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영화 이것은 대중들이 잘 알고 대중들이 원하는 것이다
한 영화의 표현이 인기를 얻으면 그것들을 따라하고 발전시키고 해서 특정한 장르의 영화들에는 어떠한 공통점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러한 공통점들을 모아서 장르영화들은 계속해서 탄생하기 시작했다

이와이 슌지가 장르 영화를 찍는다고 생각하면 조금 어이가 없기도 하다
하지만 러브레터 이후에 만든 이 4월이야기는 놀랄정도로 특별한 표현이 없는 장르영화다
이와이 슌지는 표현상의 화려함을 추구하기 보다는 장르 영화 그대로의 연출로 묵직한 한방을 노리고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장르영화에는 공통된 특징들이 나온다
느와르 영화의 권총, 검은세단, 중절모와 코트
공포 영화의 산장같은 외진 공간, 샤워씬, 밤
그리고 멜로 영화에는 멜로 영화만의 장르적 미쟝센들이 존재한다

이번에 소개할 멜로영화의 미쟝센은 비, 우산, 원피스 정도가 되겠다

<비에 젖은 여성은 평소보다 5배쯤 아름답다>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번지점프를 하다에서의 첫만남은 비와 우산에 관련된 에피소드이다 그리고 이병헌과 이은주가 대판 싸우고 첫날밤을 보내는 장면 역시 그 우산과 관련되어 엄청나게 비가 쏟아지는 날이다
클래식에서도 마찬가지다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게 기억 되는 씬은 조인성이 옷으로 덮어서 손예진과 같이 뛰어가는 장면이다

우연일까 아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비만큼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들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없다
그래서 멜로영화는 비와 우산을 버릴수가 없다
 
영화 4월 이야기에서 한번도 내리지 않던 비가 마지막 시퀀스에 찾아온다
그것도 정말 장르영화 답게 갑자기 엄청나게 쏟아지기 시작한다
마치 감독의 의도라는걸 눈치채도 상관 없다는 듯이

고등학교 시절부터 짝사랑하던 야마자키 선배를 쫓아 도쿄로 대학을 오고 사는 동네 일하는 서점까지 찾아온 스토커(?) 우즈키는 드디어 그와 이야기를 나눈다
행복한 마음을 들킬까봐 서둘러서 집에 가야하는데 때 마침 엄청나게 비가 쏟아진다
그리고 비와 우산은 순간적으로 지나칠수 있었던 이들의 사랑의 시작을 조금더 긴밀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비맞은 여성은 (물론 남성도 그렇다) 평소보다 훨씬더 아름답다
이와이 슌지는 여기서 그것을 이용한다
비를 잔뜩 맞고 다시 우산을 빌리러 온 우즈키는 야마자키의 눈에 선명한 자국을 새긴다

그리고 또 빠질 수 없는 것이 여성의 원피스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도 클래식에서도 한국여성이 이렇게 원피스를 자주 입나 싶을 정도로 원피스가 잘 등장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왠지 멜로 영화를 찍는데 여성을 바지를 입히기엔 조금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엽기적인 그녀에서 전지현이 청바지를 줄창 입는것은 어쩌면 이 멜로영화의 장르적 특성을 반대로 이용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4월 이야기에서 우즈키는 거의 모든 씬에서 원피스를 입는다
특히 위에 클립해 놓은 마지막 씬의 검은색 원피스는 그녀가 서점에 첫날 입고간 원피스이다

어째서 이와이 슌지는 1시간 밖에 안되는 씬도 별로 없는 짧은 영화에 같은 의상을 두번이나 입혔을까
서점 분량을 하루에 몰아서 찍었다고 해도 말이 안된다
의상 한벌 정도는 충분히 더 준비할 여력이 있었을텐데 말이다

이것은 분명히 의도라고 생각된다
당연히 야마자키 선배가 일하고 있을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찾아간 첫날 우즈키는 자신이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원피스를 입고 갔을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야마자키 선배를 만났지만 자신을 못알아 본 다음날 우즈키는 다시 그 원피스를 입고 서점을 찾아간다

원피스의 힘일까 야마자키는 그녀가 고등학교 후배인것을 알아차린다

이와이 슌지가 이렇게 평범한 표현 방식을 선택한 것도 놀랍지만
그것을 정말 묵직하게 잘 휘둘렀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쌓이는 이 우즈키의 한방에 야마자키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엔딩을 만들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 고등학교 시절 문학시간에 '복선'이란걸 배우면서 생각했다
대체 이런 쓸데 없는 짓을 왜 하는걸까? (짓 = 복선)
이런 쓸데 없는 행위들이 수많은 영화에도 사용되고 있다
왜?
영화가 예술이냐 산업이냐를 떠나서 지적 유희이기 때문이다

2009/02/15 - [영상문법] - 영상문법 - 페이드 아웃, 외재적 내재음 <이터널 선샤인>
에서 이야기했던 외재적 내재음이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포 미니츠에서도 사용된다

<영화의 포스터와는 안어울리게 매우 다이나믹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이번에 소개할 장면은 이전에 포스팅에서 소개했던 첫번째 시퀀스가 끝나고 오프닝 크레딧이 지난직후의 것이다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보여지는 포스터와는 전혀 다르게도 갑자기 다이나믹한 록 음악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화면은 트럭뒤에 실려진 피아노를 따라서 트럭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흘러간다

<아... 이것 역시 외재적 내재음이었다 아니.. 내재적 외재음인건가? 용어야 어쨌든>

트럭에는 뭔가 클래식한 할머니와 뭔가 펑키한 청년 두명이 타고 있다
시끄러운 음악에 잠이 깬 할머니는 동영상의 42초경에 트럭의 앞쪽으로 몸을 기울여 피아노 연주곡으로 BGM을 바꿔 버린다
오 마이 가드!
이번에도 속았다
똑같이 OST인줄 알았던 음악을 카오디오로 사용하다니 유행이냐?

이터널 선샤인 때도 이야기했던 것이지만 이것은 일종의 사기 행위다
음악은 분명 교도소의 전경씬으로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트럭이 달리는 현장음과 함께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카오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이었고 할머니의 교양있는 손으로 힘없이 틀어쥐기만해도 피아노연주로 바뀔 수 있는 것이었다니

이터널 선샤인때 말했던 외재적 내재음이다
다시한번 설명하면 외재음은 OST등의 관객이 들을 수 있지만 영화 안에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영화속의 캐릭터들은 들을 수 없다
내재음이란 말그대로 영화속에 존재하여 누구나 다 들을 수 있는 소리다
분명 처음에 들판을 달릴때의 시끄러운 음악은 외재음이었다
이것이 내재음이라면 트럭을 촬영하는 위치에 따라서 볼륨이 달라야만 타당하다
하지만 이 음악은 트럭의 수염기른 젊은이가 틀어놓은 것이었고 이것은 할머님의 잠을 방해했다
그리고 42초경에 할머니는 견디지 못하고 OST인줄 알았던 이것을 피아노연주곡으로 바꿔 놓음으로써 한순간에 이것을 내재음으로 만든다

의미를 살펴보자
이터널 선샤인 포스팅에서의 의미와 비교하는 것이 좋겠다
이터널 선샤인은 관객을 속이는데 목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관객을 속이는 이유는 바로 영화의 철학과 밀접한 관련이있었다
당신이 보고 듣고 믿고 있는 것이 진실이 아닐수도 있다는 그 철학은 내재음을 외재음이라 속이고 마지막 씬을 첫씬이라 속이고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서로를 증오한다고 생각하며 매리는 아직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는 오해의 연속으로 펼쳐진다
이해가 안간다면 이터널 선샤인 편을 확인해주세요

하지만 포 미니츠에서의 의미는 다르다
여기서는 관객을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바로 '전환'에 큰 의미가 있다
이터널 선샤인을 잘 기억해보면 조엘이 카세트를 끄고 OST인줄 알았던 음악은 딱 끝나버린다 이렇게 명백하게 음악을 끊어버린 행위는 '관객 너네 속고 있었어'라고 명백히 말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새로운 OST는 그냥 은근슬쩍 흘러나와버린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크뤼거 할머니가 피아노 연주곡으로 바꾼다
속이는 행위를 위해서라면 좀 이상한 상반된 음악의 급작스런 전환에 뭔가 큰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은가?

이 포스팅의 제목처럼 이것은 '복선'이다
교도소에서의 제니의 험악했던 삶이 앞에서의 록 음악이라면 크뤼거 할머니가 손수 바꿔주는 피아노 연주가 바로 곧 바뀌게 될 제니의 삶이다
그것을 굳이 크뤼거 할머니의 손으로 바꿨다는 것이 그녀의 손에 의해 제니의 삶이 바뀔 것이라는 상징의 명백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피아노 연주는 트럭을 타고 교도소로 들어간후 한참을 울리다가 트럭을 운전하던 간수의 손에 의하여 꺼진다
그녀의 삶이 간수에 의해 좌우된다는 상징인지 방해 받는다는 상징인지 결국 감옥으로 돌아온다는 상징인지 아무튼 크뤼거의 손에서 켜지고 간수에 의해서 꺼졌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는 의미심장하다

크뤼거 할머니는 제니에게 말했지
흑인처럼 음악하지 말라고
하지만 크뤼거 할머니와는 다르게 천재였던 제니는 결국 마지막에 흑인클래식을 퓨전해 버리지 이것이야 말로 이영화의 진정한 카타르시스

그나저나 이 영화의 포스터는 좀 의아하다...
포스터에 비하면 영화가 훨씬 재밌기 때문에 누가 그딴 포스터를 만들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클라이맥스가 존재한다
그것이 실제 인생과 다르던 형식화에 의한 결과던 상관 없다
물론 그들의 형태와 강도는 모두 다르다
하지만 특히 음악과 춤이 들어간 영화라면 클라이맥스 장면에 기대가 되는건 어쩔수 없다 더구나 포미니츠 같은 천재가 연주하는 음악영화라면 더더욱 그렇다

최근에 흥행한 스텝업2를 보면 마지막 장면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을지 알수있다
오직 그 마지막 장면을 위해서 영화가 존재하는 듯이 보여지는 존재감이 있는 씬이다
하지만 음악, 춤 등 어떠한 공연이 들어간 영화는 그러한 공식을 가지고 있다
그 공식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관객들은 그것을 기대하고 어설프게 충족시키거나 공식을 어기고 새로운 시도를 한다면 비난을 받기 십상이다

내가 이번에 첨부한 영상은 영화 '포미니츠'의 클라이 맥스 장면이다
영화의 가장 마지막 씬인 이 장면은 4분간 내가 숨을 쉬었나 할정도로 격렬하게 아름답다

<이 마지막 4분간 단 한컷도 아름답게 찍지 않을수 없다>

아름다운 음악에 맞춰서 아름다운 영상을 위한 노력을 보자(그것이 비록 존재의 본질을 건드리지 못하는 비주얼이라고 생각할지라도)

위 그림을 보자
연주의 시작 장면에서 너무나도 의도적인 렌즈 플레어가 존재한다
빛의 아름다움의 대표격이라 할수있는 플레어와 역광으로 촬영된다
제니의 연주가 피아노에 비치도록 완전한 실루엣으로 처리하는 짙은 콘트라스트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나는 이것이 좀 아쉽기도 하다)

<이것은 그저 한폭의 그림이다>

무대위의 제니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하는 조명으로 프레임을 한폭의 그림으로 구성한다

<렌즈플레어의 유무를 이용한 기법은 이미 너무나도 유명하다>

나도 단편영화를 만들때 아주 많이 해봤던 장면이다
렌즈플레어를 피사체에 가려서 보였다 안보였다하는... 이것을 위해서는 조명과 피사체 그리고 카메라가 일직선이 되는 의도적인 구도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하지만 감독은 플레어가 제니에 의해 완전히 가려졌을때에도 제니를 완전한 실루엣으로 처리하지 않고 여러곳에서 반사광을 주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애초에 실루엣의 느낌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듯 하다
하긴 그래야만 제니의 표정을 잡아 낼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의도적인 프레임속의 프레임들을 만들어낸다>

역시나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샷을 만들기 위해서 피아노의 위쪽으로 반사되는 앵글을 잡아낸다

<이 장면또한 의도적으로 조명의 위치를 달리한 장면이다>

앞에서도 보인 렌즈 플레어의 각도로는 이러한 장면을 만들어 낼수 없다
감독은 이 컷을 위해서 조명의 위치를 바꿨음에 틀림없다
이 새하얀 실루엣 클로즈업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렌즈 플레어가 이번에는 피아노를 치는 팔위로 생겨난다>

제니의 머리위로 렌즈플레어가 들어왔던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로우앵글에서 피아노를 치는 두손을 촬영한다 또다시 렌즈 플레어가 나타났다 없어졌다 하며 피아노에 반사되는 빛들이 또다른 미를 만들어낸다

<뒤를 보여주기 위해 렌즈플레어를 만들어내던 광원이 사라졌다>

연주의 마지막 무렵 제니의 모습 저편으로 들어오는 경찰들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리고 관객과 그녀를 하나로 만들어 주기 위해서 가장 강한 조명은 자취를 감춘다
제니의 등에 강하게 떨어지는 빛과 바닥의 동그란 빛의 모양을 생각해보면 이샷에서의 조명은 머리위에서 강한 스팟 라잇으로 처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이 외에도 2프레임씩 교차로 편집한 장면이라던가 크레인 샷을 중간을 잘라내어 점프컷으로 처리하는등의 방식도 활용하고 있다

천재의 연주를 보여줘야하는 포미니츠라는 영화에서 이 마지막 장면은 굉장한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어떻게 관객을 감동시켜야하는가
그를 위해서 영화는 제니의 천재성이라는 캐릭터를 빌어 새로운 연주 형태를 만들어낸다 마치 난타와 탭댄스를 연상시키는 장면들을 추가함으로써 제니의 연주를 더욱 풍요롭고 충격적으로 만든다 그를 위해 퓨전 클래식을 미리 만들어놨음은 당연한 것일테다
그리고 그 연주들이 진행되는 동안 수많은 미학적으로 연구된 컷을 통하여 그녀의 연주장면을 아름답게 꾸민다

비록 이 장면이 4분동안의 연주의 힘만으로 관객을 감동시키지 않고 카메라와 빛, 그리고 편집의 기교를 부렸다고 해서 평가 절하해서는 안된다
카메라와 조명,편집은 영화의 본질이다
물론 감독의 선택에 따라서 조용히 단 한컷으로 연주를 끝까지 들려줄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방식의 연출이었고 나는 이것이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렌즈플레어와 피아노의 반사 그리고 편집 방법이 새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서 아쉽다는 생각은 들지만말이다

그리고 제일 아쉬운 것은 관객들의 기립박수이다
격렬히 폭발시킨 연주의 응어리가 아직 관객의 가슴에 남아있을때 그것을 터뜨리지 않은채 영화를 끝냈더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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