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고등학교 시절 문학시간에 '복선'이란걸 배우면서 생각했다
대체 이런 쓸데 없는 짓을 왜 하는걸까? (짓 = 복선)
이런 쓸데 없는 행위들이 수많은 영화에도 사용되고 있다
왜?
영화가 예술이냐 산업이냐를 떠나서 지적 유희이기 때문이다

2009/02/15 - [영상문법] - 영상문법 - 페이드 아웃, 외재적 내재음 <이터널 선샤인>
에서 이야기했던 외재적 내재음이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포 미니츠에서도 사용된다

<영화의 포스터와는 안어울리게 매우 다이나믹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이번에 소개할 장면은 이전에 포스팅에서 소개했던 첫번째 시퀀스가 끝나고 오프닝 크레딧이 지난직후의 것이다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보여지는 포스터와는 전혀 다르게도 갑자기 다이나믹한 록 음악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화면은 트럭뒤에 실려진 피아노를 따라서 트럭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흘러간다

<아... 이것 역시 외재적 내재음이었다 아니.. 내재적 외재음인건가? 용어야 어쨌든>

트럭에는 뭔가 클래식한 할머니와 뭔가 펑키한 청년 두명이 타고 있다
시끄러운 음악에 잠이 깬 할머니는 동영상의 42초경에 트럭의 앞쪽으로 몸을 기울여 피아노 연주곡으로 BGM을 바꿔 버린다
오 마이 가드!
이번에도 속았다
똑같이 OST인줄 알았던 음악을 카오디오로 사용하다니 유행이냐?

이터널 선샤인 때도 이야기했던 것이지만 이것은 일종의 사기 행위다
음악은 분명 교도소의 전경씬으로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트럭이 달리는 현장음과 함께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카오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이었고 할머니의 교양있는 손으로 힘없이 틀어쥐기만해도 피아노연주로 바뀔 수 있는 것이었다니

이터널 선샤인때 말했던 외재적 내재음이다
다시한번 설명하면 외재음은 OST등의 관객이 들을 수 있지만 영화 안에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영화속의 캐릭터들은 들을 수 없다
내재음이란 말그대로 영화속에 존재하여 누구나 다 들을 수 있는 소리다
분명 처음에 들판을 달릴때의 시끄러운 음악은 외재음이었다
이것이 내재음이라면 트럭을 촬영하는 위치에 따라서 볼륨이 달라야만 타당하다
하지만 이 음악은 트럭의 수염기른 젊은이가 틀어놓은 것이었고 이것은 할머님의 잠을 방해했다
그리고 42초경에 할머니는 견디지 못하고 OST인줄 알았던 이것을 피아노연주곡으로 바꿔 놓음으로써 한순간에 이것을 내재음으로 만든다

의미를 살펴보자
이터널 선샤인 포스팅에서의 의미와 비교하는 것이 좋겠다
이터널 선샤인은 관객을 속이는데 목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관객을 속이는 이유는 바로 영화의 철학과 밀접한 관련이있었다
당신이 보고 듣고 믿고 있는 것이 진실이 아닐수도 있다는 그 철학은 내재음을 외재음이라 속이고 마지막 씬을 첫씬이라 속이고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서로를 증오한다고 생각하며 매리는 아직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는 오해의 연속으로 펼쳐진다
이해가 안간다면 이터널 선샤인 편을 확인해주세요

하지만 포 미니츠에서의 의미는 다르다
여기서는 관객을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바로 '전환'에 큰 의미가 있다
이터널 선샤인을 잘 기억해보면 조엘이 카세트를 끄고 OST인줄 알았던 음악은 딱 끝나버린다 이렇게 명백하게 음악을 끊어버린 행위는 '관객 너네 속고 있었어'라고 명백히 말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새로운 OST는 그냥 은근슬쩍 흘러나와버린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크뤼거 할머니가 피아노 연주곡으로 바꾼다
속이는 행위를 위해서라면 좀 이상한 상반된 음악의 급작스런 전환에 뭔가 큰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은가?

이 포스팅의 제목처럼 이것은 '복선'이다
교도소에서의 제니의 험악했던 삶이 앞에서의 록 음악이라면 크뤼거 할머니가 손수 바꿔주는 피아노 연주가 바로 곧 바뀌게 될 제니의 삶이다
그것을 굳이 크뤼거 할머니의 손으로 바꿨다는 것이 그녀의 손에 의해 제니의 삶이 바뀔 것이라는 상징의 명백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피아노 연주는 트럭을 타고 교도소로 들어간후 한참을 울리다가 트럭을 운전하던 간수의 손에 의하여 꺼진다
그녀의 삶이 간수에 의해 좌우된다는 상징인지 방해 받는다는 상징인지 결국 감옥으로 돌아온다는 상징인지 아무튼 크뤼거의 손에서 켜지고 간수에 의해서 꺼졌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는 의미심장하다

크뤼거 할머니는 제니에게 말했지
흑인처럼 음악하지 말라고
하지만 크뤼거 할머니와는 다르게 천재였던 제니는 결국 마지막에 흑인클래식을 퓨전해 버리지 이것이야 말로 이영화의 진정한 카타르시스

그나저나 이 영화의 포스터는 좀 의아하다...
포스터에 비하면 영화가 훨씬 재밌기 때문에 누가 그딴 포스터를 만들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는 사람이 전혀 다른외모로 등장하고 장소는 누구의 마음대로인지 아주 쉽게 변한다 그리고 팔을 파닥거리면 낮지만 하늘을 날 수 있다
꿈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자주 펼쳐진다
꿈은 모든것이 표현될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꿈에서도 자주 나타나는 표현들이 있다

위의 장면은 이미 조엘의 꿈속이다
영화의 기능적으로는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사이를 추적해서 관객에게 보여주는 작용을 하지만 플롯상에서는 조엘이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최근 것부터 지워나가는 과정이다

영화에서는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시간과 장소를 마음대로 조절 할수 있다(제작의 실제적 어려움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때문에 이번편에 등장하는 조엘의 클레멘타인이 자신을 못알아 본다는 이야기는 얼마든지 회상등의 교차편집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미쉘 공드리는 그렇게 평범한 감독이 아니다

<서점을 빠져나오는 조엘뒤로 불이 꺼지고 문을 나서자 친구집 거실이 나온다>

조엘의 이야기의 시작은 분명 교차편집이었다
클레멘타인이 왠 젊은놈과 있었고 나를 못알아 봤다고 이야기하자 카메라는 어느새 서점으로 이동하여 클레멘타인과 조엘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것이 가장 무난한 표현법인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은 달랐다
충격을 받은 조엘이 서점을 나서자 서점의 전등들이 하나둘씩 모두 꺼지고 문을 나서자 바로 친구의 집 거실로 연결된다
이것은 분명 공간의 재구성이다
서점과 친구집의 거실이 문하나로 연결 되있을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교차편집과 이러한 표현양식의 효과의 차이를 생각해보자
교차편집이 조엘의 친구들에게 클레멘타인과의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라면 (물론 관객에게는 실제로 보여주게 되지만) 이것은 친구들에게 마치 실제로 보여준듯한 느낌으로 작용한다
물론 보여줄수는 없다 그건 과거의 일이니까
하지만 이것은 조엘의 꿈이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그것을 보여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서점을 걸어나와서 바로 친구집 거실에 계단에 앉아버린 조엘의 슬픔이 공간의 단절이 없이 그대로 거실로 전해져온다
연속편집을 하더라도 컷은 분명히 상대적인 단절이다
특히 교차 편집은 이곳과 저곳을 거의 동시간대에 보여주지만 사실은 동시가 아니다 교차로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이 한컷으로 미쉘 공드리는 동시에 보여주는데 성공했다

과연 이 한컷을 위해서 세트를 이렇게 만든 것일지 아니면 블루스크린등을 이용한 합성이나 cg를 이용한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한컷을 위해 많은 공을 들인 것은 사실이다

<패트릭의 얼굴을 고의적으로 가린다>

패트릭은 이미 영화의 앞에 나왔다
그것도 조엘에게 도와줄 것이 없냐고 묻는 수상한 남자로
그리고 나서 클레멘타인과의 이런 연인 관계가 드러난다면 관객들이 눈치를 챌것과 그 의미를 찾기위해 혼란에 빠질 것을 배려(?)하여 패트릭의 얼굴을 계속해서 숨긴다
영화의 뒤에도 패트릭의 얼굴은 조엘에게 계속하여 보여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두가지 의미가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관객에게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패트릭은 앞에서 조엘에게 도와줄 것이 없냐고 수상하게 묻는다
그것은 클레멘타인의 집 앞이었으며 관객이 느끼기에 둘은 몬탁에서 우연히 만나 그녀의 집앞으로 온것이다 그리고 이 서점 장면은 관객에게 그 이후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 앞에서 수상하게 나온 남자가 조엘을 잊고 클레멘타인이 새로 사귀는 남자라는 연관성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의미는 바로 조엘의 꿈속이기 때문이다
이 꿈은 조엘의 클레멘타인의 기억이다 때문에 패트릭, 그리고 병원의 몇몇 사람들은 얼굴이 뭉개져서 나오기도 한다
클레멘타인을 지우기 위해 들어간 기억 속에는 이들의 기억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엘은 이 젊은남자를 모르기 때문이다 모르는 남자기 때문에 얼굴도 기억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꿈에서는 의도적으로 얼굴이 계속해서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실제로 나중에 기억을 지워달라고 찾아간 병원(?)에서 서류를 떨어뜨리고 뒤돌아 보는 패트릭의 얼굴은 뭉개져있다
이것은 극히 주관적인 조엘의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은 조엘의 꿈이고 그는 패트릭의 존재는 기억하지만 얼굴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에게는 패트릭의 얼굴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왠 젊은남자라고 말할 정도의 이미지면 충분하다

그리고 관객에게도 동시에 적용되는 것이지만 여기저기서 나오는 그의 얼굴로 인해서 흩어진 스토리의 조각이 맞춰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6미리 비디오가 보급된 대학을 다닌 우리 세대에게 가장 막강한 영향을 미친 감독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미쉘 공드리를 이야기 할 것이다
물론 영화만 본 사람들에게는 낯선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사람이 얼마나 많은 뮤직비디오와 cf계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는지 다들 알 것이다

그런 미쉘 공드리 감독의 최고의 흥행작 바로 이터널 선샤인이다
물론 혼자서 감독한 것이 아니지만 그의 엄청난 유명세 덕에 우리는 이영화를 미쉘공드리감독의 영화라고 흔히 말해버린다

쓸데 없는 이야기는 그만두고 이 영화의 플롯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내가 첨부한 장면은 영화가 시작한지 15분쯤 지나서야 오프닝 크레딧이 나오는 장면이다 액자식 구성을 가지고 있는 이영화는 시작하고 15분동안 영화의 마지막 부분을 보여준다

<수상한 남자가 조엘에게 도와줄 것이 없냐고 묻는다>

영화는 15분동안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첫만남을 보여준다 그리고 수상한 남자가 조엘에게 나타나고 스토리의 흐름이 잠시 끊긴다

사실 영화를 본사람은 알겠지만 이 초반의 시퀀스는 영화의 스토리를 ABC로 나누었을때 제일 마지막에 이야기되는 C다
하지만 이 장면이 제일 처음에 배치되고 이것은 마치 A인냥 행세하게 된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조엘은 자동차에서 미친듯이 울고 있다>

A인냥 행세하는 C가 지나가고 오프닝 타이틀이 나오면서 무슨 이유에선지 조엘은 미친듯이 울고 있다

이 영화는 꽤나 복잡한 플롯 구성을 가지고 있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만나서 사랑을 하다가 클레멘타인이 조엘을 지우기까지가 A
조엘이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는 장면이 B
그리고 조엘이 아무것도 모른채 일어나는 장면부터가 바로 C라고 하자
스토리의 순서상은 A + B + C 이지만 플롯 구성은 그렇게 보여주지 않는다

C를 제일 처음에 보여주고 그 후에 B와 -A(A의 역순)가 교차로 보여진다
이러한 플롯구성에서 얻어지는 효과가 크게 2가지라고 생각된다

C가 처음에 보여지고 조엘이 우는 장면 이후에 B가 보여지면서 사람들은 C에서 알게된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B로 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C는 B보다 나중의 이야기지만 A의 첫만남이 보여지지 않았고 공교롭게도 C는 처음 만나는 장면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연하지만 감독의 의도된 장면이다
기억을 지우고 서로에게 이끌려 다시 만나는 장면을 마치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첫만남처럼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C 장면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부자연스러워 보였던 C장면이 마지막에 다시 나왔을때 관객은 아주 큰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두번째 효과는 바로 -A이다
B에서 기억을 지우는 동안 조엘은 꿈속에서 클레멘타인과의 모든 추억을 다시 회상한다 그리고 그녀는 조엘의 기억에서 하나씩 사라져간다
이것은 설정상 그들이 작업 방식이 제일 가까운 기억부터 거슬러 올라가서 가장 오래된 기억을 마지막에 제거한다는 것이지만 영화적으로 놀라운 효과를 보여준다
조엘이 회상하는 그들의 사랑이야기는 이별의 슬픔부터 다툼으로 거슬러 올라가 서로 깊이 사랑하던 시절로 돌아간다
결국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어쩔수 없이 그들의 사랑의 시작으로 이끌려 간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는 사실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 -A의 끝에는 보여줄 필요가 없는 이 야기 이므로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플롯에서는 제일 처음에 보여주었던 C를 다시 보여주게 된다 
그들의 힘들었던 사랑을 다시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 도착한 곳이 바로 지워진 기억으로 다시 만나는 조엘과 클레멘타인이다

놀랍도록 치밀한 플롯 구조라는 생각이 든다
기억을 지운다는 스토리상의 특이성을 생각하면 이보다 완벽한 플롯 구성을 할 수 있을까? 

영화는 결과적으로 A B C의 이야기를 전부 들려준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의 사랑이야기를 모두 보여준다
순서대로 보여주지 않은것은 관객에게 조엘과 클레멘타인처럼 똑같이 지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다
인간은 누구나 옛날기억보다 최근의 기억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서로 싸우고 상처받는다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 가는 조엘과 함께 관객은 처음에 사랑했던 감정을 제일 나중에 알게된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다시 만나야 하는 이유이며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영화의 스토리가 아닌 형식으로 만들어낸다

그리고 조엘이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워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던 것처럼 그녀역시 그렇게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조엘의 기억이 지워지는동안 그녀를 꼬시던 호빗족에게 집중하기 보다는 가슴아파하며 괴로워한다
이것은 물론 호빗족 멍청이가 그녀의 기억을 지우기위해 압수한 물건과 말들을 그녀에게 계속 꺼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는 클레멘타인역시 조엘과 똑같이 싸웠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엘의 꿈속에서 클레멘타인은 조엘에게 그렇게 협조적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마지막에 몬톡에서 만나자고 귓말을 하는 클레멘타인의 의지는 바로 거기에서 나온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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