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문법 포스팅에 캐릭터 분석은 뭔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지만 굉장히 배울점이 많은 캐릭터 설정이기에 릴리슈슈의 모든 것에 나오는 몇명의 캐릭터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그 첫번째가 바로 릴리슈슈의 모든 것의 악역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 '호시노'이다
이 영화의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며 사실상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호시노는 처음부터 하스미를 괴롭히는 '악역'으로 등장한다>

주인공인 하스미를 괴롭히는 역할로 등장하는 호시노 그리고 그는 이무렵 '아오네코'라는 아이디로 릴리슈슈의 팬까페 '릴리피리아'에 가입한다
이 무렵의 호시노는 이제 막 막나가기 시작할 무렵... 정신이 무너져가는 시작의 단계였다

<시간은 중학교 입학 시절로 돌아가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스미와 같은 중학교에 입학하는 호시노는 1학년 대표로 교단에서 선서를 한다
그리고 또 역시 같이 검도부에 입부하게 되고 그때 호시노는 강해지고 싶어서 왔다고 말한다
이후에 나올 초등학교 시절의 왕따 경험으로 비추어 보아 호시노의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은 절실했으며 이후에 막나가게 되는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호시노를 왕따 시키던 무리들>

비가 내리던 어느날 호시노와 친구들은 그를 이지메하던 한 무리를 만나게 된다
이것은 관객에게 아주 많은 정보로 작용한다
이후에 호시노가 수많은 아이들을 괴롭히고 상처주는 것이 초등학교 시절의 이 왕따를 당한 경험으로 부터 나온다는 것 그리고 그의 정신이 이미 상처입어 있음을 설명한다

<돈을 훔쳐서 놀러간 오키나와에서 호시노는 두번 죽을뻔 한다>

돈을 훔쳐서 친구들과 놀러간 오키나와
바다에서 손전등 빛을 보고 날아온 생선에 찔려서 한번 바다에 빠져서 두번 죽을뻔 한다 오키나와의 가이드 아저씨는 '안좋은 물건'을 가지고 온게 아니냐고 말한다
그리고 바다에 빠진 호시노를 구해준 탐험가 아저씨가 죽는다
호시노는 이것이 자신이 가져온 부정한 돈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자신을 구해준 이 탐험가가 자기의 죄로 인해 죽었다고 생각한다
죄책감에 남은 돈을 모두 바다에 던져버리지만 남은 여름방학동안 호시노는 심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리고 드디어 호시노가 변한다>

자신 때문에 죄없는 한사람이 죽었다고 믿는 호시노는 너무나 괴롭다
그 괴로움을 견디기 위해 다른 사람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반에서 '짱'을 먹고 있던 이누부시를 기절 시키고 그의 염색 파마 머리를 잘라 버린다 이 사건으로 호시노는 반의 새로운 짱이되고 계속해서 다른 사람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이누부시의 꼬붕이었던 2명에 하스미까지 데려와 cd를 훔쳐오게 하고 혼자서 릴리슈슈의 '호흡'을 훔쳐서 걸린 하스미 때문에 학교에 발각되자 때리고 cd도 박살내 버린다
그리고 츠다를 협박하여 원조교제를 시키고 그돈의 일부를 상납금으로 받는다

<그리고 자신이 짝사랑하던 쿠노를 범한다>

왜일까? 자신이 짝사랑 하던 '쿠노'가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는게 화가 났을까 견딜 수 없었을까? 그래서 괴로움에 표현방법은 오직 남들위에 서서 더 괴롭히는 것 뿐이었을까 아무튼 호시노는 쿠노를 불러내서 꼬붕들을 시켜 그녀를 범한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츠다의 죽음 부른다

이 장면에서 폐공장이 호시노의 아버지 것이었던 것이 밝혀진다
사업의 도산과 가족의 이산은 호시노의 탈선에 또다른 강력한 이유를 뒷밤침해 준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하스미나 관객이나 너무 늦다
이미 호시노의 삶은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잘못 되어버렸다

그리고 위의 두번째 후드를 뒤집어쓴 사진이 있다
이 장면에서 호시노는 담배를 피며 후드를 뒤집어 쓰는데 나는 이영화를 처음볼때 이 장면에서 처음에 하스미를 괴롭혔던 남자가 이 호시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의 장면에서 호시노는 후드를 뒤집어 쓰고 있었으니까 나는 이것을 나처럼 모르는 사람을 위해 알려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은 잘 모르겠다 언제 눈치 챘는지.. 

<아오네코는 너무나 괴로워 한다>

친구였던 하스미와 짝사랑했던 쿠노를 괴롭히는 호시노는 너무나 괴로워 한다
죄책감을 벗어 던지려 시작한 괴롭힘이 오히려 자신을 파괴한다
이제는 다른 사람을 괴롭힐 수 밖에 없지만 그것을 누군가 멈춰주길 바란다
하지만 이제는 멈출 수 없다

그리고 호시노는 하스미에게 살해 당한다

너무나도 괴로워 하던 호시노,아오네코는 죽음으로 영원한 안식을 얻는다
라고 표현하는 것이 차라리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가 아직 겨우 중3이었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나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청소년기의 약간의 비뚤어짐이 다른사람과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수많은 친구들에게 상처를 입힌다

호시노가 자신의 꼬붕 그룹에 '하스미'를 집어 넣은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가 하스미를 친구로서 붙잡아 두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뚤어진 그의 방식으로는 하스미를 꼬붕으로 두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릴리슈슈를 하스미에게 소개한 것은 바로 호시노이다
그런 그가 하스미가 가지고 있던 '호흡'을 부숴버리고 콘서트표를 꾸겨서 던져 버린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단순한 괴롭힘의 일부였을까?
나는 호시노가 릴리슈슈 따위로 현실을 도피하지마라고 말하는 듯 보인다
초등학교 시절 왕따를 당하면서 릴리슈슈를 계속해서 들어왔지만 그는 결국 음악으로 구제 받지 못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하스미에게 릴리슈슈 따위는 듣지마라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만약 하스미가 '피리아'였다면 호시노는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파란사과를 들고있는 호시노를 외면하는 하스미에게 다가가 왜 모른척하냐라고 물은후 그에게 사과를 줘버린 것이 아닐까?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이해 못한다고 말하면서 호시노는 사실 다른 사람을 많이 이해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쿠노를 범한 것은 그녀를 '왕따'로 부터 벗어나게 해버리려고 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 마지막 해석은 너무 극단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의 호시노와 하스미의 캐릭터는 약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그것은 체육선생이 하는말 '이 나이의 아이들은 가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니까요'
이 말에 대한 이와이 슌지의 설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해할 수 있게끔 하지만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게 설정하는 것이 의도가 아니었을까



처음 이영화의 제목을 듣고 생각했다
일본인인데 왜 앨리스일까?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내용은 '앨리스'를 이용한 메타포(상징)이다

먼저 이사진을 보자

<아버지와 카드놀이를 하는 앨리스>

이 카드놀이를 하고나서 '바닷가에서 비슷한걸 했었다가 바람때문에 날아갔다'는 이야기로 우리는 앨리스가 남자 주인공과 사귈적의 이야기를 꾸미기 위해 아버지와의 추억담을 늘어 놓았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워 아이 니 라고 말했던 앨리스가 나중에 남자주인공에게 같은 말을 하는것으로 그녀가 사랑하는 대상이 아버지에서 그 남자로 넘어갔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카드의 뒷면 그림이다
옛날에 아버지와 (물론 어머니와 함께) 갔을때 사용한 그림은 내가 첨부한 영상에 나오는 앨리스와 토끼가 키스를 하는 그림이다
하지만 부모님은 이혼을 하시고 앨리스가 다시 가지고 있는 카드는 오직 토끼만 있는 카드이다

<현재 앨리스가 가지고 있는 토끼만 있는 카드>
<아버지가 있을 시절엔 앨리스가 토끼와 키스를 하는 카드였다>

그렇다면 이 카드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째서 이와이 슌지는 굳이 앨리스가 토끼와 키스를 하는 그림카드와 토끼혼자 있는 그림 카드를 사용했을까
소품담당이 사온 카드가 우연히 이런것이었을까?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

우리는 여주인공이 이름이 앨리스라는 것을 통해 자연스럽게 카드안의 앨리스를 아오이 유우에게 매치 시킬수 있다
그렇다면 아오이 유우와 키스를 하는 토끼는 누구일까?
그것은 단순히 말하자면 아버지 그리고 폭넓게 이야기 하자면 아오이 유우가 사랑하는 대상이 된다
아버지와 같이 살때에는 바로 앨리스와 토끼가 함께 있는 그림 카드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떨어져 살게 된 앨리스는 대신에 토끼만 그려져 있는 그림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토끼(아버지)에 대한 앨리스의 그리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앨리스는 예전에 아버지와 바닷가에 가서 날아간 카드중에 하트 에이스를 먼저 찾는 내기를 했다 하지만 그때는 찾지 못했고
다시 비슷한 상황이 하나와 앨리스 그리고 선배에게 펼쳐지자 앨리스는 똑같은 시합을 하자고 한다
토끼만 그려진 하트에이스는 앨리스가 찾았다
이것은 토끼 즉, 앨리스가 사랑하는 대상을 찾았다는 메타포이고 그 대상은 바로 선배이다
앨리스가 카드를 찾은 직후 이제 선배는 자기거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바로 하나와 앨리스의 시합은 토끼(사랑하는 대상 즉 선배)를 차지하기 위한 시합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합에서 이긴 앨리스는 당연히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만 이것은 결국 하나와 앨리스의 난투극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선배가 찾은 토끼와 앨리스의 그림은 바로 완성된 사랑이다
앨리스와 아버지는 그것을 결국 찾지 못한채로 바닷게 두고 왔다
이것은 결국 그 둘이 가족이지만 같이 살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상징하며 그것을 찾은 선배는 결국 앨리스와 자신의 마음이 서로 통했다는 것을 말한다

내가 클립해놓은 영상에서 앨리스는 그 카드를 보고 울음을 터뜨린다
이것은 표면적으로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의 눈물이며 상징적으로는 선배와 자신의 사랑이 완성되었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눈물이다
결국 앨리스는 사랑의 완성의 카드를 선배에게 준다

<카드를 선배에게 건네는 앨리스>

이것은 앨리스가 이 사랑을 받아 들일수 없다는 의미이며 결국 자신은 토끼만 그려진 카드를 가지고 새로운 사랑을 기다린다는 의미로 해석 될 수 있다
그리고 선배가 이 카드를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한 하나가 그 카드를 찢어버리려고 하는 것 역시 이 메타포를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조금 다른 해석이지만 바닷가에서 줄넘기를 둘이서 할수 없다는 이야기를 통해 옛날에 어머니와 셋이 왔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때 앨리스와 토끼의 카드를 찾지 못한 것은 앨리스와 아버지의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이야기 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쨌든 옛날의 카드는 사랑의 완성(물론 이것은 이성간의 사랑만이 아니다)을 상징하지만 현재 가지고 있는 토끼의 카드는 앨리스의 바램을 말한다


먼저 위의 영상을 재생해 보도록 하자
위의 영상이 무슨이야기냐면 하나가 보기에 둘이 대화하는 것 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사실상 남자 앞의 여자는 앉아있는 자신의 남자친구와 대화하는 것인데 타이밍 좋게 힐끔 쳐다보며 만담을 중얼거리는 소년의 모습은 마치 다정하게 그녀와 대화하는 것처럼 하나에게 비춰진다
재미있는 것은 나도 사실 이 영화를 처음봤을 때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내가 멍청한가?

<둘이 대화하는 줄알고 지켜보는 하나>

위 그림처럼 하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을 지켜본다
하지만 정말로 일본말을 모르는 우리가 자막을 끄고 본다면 그저 연인끼리 대화하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나도 정말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이것은 사실은 하나만 속이면 된다 굳이 관객까지 속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촬영 자체가 하나의 시점샷과 그걸 보고있는 하나의 반응샷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하나와 같이 속아서 이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얼굴을 찡그릴정도로 밝게 웃는 여자가 마치 주인공을 보고있는것 같다>

이러한 속임수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사실 영화에서 처음부터 관객은 알고 있는데 하나에게만 이렇게 비춰질수도 있다
얘를들어 지금처럼 여자의 애인이 자리에 앉아 있지 않고 주인공의 바로 옆에 서서 가려져 있다면?
또한 남자가 앉아있더라도 그것을 처음부터 관객에게 보여준다면?
그렇다면 관객은 처음부터 이 장면이 하나의 오해라고 눈치 챌수 있을까?
아니 오히려 그렇게 이 남녀는 대체 왜나온거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하나가 오해하고 있다는걸 눈치챈 관객들은 그냥 별거 아닌 오해라고 생각하며 안심하고 영화를 볼수있다

하지만 이와이 슌지는 이 장면에서 관객의 마음을 하나에게 동일화 시켰다
이 장면을 너무나 가슴아프게 지켜보는 하나의 심정처럼 관객에게 비춰주었다
물론 직후에 나오는 대사와 앉아있던 애인이 슬쩍 얼굴을 내밀면서 관객의 오해는 풀어주지만 하나는 계속해서 오해를 하게 된다

<이렇게 애인의 존재를 카메라에 비춰주어 관객의 오해를 풀어준다>
<하지만 하나는 실망감에 고개를 숙여 이장면을 놓치고 만다>
<마지막으로 둘이 마주보고 여자가 웃는 장면을 하나에게 목격하게 한다>

얼마나 재치 있는 연출인가
사소한 오해가 빚어져 스스로 실연했다고 하나에게 믿게끔 만드는 장면이다
정말로 이 직후 만난 앨리스가 실연했냐고 묻자 무언으로 답하는 하나의 심정으로 우리는 그녀가 오해를 풀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있다

사실 이 속임수는 영화의 큰 스토리를 짚어보면 크게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이 직후 하나는 이 남자가 만담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남자를 따라서 만담 동아리에 들어가고 결국 이 순간의 오해는 다시는 언급되지 않고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이러한 장면은 굳이 왜 보여주는가?

첫째로 이것은 대서사시나 액션영화처럼 큰 줄기를 따라가는 영화가 아니다
10대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영화이니 만큼 사소한것에 웃고 사소한것에 울게 해야하는 스토리의 디테일함이 있어야 하는것이다
때문에 이와이 슌지는 한순간의 장난같은 장면이지만 이러한 장면을 통해 하나가 실연했다고 믿게하고 그로 인해 자신이 그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깨닫게 한다

둘째로 순간순간 관객을 속이는 연출은 스토리 외적인 재미를 준다
나는 이것이 이 장면을 선택한 가장 핵심적인 이유라고 말하겠다
영화의 어느 장르던 순간순간 관객을 속이는 것은 이미 많은 영화들에서 행해지며 이것은 순간적인 재미를 주는 영화의 문법중 하나이다
한단어로 정리할순 없지만 이 직후에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 관객에게 순간 오해를 시키고 그직후에 다시 알게 함으로써 영화의 스토리와는 다른 재미를 첨가 시키는 것이다
 
<고개를 숙인 하나에게 다가온 앨리스가 실연이냐 묻자 하나는 그저 사진기를 든다>

하나와 앨리스 전반에 나오는 이러한 귀여운 장면들은 이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 영화에서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장면들만을 따로 모아 이야기 해보겠다



<씨네마틱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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