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라디오스타에 나온 부활의 리더 김태원이 한말이 생각난다
'과거는 모두 아름답다 그것이 과거이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마약 복용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했다
나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과거가 살인이라던가 다른사람에게 피해를 준일이라면 혼자서 아름다워 질순 없겠지만

이터널 선샤인은 기억을 제거할 수 있다는 소재를 가진 영화다
당연히 영화의 초반에는 기억의 제거가 필요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헐리우드 영화다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이 많이 봐야하기 때문에 최대한 보편적인 진리를 말하며 영화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
그래서 선택한 주제는 무엇인가?
나는 김태원이 한 말이 이영화의 주제로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과거는 모두 아름답다'

이쯤에서 위에 첨부한 영상을 재생해 보지 않은 사람은 이것을 보도록하자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서 그녀와 관련된 모든 물품을 싸가지고 들어오는 조엘의 화면에서 '한달에 3번이나 시술을 받을 순 없습니다'라는 대사가 들려온다
어째서 굳이 이런 대사가 나오는가 하필 조엘이 기억을 지우러 왔을때...
영화는 이미 처음부터 경고하고 있다
너의 슬픔을 이기기 위해서 기억을 지운다는 것은 그 기쁨과 아름다움마저 가져간다고
그리고 기억을 제거하는 기술이 실제로 나왔을때 그것의 남용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한 부인은 한달에 3번이나 시술을 받으려 하고 있다
무엇을 그렇게 잊고 싶기에? 그렇다면 차라리 기억상실증에 걸리는게 빠를것 같다

그리고 조엘의 양옆에 배치된 이 인물들이 가져온 물건이 심상치 않다

<조엘의 양옆에 앉은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기억을 제거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다>

조엘처럼 자신의 기억을 제거하기 위해서 찾아온 사람들
그럼 그 사람들이 가져온 물건은 무엇일까?
검은 비닐 봉다리에 가져온 조엘과는 다르게 이들은 자신의 물건의 일부를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어째서인가? 당연히 관객에게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서다

<대머리 남자가 가져온것은 트로피다>

조엘 옆의 대머리 남자가 가져온 것은 트로피다
다른것도 좀 들어있지만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감독은 이 트로피를 노출시킴으로써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트로피라는 것은 본인에게 있어서 기쁘지 않은 기억일 수 없다
혹시 자신이 부정을 저질러서 얻은 트로피라서 죄책감이 들어서 그것을 지워버리려고 했을수는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기쁘고 소중한 추억이다
트로피를 가져온 대머리 남자를 통해서 영화는 당신이 지우려는 기억속에는 당신의 소중한 추억도 함께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옆의 부인은 더 명확하다 기르던 개의 물건들이다>

조엘의 옆에 있던 부인이 가져온 물건은 아주 명확하게 알아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기르던 개의 물건들이다
아직도 슬픔이 가시지 않았는지 두눈이 빨갛게 상기된채 눈물을 머금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서 이 개가 죽음을 맞이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개의 기억을 지운다면?
애초에 개를 왜 기른것인가?
개는 인간보다 수명이 훨씬 짧다 오래 살아야 기껏 20년 정도일까?
그렇다면 개를 기르기 시작했을때 어느정도는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이렇게 기억을 지워버린다면 애초에 개와 함께 살았던 모든 추억은 없어진다
그렇게 된다면 이 개의 의미는 20년동안 기르던 중의 순간적인 쾌락을 위해서밖에 그 존재의 의미가 남지 않는다
영화는 이 부인이 가져온 명확하게 알수 있는 물건을 통해 다시한번 말하고 있다
당신이 없애려는 기억은 당신에게 너무 소중한 추억이라고

이러한 장면들이 조엘이 처음에 라쿠나 의원을 찾아왔을때도 아니고 기억을 지우기 위해 클레멘타인과 관련된 물품을 모두 가지고 왔을때 설정 되있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명확하게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감독은 더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해 조엘의 시선을 따라가 트로피를 보여주고 조엘이 일어나서 프레임 아웃한 뒤에 부인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영화의 주제는 클레멘타인이 없어지는 것을 그만두고 싶어하는 조엘의 모습으로 가장 확실하게 전달되지만 이러한 주변인물들을 통해서 일관되게 주장된다
그중 가장 강력한 것이 바로 매리의 이야기이다
미에르쥐액을 너무나 존경하고 그가 개발한 이 기술을 신봉하고 그를 사랑했던 매리는 바로 미에르쥐액이 자신의 보신을 위해서 매리의 기억을 지워버린것을 알고 상처를 받고 라쿠나 의원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모든 고객에게 편지를 본내다 기억을 없애버리는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고 무서운 행위인지 말하기 위해서
영화의 주제는 그 무엇보다도 그녀의 행동을 통해서 명확하게 전달된다



누구나 한번쯤 해보지 않았을까 이런 상상
내가 엄청나게 성공해서 이런저런 사람들과 살아가는 모습을..
또, 내가 굉장히 불쌍하게 죽은 이후에 날 위해 울어주는 사람들을 상상하며 카타르시스의 눈물을 흘린적이 한번쯤 있을 것이다

이 장면은 브레또도를 돕고 집에 오는길에 장님 할아버지를 돕고 저녁을 해먹다가 옆집의 외로운 아저씨를보고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외롭다는 것을 알게된 아멜리에의 모습이다
그녀는 티비를 보다가 평생을 남을 위해 헌신하며 살다가 젊은 나이에 죽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
하지만 감독은 이 상상 장면을 어떠한 편집도 없이 실제로 아멜리에가 보고 있는 그대로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것이 어떠한 상상이라는 설명이 필요 없다

<일반적인 장면이 나오고 있던 뉴스는 자연스레 아멜리에의 이야기로 바뀐다>

영화에서의 감정 표현 방식은 대부분 간접적이다
소설에서는 빈번히 등장하는 전지적 작가 시점이 영화에서는 흔치 않고 영화에서의 감정 표현은 대사나 행동으로 간접적으로 전달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아멜리에'에서는 등장인물 이외의 이야기를 설명하는 전지적작가 시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때때로 그는 아멜리에가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는지 직접적으로 설명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전지적화자는 아멜리에가 직접적으로 이렇게 느끼고 있다고 설명하기 보다는 훨씬 영화적인 표현 방식을 택한다

마치 그녀가 실제로 티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보는 듯이 그것이 그녀의 상상이라고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채 전지적 작가는 그녀의 상상을 그대로 관객에게 읽어준다
전지적 작가로서 그녀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이때는 그저 그녀의 대변자로서의 역할만 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시점의 변화가 많지 않다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3인칭 관찰자 시점 또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변환하는 경우가 있지만 한 작품에서 한두번 뿐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 시점이 계속 변화한다 대부분은 주인공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경우에 따라서 영화는 너무나 쉽게 시점을 변화 시킬수 있다
여기에서도 간단하고 미묘하게 시점을 바꿔준다
그리고 또 다시 그녀의 시점으로 영화는 이동한다

<그리고 이 상상장면은 아멜리에의 감정을 너무나 쉽게 알게 해준다>

계속되는 이 상상장면은 그녀의 내면을 아낌없이 설명해준다
그녀가 어릴적부터 친구가 없었던것과 그래서 다른사람을 사귀는것이 서투르다는것 그래서 남을 돕기 위해 혼자서 외롭게 살았던것 그렇지만 그녀의 아버지 만큼은 돕기가 쉽지 않다는 그녀의 감정을 말해준다
그녀가 그렇게 느낀다고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벗어나서 이 때 만큼은 3인칭 관찰자 시점마냥 그녀의 상상을 우리에게 이야기해준다
관객은 그 상상을 통해서 그녀가 지금 자신의 처지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경험하게 해준다

그리고 직후에 아버지가 걱정된 아멜리에는 한밤중에 그의 집에 찾아가 어머니를 위해 장식해둔 인형을 뽑아서 훔쳐나온다
그리고 그의 여행을 위해 사진을 찍어서 모스크바로 부터 아버지에게 보낸다
이것은 이 포스트에 설명하기 뭐하지만 굉장히 유기적인 스토리라인임을 알수 있다
사실 아멜리에의 많은 씬들이 유기적으로 짜임새 있게 이루어지지만 자신을 불쌍히 여기다가 아버지가 생각나서 아버지를 급히 찾아가고 그 과정에서 찢어진 증명사진을 이어붙인 앨범을 줍게 된다는 설정은 탄탄한 스토리라인을 만들어 준다



프랑스 영화 아멜리에를 기억하는 사람은 꽤 많을 것이다
당시 너무나도 새롭고 유쾌하고 발랄한 영화였으니까
이영화는 굉장히 자유롭고 기발한 표현들이 많지만 특히나 뛰어난 것은 바로 미쟝센이다 몇편이나 계속해서 소개하게 되겠지만 우선 그 첫번째 글이다

오드리 토투가 맡은 '아멜리에'역 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밖으로 살짝 말아올린 단발머리 일 것이다
영화를 보면 어릴적부터 커서까지 쭉 단발머리를 하고 있지만 단 한컷 그녀가 긴 머리를 하고 출연하는 장면이 있다

<단 한컷 그녀가 집을 떠나는 뒷모습에서만이 긴머리를 땋고 있다>

위의 사진중 두번째 것을 보자 클립한 동영상 45초 부근에 나오는 바로 이 장면이 이영화에서 유일하게 아멜리에가 긴 머리를 하고 나오는 장면이다
그리고 그 직후에 나오는 세번째 컷을 보면 집을 떠난 아멜리에는 바로 단발머리로 돌아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긴머리의 단 한컷은 너무나도 잠깐 지나가서 눈치채기 어렵다
하지만 이것을 눈치챈다면 감독의 의도는 명확해진다
어릴적부터 상상력이 풍부하게 자라고 장난을 좋아하는 성격의 아멜리에에게 단발머리는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녀의 성격을 보여주기에 적당하며 개구쟁이에게 긴머리는 가끔 문제가 생길때가 있다는 현실성도 반영한다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5년동안 '죽음과 같은 세계'에서 살았던 아멜리에의 삶을 길게 땋은 단 한컷으로 표현한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고집스럽고 커뮤니케이션이 없었던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던 아멜리에에게 그 5년은 너무나도 심심한 것이었다
감독은 그것을 '죽음과도 같은 세계'라고 나레이션으로 표현하지만 영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길고 구구절절하게 보여주기보다는 영화에서 유일하게 길게 땋은 머리를 단 한컷 보여줌으로써 감독은 그 '죽음과도 같은 세계'가 아멜리에에게 어떠한 것이었는가를 설명한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관객이 이 장면을 눈치챘을까?
필자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때 전혀 몰랐었기 때문에 사실 이 장면을 찾아내고 많이 놀랐다

<그리고 죽음과도 같았던 그 세계에서 곰인형은 버려져 있었다>

죽음과도 같았던 5년동안의 삶이 나레이션으로 설명되는 동안 마당에 버려진 곰인형은 닳고 닳아서 튿어져버린다
분명 클립해놓은 동영상 첫부분에 아멜리에가 가지고 놀던 이 곰인형은 그녀가 심심하게 살았던 그동안 밖에서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는 도구로 사용된다

곰인형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5년동안 버려진 그녀의 상상력과 삶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혼자서 방치된 아멜리에 자신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찢어지고 닳아빠진 곰인형을 버린채로 아멜리에는 집을 떠난다

머리 스타일은 분명한 미쟝센의 하나이다
스토리나 대사같은 텍스트적 의미가 아니며 오디오 신호도 아닌 영상적인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멜리에를 단발머리로 만들어서 그녀의 캐릭터와 외모를 일치 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단 한컷의 변화를 이용해 그녀의 5년동안의 삶의 이야기를 더없이 압축시켜 간단명료하게 설명한다

<이글은 씨네마틱에 기사화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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