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소개할 내용역시 아멜리에의 몽상가적 기질이 낳는 말도 안되는 상상의 표현이다
니노에게 4시까지 까페로 오라고 전했는데도 불구하고 4시 10분이 되도록 나타나지 않자 아멜리에는 가능성은 두가지라고 상상한다
첫번째는 사진을 못봤을 경우이고 두번째 이유가 아주 재미있다
두번째 이유는 정리해서 말하자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결국 이런식의 논증을 통해 아멜리에는 니노가 사진을 보지 못했을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쌩뚱맞게 은행 강도들에게 붙잡힌다>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이스탄불에 팔아넘겨진다>
<핵탄두 탈취 작전에 투입된다>
<가까스로 살아남아 회교반군이 된다>

은행강도에게 인질로 잡혀서 사고를 당해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이스탄불로 팔려가서 핵탄두 탈취에 투입되고 또 지뢰 사고로 겨우 혼자 살아남아 회교반군이 된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아멜리에가 생각하는 니노가 사진을 보지 못했을 경우 이외의 다른 한가지 가능성이라는 이야기다

위의 이야기는 너무나 허무 맹랑하고 길어서 결국 일어날 가능성은 제로라고 볼수있다 그 이야기는 아멜리에가 니노가 사진을 보지 못했을 가능성 이외에는 나타나지 않을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며 결국 이것은 그가 사진을 못봤을 것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주목해야 할점은 영화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이런 장난스러운 상상을 실제로 나레이션과 함께 촬영해서 보여주었다는 점이다(일부분은 자료화면으로 대체하지만)

영화를 만드는게 굳이 이런 어려운 장면들을 새롭게 촬영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지만 감독은 굳이 이 장면을 연출해냈다

그 의미로는 역시 아멜리에가 니노가 나타나지 않는것을 크게 긴장하며 기다리고 있다는 익살스러운 표현이다
반어법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따져보면 그녀는 니노가 왜 나타나지 않는지에 대해서 모든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다고 표현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멜리에의 몽상적인 캐릭터를 살리는 동시에 영화의 전반으로 깔려있는 익살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영화의 분위기는 '하나와 앨리스'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굳이 필요하지 않은 연출들을 투입하여 자아내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 장면역시 영화의 전체 플롯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아멜리에의 디테일한 감정표현과 영화의 전체 분위기에 크게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장면이 어려워서 찍고 싶지만 찍지 않았다면 영화 아멜리에는 특유의 분위기가 없는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하나를 포기하면 그것이 원칙이 되어 여러가지를 버리게 될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간만에 다시 과장법이다
2008/12/12 - [영상문법] - 영화적 화법 - 과장법 <우리개 이야기>
전에도 말했듯이 과장법은 대부분 코메디 장르에서 사용된다
이러한 과장이 아멜리에에서 어떻게 연출되는지 살펴보자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기로 한 참견쟁이 아멜리에는 담배파는 조제뜨와 스토커 남자를 서로 의식하게 만든가
결국 조제뜨와 스토커는 서로 마음이 통해서 까페 화장실에서 격렬한 정사를 벌이게 되는데 바로 이 장면이다

<커피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마치 신호음처럼 길게 과장된다>

첨부한 동영상 5초부근을 보면 아멜리에가 쟁반에 커피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상당히 과장되는 것을 알수있다
마치 신호탄을 쏘는것 같은 이 소리는 스토커남이 화장실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후 조제뜨에게 이 커피를 쏟아야게다고 마음먹는 아멜리에의 작전개시 소리인 것이다
잘들어보면 알겠지만 결코 커피잔을 내려놓는 것으로는 나올수 없는 긴 울림이 있는 소리이며 이것은 과장되게 연출된 것이다

<화장실에서 벌이는 정사로 인해서 카페안의 모든것이 들썩인다>

아멜리에가 옷에 커피를 쏟자 조제뜨는 화를내며 화장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스토커남과 격렬한 정사를 벌인다
그들의 섹스가 이루어지면서 까페안은 난리가 난다
잔에 담긴 물에 파동이 일어나고 진열된 컵들이 흔들리고 심지어 화장실 간판(?)불빛이 지직 거린다
만약 이것이 좁은 구조안에서 일어나는 섹스라면(예를들면 자동차안 같은) 이런 연출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고 할수있지만 이 장면은 명백한 과장이다

전에도 설명했듯이 과장된 연출은 코믹적인 요소를 포함하는것이 정론이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는 그것 말고도 좀더 거시적인 역할이 있다고 본다
그것은 바로 아멜리에가 니노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촉매 작용을 한다
실제로 니노가 번호를 남겼지만 전화를 하지 않던 아멜리에는 스토커남이 조제뜨에게 복권을 사면서 연출하는 장면을 보고는 전화를건다(이 장면은 내가 첨부한 동영상에 없고 영화의 더 앞부분에있다)
그리고 위의 정사장면이 이루어지고 유리뼈 아저씨에게 붙잡을수 있을때 붙잡으라는 이야기를 들은 아멜리에는 바로 니노가 일하는 포르노왕국에 찾아간다
물론 이러한 사건들을 결코 인과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별개의 사건들로 해석할 수도 있다
스토커남과 조제뜨가 이루어졌다고 해서 아멜리에가 니노에게 연락하고 찾아간 원인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표면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이들의 만남이 아멜리에에게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누벨바그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영상문법 거리두기 (소격효과) - 브레히트가 만들었지만 영화에의 도입은 누벨바그가 아닐까..
그것은 이전의 고전적 헐리우드 스타일의 영화에서 보여지는 영화와 관객과의 단절을 무너뜨린 것을 말한다
조금 쉽게 설명하자면 영화는 그 안에서의 인물과 스토리가 존재한다 즉, 영화 안에서의 인물과 영화 밖의 관객은 결코 만날수 없는 다른 차원의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거리두기 기법으로 많은 감독들은 관객을 영화 안으로 인도한다
관객이 영화안에 몰입하여 현실과 영화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되었지만 현대의 영화에서는 하나의 효과적인 표현양식으로 존재한다

거리두기의 대표적 방식은 누가 뭐라해도 카메라를 직접보며 관객에게 말하기 이다
아래의 사진을 보자

<카메라를 직접보고 관객에게 이야기하는 아멜리에>

영화를 공부한 사람은 알겠지만 촬영의 불문율중에 하나가 배우로 하여금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관객은 언제나 영화밖에서 그것을 즐겨야 하며 똑바로 응시된 시점은 관객을 당황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의 관객은 다르다
몇십년이나 된 이러한 방식에 깜짝 놀랄 관객은 많지 않다
특히 나이를 먹고 영화를 수백편을 본 관객들에게 이정도의 표현은 그저 익살스러울뿐이다

아무튼 누군지도 모르는 굵은 남자의 목소리로 진행되던 이야기에서 뜬금없이 아멜리에는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건다
극장에서 사람들 얼굴을 훔쳐보는게 취미라며 카메라를 이동시켜 영화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여준다
누벨바그시대의 소격효과는 이러한 방식으로 관객이 영화에 몰입을 하지 못하게 했지만 나는 아멜리에에서의 이러한 표현은 조금 다른 작용을 한다고 본다
여지껏 어떤 남자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되던 아멜리에의 이야기는 관객에게 그저 내가 모르는 여자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아멜리에가 직접 관객에게 말을 걸면서 거리두기라기 보다는 오히려 관객과의 거리를 가깝게 하는 것을 시도하였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영화시작 12분 정도에 나오는 이 장면은 나(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어준 아멜리에를 더 가깝게 느끼고 마치 내 친구의 이야기를 보는 듯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놀랍게도 '거리두기'라는 문법을 이용해서 감독은 관객과 극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

<마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같은 표현기법>

이 사진의 장면 역시 아멜리에가 계속해서 관객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보면 정말로 이러한 표현 방식이 관객과 극의 거리를 재인식 시키고 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더 가까이서 설명해준다는 느낌을 받는다
관객에게 '난 남들이 못보는 옥에 티를 잘 찾아요'라고 말하면서 뒤에 지나가는 벌레를 혹시 놓칠까봐 TV프로그램처럼 빨간 동그라미를 칠해준다
이러한 표현이 어째서 당신은 지금 영화를 보고 있는거니까 몰입하지 말라고 하는 전통적인 소격효과라고 할 수 있는가
오히려 완전히 그녀의 이야기에 몰입하여 더 쉽게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다시한번 아멜리에는 시선을 틀어 관객을 본다>

이 사진을 보면 어째서 감독은 보여주던대로 정면에서 아멜리에가 카메라를 보고 말하게 하지 않았을까
카메라가 영화의 시점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포스트를 참고하자
2009/01/01 - [영상문법] - 영상문법 - 영화의 시점 <완벽한 그녀에게 딱한가지 없는것>
나는 모든 샷은 영화에 등장하던 하지않던 그자리에 위치하는 누군가의 시점이라고 믿는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 샷을 살펴보면 아멜리에의 옆에서 촬영된 이 로우앵글은 마치 옆자리에 앉은 꼬마에게 말을 거는것 처럼 보인다
처음의 정면응시가 처음으로 관객에게 말을 거는 것이었기 때문에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었다면 두번째 장면은 마치 옆에서 함께 영화를 보는 시점으로 촬영 되었다(아멜리에의 얼굴이 아닌 영화안의 영화 화면이 촬영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의 이 시점에서 아멜리에는 옛날 영화에서는 운전자가 길도 안보고 운전한다는 정보를 자신보다 어리고 옛날영화를 보지 못했던 꼬마에게 이야기 하듯이 말하고 있다
실제로 아멜리에의 옆자리에 꼬마가 앉아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감독은 그녀의 이 옛날영화 설명이 이 시점으로 촬영되어야 관객들이 순간적으로 꼬마의 입장이 되어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사실 아멜리에라는 영화를 보면 소격효과라고 부르기 애매한 여러가지 익살스러운 표현 방식들이 나온다
소격효과라는 것은 옛날의 영화에서 하나의 새로운 시도를 정리한 용어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 영화의 표현을 이러한 용어에 모두 접목시켜서 설명하기는 어려울 듯이 보인다
하지만 내가 소개한 이부분 만큼은 소격효과의 대표적 방식으로 새로운 표현을 창출해내고 있다
과연 이러한 방식은 뭐라고 부를 것인가
<소격효과 - 거리 좁히기>?

용어는 중요하지 않다
감독의 새로운 시도와 참신한 발상을 보고 배우는 것이 훨씬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씨네마틱에 기사화 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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