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12 - [영상문법] - 헤드라인, 첫씬의 의미 - <포 미니츠, Vier Minuten>에서 영화의 첫번째 장면은 엄청나게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된다는걸 영화 '귀없는 토끼'는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는 마치 영화의 첫장면을 누가 기억하냐? 그러니까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소리만 지껄이면 될 것 같다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영화는 시작하자 마자 아주 심오한 대사들이 나온다>

영화가 시작하자 마자 보여지는 빌딩위로 나오는 말은 '전에는 예술 영화만 했어요'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러저러한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는 말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카메라는 그 빌딩안으로 들어가 등장인물을 찾아준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이 대사들은 전혀 의미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이 대사를 하는 위르겐의 캐릭터를 설명하고 있으며 이후에 벌어질 위르겐과 틸 슈바이거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복선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하지만 굳이 빌딩 밖에서 부터 울려퍼지는 이 대사를 설정한 이유는 알수 없다. 처음부터 위르겐의 얼굴부터 나왔다면 어땠을까? 감독이 원한것이 그저 이후에 나올 위르겐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을 조금더 유예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 영화는 위르겐의 이야기일 수도 있으며 바로 틸 슈바이거가 하고 싶은 말일까?>

전에는 예술 영화만 했다. 감독이며 자신이 주인공인 틸 슈바이거가 이런 대사를 넣은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일까? 사실 영화를 하는 사람은 거의 누구나 예술부터 시작한다. 대체 왜그런지 모르겠지만. 특히 독일인인 이 사람들은 우리나라 보다도 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문화적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우리나라에서도 영화 공부는 상당히 예술적인 경향으로 치우쳐져 있다.

이 영화 귀없는 토끼에서는 영화의 시작에 영화 내적인 의미를 전혀 부여하고 있지 않다. 물론 이후에 나오는 위르겐의 인터뷰 장면은 이후에 틸슈바이거를 엿먹이기 위한 그의 함정이었으며 그로 인해 나중에 슈바이거가 안나를 죄책감없이 그에게서 빼앗아 올수 있는 감정적 근거를 마련해준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대사가 엄청나게 많이 나오는 첫장면의 경우 감독은 수많은 대사를 버릴 것을 각오하고 시나리오를 써야한다. 왜냐하면 영화의 첫 대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기억하는 관객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말을 앞뒤 문맥상 이해하고 기억한다. 하지만 영화의 첫 장면은 앞의 문맥이 없기 때문에 상당히 이해하기가 힘들다.  때문에 고전적 헐리우드 스타일의 영화에서는 항상 설정샷을 통한 많은 설명 이후에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틸 슈바이거가 기자라는 것. 그리고 위르겐이라는 배우를 취재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위르겐이 병신같이 성형 수술을 했다는 정보만 알려주면 된다. 하지만 위르겐의 성형 이야기는 영화가 시작되고 1~2분이 지나서야 본격적으로 이야기된다.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으로 사실상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설정한 장면이지만 앞에 관객들이 충분히 이들의 관계를 납득할 시간을 벌어줄 대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대화에 틸 슈바이거 감독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넣은 것이 아닐까? 아무튼 영화의 첫장면에 복선과 상징을 넣는 연출이 아니라 이렇게 수많은 대화로 이루어진 영화도 적지 않다.

관객에게 영화에 몰입할 시간을 주는 첫장면을 상징으로 할지 구체적인 정보로 할지는 선택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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