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면서 가장 감명을 받은 영화지만 2시간 40분이나 되는 러닝타임은 포스팅을 위해 다시보기에는 꺼려지는 측면이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정말 열심히 볼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였다 릴리슈슈의 팬까페 '릴리피리아'의 운영자 피리아와 아오네코는 누구인가?

영화를 처음봤을때 3시간 가까이 되는 러닝타임과 쉴새없이 쳐대는 투고자들의 채팅은 나를 너무나 정신 없게 만들었다 나는 겨우 스토리의 큰 줄기만을 놓치지 않기위해 힘써야했다 하지만 다시보고 알았다 아오네코는 바로 이영화의 악역 '호시노'였다
하지만 피리아는 누구인가?

<아오네코의 파란사과를 호시노가 들고온다>


물론 이 장면에서는 주인공인 유이치가 들고 있지만 이것은 호시노가 누군가가 말을 걸면 주라고 전해준 것이다
그렇다 많은 아픔을 가지고 있다고 팬까페에서 피리아와 소통하던 자는 바로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안겨주던 '호시노'였다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보면 피리아는 마치 유이치처럼 설정된다
유이치가 컴퓨터를 하면서 피리아의 투고글이 올라오고 어머니의 임신 장면과 출산에 대한 피리아의 글이 겹쳐진다
하지만 정말 피리아는 유이치인가?

나는 조금 다른 해석을 해보려고 한다

일단 릴리슈슈의 콘서트 장면에서 유이치가 호시노를 발견하는 장면을 보자

<사과를 들고있는 호시노를 발견하는 유이치>

분명 유이치는 호시노의 얼굴을 보기전에 파란 사과를 먼저 본다
만약 유이치가 피리아라면 어땠을까? 분명 사과를 보고 다가가지 않았을까?
하지만 멍하니 사과를 보고있던 유이치는 호시노의 얼굴을 보고는 깜짝 놀란다

물론 이장면은 두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유이치가 피리아인 경우 파란사과를 봤지만 자신이 만나자고 한 것은 아니므로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않았을 수 있다 더구나 유이치의 소극적인 성격상 그랬을 가능성도 높다 그렇다면 그 직후 호시노의 얼굴을 봤을때 아오네코가 그였다는 생각에 깜짝 놀란 것이다

피리아가 아닌경우는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단순히 만나기 싫은 호시노의  얼굴을 보 고 놀란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경우라고 해석한다 그 이유는 바로 이후의 장면  때문이다

<이 여자는 누구인가?>

유이치가 들고 있는 사과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이 소녀는 누구인가?
만약 유이치가 피리아라면 이 소녀가 파란 사과를 이렇게 눈여겨볼 이유가 없다(아오네코의 투고글을 다른 누군가가 본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그렇다면 유이치는 왜 호시노가 사과를 자신에게 맡겼는지 의아해 해야하지 않을까? 하지만 사과에 적힌 아오네코의 메일주소를 살펴볼 뿐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유이치가 이 사과의 의미를 모른다고 해석된다
그리고 옆에서 사과를 유심히 쳐다보는 저 소녀가 바로 '피리아'인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는 왜 처음부터 마치 피리아가 유이치인 것처럼 보여주다가 마지막에 알듯 모를듯한 진실을 이렇게 전해주는가?
그것은 바로 릴리슈슈의 에테르에 의해 치유받는 고통받은 자들의 일반화를 위해서이다 피리아가 중간에 죽고 싶다고 투고하는 내용은 그 당시 유이치의 심리적 고통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그것이 유이치가 아니라면? 릴리슈슈를 듣고 고통을 치료하는 유이치,호시노,츠다,쿠노처럼 또다른 수많은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결국 이와이슌지는 유이치라고 생각했던 피리아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설정하면서 똑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는 것이 유이치 많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이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의 주제이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이 모두 고통받고 있다는 것 호시노,유이치,쿠노,츠다 모두

<쿠노의 사건으로 우는 츠다와 자살하는 시늉을 내는 유이치의 그림자>
 
강간당한 쿠노가 머리를 밀고 오자 자신은 왜 그렇게 하지 못했는지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츠다 그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피리아의 투고, 목을 조르는 그림자
고통 받는 10대의 이야기를 혼란스럽게 보여준다 피리아는 유이치도 아니고 아무도 아니다 아니... 모든 고통 받는 10대의 자화상이다
위의 세번째 그림의 그림자가 그것을 말해준다 나는 유이치의 그림자라고 생각했지만 누구인지 알수 없다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저것은 누구도 아니다 죽고싶어하는 10대 모두를 상징한다

<곰을 들고 나타난 쿠마의 정체는 바로 아저씨였다>

그리고 이와이 슌지 감독은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 10대만이 아닌것을 표현하기 위해 '쿠마'라는 투고자를 이용한다
릴리슈슈의 팬까페에 콘서트때 곰인형을 안고 가겠다고 글을 올리는 '쿠마'가 바로 저 뒤에 있다

나는 이와이 슌지가 반드시 이 '쿠마'라는 사람을 보여줄 것이라 생각하고 어디에 나오나 눈을 씻고 찾고 있었다 역시나 하지만 하필 아저씨라는 것??
이것 역시 '주제의 일반화'를 위한 설정이다 
고통받고 릴리슈슈의 음악으로 치유받는 팬이 오직 10대만이 아닌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것으로도 부족한지 나중에 콘서트장 밖의 LED에서 나오는 뮤직비디오를 보고 울면서 노래를 따라부르는 아줌마도 나온다 

분명히 피리아는 유이치처럼 설정된다 하지만 아오네코처럼 확실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이와이 슌지 감독이 의도적으로 열어 놓았다고 생각된다
피리아의 실체가 누구인지 그는 말하지 않은 것이다
유이치 일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일 수도 있는 것이다




먼저 연속 편집의 개념을 짚고 넘어가자
2008/12/19 - [영상문법] - 영상 문법 - 편집 : 시간의 압축,확장 <하나와 앨리스>
링크된 내 포스트를 보면 연속 편집의 개념에 대해서 잘 적혀 있다
하지만 이번에 소개할 '릴리슈슈의 모든 것'이라는 영화의 이 장면에는 (물론 전체적으로 이장면뿐만은 아니다) 연속편집의 개념이 너무나도 쉽게 무너지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이 포스트의 제목을 연속편집의 파괴라고 붙이고 싶었으나 그것은 나중에 꼭 한번 이야기 해보고 싶은 점프컷의 사용을 위해 아껴두고 싶다

아무튼 위의 동영상 클립을 보자

<연속편집의 개념을 무너뜨린 연속된 컷>

기본적인 문법을 무시한 이 컷팅을 보자
첫번째 스샷에 보면 맨앞에 걷고 있는 녀석이 바로 아래에 나오는 밀리터리 티를 입은 놈이다 분명 앞의 컷에서 밀리터리 티셔츠녀석은 걷고 있었다
그렇다면 기본적인 문법에서는 다음컷에 밀리터리 녀석이 프레임인 해야만 시간적으로 맞다고 할수 있다
하지만 이런 낡은 문법에 이와이 슌지는 얽매이지 않는다
그것이 뭐가 중요한가
그러한 낡은 방식을 일일이 지켜나가다가는 영화의 리듬도 느낌도 잃는다고 판단한것 같다
위의 스샷의 경우 분명히 맨 앞에서 걷고 있던 녀석이 다음컷에서는 프레임의 한복판에 서있고 '이상한 취미'라는 말을 내뱉는다
이것은 분명 명백한 연속편집의 위반이지만 그런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와이 슌지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그들이 걷다가 주인공을 보내고 그 뒤에서 그가 그림을 가지고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상한 취미 라고 말하는 장면 뿐이었다
그들이 굳이 걸어가다가 인사를 하고 주인공 혼자 자전거를 타고 지나치고 밀리터리 티셔츠를 입은 소년이 그뒤를 바라보며 '이상한 취미'라고 말하는 것을 모두 보여줄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도 보여주고 싶은것만 짧게 보여주는 이와이 슌지가 다음에는 너무나도 관대한 롱테이크를 보여준다

<주인공이 릴리슈슈의 포스터 그림을 보는 이장면은 1분동안이나 지속된다>

첨부된 동영상 17초에서 1분 15초까지 58초나 보여지는 이 롱테이크는 앞에서 아낀 샷들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이다
앞에서 굳이 걷다가 멈추는 장면도 아껴서 바로 멈춰있게 연속편집을 파괴한 감독이 어째서 이런 재미도 없는 샷에 58초나 할애한 것일까
단순하게 말하자면 감독은 이장면을 더 많이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장면이 영화에서 큰 의미를 가지는 장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영화내내 주인공은 릴리슈슈의 음악을 듣고 좋아하지만 그가 얼마나 릴리슈슈를 좋아하는지는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의 극초반인 이장면에서 58초동안이나 멍하니 그림을 바라보는 이장면을 삽입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주인공이 릴리슈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무의식중에 알려주는 컷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와이 슌지는 앞에서 컷을 아끼고 보여주고 싶은 것들만을 보여주면서도 정작 자신이 보여주고 싶어하는 장면은 그것이 설사 재미없더라도 아끼지 않았다

 릴리슈슈의 모든것과 마찬가지로 이와이 슌지의 영화가 훌륭한것은 바로 이런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는 영화에서 보여주고 싶은것과 보여줄 필요가 없는것을 구분하여 마치 시처럼 음악처럼 흘러가며 보여준다
때문에 관객들은 그가 보여준 것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보여지지 않은 압축된 부분들을 상상하며 영화를 더욱 재미있고 깊게 받아들일수 있는 것이다

이영화가 3시간이나 되는 영화지만 아무런 무빙도 없이 58초간 보여주는 컷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보자


릴리슈슈의 모든것에 나오는 이 장면은 처음부터 끝까지 수평이 파괴되어 있다

한국에서 영화를 배울때 우리는 수평을 맞추는 법부터 배운다 기본적으로 수평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계속해서 수평을 맞추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을 이와이 슌지는 보여준다
하지만 아주 많이 틀어서 눈에 띄게하는것이 아니라 미묘하게... 관객이 알아차리지는 못하지만 느낌으로만 전달할 수 있게 한다

<레코드점에서 CD를 훔치는 장면 수평이 틀어져 있다>

위의 스샷을 보자
카메라에서 제일 먼 벽 부근을 보면 프레임의 윗 라인과 그 밑에 진열된 선반이 수평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이 화면은 수평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 화면은 오른쪽 위로 틀어져서 왼쪽과 오른쪽의 높이가 다르다

영화의 초반에 등장하는 이 장면은 주인공이 친구들과 CD를 훔치는 장면이다
이장면이 전체에 작용하는 의미를 제쳐 두고 말하자면 결국 탈선 장면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와이 슌지는 이 장면을 계속해서 틀어진 수평으로 보여준다

<주인공이 CD를 훔쳐서 나가고 점원이 그뒤를 따라 나가자 수평은 맞게 된다>

솔직히 이야기 해서 첨부한 동영상 18초 부근에 나오는 이 장면이 의도한 것인지는 확신 할 수 없다
하지만 의도했다는 가정하에 이야기를 해보자
주인공들이 CD를 훔쳐 달아나고 그것을 발견한 점원은 소리를 치며 그들을 뒤따라 나간다
점원이 문밖으로 뛰어나가고 있는 첫번째 스샷을 보면 분명 수평이 틀어져 있다
하지만 점원이 나가고 나서 가게안이 계속 비춰지지만 카메라가 미세하게 움직여 두번째 스샷처럼 수평을 맞춘다
이것이 만약 의도한 장면이라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그들의 범죄 현장만을 수평을 틀고 그들이 사라진 가게는 더이상 그렇게 촬영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와이 슌지는 단지 그들의 탈선행위만을 틀어진 수평으로 잡고 싶었을 뿐이다

<그들이 CD를 파는 장면의 마지막까지 수평은 틀어진다>

윗 스샷을 보면 수평이 상당히 틀어져 있다
이런 평평한 바닥에서 대체 누가 이렇게 촬영을 하겠는가
하지만 놀랍게도 관객들은 이러한 수평의 틀어짐은 눈치를 잘 채지 못한다
그저 이 장면이 조금더 스펙타클하다고 느낄 뿐이다
밑의 주인공의 클로즈업 역시 뒤의 가게 라인을 보면 수평이 틀어진 것을 알 수 있다
계속해서 반복해 말하지만 이렇게 틀어진 촬영은 100퍼센트 의도라는 것이다

<그들이 가게를 나와서 도망가는 장면에도 경고음은 계속해서 들린다>

수평이야기는 그만하고 CD를 훔쳐 달아나는 20초 부근의 이 장면을 다시 보자
가게에서는 그들의 탈선에 걸맞는 비트가 강한 음악이 흐르고 있고 주인공이 CD를 가방에 넣고 문을 통과하는 순간 도난방지경고음이 울린다
재미있는 것은 컷이 바뀌어 장소가 도로가 된 위의 스샷부분이다
당연하지만 가게의 음악은 들리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도난 방지 경고음은 계속해서 울린다 그리고 그들이 씨디를 팔러 가는 장소 전까지 계속해서 멈추지 않는다

어째서 이소리는 멈추지 않는가
이소리는 분명 OST와 같은 외재음(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듣지 못하고 오직 관객만 듣는 소리)가 아닌 내재음이다
그렇다면 장소가 바뀌었을때 가게의 음악과 같이 사라져야 하는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전에 하나와 앨리스의 사운드 셔레이드와 마찬가지로 이와이 슌지는 이 경고음을 이용한다 2008/12/31 - [영상문법] - 영상문법 - 셔레이드 <하나와 앨리스>
주인공들이 도망가는 이 장면을 계속해서 급박하게 만들기 위해서 이 경고음을 없애지 않는다
그리고 이 없어지지 않은 내재음은 관객들로 하여금 이들이 잡힐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계속해서 만들어준다


<이글은 씨네마틱에 기사화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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