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소개한 릴리슈슈의 모든것의 아오이 유우가 강가에 뛰어드는 은유적 장면이 그녀가 등장한 직후의 장면이라면 이것은 그녀의 마지막 장면이다

간단하게 이야기해서 지나가다가 하늘을 나는 연을 보고 행복하게 웃는 장면은 분명 굉장히 반어적이다

왜냐하면 그 직후 아무런 말도 없이 그녀의 자살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녀의 밝게 웃는 장면은 그녀의 감정에 대한 확실한 반어법이다>


영화의 스토리상 그녀가 죽는다는 징후는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나중에 생각하면 그녀가 주인공을 좋아하고 주인공이 자신과는 다른 강한여성을 좋아한다는데 있어서 아마 삶의 희망이 없어 자살을 결심한다고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때문에 관객들에게 보여지는 연을 날리는 장면은 단순히 희망적인 내일을 추측할 수 있게도 만든다 하지만 이것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기쁨과 행복뒤에 보여지는 죽음 장면의 암시일뿐이다

 내가 이것을 반어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 장면이 영화의 앞뒤를 모르고 보는 사람에게 있어서 단순히 즐거운 장면으로 비춰진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반어적 표현 직후 아오이 유우의 자살 장면이 나오는데 나는 이것을 강조라고 본다.

<그녀의 자살한 모습위로 철조망에 묻은 그녀의 피가 보여진다>


이것은 '그녀가 투신 자살했다'라는 사실만의 강조인 것이다

감독은 그녀가 왜 자살했는지 말하지 않았다 추측은 할 수 있겠지만 확실하게 그녀의 입으로 듣는것이 아니다

하지만 '자살'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유가 있을까

때문에 이와이 슌지 감독은 그녀의 자실 이유와 자살 과정을 통해서 슬픔을 전달하기 보다는

단순히 그녀의 '죽음'만을 전달하여 그녀가 자살했다라는 '사실'만을 강조한다

 <그녀가 날리는 아름답게 나는 연은 그녀를 투신자살로 몰고간다>

이렇게 강조된 사실은 주인공 남자에게 영향을 끼치고 이후 주인공이 중요한 행동을 하는데에 있어서 중요한 하나의 이유가 된다

 

이러한 문맥을 말로 정리해 본다면 그녀는 강간을 당하고 원치 않는 원조교제를 하는 슬픈 인생을 살다가 연을 날리며 행복해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그렇지만 그녀는 결국 '자살'을 선택한다라고 말할수 있다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되었을때 그 누구도 그녀의 자살의 이유에 대해서 의문을 품을 수 없으며 단순히 그녀의 죽음만이 강렬하게 다가오는 법이다

이와이 슌지는 이렇게 말로써 강렬하게 다가오는 문법대로 촬영하여 그녀의 죽음을 우리에게 강인하게 심어준다


하지만 이 반어와 강조가 누구나 알수있게 명확한 이유는 바로 이전이 씬들을 통해서 그녀가 자살하는 이유를 은유적으로 모두 설명해 놨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당시에 이야기를 들을때는 모르지만 이후에 아오이유우의 죽음을 목격했을 때 왠지 모를 이해를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이 영화의 디테일의 힘이라고 보여진다.

내가 문법을 좋아한다거나 잘하는건 아니었지만 이것은 생각난다영어에서 강조문은 문장의 제일앞에 강조하고 싶은 단어가 나온다는 것

 

이런 형식의 강조를 하는 영화들이 꽤있다

온통 은유로 뒤덮인 영화 '아무도 모른다'도 마찬가지이다

 

이 영화의 타이틀 시퀀스는 핑크색 캐리어를 가지고 전철을 탄채 어디로 가는 누더기 꼬마 남자애와 얼굴이 확인되지 않는 여자가 아무말도 없이 흔들리고 있는 씬이다

<핑크색 캐리어를 들고있는 소년과 맞은편에 앉은 소녀>


하지만 그 직후 주인공이 엄마와 함께 새집으로 이사가기 때문에 누더기 모습은 잊은채 영화를 보게 된다

<소년앞에 앉아있는 소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도달하면 이것이 엄마가 떠난 몇달간 옷이 찢어지고 씻지못해 더러워지고 그러다 하찮은 이유로 죽어버린 여동생을 우연히 알게된 누나와 공항에 묻어주러 가는 씬이라는걸 알게된다

 영화에서 결말을 내는 이 사건을 제일 처음에 보여줌으로써 병치상의 스토리 강조를 시도하고 있다

또한 이 타이틀 시퀀스에서 주인공의 얼굴보다는 구멍난 티셔츠, 때가 꼬질꼬질한 손으로 캐리어를 어루만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미 초반에 모든것을 보여주고 설명하고 있다


<때가 낀손으로 캐리어를 어루만지고 있다>

<구멍난 옷이 계속해서 보여진다>
 

이 씬이 타이틀 시퀀스에 나오는 이유 또한 은유적표현이라고 보는데

제목 '아무도 모른다'처럼 영화에서 그들은 어머니가 떠나서 어린 아이들끼리 힘들게 살아간다는걸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여동생의 죽음역시 아무도 모른다

아니 그녀가 그의 여동생이라는것 조차 아무도 모른다

이 장면에서 전철안의 사람들은 그들이 누구인지 왜 저렇게 행색이 궁한지 캐리어에 죽은 여동생이 들어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제목, 주제, 앞으로 일어날 스토리의 암시를 모두 담은 이 장면을 타이틀 시퀀스로 배치하면서 이영화는 이렇게 이 장면 자체를 강조하고 있다

 

<이글은 씨네마틱에 기사화 되었습니다>
이번 주제는 아무도 모른다의 깡통 던지기와 같은 은유적 표현에 대해서이다
은유적 표현은 일본영화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것 같은데 바로 여기서 고요하고 숨막힐것 같은 느낌이 창출된다고 믿는다.

아무튼 이 장면은 '러브레터'로 한국에서 굉장히 유명한 이와이 슌지감독의 릴리슈슈의 모든것이라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이와이 슌지 작품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서 다들 꼭 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영화의 여러가지 영화 문법들을 앞으로 소개하려 한다

이번에 소개할 장면은 남자에게 강간당하는 장면을 비디오로 촬영당한 아오이 유우가(물론 이부분의 내용은 영화에서 보여지지는 않는다) 협박으로 인한 원조교제를 하고 그 돈의 일부를 상납받으러 온 주인공앞에서 슬픔을 표현하는 씬이다.
강간을 당하고 그로 인해 또 원치않는 원조교제를 협박으로 인해 해야하고 그 돈마저 빼앗겨야 하는 자신의 더러움을 씻어내고 싶다는 표현일수도 있고 자신에게 지금까지 쌓여져 있는 상황을 씻어내고 싶다는 표현일수도 있다

어느것이든 두가지 모두를 포함하든 이것은 확실하게 은유적 표현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도 모른다에서 설명했듯이 우는것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 슬픔의 직설화법이라면 강가에 갑자기 뛰어들어 진흙탕에 빠지는 아오이 유우의 모습에서 너무나도 큰 그녀의 슬픔을 느낄 수 있다

<강물로 뛰어드는 아오이 유우>


너무나도 슬프고 가슴아픈 이런 장면도 마치 춤을추듯 뮤직비디오처럼 찍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정확한 의도는 모르겠지만 사실 영화를 보면 이장면에서는 관객들은 아오이유우에게 깊이 동감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오이 유우가 등장한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부족하고 역시 같은 이유로 그녀의 슬픔의 깊이를 아직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그녀의 이런 이상한 행동이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만약 그녀가 이 타이밍에 미친듯이 울었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그것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준다면? 나는 조금 부담스러웠을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우는장면을 보여줬어도 이와이 슌지는 그것을 멀리서 롱샷으로 촬영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뒷부분에 가서 파악되는 아오이 유우의 성격상 앉아서 우는것보다 이런 돌발 행동을 하는게 어울린다. 그녀는 약하지만 액티브하기 때문이다

<물에빠진 그녀와 멀리서 우두커니 바라보고있는 소년의 모습 전경>


아무튼 이러한 은유적인 장면은 그녀의 슬픔을 남에게 이야기하지도 표현하지도 못하는 답답함을 드러내기에 최적의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말할수 없는 슬픔을 감독이 말해버린다면 그것은 안되는 것이 아닌가
그저 이와이 슌지는 그녀가 말하고 싶지 않았던 하지 못했던 그 슬픔을 관객들에게 알려주는 대신 느낄수 있게 표현하고 있다

<물에 빠진 그녀의 행색을 뒤에서 쳐다보는 소년의 시점샷>
이 시점샷으로 관객들은 완벽하게 소년의 입장에서 함께 그녀를 동정하게 된다
그 직후 자신의 집 마당에서 호스로 몸을 씻는 소녀를 멀리서 지켜보는 소년의 모습이 패닝으로 보여진다

<아오이유우만 보여지다가 화면이 왼쪽으로 조금씩 이동하면서 주인공이 보인다>


아오이 유우의 비참한 모습을 순간 그옆에서 가장 크게 느낄 소년의 시점으로 보여줌으로써 등장하지 얼마 되지 않은 그녀의 슬픔속으로 관객을 인도한다

그리고 집에가지 않고 계속 해서 지켜보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 나중에 아오이 유우가 그에게 반하게 되는 원인을 관객에게 심어주는 중요한 장면이기도 하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