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 영화의 로멘틱 코메디는 인물 소개에 대해서 각별한 신경을 쓴다.
뭐 당연하지만 영화의 첫 씬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 대한 호감을 가지게 결정하는 것이 첫번째 씬이니까.

그여자 작사 그남자 작곡과 비슷한 인물소개를 하고 있다. 그것도 그럴것이 그작사그작곡에서 휴그랜트는 잘나가던 가수였고 이영화에서 여주인공은 유명한 시리즈의 주연배우 그리고 남자는 그 작곡가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남자 주인공이 티비를 보면서 둘의 캐릭터를 설명한다>

영화에서 해야할 설명을 영화속의 TV프로그램을 통해서 대신 설명한다. 이것은 마치 3인칭 나레이션과 같은 효과지만 훨씬더 인위적이지 않은 효과를 낸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방법의 선택은 굉장히 적절해 보인다.

<TV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피터를 통해 그가 마샬을 사랑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렇게 TV프로그램을 통해서 둘의 관계를 소개하고 둘의 직업 등 많은 것을 설명한다. 이보다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까?

TV에 나오는 유명인사라는 점 그리고 둘이 연인이라는 점 둘의 직업까지 모든 것을 1분만에 설명하고 영화는 시작한다. 빠르게 설명하고 있다 왜냐하면 영화는 이별후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둘러서 둘을 이별시켜야 한다.

헐리우드의 로멘틱 코메디에는 배우라던지 유명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제법 많다. 이것은 헐리우드라는 브랜드를 전 세계에 홍보하는 목적도 함께 있으며 로멘틱 코메디를 즐기는 전세계의 관객에게 대리 만족을 시켜주기 위한 가장 극단적인 처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샬의 마지막 대사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죠'가 이 대목에서는 상당히 감동적으로 들리지만 결국 이 영화의 이별의 복선을 말해준다는 것은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그리고 피터는 배트맨마크인지 박쥐인지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다. 이것은 이 당시에는 전혀 의미가 없지만 이후에 피터가 드라큘라의 사랑을 인형극으로 제작하는 것이 꿈인 것을 상징하는 미쟝센이다. 관객들은 전혀 눈치 챌 수 없지만 이러한 세심한 배려들이 영화를 더 풍성하고 입체적으로 만든다.

하긴 굳이 여기서 의상팀에게 무슨 옷을 입힐까요?라고 묻는다면 피터는 드라큘라 인형극이 꿈이니까 배트맨 의상같은거 입혀라고 말하는 것이 감독으로서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재밌고 쉽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영화인 헐리우드의 로멘틱 코메디는 이렇게 처음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화에서 카메라는 무엇인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가상의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한 신의 시점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감독은 이 카메라의 지점을 선택하고 보여주는 지속시간을 조절하여 영화를 조율한다
감독은 신이며 카메라는 그의 시점이다

하지만 때때로 영화에서는 카메라의 시점을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물에 의존하는 경우가 있다 특정인물의 시점샷이 그렇고 스릴러물에 가끔씩 등장하는 cctv 샷이 그렇다 물론 릴리슈슈의 모든것에 나오는 핸디캠 샷도 완전히 처음보는 표현 양식은 아니다

형식의 특성으로 아주 유명한 영화 블레어 윗치에서 대대적으로 도입한 방식이다
촬영의 리얼리티를 위해 사실상 등장하지 않는 카메라로 찍는 것이 아니라 서툴고 거칠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핸디캠으로 촬영하는 것이다
필자가 아직 블레어 윗치를 완벽하게 분석해보질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의 오키나와 시퀀스는 완벽하게 블레어 윗치를 오마쥬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키나와 시퀀스는 모두 핸디캠으로 촬영된다>

이건 사실 놀라운 일이다
영화의 몇십분동안을 토할정도의 흔들림속에서 보여진다는 것이...
현대의 관객이 영화에 상당히 익숙하기 때문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 문체이지만 이 영화가 나왔을 당시에는 그렇게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블레어 윗치처럼 이와이 슌지는 핸디캠을 여러대 장착한다>

핸디캠이 아무리 흔들려도 한대라면 여러 각도에서 보여줄 수 없다
그것을 위해 이와이 슌지는 유이치의 일행에게도 여러대를 그리고 오키나와 여행사의 여직원에게도 한대의 핸디캠을 보급함으로써 촬영의 다각도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역시 이러한 촬영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 핸디캠의 촬영에 모든 것을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모르겠다 실제로 이들이 들고 있는 핸디캠의 촬영본을 영화에 사용한 것인지 아니면 이쪽 컷과 저쪽컷을 나눠서 프로 카메라맨이 촬영한 것인지 (하지만 역시 전자라고 생각한다 후자는 너무나 힘든 방법이며 그렇게 된다면 오히려 노리던 현장감이라는 효과가 반감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사운드의 경우 핸디캠으로는 잡아 낼 수 없는 깨끗한 음질이다 분명히 오디오는 따로 동시녹음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영화의 컷을 보면 같은 각도에서 보여지는 컷인데도 지속되지 않고 점프 컷이 보여진다 동영상의 24초 부근부터를 보도록 하자
오키나와의 도인같은 아저씨가 말하는 장면이 분명히 연속하는 대사인데도 불구하고 중간에 점프컷으로 편집된다 이것은 위의 두번째 사진에서 보여지듯이 아저씨가 말하는 것을 2명이 촬영하고 있다는 데서 얻을 수 있는 편집법이긴 하다
하지만 굳이 그것을 약간의 각도가 틀어지는 점프컷으로 편집 할 이유는 있었을까라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이와이 슌지는 이 시퀀스가 완벽하게 새로운 문체이길 원했다

<여성의 엉덩이를 클로즈업한다>

이와이 슌지는 어째서 오키나와 시퀀스에 이런 촬영과 편집을 감행하는가
영화의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 오키나와 시퀀스는 상당히 중요하다
영화를 전반과 후반으로 가를 수 있는 시퀀스이며 호시노가 변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게 되는 장면이다

그리고 장소 역시 전혀 다른곳 바로 오키나와이다
그래서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곳의 이야기는 고전적 헐리우드 스타일이 아닌(이와이 슌지가 완전하게 그렇지는 않지만) 새로운 문체로 이야기 해보면 어떨까 하고

마치 이 영화의 스토리를 이야기 하다가 이 오키나와의 장면들은 오키나와의 방언으로 이야기 하는 것 처럼 전혀 새로운 문체를 구성하고 있다
이 핸디캠의 사용으로 오키나와 시퀀스는 고전적 헐리우드 스타일이 가져야하는 보편적인 진리들을 모두 버려버릴 수 있다
180도 법칙, 연속 편집, 시점샷과 반응샷,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서 고전적 헐리우드 스타일이 가지는 단점을 버려버릴 수 있다
바로 현대에 와서 영화에 익숙해진 관객이 어쩔수 없이 생각하는 이것은 영화이며 허구일 뿐이다라는 생각을 모두 던져 버릴 수 있게 만든다

결국 핸디캠의 촬영으로 많은 관객들에게는 멀미를 안겨줬을지는 모르지만 기존의 방식이 가지지 못한 현장감을 전해줄 수 있었다 그것은 이와이 슌지가 여지껏 대대적으로 사용하던 핸드헬드로도 흉내낼 수 없을 정도의 파괴력이다
그리고 이러한 촬영법으로 이 시퀀스를 전혀 다른 문체로 표현 한 것이다
마치 초등학생들의 이야기를 채팅용어를 사용해서 설명 하듯이 말이다



북한이 정보의 통제를 통해서 국민들을 통제하고 있다면 자본주의 사회는 다른 커다란 정보를 이슈화 시켜서 국민들을 통제화한다
라는 이야기를 전에 어디선가 들은것 같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서 정보는 바로 우리의 삶을 만든다
옆집 아들내미가 1등을 했기에 나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하며 tv에서 아이돌 가수가 양산되던 90년대말 청소년들의 꿈 1위는 바로 '백댄서'였다
그리고 쉬리를 필두로한 한국영화의 성공은 수많은 청년들에게 영화학도의 꿈을 키우게 했다
어떠한 정보가 우리게게 전달되면 그것은 인간의 삶을 형성한다

이쯤에서 내가 첨부한 동영상을 봐주길 바란다 1분도 안되는 것이니까 꼭 보세요

<피아노 연주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간수를 피떡이 되게 패버리고 있는 제니를 두고 혼자서 빠져나온 크뤼거 할머니
그녀가 걷는 복도의 샷에서 조심스럽게 피아노 연주곡이 시작된다
그리고 간수가 폭행당하는 것을 알게된 다른 간수가 황급히 제니에게로 뛰어가는 모습을 크뤼거 할머니는 되돌아 본다
하지만 사실은 이것은 중의적인 의미이다

<갑자기 멈춰선 크뤼거 할머니의 시선을 따라가면 미친듯이 연주하는 제니가있다>

크뤼거 할머니가 쳐다본것은 표면적으로 뛰어가는 간수였지만 사실은 관객만 들을 수 있는줄 알았던 피아노 연주 소리였다
이럴수가 다시한번 외재적 내재음이 사용된다
2009/02/15 - [영상문법] - 영상문법 - 페이드 아웃, 외재적 내재음 <이터널 선샤인>
2009/02/21 - [영상문법] - 영상문법 - 사운드 복선 <포 미니츠, Vier Minuten>

나는 이번편의 설명을 외재적 내재음으로 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번은 그런 기술적인 효과보다 이야기 흐름상의 효과가 더 컸기 때문이다
내재음과 외재음은 관객 모두 들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차이는 영화의 캐릭터가 들을수 있는냐는 것으로 구분이 된다

첨부한 동영상의 8초 부근에서 피아노 연주가 조그맣게 시작된다
그리고 이 영화를 처음보는 관객은 그것을 외재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크뤼거 할머니의 시선을 따라서 간수들이 잠긴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가면 사실은 제니가 건반에 피를 묻히며 연주한 곡인 것을 알 수있다

무슨 이야기냐?
결국 이순간 관객은 크뤼거 할머니와 동일한 시점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ost인줄 알았던 피아노 연주는 관객만이 들을 수 있어야 하며 크뤼거 할머니는 들을 수 없어야 한다 그리고 감독은 마치 그런것 처럼 피아노 연주가 시작됐는데도 크뤼거 할머니의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연주의 볼륨이 영화의 모든 것을 장악할 즈음에 그녀는 멈춰서고 그녀의 시점을 따라간다

이것은 의도적인 정보의 통제이다
분명 관객에게 이 피아노 연주가 제니가 하는 것임을 미리 알려줄 수 있다
하지만 카메라는 방을 빠져나온 크뤼거 할머니를 따라가고 그녀가 귀에 들리는 이 음악이 제니의 피아노 연주라는 것을 알아채고 나서야 관객에게 알려준다
정보의 전달을 늦춤으로써 순간적으로 관객과 크뤼거 할머니를 동일화 시킨다

이 연출의 의도는 명확하다
크뤼거 할머니가 받은 소름끼치는 충격을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다친손으로 연주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cd에서 흘러 나오는 것 같은 이 연주곡을 관객에게 일부러 ost처럼 느끼게 해놓고 나중에서야 진실을 알려주어 제니의 피아노 실력을 각인시켜주기 위한 연출이다

<OST라는 느낌을 주기 위한 고속촬영>

감독은 아마도 눈치빠른 관객이 이게 제니가 연주하는거 아니야?라고 알아채는 것을 두려워 했는 모양이다
크뤼거 할머니를 지나쳐서 뛰어가는 간수들의 모습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현장음은 전혀 없다 오직 제니의 피아노 연주만이 점점 크게 들려온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은 본능적으로 이 연주를 OST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명백한 영화적 허용이다
슬로우 모션이 보여진다면 영화의 공간에서 울려퍼지고 있는 제니의 피아노 연주 역시 슬로우로 재생되어야 한다
하긴 이것은 제니의 연주가 간수들의 움직임을 슬로우로 보여줘야 할만큼 빨랐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장면의 연출에 대한 조금 다른이야기를 해보자

<2번의 점프컷이 사용된다>

다시한번 첨부한 영상 50초와 55초 부근을 자세히 살펴보자
크뤼거의 시선을 따라 쾌속질주하며 촬영된 장면에 2번에 점프컷이 존재한다
한번은 문을 열고 들어가서 좌회전 할때이며 (50초부근) 그리고 한번은 제니를 제압하는 경찰의 뒷모습에서 제니를 쓰러뜨릴 때이다

이 점프컷은 관객에게 눈치 채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감을 가지고 순식간에 일어나므로 제니를 제압하는 장면에서의 스펙타클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고전적 헐리우드 스타일에서 정석화 되었던 연속 편집의 체계에서 최근의 영화들은 감정의 떨림, 불안감, 과격함, 영화의 리듬등을 위해서 점프컷을 문법화 시켜서 사용하고 있다

나는 프리즌 브레이크라는 미드를 보고 드디어 점프컷이 완전히 상용화 되었구나라고 느꼈으니 이제는 완전한 영화 문법이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