짦은 머리의 여성을 보면 (단발보다 더 짧은) 왠지 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선입견일 수 있지만 분명한 경험에서 비롯된 비주얼적인 분석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람의 외모나 차림새를 보면 그의 성격이나 라이프 스타일을 알 수 있다. 딱히 저런 차림새니까 어떻고 어떨거야라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중에 느끼게된다. 그리고 그런 것이 바로 영화에서 미쟝센이라 불리운다.


<미루메, 도모토, 엔의 위치를 감독은 어떻게 설정 했을까?>

미국에서는 미쟝센이라는 프랑스 용어를 쓰지 않고 composition 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정확하게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는 모르겠지만 화면안의 인물 배치에 대해 상당히 신경쓴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것은 당연한 것이며 영화의 기본중의 기본인 것이다.
모든것이 사전에 약속 되어 있는 영화의 경우 인물의 배치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이상한게 아닐까?

쉬는 시간에 바깥 공기를 쐬러 나온 3인조. 그들의 등장에서의 인물 배치는 왼쪽부터 미루메, 도모토, 엔으로 되어 있다. 이후에 밝혀지는 셋의 애정구도를 생각해 볼때는 맞지 않는 배치인것 처럼보이지만 아직까지 표면화 되지 않은 셋의 감정을 볼때는 적절한 밸런스로 보인다.  

미루메와 엔 사이에 도모토가 위치하는 것은 도모토가 있기에 3명의 관계가 균형이 잡힌다는 뜻이다. 도모토가 없어져 버린다면 엔이 미루메를 짝사랑하는 일방적인 구도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끝으로 쳐져버린다면 둘사이에서 소외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셋은 항상 이런 구도로 다니는게아닐까?
 
하지만 수업으로 돌아갈 때 비로소 감독은 셋의 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구도를 만든다. 위의 두번째 스샷을 보면 담배를 피며 다른 여자에게 반해버린 미루메를 엔이 돌아서서 크게 부르고있고 그런 그녀를 크게 앞서가던 도모토가 쳐다보고 있다. 

아무것도 아닌것 처럼 보이지만 이 단 한장면을 통해서 감독은 셋의 연애관계에 대해 관객들이 충분히 짐작 할수 있는 선을 정리해 주는 것이다. 미루메는 이 둘에게 어떤 감정도 없다. 그래서 혼자 남아 있는 것이며 미루메를 좋아하는 엔은 그런 그를 그냥 두고 갈수가 없다. 또한 도모토 역시 미루메가 오지 않는 것은 상관 없지만 그를 쳐다보는 엔을 두고 수업에 들어갈 수는 없는 것이다. 

<엔을 오른쪽 사이드에 배치해 관객으로 하여금 계속 그녀를 신경쓰이게 한다>

연인이 생겼다는 사실을 속닥이는 미루메와 도모토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는 계속 뒤에서 훔쳐보게 해준다. 그리고 그 앵글의 끝에는 혼자서 열심히 수업을 듣고 있는 엔의 모습이 계속해서 비춰진다.

엔을 오른쪽 사이드에 배치한 감독의 의도는 명확하다. 영화의 이쯤에 오면 관객들은 어렴풋이 엔이 미루메를 짝사랑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미루메가 그 여자랑 사귀는지는 아직 관객에게도 전달되지 않은 정보이기 때문에 이 둘의 속닥거림은 엔의 마음을 알고있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녀가 엄청 신경쓰이며 볼수 밖에 없게 만들어낸 배치인 것이다.

그리고 큰소리를 낸 도모토를 2번째 장면에서 모두가 뒤돌아서 쳐다보고 있으며 3번째 장면에서는 모두 다시 수업에 집중했지만 엔만이 그들을 주시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후에 엔의 얼굴이 컷으로 크게잡히긴 하지만 이 장면만으로도 엔의 감정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누가 봐도 미루메에게 여자가 생겼다는걸 예상할 수 있으며 그것을 엔의 시점으로 찍지 않고도 엔의 감정에 주목하며 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물론 이런 롱테이크 롱샷의 영화가 거의 모든 샷이 3인칭이라는 점을 생각할때 이것은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써 우리에게 엔의 아픈 감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쿨하게 사유리가 떠나버린 곳에 혼자 남겨진 미루메>

사유리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몰랐던 미루메는 아무렇지도 않은척 그녀를 조각상이 들어있는 빈방으로 납치(?)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뒹굴며 키스를 나누지만 사유리는 자신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말 안했냐고 능청부리며 쿨하게 그 자리를 떠난다.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말 안한 것이라는 뉘앙스를 관객에게 전달한 채 그렇게 남겨진 미루메의 아픈 감정을 감독은 또 이 한 컷의 롱샷의 미쟝센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불이 켜지지 않아 창에서 들어오는 역광으로 실루엣만이 남겨진 미루메의 모습은 정말 처량하기 그지 없다. 카메라 쪽으로 스며드는 그림자도 그렇고 그와 비슷한 자세로 서있는 석고상과의 대치를 통해 미루메 자신이 사유리에게 뭔지 단순히 놀잇감이 되버린 것 같은 감정을 관객에게 말하지 않고 그대로 전달한다.

<왼쪽 위의 햇빛을 보자>

혼자서 힘들어 하는 미루메는 엔의 인도로 사유리를 찾아가 보지만 만나지 못한다. 그리고 술을 잔뜩 마시고 엔과 모텔(?)에서 잠이든 미루메는 다음날 새벽 오토바이를 타고 혼자서 도주한다.

중요한건 이 롱테이크 롱샷을 찍기 위해 해의 위치를 기다렸다는 점이다. 화면의 왼쪽 위에 해를 보면 크기가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로보면 이 샷이 진행되는 1~2분 사이에 해가 저만큼 더떠버린 것이다. 저정도로 해의 변화가 급박한데 우연히 건물의 지붕에 저렇게 걸린 해를 찍을 수 있었을까?

감독은 처음부터 저 쯤에 해가 걸릴때를 기다리며 모든 것을 스탠바이 해놓고 기다렸을 것이다. 롱테이크기 때문에 엔지가 나면 해의 위치가 훨씬 변해 있어서 카메라의 높이를 조정한다 해도 하루에 2~3 테이크 밖에 못찍을 장면을 감독은 찍어낸 것이다.

크게 아름답거나 눈에 띄는 부분이 아니라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모른 채 지나가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림을 그리듯 자신이 원하는 미쟝센을 얻기 위해 기다리며 고생한 감독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뭐 아무튼 롱테이크 롱샷이 대부분인 이 영화의 경우 미쟝센은 상당히 중요하다. 위에서 설명 했듯이 인물의 배치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에 따라서 감정의 전달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디테일하게 컷을 나누지 않은 연출이야 말로 반대로 디테일한 연출이라는 생각이 든다. 관객은 누구 한사람의 동작 하나도 놓칠 수 없으며 감독은 그들의 위치부터 표정 행동의 모양새까지 모든 것을 연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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