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방법. 소설에 3인칭 시점. 1인칭 주인공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 이런것들 학교 다닐땐 다 개소리 같았는데.. 영화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물론 소설에서의 일관된 시점보다 훨씬더 자주 변화하는게 영화의 연출이지만..

<금자씨가 왜 감옥에 가게 됐는지 나레이션으로 말해준다>

나이가 좀 있는 듯한 여성의 목소리가 금자씨가 왜 감옥에 가게 되었는지를 나레이션으로 설명하기 시작한다.

나레이션이라는 건 영화에 흔하지 않은 '직접화법'이기 때문에 사실 흔하게 사용되지는 않는다. 아니 흔하게 사용은 되지만 굳이 말하자면 나레이션이 있는 영화보다 없는 영화가 좀더 많다고 해야할까?

하지만 보통의 영화 나레이션은 영화속 인물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친절한 금자씨의 나레이션은 자신이 누구인지 전혀 말하지 않는다.

3인칭으로 인식되는 이 나레이션은 금자의 감정까지 전하는 전지적 시점으로 구성된다. 박찬욱은 어째서 이러한 나레이션을 사용하는가?

<나레이션의 그녀는 마지막에 '나는'이라고 말한다>

처음부터 '나'라고 표현하지 않다가 마지막 금자가 딸 제니와 포옹하는 장면에서 처음으로 말한다. 그것도 딸 제니의 얼굴 클로즈업 상태에서 나오면서 관객들에게 영화 내내 궁금하게 했던 그녀의 정체를 드러낸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에 '나는 금자씨가 좋다'라는 나레이션이 전에 mom을 한국말로 뭐냐고 묻는 제니의 말에 금자씨라고 대답했던 것과 매치가 된다.

나레이션의 나이든 제니는 오래도록 엄마를 '금자씨'라고 불러왔던 것이다.

<제니의 나레이션은 어째서인지 금자씨의 과거까지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영화의 끝. 그리고 나레이션의 목소리를 가지게 될 때까지 제니에겐 얼마의 시간이 있었을까? 최소한 30년의 시간은 필요했을 것이다. 그 시간동안 제니가 호주에 가서 살았는지 금자와 살았는지는 전혀 알수 없다 추측만 할뿐

하지만 영화 내내 나왔던 나레이션을 다시한번 생각해 보면 제니가 금자씨와의 교류가 끊기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부족한 둘의 커뮤니케이션으로는 설명 할 수 없는 많은 것을 제니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위의 장면인 금자씨의 19세 시절은 나레이션으로 설명할 이유가 없는데도 굳이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즉, 이 나레이션의 설정으로 박찬욱은 영화의 최민식 살해이후 3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후의 관점으로 영화를 서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화자를 금자의 딸 제니로 설정함으로써 관객들은 자연스레 금자의 편에 서게 만든다. 초반부터 제니라는 사실을 숨기기 때문에 상당히 객관적으로 접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나레이션은 상당히 금자씨의 편에서 중도적으로 이야기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나레이션의 정체를 설명하는 것 또한 상당한 효과를 가진다. 영화가 끝난후 30년 동안의 금자의 인생을 상상하게 되고 추론할 수 있는 몇가지 근거를 제시 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끝나면 그 이후는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것을 위해서 많은 감독들이 '열린결말'이라는 형식을 취했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이 아닌 (물론 여기서의 결말도 완전히 닫힌건 아니지만) 화자의 선택을 통해서 목적을 이뤘다는 점이 이 영화의 큰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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