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번쯤 해보지 않았을까 이런 상상
내가 엄청나게 성공해서 이런저런 사람들과 살아가는 모습을..
또, 내가 굉장히 불쌍하게 죽은 이후에 날 위해 울어주는 사람들을 상상하며 카타르시스의 눈물을 흘린적이 한번쯤 있을 것이다

이 장면은 브레또도를 돕고 집에 오는길에 장님 할아버지를 돕고 저녁을 해먹다가 옆집의 외로운 아저씨를보고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외롭다는 것을 알게된 아멜리에의 모습이다
그녀는 티비를 보다가 평생을 남을 위해 헌신하며 살다가 젊은 나이에 죽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
하지만 감독은 이 상상 장면을 어떠한 편집도 없이 실제로 아멜리에가 보고 있는 그대로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것이 어떠한 상상이라는 설명이 필요 없다

<일반적인 장면이 나오고 있던 뉴스는 자연스레 아멜리에의 이야기로 바뀐다>

영화에서의 감정 표현 방식은 대부분 간접적이다
소설에서는 빈번히 등장하는 전지적 작가 시점이 영화에서는 흔치 않고 영화에서의 감정 표현은 대사나 행동으로 간접적으로 전달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아멜리에'에서는 등장인물 이외의 이야기를 설명하는 전지적작가 시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때때로 그는 아멜리에가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는지 직접적으로 설명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전지적화자는 아멜리에가 직접적으로 이렇게 느끼고 있다고 설명하기 보다는 훨씬 영화적인 표현 방식을 택한다

마치 그녀가 실제로 티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보는 듯이 그것이 그녀의 상상이라고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채 전지적 작가는 그녀의 상상을 그대로 관객에게 읽어준다
전지적 작가로서 그녀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이때는 그저 그녀의 대변자로서의 역할만 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시점의 변화가 많지 않다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3인칭 관찰자 시점 또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변환하는 경우가 있지만 한 작품에서 한두번 뿐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 시점이 계속 변화한다 대부분은 주인공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경우에 따라서 영화는 너무나 쉽게 시점을 변화 시킬수 있다
여기에서도 간단하고 미묘하게 시점을 바꿔준다
그리고 또 다시 그녀의 시점으로 영화는 이동한다

<그리고 이 상상장면은 아멜리에의 감정을 너무나 쉽게 알게 해준다>

계속되는 이 상상장면은 그녀의 내면을 아낌없이 설명해준다
그녀가 어릴적부터 친구가 없었던것과 그래서 다른사람을 사귀는것이 서투르다는것 그래서 남을 돕기 위해 혼자서 외롭게 살았던것 그렇지만 그녀의 아버지 만큼은 돕기가 쉽지 않다는 그녀의 감정을 말해준다
그녀가 그렇게 느낀다고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벗어나서 이 때 만큼은 3인칭 관찰자 시점마냥 그녀의 상상을 우리에게 이야기해준다
관객은 그 상상을 통해서 그녀가 지금 자신의 처지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경험하게 해준다

그리고 직후에 아버지가 걱정된 아멜리에는 한밤중에 그의 집에 찾아가 어머니를 위해 장식해둔 인형을 뽑아서 훔쳐나온다
그리고 그의 여행을 위해 사진을 찍어서 모스크바로 부터 아버지에게 보낸다
이것은 이 포스트에 설명하기 뭐하지만 굉장히 유기적인 스토리라인임을 알수 있다
사실 아멜리에의 많은 씬들이 유기적으로 짜임새 있게 이루어지지만 자신을 불쌍히 여기다가 아버지가 생각나서 아버지를 급히 찾아가고 그 과정에서 찢어진 증명사진을 이어붙인 앨범을 줍게 된다는 설정은 탄탄한 스토리라인을 만들어 준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