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젠슈타인이 주장했던 몽타주는 컷과 컷의 충돌로 인한 새로운 뜻이었지만 사실 내 생각에 현대에서는 씬과 씬을 넘기는 하나의 표현 양식으로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한다. 특히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에서 이런 몽타주 기법이 자주 사용된다.

<카메라가 틸트다운되어 끔찍한 사체가 보여지고 곧 생고기의 컷으로 편집된다>

위의 두컷을 보자. 연속된 이 두컷의 경우 전혀 상관 없는 서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위의 컷이 연쇄 살인범에 의하여 살해당한 피해자 여성의 사체이며 이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 살인의 잔혹함과 피해여성에게의 동정을 일깨우고 있다.
그리고 밑의 컷은 그저 그들이 백광호에게 미안해서 그의 집에 찾아가 고기를 좀 팔아주는 장면일 뿐이다.

하지만 굳이 고기집에서의 첫 장면이 고기집 간판인 설정샷이 아니며 백광호를 찾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습으로 시작되는 것도 아니다. 고기가 얹어지는 모습이 먼저 등장한다. 사실 영화의 극적 맥락을 생각하면 고기를 먼저 보여주는 것보다 설정샷이나 백광호의 모습부터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봉준호는 시체와 생고기를 연속으로 보여줌으로써 연관지어진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것이 바로 몽타주 기법이 아니겠는가..

끔찍한 사체를 본 직후에도 고기를 구워먹는 형사들의 무신경함을 비꼬는 장면일수도 있고 우리가 먹는 생고기와 마찬가지로 한 인간의 목숨도 너무나 쉽게 사라진 다는 상징일수도 있다. 또는 단순하게 그저 사체와 생고기의 이미지의 유사성으로 인한 편집일 수도 있다. 2009/05/06 - [video grammer] - 영상문법 - 장면 유사의 몽타주 <노킹 온 헤븐스 도어, Knockin on heavens door> 에서 처럼 말이다.

아무튼 오직 이 몽타주를 위해서 백광호의 아버지가 고기집을 운영하고 있는 설정으로 잡았다는 생각도 든다. 영화에서 이 장면 이외에는 백광호의 집이 고기집이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에서도 비슷한 몽타주가 등장한다
아주 먼 거리에 있는 두 씬의 동작을 마치 더블액션으로 편집한 것 처럼...
이전의 씬에서 행한 행동이 마치 연속동작처럼 다음 씬으로 펼쳐지는
그렇게 감독은 중간의 이야기를 생략한다

<마약을 끊으려는 마크는 너무나 심심해한다>

토미를 마약에 빠뜨리고 아이가 죽고 스퍼드만 감옥에 갔다
이 모든것을 마크는 심심하다고 표현했지만 아마 마약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영화는 마크의 1인칭 나레이션으로 흘러가지만 좀처럼 그의 감정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혼자서 심심하다고 장난을 치던 마크는 담벼락위에서 갑자기 다이빙을 한다

<그리고 바로 도착하는 곳은 스와니의 마약가게>

앞의 씬에서의 담벼락과 이 집안이 같은 공간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것은 앞에서 말했듯이 마치 연속편집처럼 보이는 몽타주인 것이다

이것으로 대니보일이 하려는 말은 너무나도 명확하다
그야말로 마크 렌턴은 마약을 하기위해 단숨에 '날아온 것이다'
이 씬이 2009/03/19 - [video grammer] - 영상문법 - rhyme 맞추기 <트레인스포팅>
와 비교되는 점을 찾아보자

라임 맞추기에서 서로 연관성 없는 씬들이 같은 동작으로 맞춰졌다면 이번 장면은 서로 연속된 장면처럼 연결 되어 있다는 것이다

살인의 추억에서 마지막 살인이 일어나고 화가난 김상경이 박해일을 찾아가 문을 열고 다짜고짜 발차기를 날린다 그런데 발차기를 맞은 박해일은 어찌된 일인지 비오는 철길에서 나뒹군다 말그대로 뒤지게 맞으면서 철도길까지 왔다는 표현이다

이것과 똑같이 트레인스포팅에서 표현된다
친구들에 대한 죄책감이 많이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관객이 오히려 먼저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마약을 위해 단숨에 날아온 표현에 어쩌면 관객들은 반가움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에이젠슈타인은 몽타주는 컷과 컷의 충돌로 인해 발생하는 새로운 의미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말그대로 이전의 뛰어내리는 컷과 뒤에 내려앉는 컷이 충돌 하면서 그의 마약을 향한 갈망을 표현하고 여기까지 오게되는 과정의 생략을 통해서 마크렌턴의 머릿속에 오직 '마약'만이 존재 했음을 말한다



몽타주 하면 아는 사람은 모두 알겠지만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이 이론화한 영상 문법입니다
간단하게 뜻을 설명하자면 컷A와 컷B가 충돌해서 새로운 뜻을 창조한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인지 어려운 분들을 위해 가장 유명한 에이젠슈타인의 전함 포텐킨의 몽타주 장면을 설명하면 앉아있는 사자 동상 컷 뒤에 바로 일어서있는 사자동상 컷을 붙입니다
이것들은 독립된 개체로 서로 같은 동상이 아닙니다
하지만 에이젠슈타인은 이것은 결코 일어설수 없는 사자동상(군중)이 일어섰다(봉기했다)라는 의미로 충돌시킵니다

어쨌든 현대 영화에서 대부분의 컷이 충돌이 아닌 화합으로 이루어져있지만 가끔 몇몇 감독들에 의해 몽타주가 - 주로 씬과 씬의 연결에서- 보여지기도 합니다

위의 동영상에 보면 발레연습을 하다가 발목을 삔 앨리스가 아파하자 주변의 동료가 봐주러 옵니다. 그리고 앨리스의 발에 얼굴을 맞아 드러눕습니다
그리고 다음씬에서 병원의 두개골 사진이 나옵니다
영화를 보는이들은 이것을 당연스럽게도 앨리스의 발에 얼굴을 맞은 그녀라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이 장면은 의외로 남자주인공이 기억상실을 진료하기 위해 병원을 찾은 장면이라는걸 곧 알게 됩니다.

<사진A - 얼굴을 감싸고 드러누워있는 발레녀>

<사진B - 병원의 두개골 X - RAY 장면>

영화의 스토리상 발레녀가 얼굴을 맞는 장면은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이후에 얼굴을 맞은 그녀가 어떻게 됐는지 나오지도 않고 이 사건으로 인해 다른사건이 야기되지도 않습니다
익살스럽게도 이어지는 병원씬은 영화의 큰 스토리상 남자 주인공이 내가 정말 기억상실증이 맞는지 의심하는 장면입니다
이 두 장면을 이어붙여서 전혀 새로운 사실을 만들게 됩니다
물론 이것은 감독이 관객에게 던지는 조크같은 훼이크이며 영화에서 크게 작용하는 의미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히 의도한 몽타주라는 것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발레를 하다가 아무런일이 일어나지 않은채 병원씬으로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의 편집보다 지루합니다
결국 이러한 두 쇼트의 충돌로써 얻어낸 효과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스토리 외적인 재미를 줍니다
이것은 스토리 외적인 CG나 액션 장면 같은 효과라고 할 수 있겠죠

이러한 몽타주 기법은 한국영화의 장면전환에도 많이 쓰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에서 시체 부검장면 직후 나오는 생고기를 굽는 장면이나 김상경이 박해일의 자취방에 쳐들어가 발로 찬직후 박해일이 동굴앞에서 넘어지는 시공간 압축 몽타주 또, 올드보에서 이발소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장면의 종소리와 여성이 무릎이 바로 이어지는 회상장면의 자전거의 종소리와 윤진서의 무릎으로 이어지는 몽타주등 으로 쓰여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씨네마틱에 기사화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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