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리부동 - 마음이 음흉하여 겉과 속이 다름' 이라고 한다
사람은 만물에 있어서 겉과 속이 다른 것을 나쁘게 생각한다
이것은 영화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겉이 형식이라면 속은 내용이다 형식은 내용에 맞아야 하며 내용을 더 극적으로 꾸며줄 수 있어야 한다

이터널 선샤인은 SF영화라고 부르기엔 뭐시기 하지만 공상 과학 영화라고 부르기엔 충분하지 않을까?
기억을 지운다는 것은 충분히 과학적인 공상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 훌륭한 스토리와 미쉘 공드리 감독이 만난것이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상'을 표현하는데 미쉘 공드리만한 감독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뮤직비디오들은 하나같이 표현력의 한계에 도전했었다

<이런 표현은 딱 미쉘 공드리 답다>

첨부한 동영상 5초부근부터 나오는 이 장면은 정말로 미쉘 공드리 다운 표현이라는 생각이든다 최근의 기억부터 클레멘타인이 없어져가는 과정의 초반인 이 장면에서 조엘은 없어져버린 그녀를 찾다가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누워있던 그는 시간을 거꾸로 돌려 쇼파에 걸터 앉고 그옆에는 클레멘타인이 나타난다

이장면을 곰플레이어에서 멈춰놓고 F를 눌러서 프레임 별로 보자 세번째 그림을 보면 쇼파에 앉은 조엘만 빼놓고 클레멘타인과 집배경이 2프레임 정도의 디죨브로 나타나는 것을 눈치챌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장면은 조엘이 쇼파에서 옆으로 굴러떨어지는 것을 크로마 촬영하여 거꾸로 돌린후 마지막에 클레멘타인의 촬영과 합성했다고 생각된다
뭐 아무튼 이런 기술적인 문제를 막론하고 미쉘공드리는 영화가 흘러가는 내내 이러한 비주얼적인 표현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마치 뮤직비디오를 보는것 같은 프레임 속의 프레임>

패트릭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여기 다른 누군가가 있다며 찾는 조엘의 장면에서 TV안에 비춰지는 클레멘타인과 조엘의 하반신을 보자
첫번째 장면이 조엘과 클레멘타인을 한 프레임 안에 담기 위해 분할 장면을 하는 느낌이라면 두번째 사진은 마치 그림처럼 치밀하게 구성되어 조엘의 몸을 분절한다
첫번째 사진에서는 별 감흥이 없지만 두번째는 정말로 뮤직비디오에서 많이 보던 느낌이 아닌가 TV에 가려진 조엘의 가슴밑으로의 몸이 TV속으로 들어간 이 장면은 너무나 치밀하여 영화의 내용과 상관 없이 아름다운 샷을 만든다

여기에 여러가지 의미를 굳이 부여하려고 노력해봤다
하지만 이터널 선샤인 영화의 전체적으로 나오는 이러한 비주얼적인 표현 하나하나의  의미보다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맨 처음에 이야기 했듯이 이러한 표현은 몽상적인 내용에 충실하고 그 몽상적 내용을 비주얼적으로 승화시킨 연출기법이다

생각해보자 몽상적인 내용을 아무런 특이한 표현없이 마치 멜로드라마처럼 찍는다면? 물론 그 내용은 이해할수 있지만 확실히 그것은 훨씬 재미가 없게 느껴진다
이터널 선샤인이 정말 좋은 영화인 이유는 내용이 형식에 비해 너무 훌륭하지도 형식이 내용을 너무 오바하지도 않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영화의 대부분의 장면이 '꿈'이라는 점에서 미쉘 공드리 감독이 영화를 연출하기 위해서 얼마나 가슴을 두근거렸을지가 느껴진다

  
내가 아는 사람이 전혀 다른외모로 등장하고 장소는 누구의 마음대로인지 아주 쉽게 변한다 그리고 팔을 파닥거리면 낮지만 하늘을 날 수 있다
꿈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자주 펼쳐진다
꿈은 모든것이 표현될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꿈에서도 자주 나타나는 표현들이 있다

위의 장면은 이미 조엘의 꿈속이다
영화의 기능적으로는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사이를 추적해서 관객에게 보여주는 작용을 하지만 플롯상에서는 조엘이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최근 것부터 지워나가는 과정이다

영화에서는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시간과 장소를 마음대로 조절 할수 있다(제작의 실제적 어려움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때문에 이번편에 등장하는 조엘의 클레멘타인이 자신을 못알아 본다는 이야기는 얼마든지 회상등의 교차편집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미쉘 공드리는 그렇게 평범한 감독이 아니다

<서점을 빠져나오는 조엘뒤로 불이 꺼지고 문을 나서자 친구집 거실이 나온다>

조엘의 이야기의 시작은 분명 교차편집이었다
클레멘타인이 왠 젊은놈과 있었고 나를 못알아 봤다고 이야기하자 카메라는 어느새 서점으로 이동하여 클레멘타인과 조엘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것이 가장 무난한 표현법인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은 달랐다
충격을 받은 조엘이 서점을 나서자 서점의 전등들이 하나둘씩 모두 꺼지고 문을 나서자 바로 친구의 집 거실로 연결된다
이것은 분명 공간의 재구성이다
서점과 친구집의 거실이 문하나로 연결 되있을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교차편집과 이러한 표현양식의 효과의 차이를 생각해보자
교차편집이 조엘의 친구들에게 클레멘타인과의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라면 (물론 관객에게는 실제로 보여주게 되지만) 이것은 친구들에게 마치 실제로 보여준듯한 느낌으로 작용한다
물론 보여줄수는 없다 그건 과거의 일이니까
하지만 이것은 조엘의 꿈이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그것을 보여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서점을 걸어나와서 바로 친구집 거실에 계단에 앉아버린 조엘의 슬픔이 공간의 단절이 없이 그대로 거실로 전해져온다
연속편집을 하더라도 컷은 분명히 상대적인 단절이다
특히 교차 편집은 이곳과 저곳을 거의 동시간대에 보여주지만 사실은 동시가 아니다 교차로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이 한컷으로 미쉘 공드리는 동시에 보여주는데 성공했다

과연 이 한컷을 위해서 세트를 이렇게 만든 것일지 아니면 블루스크린등을 이용한 합성이나 cg를 이용한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한컷을 위해 많은 공을 들인 것은 사실이다

<패트릭의 얼굴을 고의적으로 가린다>

패트릭은 이미 영화의 앞에 나왔다
그것도 조엘에게 도와줄 것이 없냐고 묻는 수상한 남자로
그리고 나서 클레멘타인과의 이런 연인 관계가 드러난다면 관객들이 눈치를 챌것과 그 의미를 찾기위해 혼란에 빠질 것을 배려(?)하여 패트릭의 얼굴을 계속해서 숨긴다
영화의 뒤에도 패트릭의 얼굴은 조엘에게 계속하여 보여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두가지 의미가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관객에게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패트릭은 앞에서 조엘에게 도와줄 것이 없냐고 수상하게 묻는다
그것은 클레멘타인의 집 앞이었으며 관객이 느끼기에 둘은 몬탁에서 우연히 만나 그녀의 집앞으로 온것이다 그리고 이 서점 장면은 관객에게 그 이후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 앞에서 수상하게 나온 남자가 조엘을 잊고 클레멘타인이 새로 사귀는 남자라는 연관성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의미는 바로 조엘의 꿈속이기 때문이다
이 꿈은 조엘의 클레멘타인의 기억이다 때문에 패트릭, 그리고 병원의 몇몇 사람들은 얼굴이 뭉개져서 나오기도 한다
클레멘타인을 지우기 위해 들어간 기억 속에는 이들의 기억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엘은 이 젊은남자를 모르기 때문이다 모르는 남자기 때문에 얼굴도 기억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꿈에서는 의도적으로 얼굴이 계속해서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실제로 나중에 기억을 지워달라고 찾아간 병원(?)에서 서류를 떨어뜨리고 뒤돌아 보는 패트릭의 얼굴은 뭉개져있다
이것은 극히 주관적인 조엘의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은 조엘의 꿈이고 그는 패트릭의 존재는 기억하지만 얼굴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에게는 패트릭의 얼굴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왠 젊은남자라고 말할 정도의 이미지면 충분하다

그리고 관객에게도 동시에 적용되는 것이지만 여기저기서 나오는 그의 얼굴로 인해서 흩어진 스토리의 조각이 맞춰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장면은 둘다 기억을 잃고 몬톡에서 만나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되는 장면이다
조엘에 대한 모든 기억을 잃은 클레멘타인은 또다시 그를 얼어버린 호수위로 데려온다
이 장면은 내가 굳이 이러저러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될만큼 명확하고 아름답다
영화의 구도란 그 안에 나오는 피사체와 펼쳐지는 이야기와 관계 없이 특정한 느낌을 주게끔 설정 될 수 있다
그것이 미쟝센 - 구도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얼음위에 나란히 누운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프레임의 한가운데도 가장자리도 아닌 오른쪽으로 약간 치우쳐진 곳에 살짝 대각선으로 틀어져 누워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 무엇이 크게 충격을 줬는지 한 포인트로부터 얼음은 사방으로 균열이 가있다
그 포인트는 마침 그들의 발 끝과 비슷한 라인 위치에 있으며 서로의 위치를 방해하지 않고 아주 잘 어울리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아마 한폭의 그림일 것이다
얼음위에 누워있는 둘의 그림을 아름답게 그려보라고 한뒤에 그대로 만들어서 찍은 것이 아닐까
얼음의 깨진 균열이 마치 눈의 결정같은 모양을 하고 있으며 위에서 무거운 것이 떨어진듯이 보아 이것은 제작진이 고의적으로 만들어낸 균열일 것이다
이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기 위해 몇번이고 실험해서 만들어냈을 것이다
가만히 보면 조명도 그들의 주위에는 약간 어둡게 들어간다
마치 하늘의 달빛이 그들만 비춰주듯이 불공평하게 들어간 조명으로 이 그림을 더 집중력있게 한다

<카메라는 살짝 그들의 머리위로 움직인다>

둘이 눕고 처음에는 그들이 프레임의 아래위 딱 중간에 위치한다
하지만 천천히 카메라가 움직여서 그들은 적당한 헤드룸과 발밑의 공간을 가지게 된다
처음의 둘의 대화에는 천천히 무빙을 주다가 원하는 그림을 만들어 낸후 카메라는 멈추게 된다

한가지 해석을 덧붙이자면 얼음위의 균열은 둘사이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한번 깨져버린 둘의 관계를 기억하지 못하는 둘처럼 그들은 금이간 얼음위에 누워있는 것이 아닐까
나중에 나오는 처음으로 이곳에 왔던 기억이나 호빗과 클렘의 장면에서는 이렇게 아름다운 샷도 얼음의균열도 보이지 않는다
균열이 생겼지만 그위에 안전하게 누워있을수 있듯이 그들의 사이도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메타포를 전달하려고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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