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할 인물은 티제이, 니콜, 히셔, 티제이부, 티제이조모이다
누구부터 어떻게 이야기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영화는 티제이부터 보여주고 있으므로 영화의 순서를 따라가보자
늘상 이야기하지만 영화의 첫 시퀀스는 아주 중요하다
수많은 씬중 어떤 장면을 처음으로 보여줄 것인가? 감독이 선택한 첫번째는 바로 그만큼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특히 옛날 극장에서만 영화를 보던 시대와는 달리 스마트폰 인터넷같이 집중되지 않은 환경에서 영화를 봐야하는 현대의 영화들이 두괄식을 채택한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2009/09/13 - [영상문법] - 영화의 시작 - <귀 없는 토끼, Rabbit without ears>
2009/09/12 - [영상문법] - 헤드라인, 첫씬의 의미 - <포 미니츠, Vier Minuten>
등 이 블로그에 있는 다른 글들중 영화의 첫번째 시퀀스를 다룬 이야기는 많이 있으니 참고 바란다
연역법이 아닌 귀납법으로 티제이의 개인적 우화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영화는
폐차가 된 자동차를 의미없이 쫓아가는 소년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영화의 첫번째 씬에서 보여줄만큼 티제이의 갈망은 대단한 것이다
여기에서 관객에게 보여지는 정보는 티제이의 깁스, 폐차직전의 자동차, 그리고 티제이의 열망이다
깁스와 자동차는 그가 얼마전 사고가 났다는 것을 말해주지만 이러한 이유로 영화의 첫번째 시퀀스가 이장면이 된 것은 아니다
바로 티제이의 캐릭터 성격을위해 이 한씬을 첫번째로 선택한 것이다
티제이는 아직도 과거에 얽매이고 있다 하지만 열정을 가지고 있으며 방향이 잘못 되었을 뿐이지 문제를 타개해나가려는 의지와 행동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티제이의 성격은 다른 등장인물과 계속 비교가 될 것이므로 이야기는 다음으로 넘어가자
히셔의 캐릭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 골라봤다
다른 장면들은 히셔의 분노등의 감정으로 생기는 에피소드지만 이 장면으로 감독은 영화 초반 히셔의 캐릭터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채널이 4개만 나온다는 것은 티제이 가족의 궁핍으로 볼수도 있지만(사고장면을 보면 그것은 아닌것 같다) 티제이부의 약한 의지와 행동력을 암시한다고 보여진다(티제이나 할머니는 의지가 있더라도 채널을 더 신청하거나 하는 방법들을 모를테니)
히셔는 다르다 남의 집이지만 자신이 티비를 봐야한다고 생각하면 바로 행동한다
그것이 불법적이라 하더라도(사실 대부분은 불법적 행동들이라서 문제가 되지만)
이 영화의 제목이 히셔인 이유다
아내와 어머니, 며느리를 잃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살아가는 한가족에게 행동력만으로 똘똘뭉친 괴상한 남자가 나타나 휘저어 놓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영화가 끝날무렵 그 의지를 배운다
니콜은 교통사고 상황에서 자신을 구해준 히셔에게 불평한다
나쁜일은 액땜한다 하지만 연쇄적으로 일어난다고
이렇게 자신에게 생기는 일들을 운명적이라고 믿고 살아가는 니콜이 짜증났던 히셔는 갑자기 무의미해 보이는듯 한 음담패설을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외친다 모두가 승리자라고
이 장면에 대해서는 따로 자세히 이야기 하고 싶다
그리고 니콜은 어린 티제이에게 또 불평을 늘어놓는다 일한지 1년이 됐는데 주당 근무를 15시간에서 늘려주질 않아서 집세도 낼수가 없다고
단순히 생각해보면 뭔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니콜은 그저 뒤에서 불평하고 돈없다고 참으며 살아갈뿐 현재 상황을 타개하려고 하지 않는다
노동청에 신고하거나 매니저와 상담해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저 알아서 자신의 근무시간을 늘려주길 바라며 뒤에서 불평하며 힘들게 살아갈 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히셔에게 반한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의지로 똘똘뭉친 히셔에게 쉽게 몸을 허락해 버린다
옛날 어느 만화책에 이런대사가 있었다
'잃은 자식도 중요하지만 살아있는 자식도 똑같이 귀하다. 그래서 슬퍼하고만 있을수가 없다'
티제이아빠에게 딱 해주고 싶은 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마음이 회복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가기싫어하는 아들을 억지로 끌고가서 별 도움되지도 않는 동병상련을 느끼고 있다
물론 이러한 치료법이 미국에서 효과를 입증하고 있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티제이가 엄마를 잃고도 학교를 다니듯이 그는 아내를 잃어도 일을하고 노모와 아들을 챙겼어야 했다
이것이 그가 의지가 약한 쓰레기처럼 비춰지는 이유이다
히셔가 유독 그를 싫어하는 이유가 있다
그는 혼자가 아니다 아내가 있었고 아들과 늙은 어머니가 있다
혼자슬퍼하고 좌절할 시간따위 없다
히셔는 혼자 지낸다 아마 이런 책임을 떠 앉는것이 싫어서 일 것이다
그것이 싫어서 혼자 지낸다는 것은 책임이 생기면 져버릴 수 없는 사람이란 것이다
그래서 히셔는 자신의 책임을 져버리고 있는 티제이부를 보며 화를낸다
영화의 초반 할머니는 무의지적 존재인 아들과 의지를 내비추는 아들사이에 있다
미쟝센에서 거의 처음으로 이야기하는 인물구도를 생각하면 단순히 갈등의 중재자 역할로 보여질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캐릭터에 관한 깊은 성찰이 있다
히셔가 들어오고 나서도 여전히 티제이와 아버지는 멀리 떨어져 앉는다 할머니의 반대편에 히셔가 생겼을뿐 변한 것은 없다
이런 미쟝센으로 인해 감독은 계속되는 티제이와 아버지의 갈등
그리고 그 중간에 자리잡은 히셔와 할머니 사이의 동질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히셔는 뱀과 쥐이야기를 한다
결과적으로 그의 이야기는 잡아먹혀야할 쥐가 뱀을 제압한다는 이야기이며 이것은 그의 성격을 그대로 나타낸다
그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싸워야할 존재라고 믿는다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자신의 마음대로 싸워이겨 길들여야 하는 것이다
반면 할머니의 유언처럼 되버린 비내리는 이야기는 그녀의 한층더 성숙된 인생관을 들여다보게 한다
살다보면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싸워이기는 방법도 있지만 그저 그것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방법도 있다는 것이다
비를 피해서 처마밑에 서있을수도 있고 비를 맞으며 걸어갈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을 길게보면 상관 없다 어떤 방법이 맞을지는 상황에 따라다르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녀가 보면 히셔는 아직 어리고 능숙하지 못하다
하지만 그녀와 히셔는 자신에게 처한 상황을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공통적 의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히셔는 그녀와 친해진다
그래서 그녀는 히셔를 좋아한다
영화에서 단순히 아무런 이유없이 히셔와 할머니를 친하게 보여주는것이 아니다
괜히 히셔가 할머니의 산책을 함께가라며 티제이에게 화내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의 제목은 '히셔'다
인물의 이름을 제목으로 선택하는 영화는 당연하게도 캐릭터 중심의 영화다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성격은 다른 장르의 영화보다도 입체적이며 이해하기 어려울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이런 영화의 전부다
제목이 인물의 이름인 영화에서 캐릭터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떤의미를 찾을수있을까?
며칠전 히셔가 꽤나 통렬한 영화라고 친구에게 추천했다가
감독의 허세가 작렬한다는 평을 들었다
나는 니가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안되서 그렇다고 이야기햇지만 어쩌면 관객이 이해못할 캐릭터를 만든 것은 감독에게도 책임이 있다
때문에 나도 이 영화를 처음봤을때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으며 네이버 리뷰에 때론 불만스러운이야기들이 있는것이다
하지만 좋은 영화라는건 언제나 쉽게 눈에 띄지 않는법이다
누가봐도 재밌는 영화라면 딱봐도 알기쉬운 캐릭터라면 어떻게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할수 있겠는가?
히셔 조셉고든래빗 나탈리포트만 영상문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