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왜 재미있는지 어느부분이 훌륭한지 이야기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건 오랜만이다..
주인공 한병태의 왼쪽에서 웃고 있는 이 바보(이 표현이 비 도덕적일 수도 있겠지만 영화의 이해를 위해 간단하게 이렇게 표현하고자 한다)가 바로 김영팔이다
그럴듯 하게 썼지만 이 한병태라는 캐릭터야 말로 주인공 답게 상당히 입체적이고 바보 같다
영화가 시작하면 어른이 된 한병태는 대학 교수가 되어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가 가르치는 내용은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자유를 빼앗겨 왔다는 내용이다
이 첫번째 씬을 통해서 감독은 한병태의 '자유로의 갈망'을 표현한다
사실상 이 영화에서 한병태의 직업은 중요하지 않다 아니 그렇지 않다 굉장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단순한 과거의 추억담이 아니라 한 인간의 트라우마를 넘어서 시대의 패러다임을 이야기 하고있다
2009/01/11 - [video grammer] - 영상문법 - 이야기를 시작하는 방법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참고하자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 한병태가 직장을 그만두고 (어떤 권위적 상관관계를 벗어나) 대학에서 자유를 가르치는 것은 상당히 캐릭터의 일관성과 깊이를 더해준다
아버지의 좌천으로 시골로 이사오게 된 한병태는 급장 엄석대의 부름에 응하지 않는다
체육부장에게 패대기 쳐지고 쉬는시간에 싸운 아이들을 선생님 처럼 체벌하는 급장의 모습을 보며 위화감을 느낀다
영화에서 한병태가 느낀 이 위화감을 전학갈때 받은 미국동전으로 상징화 하고 있다
서울학교에서 마지막으로 여학생에게 받은 것은 바로 '자유의 여신상이 새겨진 동전이다'
이런 상징으로 서울의 학교를 '자유'로 엄석대가 통치하는 이곳을 독재권력으로 표현한다
상당히 비약적이지만 이 영화는 전혀 군더더기가 없는(때로는 컷구성이나 정보가 부족하지 않나 느낄정도로) 날카로운 이야기다
그리고 이 한병태의 캐릭터는 바로 자유의 갈망, 절대 권력에 대한 저항심으로 표현된다
점심시간에 돌아가며 급장의 식수를 떠다바치는 행위에 거부감을 느낀 한병태는 저항한다
이것은 한병태와 엄석대의 첫번째 싸움이다
엄석대 분석에서 자세히 이야기 하겠지만 한병태는 이 싸움에서 완패한다
급장의 권력을 느낀 한병태는 그저 말을 듣지 않는 것도 여의치 않자 건의함을 만들기를 건의한다
하지만 이것은 민주주의식 거수투표의 결과로 처참히 묵살당하고 또다시 청소시간에 책상이 무너져내리는 무언의 협박을 당한다
이 장면이 상당히 놀라운데 설정상 이들은 초등학교 5학년이다
12살의 아이들이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책상밑을 청소하는 아이 위로 책상을 밀어 넘어뜨리는 상당히 과격한 응징 이것이 바로 이 시대의 야만성이다
저항하는 것도 건의해서 학교에 알리는 방식도 안되자 한병태가 생각한 것은 매수(?)다
정정당당한 민주주의의 투표에 의해 건의함 건의가 무효화 되자 그는 저금통을 깨서 4명의 아이를 매수한다
써커스구경(이것은 엄석대가 칼리굴라 황제처럼 민중들을 다스리기 위해 던져주는 당근의 하나다)에 제외된 4명의 아이를 데리고 극장구경과 짜장면을 사준다 그리고 고급 연필도 선물한다
명백한 뇌물이며 매수이다
초등학교 5학년에게 무슨 높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거냐라고 말하겠지만 이것이 자유를 수호하는 방법이었다
권력으로부터 독재로부터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불가능했다
결국 다음날 학교에 가니 바보 영팔이 빼고는 모두 연필도 빼앗기고 한병태는 선도부에 끌려가 얻어 맞는다(극장 구경이 당시 초등학생에게 교칙위반)
엄석대가 없는곳에서 한 그의 저항의 움직임도 바로 제압당하고 만다 압도적인 힘에 의해
이쯤에서 한병태는 정말 답답함을 느꼈을 것이다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고 사실상 엄석대는 한병태를 나서서 괴롭힌 적은 한번도 없다 오직 합법한(악법일지라도) 절차에 의해서 자신의 저항이 규제당하고 만다
영화의 초반 한병태는 여기보다 훨씬 큰 학교에서 거의 1등을 했다고 한다 그만큼 공부에 자신있었던 그는 결국 공부로 승부한다
일단 매수고 저항이고 간에 자신의 입지를 살리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시험이 끝나고 자신만만해 하는 한병태의 표정을 보라
하지만 결과는 엄석대 1등 한병태 11등
또다시 압도적으로 패하고 만다
사실 이 장면은 좀 의아하다
엄석대가 반 아이들에게 한과목씩 적선을 받아 전교1등을 하는것은 놀랍지 않으나 서울에서 1등하던 한병태가 11등을 한것은 왜일까? 쓸데 없는 정보는 주지 않지만 영화에서 필요한 중요내용은 단 한컷이라도 보여줬던 이 영화에서 이 부분 만큼은 관객들의 상상력에 의존한다
영화의 맥락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엄석대와의 싸움에 신경쓰고 매번 패하느라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성적이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6학년이 돼서도 새로운 김선생님의 말을 들으면 한병태는 2등은 아니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부정적으로 이장면을 보면 주인공의 완패라는 느낌을 위해 11등이라는 등수를 준 것은 아닐까
영화속 엄석대와 한병태의 싸움은 늘 압도적인 결과를 보였다 때문에 이 에피소드 역시 그래야만 이후에 나오는 한병태의 무력감 패배감 등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번째로 다른 해석을 해보면 한병태는 주변에 휩쓸리는 타입이라는 것이다
권력을 싫어하더라도 요령있는 사람들은 대충 맞춰주면 된다
사실 한병태는 이 영화에서 급장 물만 떠다주면 됐다 그정도의 굴복으로 자신이 하고싶은 생활은 마음껏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요령이 없는(처음에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강사를 하는 것을 보라) 사람인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자
그는 절대 권력 위의 권력(담임선생님)을 동원해 엄석대의 왕국을 무너뜨리려 한다(신라가 삼국통일을 위해 했던 방법정도?) 엄석대가 친구들을 물건을 빼앗는 것을 고자질(신문고도 고자질이라면)한다
하지만 이 방법 역시 완벽한 감시체제와 엄석대의 빠르고 정확한 대응으로 완패하고 만다
그리고 영화의 중반 가장 중요한 씬이 등장한다
엄석대와 친구A의 기차 담력 싸움 우연히 이것을 목격한 한병태는 싸움에서의 패배감 무력감 좌절감을 넘어 엄석대를 동경하게 된다
위의 스샷들과 아래 스샷을 보면 명확한 차이가 있다
바로 한병태의 머리스타일과 흰색 카라
계속해서 흰색 카라를 입는 한병태에겐 서울에서 온 좀 사는 아이라는 느낌이 강했고 상고머리역시 까까머리 사이에선 제법 도시적인 느낌을 줬다
이 흰색 카라가 한병태의 자존심이었으며 자유로의 갈망이었으며 때묻지 않은 순백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담력 싸움을 목격한 한병태에겐 더이상 지켜야할 자존심도 자유로의 갈망도 없다
그저 이 독재의 시스템에 동화되어 절대적 카리스마로 존재하는 영웅 엄석대와 친해지고 싶을 뿐이다(이부분은 캐릭터부여의 미쟝센으로 칩시다)
상고 머리와 흰색 카라를 버린 한병태는 더이상 급장의 식수당번을 거부하지 않는다
스스로 뛰어가 급장에게 만년필도 갖다 바친다
이런 완벽한 굴복의 모습에서 어른이된 한병태의 나레이션이 깔린다 '굴종의 열매는 달았다'
요령없이 주변에 휩쓸리는 한병태는 엄석대라는 군주를 만나 NO.2의 위치를 차지한다
자신이 힘들때 몰래 훔쳐보던 소녀도 소개받고 엄석대와 함께 술을 마신 그는 서울에서 받았던 자유의 상징을 불속에 던진다
이 장면은 정말 괴롭다
옳지 않은 독재에 저항하다 무릎꿇고 그에 순응하여 자신이 믿었던 자유의 가치를 내던져 버린다
그도 그럴것이 말해보자면 역사적으로 무엇이 옳은가? 역사적으로는 승자가 옳다
흑인이 노예였던 시절 노예제도는 당연했으며 자유시장경제가 지탄 받을 당시 마르크스를 필두로한 공산주의가 세계 곳곳에 퍼졌다 하지만 결국 다시 민주주의가 패권을 잡았기에 우리는 자유와 민주를 옹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시기의 한병태에게 이미 자유와 민주주의는 없다
절대적인 독재 권력앞에서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일 뿐이다
누구나 완벽한 세상에 대해서는 쉽게 말할수 있다 누구도 해를 끼치지 않고 모든 자원이 풍부한 하지만 현실 가능성이 없는 그것은 개소리만도 못하다
이 시점의 한병태에게 이미 자유와 민주주의는 개소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NO.2가 되어 잘지내던 한병태에게 6학년이 되어 새로운 담임 김선생(최민식)이 이 절대왕정을 무너뜨린다
우습게도 한병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저 올바른 한명의 절대 권력자에 의해 오래된 왕조는 아무힘도 써보지 못하고 몰락한다
엄석대와 시험지를 바꿔준 친구몇을 체벌하고 김선생은 아이들에게 묻는다 엄석대의 잘못을 말하라고
출석 번호순대로 모두 신이나서 자신이 당해왔던 것을 고해바치고 끝에는 꼭 '저 새끼 진짜 나쁜새끼에요'를 붙인다
오랜동안 엄석대의 NO.2였던 체육부장 마저
하지만 한병태는 자신의 차례에서 아무것도 말하지 못한다
이 장면이 의미하는 한병태의 심리는 무엇일까 그는 어떤 기분으로 다른 아이들처럼 엄석대의 잘못을 고하지 않는가?
첫번째로 그는 권력에 대한 저항심을 가지고 있다
김선생님이라는 권력에 의해 무너진 왕국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다 자신이 스스로 싸워서 쟁취하지 않은 승리에 대해 기뻐할수만은 없다
혼자서 힘들게 싸워왔던 시간이 생각나서 아까워서는 아닐것이다
그저 엄석대라는 권력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듯이 김선생이라는 새로운 체제를 받아들이는 것이 한병태에겐 힘들었으리라
잊었던 첫사랑이 갑자기 찾아왔는데 나는 이미 결혼해 있는 느낌이랄까?
이제와서 왜 이래?
결국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두번째로 그는 엄석대를 친구라고 생각했다
카리스마에 반해서 굴복했지만 엄석대는 한병태를 NO.2의 자리에 앉혀주었다? 이것은 어째서일까? 엄석대의 분석에서 이야기 하겠지만 권력자는 권력의 개와는 친구가 될 수 없지만 자신을 끌어내리려는 자와는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권력에 굴복하는 자는 부하지만 열심히 싸운자는 적이라는 이름의 동등한 사람 아닌가?
물론 엄석대의 완승으로 끝났지만 그런 의미에서 한병태는 진짜 NO.2였으며 가장 엄석대와 가까운 사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말할 수 없었다
영화의 마지막 엄석대가 보낸 화환이 도착하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그를 기다리던 한병태는 홀로 자리를 뜬다
히치콕형님이 현기증에서 선보인것보다 훨씬 러프하지만 이 투박한 영화에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달리의 흔들거림이 한병태의 내적 갈등을...(남자라면 꿈보다 해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