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멜리에서 나온 두번의 의인화에 대해서 살펴보도록하자

<아멜리에의 감정에 대해서 벽의 그림들과 돼지스탠드가 말을한다>

 영화 '아멜리에'처럼 표현의 방식에 제한을 많이 두지 않는 영화에서나 가능한 순간적 의인화라는 생각이 든다
위의 그림 두개를 보면 니노라는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겨서 그의 사진앨범을 주웠으면서도 전화를 하지 못하는 아멜리에를 두고 벽의 그림 - 개,새 - 들과 돼지 스탠드가 대화를 나눈다
대사는 새가 하는 단 한마디 '수상해.. 사랑에  빠진게 아닐까?'라는 말 뿐이지만 이표현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초반에 보면 아멜리에는 어릴적부터 혼자 놀아서 여러가지 상상력을 키워왔다 그런 과정에서 그녀는 여러 사물들과 대화할 수 있었다
2009/01/29 - [영상문법] - 영상문법 - 전지적 작가 시점 <아멜리에> 에서 보여주듯이 그녀는 가끔 티비에서 자기 이야기를 다룬다는 상상도 할 정도이다
때문에 이 의인화된 표현은 명백하게 관객들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되는 것인 동시에 아멜리에의 상상에 의한 그녀의 시점에서 이야기 된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가 사랑에 빠진것이 아닐까 수상하다는 이들의 의문은 훨씬더 많은 정보를 수집한 관객들에게는 어리석은 질문일 수 있다
그녀는 분명히 니노라는 남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질문이 관객에게 전달되는 '아멜리에는 사랑에 빠진것 같다'라는 것으로 보기에는 완전히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그남자에게 이끌리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확실히 알지 못하는(그녀의 흔들리는 마음은 여러가지 다른 장면에서도 많이 표현된다)그녀가 주변의 사물을 통해 자신에게 질문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보여진다 (물론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재미있는 장면이라고 생각되서 찍었을수도 있다)

<아멜리에가 돌려준 사진속의 남자는 4명이 되어 이야기한다>

내가 이 두가지 장면을 붙여놓긴 했지만 영화상에서는 아멜리에의 의인화 장면과 니노 의 이 장면은 전혀 연속되는 씬이 아니다 오해는 없길 바란다

다시한번 비슷한 표현방식이 이번에는 니노의 침실에서 이루어진다
아멜리에가 돌려준 단 한장의 사진(사실은 똑같은 사진 4장이지만)은 잠을 청하는 니노에게 말을 건다

이 장면에서도 나는 앞에서와 비슷하게 해석될 수 있다고 본다
니노가 아멜리에와 비슷한 몽상가라는 것은 영화에서 이미 알려준 정보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4명의 남자가 니노에게 말을 거는 것은 아멜리에와 마찬가지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라고 해석될수 있는것이다
니노가 이 남자들에게 던지는 '그녀는 예쁜가? 그녀가 원하는 것은?'등의 질문들은 사실상 자기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 4명의 남자도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상 아는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녀의 외모가 괜찮다는 것은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니노가 직장 동료에게 들어서 대충은 상상할수 있는 정보라는걸 생각하자

<마지막에는 2명 그리고 최후의 한명으로 샷이 변한다>

이 니노에게 하는 마지막의 클로즈업 샷의 이야기 '너는 그녀를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라고 하는것은 마치 니노가 '왠지 예전부터 알던 사람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어디선가 만난적이 있는.. '라고 스스로 말하는 것 같다

이렇게 해석해 볼때 이 4명의 같은 남자는 니노의 마음속의 갈등들이라고 볼수 있다
4명의 남자는 때로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때로는 다른 의견을 낸다
그녀를 알고 싶나? 그녀의 외모는 예쁘다라는 이야기는 4명 모두 같은 의견은 보인다 그녀를 알고 싶은 것은 니노에게 고민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이며 아멜리에의 외모에 대해서 예쁘다,괜찮다 라는 식으로 의견이 분분한것은 그가 그녀의 외모가 예쁘장하다는 동료의 이야기만 들은것으로 혼자 어떨까 상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녀의 용건에 대해서는 이상한 이야기들만 나오지만 그것은 니노가 그녀의 의도를 짐작하다가 나온 말도 안되는 상상들을 사진속의 남자에 의해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쓸데 없는 상상끝에 니노는 '그녀가 날 사랑하는게 아닐까?'하는 결론에 봉착한 것이다
그리고 역시 마지막으로 왠지 그녀를 꿈속에서 전에 만난적이 있다는 기분이 든다는 바로 니노의 혼자만의 상상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장 대중적인 헐리우드 영화의 경우 처음을 어떻게 시작하는가?
대부분 영화의 타이틀 시퀀스에 앞으로 펼쳐질 배경이 나오고 주인공이 등장하면서 그의 캐릭터를 설명하며 시작한다(모든 영화가 그런것이 아니다 편하게 생각하자)
그러한 방법은 텍스트적으로 분석하자면 미국의 뉴욕의 도시에 마이클이라는 이런 남자가 살고 있다 라는 식으로 해석 될 수 있다
하지만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는 조금 다르게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우선 영상을 보자 저번편에 한번 올린 것과 중복 되는 것이지만 분석 내용은 다른 것이니 안심하자
꿈에 대한 나레이션이 시작되고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술에 찌든자 죽음을 맞이한자 그리고 그저 자신의 삶을 웃어 넘기려는자

<카메라가 마지막으로 비춰주는 남자가 바로 영화의 중심인물이 된다>

결국 그러한 사람들 속에서 마지막에 나오는 남자가 바로 영화의 스토리를 추적해 나가는 마츠코의 조카다
이것은 문맥적으로 어떻게 해석하는가 앞에서와 같이 단순히 일본의 신주쿠라는 도시에 이런 남자가 살고 있다 라는 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었지만 이 영화에서는 조금더 철학적으로 접근한다
세상엔 수많은 사람이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루지 못해서 고통받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고 술에 찌들어 사는 사람이 있고 불행하게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있으며 그저 웃으며 현실도피를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중에서 마지막에 나오는 현실도피를 하는 남자가 바로 이 영화의 화자라는 이야기다

앞에서 설명한 헐리우드의 도입부가 간접적으로 캐릭터를 설명하는 방식이라면 이것은 나레이션으로 직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떠한 사건으로 캐릭터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나레이션으로 현실을 웃어 넘기려 한다고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러한 도입부의 방식의 특성은 이렇다
헐리우드 영화의 도입부가 뉴욕의 한남자에 관한 이야기라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의 방식은 꿈을 꾸는 그리고 꾸어본적 있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로 넓게 펼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몇몇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것을 말할 뿐이다

그리고 영화를 본사람은 알겠지만 도입부에 잠깐 잠깐 등장하는 인물들이 바로 이 영화의 핵심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마츠코의 감방동료, 마츠코를 사랑한 제자, 마츠코의 죽음>

위의 세장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영화의 플롯을 이끌어가는 핵심 인물이다
확실하진 않지만 첫번째 그림은 마츠코의 감방 동료로서 av영화를 찍었던 사와무라 메구미이며, 두번째는 뺨에 휴터로 보아 확실하게 마츠코의 비참한 인생을 시작하게 만든 그녀의 제자라는 것을 알 수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급히 인생을 마쳐 시체가 되어있는 사람은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인 마츠코이다

이렇게 감독은 마치 세상 사람들 모두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화자인 마츠코의 조카를 찾아가는 형식처럼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꽤나 재미있는 설정을 해놓은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감독은 나레이션으로 마츠코와 주변인들의 삶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이렇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처음에 살짝 보여주는 것을 액자식 구성이라는 촌스러운 표현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정도는 아니고 그저 영화를 두번이상 보게 될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이자 감독의 재치라고 봐주면 될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영화의 도입부에서 결말을 제시하는 방법은 '아무도 모른다 - 강조법'에서 말했듯이 영화의 사건과 주제를 연결시켜 강조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그리고 조금은 노골적인 메타포를 하나 보도록 하자

<드림이라는 간판이 물에 비치고 남자가 그것을 짓밟아 흐트려 놓는다>

굉장히 친절하고 노골적으로 표현된 1분 45초경에 나오는 상징이다
위의 스샷을 보면 모두 알겠지만 남자가 술을 마시는 '드림'이라는 클럽의 간판이 보이고 그것이 바닥에 고여있는 물에 비친다(이것은 합성이라고 생각된다 바닥에 비칠때 저렇게 상하 반전이 안될 수는 없다) 그리고 남자가 그것을 짓밟아 놓는다

영화는 처음부터 꿈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는 간단한 대사를 통해서 마츠코의 조카가 밴드를 그만두고 꿈이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DREAM'이라는 물에 비친 간판을 짓밟는다
그의 꿈이 그리고 많은 사람의 꿈이 짓밟혔다는 상징일수도 있고 이미 마츠코의 조카의 꿈은 바닥에 떨어져서 수없이 짓밟힌다는 상징일 수도 있고 조금 마음넓게 해석해 보자면 그가 밟은 것은 물일 뿐이다 그것은 곧 다시 물이 고일테고 꿈은 또 다시 비추게 된다 마츠코의 조카가 밟은 것은 꿈이지만 그것은 결코 밟힐수도 파괴 될수도 없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할수도 있다

<AV를 빌려가는 마츠코의 조카는 TV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시에는 시적허용이 있다면 영화에도 당연히 영화적 허용이 있어야 한다
이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그가 본 환상일 수도 있고 그저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판타지적 장면일 수도 있다
아무튼 재미있게 표현된 이 장면으로 감독은 그가 이제부터는 꿈을 잃고 완전히 죽은 사람이며 또, 마츠코의 죽음을 곧 알게될 것에 대한 메타포일 수도 있다

<씨네마틱에 기사화된 글입니다>


이 장면은 러브레터 이후 아오이 유우를 우리나에 격하게 알린 이와이 슌지의 하나와 앨리스 라는 영화의 첫 부분이다

오늘 소개할 내용은 영화의 편집과 시간의 관계에 대해서이다
위의 동영상 내용을 설명하기전에 먼저 기본적으로 영화에서 어떤식으로 시간을 다루는지에 대해서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

장편영화를 90분정도라고 치면 영화밖에서의 시간은 말그대로 리얼타임 즉, 90분이 된다.
하지만 영화 안에서의 시간은? 말그대로 며칠이 될수도 있고 몇년이 될수도 있고 심지어는 몇백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영화도 간혹 있다.
이런식으로 대부분의 영화는 스토리상의 시간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물론 90분의 시간동안 똑같이 90분을 보여줄수도 있으며 흔치 않게 90분동안 더 짧은시간 예를들어 단 5분간의 시간만 보여줄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영화들이 존재하며 실험정신으로 훌륭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시간의 압축과 확장은 어떻게 하는가?
간단하게 말하자면 편집을 통해서 이다
시간의 확장은 오히려 간단한 편이다 90분동안 보여주고 사실은 5분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시계를 보여주면 된다(영화안에서)
물론 5분동안 일어날 수 없는 사건들을 다루는 것은 너무 뻥같아서 안되겠지만 실제로 시간확장류의 영화들은 말도 안되는 사건들을 더 짧은시간안에 이루었다고 표현할수도 있다
시간 확장의 똑같은 방법은 평행편집이다
5분동안 일어나는 일 18개를 적당히 섞어서 보여준다고 생각해보자
5x18 = 90 즉, 90분을 보여줄수 있다
이것은 리얼타임이므로 4~5개 정도의 사건을 뒤죽박죽 보여주고 스토리상 플래쉬 백이라던지 그런것으로 보여준 장면을 반복함으로써 90분을 채울수도 있다

그렇다면 시간의 압축은? 기본적으로 영화에서 행해지는 것이므로 더 디테일하게 작업된다
대부분의 영화가 90분보다 훨씬 긴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그러므로 영화는 매씬마다 매순간마다 시간을 압축한다고 볼수 있다
기본적으로 영화가 씬이 나뉘어 지는 이유가 바로 시간의 압축이다
씬의 정의가 무엇인가? 바로 시간이나 장소가 바뀌어지면 씬이 바뀐다는 것이다
시간이 바뀐다는 것은 중간의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며 씬이야 말로 시간 압축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그리고 한 씬 안에서 시간을 압축하는 수단이 있다 바로 편집이다.
이번에 소개할 내용은 바로 이것에 관해서이다
내가 첨부한 동영상을 보면 처음에 하나와 앨리스가 앞뒤로 열심히 걷고 있다
그리고 컷이 바뀌고 전철역이 나오고 화면멀리서 화면안으로 하나와 앨리스가 뛰어들어온다

<화면안으로 뛰어들어오는 하나와 앨리스>


어째서 그녀들은 굳이 화면밖에서 안으로 뛰어들어오는가 (프레임 인 하는가?)
결론을 이야기하면 시간의 압축이다
처음에 하나와 앨리스가 걷고 있는 곳은 길거리이다 그장면에서 그녀들은 어떤 문이나 건물을 만나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장면에서 바로 기차역안에 들어와 있다면? 그것은 관객을 놀라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들은 길거리에 있다가 컷이 바뀌고 2~3초후에 화면안으로 들어옴으로써 그 중간의 시간을 뛰어넘는다

같은 방식으로 또 그녀들은 화면밖으로 사라진다 (프레임 아웃한다)
그리고 컷이 되고 그녀들은 또 밑에서 부터 위로 화면안으로 들어온다 육교를 올라온 것이다

<화면 안으로 밑에서 뛰어들어오는 하나와 앨리스>


여기서도 똑같은 시간 압축이 행해진다 실제로 육교를 올라오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아무리  빠르고 체력이 좋은 여고생이라도 10초는 걸리지 않을까?
10초동안 육교를 오르는 모습을 보여줄수는 없다 그래서 이렇게 편집된다
문안으로 들어와서 왼쪽으로 뛰어사라진 컷직후 그녀들은 육교를 오르고 있다
그리고 컷이 된후 화면밑에서부터 등장하기 전까지 그녀들은 육교를 오르고 있었다
단순한 표현이지만 이런식으로 모든 영화는 시간을 압축한다

다시한번 그녀들은 육교를 오른후 화면 오른쪽으로 빠져나간다
이번에는 그 직후 전철의 역이름이 표시된 판이 보여진다 (사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어떤 텍스트적 의미도 없다고 볼수 있다)

<그녀들이 육교위를 뛰어가고 역의 간판이 보여진다>


<그리고 나온 컷에서 그녀들은 화면안으로 들어오지도 더이상 뛰고 있지 않다
멈추어 서있다>

생각해보자 만약 그녀들이 육교를 뛰어올라와 오른쪽 화면밖으로 뛰어 사라진후 컷이 되고 역이름이 나오지 않고 바로 육교를 내려와 멈춰서 있는 모습이 나온다면?
사실 그녀들은 화면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시간압축이라고 볼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을 그렇게 편집할수도 있다
하지만 계속 뛰다가 갑자기 멈춰서있는 그 쌩뚱맞은 느낌은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감독은 그 사이에 그녀들이 이미 육교를 내려와서 입김을 불며 장난을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전철역의 이름이 표시된 설정샷을 집어 넣는다

사실 방금 설명한 마지막 컷은 시간의 압축을 위해서라면 굳이 집어 넣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시간을 압축한다고 그냥 마구마구 해버린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의 장르적 씬별 느낌에 맞게 압축해야 한다
이와이 슌지는 달리로 촬영한 전철역 이름 설정샷 하나를 넣음으로써 그녀들이 육교를 뛰어내려와 숨을 고르고 입김을 불며 장난을 칠수 있는 시간을 리드미컬한 시처럼 압축했다

바로 이것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연출할때 신경써야할 부분이다
영화의 시간적 압축은 영화의 리듬을 만든다
리드미컬하지 않은 영화는 딱딱하고 머리아픈 책을 읽는것 만큼이나 재미 없다



<씨네마틱에 기사화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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