찰자 시점이다
영화에서 시점은 사실상 계속해서 변화한다고 볼 수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모건프리먼의 나레이션은 이 영화를 3인친 관찰자 시점으로 만들어 준다

왜 메기나 던의 시점이 아니었을까
영화에서 메기와 던은 둘다 문제를 안고 있다 그리고 둘이 만나 그 문제에 대해 정면으로 맞서게 된다 비록 결과는 좋지 않게 끝나지만..
이것을 메기나 던의 입장에서 이야기 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친구에게 이야기 듣는 느낌으로 영화를 보게 하기 위해서이다
만약 영화가 메기나 던의 시점으로 진행이 된다면 우리는 당사자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는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건 프리먼의 입을 통해 한번 걸러서 듣게 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너무 슬픈 신파도 너무 감동스러운 극화도 아닌 그저 무덤덤히 말하는 모건 프리먼의 말을 통해서 우리는 그렇게 모든 이야기를 정리하며 들을 수 있다

당연하지만 시점의 선택은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시점을 선택했을때 관객이 받는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감독은 선택을 한것이고
결과적으로 이영화가 호평을 받았으니 옳은 선택이라고 할수도 있겠다

영상이 언어라고 한다면 말하는 방법에는 정답이 없다 그것은 말하는 자의 선택일 뿐이다
 
<씨네마틱에 기사화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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