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엔 영화 형식의 한 축에 하드보일드가 있다면, 다른 한 축엔 누아르가 있다.

누아르는 프랑스어로 어둠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로 범죄와 폭력을 다루는 소설이나 영화를 지칭하는 말.

 

내가 코엔에서 발견한 누아르는 빛과 어둠이다.

 

그들의 모든 영화에서 조명, 촬영 방식은 누아르적으로 빛과 어둠을 과장한다. 혹은 강렬한 색으로 강조하기도 한다.

(심지어 최근작 인사이드 르윈은 음악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누아르적으로 찍었고,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는 아예 흑백영화로 찍어 과거 누아르 영화를 재현했다)

 

 

(첫 번째 장면은 총알 구멍을 통해, 두 번째 장면은 흔들리는 나무가지를 가지고 누아르적으로 찍은 예)

 

 (마티도, 애비도 빛과 어둠으로 과장되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모든 영화에서 빛과 어둠을 과장할까? (심지어 하드보일드 장르가 아닌 다른 장르의 영화에서까지도)

분명 조명을 과장한다는 건, 보는 관객에게 현실감을 없애는 위험한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저 영화 속 세계가 사실이라기보다 허구라는 걸 강조하게 되는 역효과가 생길 수도 있다 (관객이 조명을 의식하게 되니까)

그런데도.

코엔은 일부러 현실감을 없애고, 허구라는 걸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코엔이 바라보는 지금의 이 비정한 세계는 현실적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비현실적인 세계 같기에.

 

현실이 현실 같지 않은 ... 이상한 세계.

 

그렇기에 이런 이상하고 비현실적인 세계를 영화로 표현하기 위해서코엔은 촬영과 조명에서 누아르적으로 과장하여 더 이상하고, 더 비현실적인 세계로 표현한 것이다

 

결국, 앞으로 코엔 영화를 알아감에 있어서 형식상의 두 가지 큰 축은 하드보일드와 누아르고, 이 두 스타일의 사용은 그들이 바라보는 세계를 영화에서 더 잘 표현하기 위한 것.

 

그렇다면, 이제 내용적인 면에서 그들의 특징을 살펴보겠다.

 

허무, 아이러니, 비틀기.

 

미리 눈치를 챘겠지만, 내용적인 면에서의 특징들을 영화에 사용하는 이유도 역시 그들이 바라보는 세계를 더 잘 표현하기 위함이리라.

그렇기에 허무하고, 아이러니하며, 비틀어진 세계.

 

일단, 허무.

이 영화에는 사립 탐정이 들고 다니는 지포 라이터가 자주 등장한다. 심지어 C.U 으로. 마치 무슨 의미가 있고, 이야기에 거대한 실마리가 된다는 것 마냥.

 

 

물론, 사립 탐정이 마티를 죽이고 난 뒤, 그 라이터를 현장에 놔두고 간 것 때문에 뒤의 이야기가 매끄럽게 이어지는 효과를 주는 소도구이긴 하지만 그뿐. 어떤 의미도 없다.

 

 

시민 케인에서의 로즈버드, 히치콕이 자주 사용한 맥거핀,

코엔의 이후 영화들에는 오손 웰즈와 히치콕처럼 맥거핀들이 자주 사용된다.

 

영화에서 의미 없는 것을 의미 있는 것처럼 관객들을 속이는 것은 결국 끝에 가서 관객에게 어떤 허무한 감정을 들게 만든다.

,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사립 탐정이 애비에게 총을 맞고 죽은 장면에서도 허무함이 짙게 드러난다

   

 

사립 탐정이 총에 맞고 쓰러져 죽기 바로 직전 바라보는 건, 다름 아닌, 아무 의미도 없는 배수구에 맺힌 물방울.

카메라는 사립 탐정의 시선이 되어, 관객 역시 영화 맨 마지막 shot로 맺힌 물방울을 보게 된다. 심지어 음악이 흐르면서 마치 물방울이 춤을 추는 것 같이 (편집으로 앞뒤 구간을 반복 하여 이런 효과를 얻었다) 보여주다가 결국 떨어지면서 영화는 끝난다.

 

이렇게 죽어가는 사립 탐정이나, 이렇게 영화가 끝나가는 걸 지켜본 관객이나, 이 얼마나 허망한 last shot란 말인가 ...

 

(물론 의미를 찾자면, 떨어지는 물방울의 하강의 운동성은 사립 탐정의 죽음과 맞닿아 있기에이런 의미에서 해석한다해도 그의 목숨은 떨어지는 물방울 정도 밖에 안되는 걸로 볼 수 있어서, 허망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그래서 코엔 형제 영화들을 보면서 느낀 건, ‘의미 없음 허무란 공식.

앞으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그들의 영화는 일종의 의미 없는 것들의 향연 같기도.

 

 

    코엔 <Blood Simple> (3) 에서 계속. 

 


분노의 저격자

Blood Simple 
8.2
감독
조엘 코엔
출연
프란시스 맥도먼드, 댄 헤다야, 존 게츠, 샘 아트 윌리암스, 윌리엄 크리머
정보
스릴러 | 미국 | 99 분 | -

 

 

단순한 얘기지만,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교재는 영화일 것.

그래서 코엔 형제.        

최고의 가르침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만드는 코엔 형제라는 생각에, 이렇게 감히 코엔 영화들을 교재 삼아 본다.

       Blood Simple (1984)

 

이 데뷔작 안에는 이미 그들의 모든 세계관이 꿈틀거린다.

그러므로 코엔을 알아가기 위해 이 영화를 처음으로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예전에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난 ... 졸았다.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 영화는 코엔의 영화 중에서 그리 좋은 영화가 아니라고 치부해버렸다. 대부분의 데뷔작은 아쉽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오늘 다시 봤다. 근데 도중에 또 졸아 버렸다. ‘? 뭐지?!’

처음 봤을 땐 그냥 내가 졸려서 그랬다지만, 두 번째 볼 때도 또 졸았다는 건 뭔가 이 영화 안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만 한다.

그리고 영화를 다시 보니 자연스레 이유가 떠올랐다.

 

감정.

 

이 영화에 나오는 4명의 인물 중 그 누구에게도 나의 마음이, 감정이 다가가지 않았다.

 

이 영화 자체가 인물들의 감정에 철저하게 거리를 두는 하드보일드 스타일 영화이기 때문에 그렇다지만, 코엔의 다른 좋은 영화들도 하드보일드 스타일이되, 분명 내 감정이 다가갈 수 있는 인물들이 존재한다는 차이가 있었다.

(어수룩한 작가 바톤핑크, ‘밀러스 크로싱의 고뇌하는 톰, ‘위대한 레보스키의 불쌍한 듀드, ‘파고의 안쓰러운 제리 룬더가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악마 같은 시거를 제외한 벨과 모스. 등등)

 

불륜을 저지르는 애비와 레이, 그것을 알게 된 애비의 남편 마티가 그 둘을 죽이기 위해 고용한 사립탐정까지 ... 4명의 인물은 관객에게 감정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하는 틈을 주지 않고 있다.

 

?!

굳이 데뷔작에서부터 이렇게까지 인물과 관객의 거리감을 철저하게 유지하려 한 이유가 뭘까.

그 단초는 이 영화의 첫 오프닝 시퀀스의 내레이션에서 찾을 수 있다. 사립탐정은 이 시대의 텍사스를 설명하면서 이런 문장을 뇌까린다.

 

"you're on your own."

 

아무 편 없이 오로지 너 혼자. 이 얼마나 하드보일드 적인가 ...

 

코엔은 이렇게 영화 초반에 내레이션으로 극의 분위기를 확 잡아주고 시작한 영화들이 많다. 영화 세계관의 톤&매너를 초반에 설정함으로써 앞으로 펼쳐질 그들의 이상하고 기괴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마음껏 풀어낼 수 있는 영리한 영화적 시작인 셈.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위대한 레보스키, 밀러스 크로싱)

 

마찬가지로, Blood Simple 역시 초반에 텍사스의 황량한 풍경들 몽타주 위로 사립탐정의 내레이션을 통해 비정한 세계를 설정해버리고 나니, 자연스레 이 세계 속에 존재하는 4명은 각자 텍사스처럼 황량한 마음의 풍경을 지닌 인물들이 되어 이 영화의 (앞으로 지속할 코엔의) 세계관을 지탱하는 것이다.

 

하드보일드한 세계에 하드보일드한 인간들 ...

 

아마도 코엔 형제가 바라보는 현시대 미국은 비정한 곳이리라. 비정미를 가장 잘 드러내는 이야기 장르와 도구는 하드보일드일 터. 그러니 자연스레 인물들은 하드보일드한 인물들이 될 수밖에.

(다음에 다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개인적으로 영화사 중 가장 하드보일드한 영화!)

 

앞으로 코엔을 다룰 때 있어 하드보일드를 가장 많이 이야기해야 하니 여기서 조금 짚고 넘어가자면, 코엔은 공공연하게 하드보일드 소설 광팬임을 자처했다. 대실 해밋이나 레이먼드 챈들러 등등. 심지어 대실 해밋의 유리 열쇠라는 소설에서 나오는 중절모를 모티브로 밀러스 크로싱을 만들기도 했을 만큼.

 

하드보일드는 단단한 계란 완숙이라는 의미로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감정적이고 도덕적인 판단을 배제하고 견해를 덧붙이지 않은 건조한 스타일이다.

 

그래서 혹자는 코엔을 비판하면서 역으로 이 잣대를 공격한다.

너무 인물들에게 가혹한 거 아니에요?”

너무 이 세계를 조롱하는 건 아닌가요?” 등등.

코엔은 이런 질문에 그저 이야기일 뿐.” 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 대답에 덧붙이자면, 코엔이 바라보는 세계가 비정하므로 그것을 이야기로 진정성 있게 다루기 위해서 하드보일드스타일은 어쩔 수 없이 따라올 수밖에 없는 방법론.

 

만약, 내가 바라보는 세계가 더럽고 추악한데 어찌 영화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까.

, 만들 순 있다 하더라도 그건 거짓이고 가치가 없을 것이다. 껍데기일 뿐일 테니.

내가 코엔을 지지하는 지점이다. 그들의 솔직함.

 

 

코엔 <Blood Simple> (2) 에서 계속.

 


분노의 저격자

Blood Simple 
8.2
감독
조엘 코엔
출연
프란시스 맥도먼드, 댄 헤다야, 존 게츠, 샘 아트 윌리암스, 윌리엄 크리머
정보
스릴러 | 미국 | 99 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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