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장센은 영화의 분위기를 꾸민다
스토리나 플롯처럼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눈치 채지 못하지만 다만 느끼도록 그렇게 관객을 설득한다

먼저 위의 동영상은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2부분을 잘라 놓은 것으로
각자 다른 부분이지만 장소의 미장센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

<마츠코의 제자 류가 교도소에서 출옥하는 장면>

먼저 마츠코의 제자였던 류가 감옥에서 출옥하는 장면을 보자
함박눈이 내리고 하얗게 쌓여있는 것, 교도소 앞에 놓여있기에는 조금 쌩뚱맞은 나무 한그루 이렇게 아름답게 이장면을 꾸민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이장면은 마츠코가 감옥에서 출옥하여 이발사를 찾아가는 장면 (2009/01/12 - [영상문법] - 영상문법 - 영화적 허용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과 대비된다
마츠코는 벚꽃이 날리는 봄에 출옥했다 
그 장면역시 굉장히 아름다웠으며 봄은 '시작'을 의미하듯이 마츠코가 새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이발사를 찾아가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시작이 아닌 끝이었다
위의 장면은 겨울이다 
류가 출옥하는 장면은 더이상 새로운 시작을 의미할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하얀 겨울이다
플롯 구성상으로 류가 마츠코를 때리고 도망가는 이 장면은 마츠코의 '사랑'의 마지막이다 
많은 남자를 사랑하고 함께 살았지만 그녀의 마지막 남자는 그녀의 제자인 '류'였다
그리고 이 출옥 장면은 그와 그녀의 마지막 만남이다
그래서 감독은 이 장면을 겨울로 설정했다

<이 재회는 너무나도 아름답게 촬영된다>

그리고 그들의 재회는 이렇게 너무나도 아름다운 배경으로 촬영된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설정'의 의미는 무엇인가
마츠코의 입장에서 아름 다운 재회를 그리는 것인가?
그렇다고 하기에 이 장면의 촬영은 마츠코의 시점으로 촬영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로우 앵글로서 마츠코의 시점과 반응샷으로 구성되지 않았다
이 장면은 마츠코의 시점보다는 조금더 객관적으로 구성되었으며 그것은 이 아름다운 배경과 그들의 영원한 이별의 충돌을 만들어 낸다

<마츠코에게 주먹을 날리고 도망치는 류>

영화를 보던 사람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새하얀 눈밭에서 마츠코의 아구리(?)를 한방에 날리고 도망가는 류의 모습을 보면서 실소를 자아냈을지도 모른다
필자 역시 이 장면에서 아이러니한 웃음을 지을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일부러 만들어낸 감독의 의도이다
하얀 옷을 입은 마츠코와 검은 옷을 입은 류의 대비 그리고 아름답게 내리고 쌓인 눈.. 이 모든것이 마츠코에 대한 류의 죄책감을 터뜨리고 우스운 장면을 만들어낸다
결국 이 장면의 아름다운 미장센은 '아이러니'이며 이러한 방식은 앞에서의 마츠코의 출옥 장면과 마지막 마츠코의 죽음 장면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과연 류가 문을 열고 나오는 장면에서 마치 흰 눈꽃처럼 보이는 이 교도소앞 나무의 존재는 정말로 바로앞에 나무가 있는 교도소를 찾은 것일까?
화면의 느낌으로 보건데 이 장면은 cg와 블루스크린의 합성으로 이루어진 장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교도소와 눈은 몰라도 이 장면에서 오른쪽 구석을 차지하는 이 나무의 존재를 감독은 합성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아름다운 눈꽃과 입체적 화면구성을 위해서 말이다

<마츠코의 죽음 역시 너무나도 아름다운 화면구성이다>

첨부한 동영상 48초부근부터 나오는 마츠코의 죽음 장면 역시 너무나도 아름답게 꾸며진다
푸른 잔디밭과 왼쪽에서 비춰지는 스팟 라이트 그리고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 너무나도 허망하고 비참한 마츠코의 죽음에 아이러니를 만들어 낸다

감독의 이러한 아이러니한 화면 구성은 역시 r.ef의 이별공식의 가사처럼 햇빛 눈이 부신날의 이별은 더욱 비참하다는 표현과 비슷하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이별과 죽음의 장면을 구성함으로써 감독은 마츠코의 인생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어 내고 있다

죽음 장면의 왼쪽에서 제공되는 인공 조명에 의한 플레어 현상역시 예쁜 장면을 만들어 내기 위한 대표적 스킬이 아닌가

<이글은 씨네마틱에 기사화 되었습니다>

하나와 앨리스 시간의 압축 확장때 확장때 주로 이야기 했던 평행 편집부분이다
이 영상에 나와있는 것처럼 다른장소의 이야기들을 교차로 보여준다고 해서 교차편집이라고 편하게 부르기도 한다

영화의 대부분의 장면은 사실 한장면이 쭉 보여지고 그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것은 주로 영화의 주인공을 따라서 사건이 흘러가기 때문에 카메라는 주인공을 계속 비춰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등장하는 인물은 매우 많으며 사실상 주인공이 여러명인 영화도 많다
그러므로 감독은 동시에 일어나는 일을 교차로 보여준다는 선택을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선택으로 많은 영화적 메시지와 감정을 만들어낼 수 있다

첨부한 동영상 부분에서 주목할 점은 바로 비극과 희극을 교차한다는데 있다.
이것은 R.ef의 이별공식의 가사에서 처럼 햇빛 눈이 부신날의 이별은 비오는날 보다 심하고 작은 표정과 눈물을 감출 수 있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노래한 것과 비슷하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이부분에서 만담을 하러 올라가기 전에 그리고 이미 무대에서는 만담이 펼쳐지고 있는데 무대 뒷편에서는 너무나 슬프게 우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던져준것이다. 이것은 사실상 무대위의 희극과 대비되어 더 가슴아프게 느껴진다는 것이 문법적으로 맞는 것 같지만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아니다.
관객들의 감정이 슬퍼하는 하나에게 완전히 몰입해야 하는데 중간중간에 희극장면을 넣는다는 것은 감히 편집하기 두려운 일일 것이다.
아무튼 이와이 슌지는 그렇게 편집을 했고 나는 꽤 성공적이게 장면이 완성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무대뒤와 무대위의 만담이 교차편집 된다>


그리고 이부분에서 조금더 디테일한 사운드 편집 장면이 들어가있다
이 교차편집은 다른장소지만 사실은 무대위의 소리가 들릴만큼의 가까운 거리이므로 무대위의 소리가 뒷쪽까지도 완전히 전달된다
하지만 이와이 슌지는 이 무대위의 사운드를 선택적으로 무대뒤쪽에 들려준다
처음에는 만담이 없어서 전혀 들리지 않던 무대위의 소리가 1분 55초경을 보면 분명히 하나의 울음위로 들려온다.
하지만 하나의 울음이 극에 달하는 1분 59초의 순간에는 음악만을 들려주고 순간적으로 무대위의 소리를 들려주지 않는다.

<하나의 울음이 폭발하는 순간 음악이외의 사운드는 들리지 않는다>

이것은 대단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 영화를 보던 대부분의 관객은 그 짧은 순간에 밖의 소리를 인위적으로 차단하여 하나의 슬픔을 극대화 시킨것을 모르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저 하나의 슬픔이 극에 달하고 울음을 꿀꺽 삼키는 듯한 느낌만을 받을 뿐이다
그리고 다시 교차편집이 되며 다시 무대뒤의 하나의 샷에서는 무대위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단 한컷만이 무대위의 사운드를 차단시켜준다
이것은 역시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지만 굉장히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서 감독은 2분 11초경에 나오는 하나의 단독 클로즈업 샷까지는 무대위의 소리를 들려주지만 2분 16초경부터는 하나의 대사가 시작되고 다시금 무대위의 소리를 차단시켜 준다

이 사운드 편집을 종합해서 설명하면
사실 처음부터 무대위의 사운드를 차단하고 시작했다. 무대위의 소리는 이야기를 시작하는 하나에게의 관객몰입을 방해하는 것이었고 들려줄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하나가 말을하다가 울기 시작하고 이제서야 무대위의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한순간 울음이 극에 달하는 순간 무대위의 소리를 차단하지만 다시 들려주고 결국 하나가 다시 이야기를 하는 순간부터는 다시 무대위의 소리를 차단해 준다.

이 하나가 우는순간 무대뒤로 전달해준 만담의 사운드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이것은 하나의 이야기가 끊기고 우는 순간 그녀의 귀로 들려오는 만담소리가 하나에게 더 큰 슬픔과 창피함을 전달해준다는 감정적인 편집이라고 말하고 싶다
실제로 슬픔이 극에 달하는 순간에는 만담소리가 그녀에게 들리지 않고 이야기를 다시 시 작하는 시점에는 만담의 소리를 들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의 감정에 치우친 편집이라고 생각하지만 관객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하나가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무대위의 만담이 들려오고 이것은 위에서 말한대로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하나의 슬픔을 증폭시켜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씨네마틱에 기사화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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