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12 - [영상문법] - 액자식 플롯 구성 -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의 구성과 상당히 비슷하지만 이번엔 왠지 액자식 구성이라고 쓰고 싶지 않았다.

이번 포스팅의 제목의 이유는 영화의 이야기가 전체적인 언어유희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제목에 등장하는 집오리와 들오리. 그것의 차이에 대해 영화에서는 단순히 원래 일본에 있던것과 외국에서 들여온 차이라고 말한다. 마치 똑같은 오리에 대한 언어유희인 것처럼. 그리고 도르지는 서점에서 책을 훔쳐야 하는 이야기의 전반에 대해서 언어유희를 한다. 살짝 주인공만 바꿔서.

<영화의 첫번째 씬은 마치 유주얼 서스펙트의 그것같다>


유주얼 서스펙트에서 처음에 카이저 소제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것처럼 여기서도 상당히 인상깊은 대사를 날리지만 그 둘의 얼굴은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똑같은 상황과 대사를 이후에 관객들에게 보여주며 아 이것이 영화의 첫번째 장면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하게 속이려는 의도는 없었다. 감독은 단지 비슷한 장면을 통한 언어 유희를 할뿐이다.

<도르지와 시이나의 씬은 밤이다>


똑같은 대사와 비슷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영화의 초반에는오히려 관객이 눈치채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강렬한 색채의 노을을 배경으로 촬영되었다. 일부러 관객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어서 이후에 나오는 도르지와 시이나의 서점을 터는 씬이 전에 본것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해주기를 바라는 것 처럼..

하지만 영화를 보는 사람 입장에서 이것은 쉽지 않다. 영화의 첫씬의 노을은 느낌으로 남아있을지는 몰라도 대사에 집중하느라 모든것을 기억할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관객들은 감독의 언어유희에 속아 이 장면을 처음의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후에 모든것이 밝혀지고 이 두장면은 도르지가 가와사키를 카피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상당한 카타르시스로 작용한다. 그것은 이 영화의 전반적인 이야기가 도르지와 펫숍의 점장의 입을 통해서 전달이 되고 그것들은 마치 언어유희처럼 도르지와 가와사키의 배역만이 바뀐채 모든것이 정확하게 똑같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것처럼 처음의 장면과 도르지가 자신의 대역으로 찾아낸 시이나의 장면이 겹쳐지며 영화의 전반에 걸쳐 펼쳐지던 모순된 이야기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이후에 가와사키가 쓰러져서 실패하는 첫번째의 장면을 다시 보고 느끼는 것이긴 하지만..

그리고 두장면을 보면 알수 있지만 가와사키와 갈때도 시이나와 갈때도 도르지는 항상 앞서있다. 이것은 누구보다도 코토미에 대해 복수하고 싶었던 도르지의 마음을 표현하는 인물 배치의 미쟝센이라고 보여진다. 가와사키가 시켜서 어쩔수 없이 했던 도르지가 아니라 누구보다도 먼저 뒷문으로 가서 이번에는 도망가지 못하게 하고 싶었고 다시한번 시이나와 그곳을 갈때 역시 갑자기 뛰쳐나가면서 자신의 흥분된 모습을 표현한다.

이 옆방의 옆방으로 언어유희를 시도한 도르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계속 '부탄인'에 대해 이야기하니까 그리고 그것은 영화 감독이 관객에게 행하는 언어유희와 똑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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