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정보의 통제를 통해서 국민들을 통제하고 있다면 자본주의 사회는 다른 커다란 정보를 이슈화 시켜서 국민들을 통제화한다
라는 이야기를 전에 어디선가 들은것 같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서 정보는 바로 우리의 삶을 만든다
옆집 아들내미가 1등을 했기에 나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하며 tv에서 아이돌 가수가 양산되던 90년대말 청소년들의 꿈 1위는 바로 '백댄서'였다
그리고 쉬리를 필두로한 한국영화의 성공은 수많은 청년들에게 영화학도의 꿈을 키우게 했다
어떠한 정보가 우리게게 전달되면 그것은 인간의 삶을 형성한다

이쯤에서 내가 첨부한 동영상을 봐주길 바란다 1분도 안되는 것이니까 꼭 보세요

<피아노 연주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간수를 피떡이 되게 패버리고 있는 제니를 두고 혼자서 빠져나온 크뤼거 할머니
그녀가 걷는 복도의 샷에서 조심스럽게 피아노 연주곡이 시작된다
그리고 간수가 폭행당하는 것을 알게된 다른 간수가 황급히 제니에게로 뛰어가는 모습을 크뤼거 할머니는 되돌아 본다
하지만 사실은 이것은 중의적인 의미이다

<갑자기 멈춰선 크뤼거 할머니의 시선을 따라가면 미친듯이 연주하는 제니가있다>

크뤼거 할머니가 쳐다본것은 표면적으로 뛰어가는 간수였지만 사실은 관객만 들을 수 있는줄 알았던 피아노 연주 소리였다
이럴수가 다시한번 외재적 내재음이 사용된다
2009/02/15 - [영상문법] - 영상문법 - 페이드 아웃, 외재적 내재음 <이터널 선샤인>
2009/02/21 - [영상문법] - 영상문법 - 사운드 복선 <포 미니츠, Vier Minuten>

나는 이번편의 설명을 외재적 내재음으로 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번은 그런 기술적인 효과보다 이야기 흐름상의 효과가 더 컸기 때문이다
내재음과 외재음은 관객 모두 들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차이는 영화의 캐릭터가 들을수 있는냐는 것으로 구분이 된다

첨부한 동영상의 8초 부근에서 피아노 연주가 조그맣게 시작된다
그리고 이 영화를 처음보는 관객은 그것을 외재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크뤼거 할머니의 시선을 따라서 간수들이 잠긴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가면 사실은 제니가 건반에 피를 묻히며 연주한 곡인 것을 알 수있다

무슨 이야기냐?
결국 이순간 관객은 크뤼거 할머니와 동일한 시점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ost인줄 알았던 피아노 연주는 관객만이 들을 수 있어야 하며 크뤼거 할머니는 들을 수 없어야 한다 그리고 감독은 마치 그런것 처럼 피아노 연주가 시작됐는데도 크뤼거 할머니의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연주의 볼륨이 영화의 모든 것을 장악할 즈음에 그녀는 멈춰서고 그녀의 시점을 따라간다

이것은 의도적인 정보의 통제이다
분명 관객에게 이 피아노 연주가 제니가 하는 것임을 미리 알려줄 수 있다
하지만 카메라는 방을 빠져나온 크뤼거 할머니를 따라가고 그녀가 귀에 들리는 이 음악이 제니의 피아노 연주라는 것을 알아채고 나서야 관객에게 알려준다
정보의 전달을 늦춤으로써 순간적으로 관객과 크뤼거 할머니를 동일화 시킨다

이 연출의 의도는 명확하다
크뤼거 할머니가 받은 소름끼치는 충격을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다친손으로 연주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cd에서 흘러 나오는 것 같은 이 연주곡을 관객에게 일부러 ost처럼 느끼게 해놓고 나중에서야 진실을 알려주어 제니의 피아노 실력을 각인시켜주기 위한 연출이다

<OST라는 느낌을 주기 위한 고속촬영>

감독은 아마도 눈치빠른 관객이 이게 제니가 연주하는거 아니야?라고 알아채는 것을 두려워 했는 모양이다
크뤼거 할머니를 지나쳐서 뛰어가는 간수들의 모습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현장음은 전혀 없다 오직 제니의 피아노 연주만이 점점 크게 들려온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은 본능적으로 이 연주를 OST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명백한 영화적 허용이다
슬로우 모션이 보여진다면 영화의 공간에서 울려퍼지고 있는 제니의 피아노 연주 역시 슬로우로 재생되어야 한다
하긴 이것은 제니의 연주가 간수들의 움직임을 슬로우로 보여줘야 할만큼 빨랐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장면의 연출에 대한 조금 다른이야기를 해보자

<2번의 점프컷이 사용된다>

다시한번 첨부한 영상 50초와 55초 부근을 자세히 살펴보자
크뤼거의 시선을 따라 쾌속질주하며 촬영된 장면에 2번에 점프컷이 존재한다
한번은 문을 열고 들어가서 좌회전 할때이며 (50초부근) 그리고 한번은 제니를 제압하는 경찰의 뒷모습에서 제니를 쓰러뜨릴 때이다

이 점프컷은 관객에게 눈치 채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감을 가지고 순식간에 일어나므로 제니를 제압하는 장면에서의 스펙타클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고전적 헐리우드 스타일에서 정석화 되었던 연속 편집의 체계에서 최근의 영화들은 감정의 떨림, 불안감, 과격함, 영화의 리듬등을 위해서 점프컷을 문법화 시켜서 사용하고 있다

나는 프리즌 브레이크라는 미드를 보고 드디어 점프컷이 완전히 상용화 되었구나라고 느꼈으니 이제는 완전한 영화 문법이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중 고등학교 시절 문학시간에 '복선'이란걸 배우면서 생각했다
대체 이런 쓸데 없는 짓을 왜 하는걸까? (짓 = 복선)
이런 쓸데 없는 행위들이 수많은 영화에도 사용되고 있다
왜?
영화가 예술이냐 산업이냐를 떠나서 지적 유희이기 때문이다

2009/02/15 - [영상문법] - 영상문법 - 페이드 아웃, 외재적 내재음 <이터널 선샤인>
에서 이야기했던 외재적 내재음이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포 미니츠에서도 사용된다

<영화의 포스터와는 안어울리게 매우 다이나믹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이번에 소개할 장면은 이전에 포스팅에서 소개했던 첫번째 시퀀스가 끝나고 오프닝 크레딧이 지난직후의 것이다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보여지는 포스터와는 전혀 다르게도 갑자기 다이나믹한 록 음악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화면은 트럭뒤에 실려진 피아노를 따라서 트럭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흘러간다

<아... 이것 역시 외재적 내재음이었다 아니.. 내재적 외재음인건가? 용어야 어쨌든>

트럭에는 뭔가 클래식한 할머니와 뭔가 펑키한 청년 두명이 타고 있다
시끄러운 음악에 잠이 깬 할머니는 동영상의 42초경에 트럭의 앞쪽으로 몸을 기울여 피아노 연주곡으로 BGM을 바꿔 버린다
오 마이 가드!
이번에도 속았다
똑같이 OST인줄 알았던 음악을 카오디오로 사용하다니 유행이냐?

이터널 선샤인 때도 이야기했던 것이지만 이것은 일종의 사기 행위다
음악은 분명 교도소의 전경씬으로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트럭이 달리는 현장음과 함께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카오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이었고 할머니의 교양있는 손으로 힘없이 틀어쥐기만해도 피아노연주로 바뀔 수 있는 것이었다니

이터널 선샤인때 말했던 외재적 내재음이다
다시한번 설명하면 외재음은 OST등의 관객이 들을 수 있지만 영화 안에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영화속의 캐릭터들은 들을 수 없다
내재음이란 말그대로 영화속에 존재하여 누구나 다 들을 수 있는 소리다
분명 처음에 들판을 달릴때의 시끄러운 음악은 외재음이었다
이것이 내재음이라면 트럭을 촬영하는 위치에 따라서 볼륨이 달라야만 타당하다
하지만 이 음악은 트럭의 수염기른 젊은이가 틀어놓은 것이었고 이것은 할머님의 잠을 방해했다
그리고 42초경에 할머니는 견디지 못하고 OST인줄 알았던 이것을 피아노연주곡으로 바꿔 놓음으로써 한순간에 이것을 내재음으로 만든다

의미를 살펴보자
이터널 선샤인 포스팅에서의 의미와 비교하는 것이 좋겠다
이터널 선샤인은 관객을 속이는데 목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관객을 속이는 이유는 바로 영화의 철학과 밀접한 관련이있었다
당신이 보고 듣고 믿고 있는 것이 진실이 아닐수도 있다는 그 철학은 내재음을 외재음이라 속이고 마지막 씬을 첫씬이라 속이고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서로를 증오한다고 생각하며 매리는 아직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는 오해의 연속으로 펼쳐진다
이해가 안간다면 이터널 선샤인 편을 확인해주세요

하지만 포 미니츠에서의 의미는 다르다
여기서는 관객을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바로 '전환'에 큰 의미가 있다
이터널 선샤인을 잘 기억해보면 조엘이 카세트를 끄고 OST인줄 알았던 음악은 딱 끝나버린다 이렇게 명백하게 음악을 끊어버린 행위는 '관객 너네 속고 있었어'라고 명백히 말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새로운 OST는 그냥 은근슬쩍 흘러나와버린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크뤼거 할머니가 피아노 연주곡으로 바꾼다
속이는 행위를 위해서라면 좀 이상한 상반된 음악의 급작스런 전환에 뭔가 큰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은가?

이 포스팅의 제목처럼 이것은 '복선'이다
교도소에서의 제니의 험악했던 삶이 앞에서의 록 음악이라면 크뤼거 할머니가 손수 바꿔주는 피아노 연주가 바로 곧 바뀌게 될 제니의 삶이다
그것을 굳이 크뤼거 할머니의 손으로 바꿨다는 것이 그녀의 손에 의해 제니의 삶이 바뀔 것이라는 상징의 명백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피아노 연주는 트럭을 타고 교도소로 들어간후 한참을 울리다가 트럭을 운전하던 간수의 손에 의하여 꺼진다
그녀의 삶이 간수에 의해 좌우된다는 상징인지 방해 받는다는 상징인지 결국 감옥으로 돌아온다는 상징인지 아무튼 크뤼거의 손에서 켜지고 간수에 의해서 꺼졌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는 의미심장하다

크뤼거 할머니는 제니에게 말했지
흑인처럼 음악하지 말라고
하지만 크뤼거 할머니와는 다르게 천재였던 제니는 결국 마지막에 흑인클래식을 퓨전해 버리지 이것이야 말로 이영화의 진정한 카타르시스

그나저나 이 영화의 포스터는 좀 의아하다...
포스터에 비하면 영화가 훨씬 재밌기 때문에 누가 그딴 포스터를 만들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편의 영상 부분은 사실 2009/02/13 - [영상문법] - 영상문법 - 액자식 플롯구성 <이터널 선샤인> 하고 굉장히 겹친다 하지만 다루려는 내용은 전혀 다른 것이다
먼저 위에 링크된 플롯구성에서 이야기 했듯이 이 동영상 클립의 처음장면은 C의 마지막 장면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는 B의 이야기이며 앞장면보다 과거이다 그 사이를 어떻게 연결하는지 살펴보자

<페이드 아웃>

첨부한 영상을 재생하자마자 나오는 페이드 아웃
간단하게 설명하면 '컷'이 아닌 페이드 아웃으로 C의 뒷부분 이야기를 압축해 버린다
그리고 B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페이드 아웃의 보편적인 기능을 생각해보자
보통 한씬이 끝나고 다음씬을 이을때 쓰는 페이드 아웃의 기능을 생각해볼때 이러한 연결은 C가 끝나고 시간이 흘러 B가 진행된다는 느낌을 더욱 강하게 전달한다
하지만 이번 페이드 아웃의 실제 역할은 C의 이야기의 뒷부분을 보여주지 않고 압축해 버리는데 있다
그래서 이영화의 제일 처음 페이드아웃과 제일 마지막 화이트 아웃을 제외한 유일하게 컷이 아닌 연결이 바로 이 장면에서 펼쳐진다

이번엔 사운드 이야기를 간단하게 해보자
영화에서 사운드는 기능에 따라 2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관객만이 들을 수 있는 외재음(OST같은 것이 그것이다)
영화속 등장인물이 들을 수 있는 내재음(대사, 현장음 등)

첨부한 동영상은 45초부터 음악이 바뀐다
어떻게 바뀌는가?

타이틀 시퀀스가 진행되는 7초부근부터 하나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것은 현장음이 전혀 없이 나오는 음악이므로 당연히 관객들에게는 OST 즉 외재음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20초 부근부터는 현장음도 함께 나오기 시작한다
즉, 외재음과 내재음이 함께 나오는 상태가 된다


<오프닝 시퀀스가 나오면서 나오는 음악은 외재음인척 하지만 내재음이다>

하지만 42초 부근에 조엘은 카오디오의 정지 버튼을 누른다
음악은 멈추고 카세트 테잎이 튀어나온다
OST인척 했던 이음악은 사실은 조엘이 듣고 있던 내재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처음부터 내재음이었냐 하는것은 아니다

<처음에 이음악이 나올때는 차 밖이었다>

분명히 이 음악이 처음 나올때는 현장음이 없고 차밖의 조엘의 얼굴이 나온다
즉, 이때에는 내재음이라고 볼수 없다
내재음이라는 것은 영화속에서 실제로 존재한다는 뜻이며 그렇다면 조엘의 차안에서 흘러나와야 한다
조엘의 차밖에서 찍은 이 샷에서 현장음도 들리지 않는데 이 음악만이 이렇게 선명하게 들릴수 없다 이때에는 아직 외재음이었다

<현장음과 음악이 함께 들려온다>

그렇다면 20초 부근부터 이 음악은 내재음인가? 그렇지 않다
20초 부근부터 나오는 이 샷을 자세히 보면 현장음이 들려오기 시작하지만 촬영자체는 자동차 안에서 된것이 아니다
즉, 이것은 아직 자동차 밖의 상황이라고 봐야 옳으며 그렇다면 이 음악은 아직도 외재음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 음악이 점점 자동차 안으로 들어와 카세트와 함께 꺼져버리는 순간 내재음이 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카메라는 드디어 자동차 안으로 들어온다>

35초 부근에 카메라는 드디어 자동차 안으로 들어오고 현장음은 계속해서 들려온다
음악은 이때 외재음이라고 표방한 외재적 내재음으로 변하고 결국 조엘의 동작과 함께 음악은 멈춘다
그리고 45초 부터는 새로운(?) OST(외재음)가 흘러나온다

어째서 이런 표현을 하는가?
이것은 관객이 인식한 것을 속인 것이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때로는 관객에게 단순한 재미를 줄수 있고 영화를 풍부하게 만드는 요건이 될수도 있다
하지만 이 슬픈 장면에서 몰입을 방해할수도 있는 이런 장면의 의도는 무엇인가?
이것은 영화 전체를 꿰뚫는 철학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는 다를수도 있다
실제로 이터널 선샤인의 첫번째 씬은 첫번째 씬이 아니다
그리고 그후에 이어지는 듯한 이야기도 이어지는 것이 아닌 과거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ost라고 생각했던 음악은 조엘이 듣는 카세트였다
나중에 조엘은 말한다 '나는 그녀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전혀 몰랐다고'
그리고 클레멘타인과 조엘은 서로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서로가 없을때 그들은 정말로 불행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엘은 그 카세트 테잎을 길에다 버린다>

그리고 조엘은 카세트 테잎을 차 밖으로 던져 버린다
하지만 이것은 스토리상 조엘의 화풀이일뿐 위에 나오는 샷처럼 버려진 카세트가 보여지고 자동차가 프레임 멀리로 사라지는 화면은 불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위의 샷은 어떤 의미인가?
이것은 상징과 복선이다
클레멘타인이 자신의 기억을 지웠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기억을 지워달라고 의뢰하고 돌아오는 길인 이 장면에서 실제로 버려진 카세트 테잎은 음악이 아니라 조엘이 그녀에 대해서 말하는 모든것을 녹음한 바로 그 테잎이었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펼쳐지는 영화에서 이 카세트 테잎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많은 역할을 할지 이야기하는 복선이다 

또, 길바닥에 버려진 이 카세트는 지워버리겠다고 말하는 그들의 기억에 대한 상징이다 이것은 기억을 지우기 위해 지워질 기억들을 녹음한 모든 내용이며 이미 버려졌다는 이야기이다
클레멘타인이 버린 조엘의 기억과 조엘이 버리게 될 그녀의 기억들에 대한 메타포이며 이 영화에서는 이렇게 기억을 길바닥에 버릴 수 있다는  또다른 표현인 것이다

조엘이 버린것은 OST인척 했던 음악이지만 그것을 촬영한 샷은 그가 클레멘타인에 대한 기억을 버리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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