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캐쉬백은 시간을 멈춘다는 소재를 이용해서 더이상 SF영화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을 대단한 능력인양 이야기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시간을 멈추는 능력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그저 멈출 뿐인 것은 되돌리지 못하는 약한 능력이라고 이야기한다. 시간을 멈추고 무음속에 울려퍼지는 나레이션이 이 영화를 '벤'이라는 남자 주인공의 심리를 돋보기로 들여다 본것처럼 묘사한다.

<멈춰있는 여성들 사이로 달리인 한다>

사실 시간을 멈추는 표현이야 쉽다. 그냥 찍어놓고 스틸을 잡으면 되니까. 하지만 이 영화처럼 멈춰있는 사이로 카메라가 돌진하고 그 사이로 한명만 움직이는 촬영은 결코 쉽지 않다. 아마추어들은 하고 싶어도 절대로 못하는 정도의 여러가지 방법이 필요하다.

영화를 처음봤을 때 어떻게 한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스트 룸에서처럼 색보정을 심하게 한다면 크로마키를 이용한 합성도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닌 것 같다. 이 영화에서는 실제로 멈춰있는 사람들을 이용한 것이 아닐까? 더미를 만든 것인가 생각해봤지만 그건 아무래도 티가 나거나 오히려 제작비가 훨씬 많이 들고 차라리 길에서 동상처럼 서있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섭외 한 것이라 보여진다.

아무리 돌려봐도 손가락 까딱 안하지만 이것은 롱샷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리라 여겨진다. 그리고 이런 작업은 동상으로 둔갑하는 그들에게 있어서도 매력적인 일이라고 여겨진다.

방법이야 어쨌든 이런 촬영의 효과는 크다. 확실하게 벤이 시간을 멈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이런 달리촬영이나 그 사이로 벤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여기서는 없지만 특히 던진 우유 앞에다 사람을 가져다 놓는) 너무나 허접한 표현방식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멈춰 보이게 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혼자서 움직이게 보여주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캐쉬백은 카메라 무빙을 통해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천천히 전진하는 카메라 워킹이 '시간을 멈춘다'라는 행위의 위대함이나 위험성을 이야기 하기 보다는 그저 벤의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처럼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시간을 멈춰 보이는 효과는 사실 텐션이 크지 않은 이 영화에서 큰 볼거리로 작용한다. 실제로 캐쉬백의 홍보는 모두 이 '시간을 멈춘다'라는 것에 있다. 이렇게 시간이 멈춰진 장면에서의 촬영은 너무도 아름답다. 이것은 벤의 내면과 영화에서 펼쳐지는 그의 사랑이야기마저 아름답게 장식한다.


모두가 멈춰있는 순간 당연하지만 소리는 전혀 사라지고 관객들에게는 오직 벤의 나레이션만이 들려온다. 관객들에게 직접 전하는 이 이야기야 말로 이 영화를 어렵지 않고 지루하지 않게 볼수 있는 가장 즐거운 요소다.



이 영화를 보면 상당히 잔잔하고 정적인 느낌이 든다. 조용하게 읇조리는 벤의 나레이션과 항상 무기력해 보이는 그의 표정이 한 몫하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정적으로 촬영되는 카메라가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된다.

영화 캐쉬백은 절대로 핸드헬드를 하지 않는다. 결국 카메라는 항상 미세한 떨림이 없이 가만히 멈추어있거나 부드럽게 움직인다. 이러한 촬영이 영화를 정적으로 만들어준다.

<이런 장면까지도 멈춰있다니>

영화는 결코 다이나믹해 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위에서처럼 둘이 경주를 하는 장면에서도 카메라는 그대로 멈춰있다.

하지만 지나가던 여자가 밀고가던 쇼핑카트와 부딪히는 순간 카메라는 격하게(이 영화에서만큼은) 흔들린다.



감독의 취향이겠지만 부딪히고 나서 나오는 점원들의 반응샷 역시 픽스라는 것이 재미있다. 보통 저렇게 깜짝 놀라는 장면을 찍을 거라면 조금 흔들어줘도 괜찮을 것 같은데 말이다. 아무튼 그 이후 둘이 넘어지는 장면 역시 조금은 격하게 흔들린다.

유럽영화의 특색이기도 하지만 핸드헬드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픽스 계열의 샷들.. 달리 크레인샷들로만 구성되는 캐쉬백이 이 장면에서 만큼은 조금은 흔들린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도 핸드헬드로 흔든것은 아니다 카메라를 삼각대 위에 올려놓고 흔들어 준것 같다)

맨 처음에도 이야기했지만 이렇게 고집스럽게 찍은 정적인 샷들이 이 영화의 고요함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깊은밤중에 들리는 아름다움으로 포장하는 것 역시 이 카메라 워킹 덕분일 것이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는 그 고집을 조금은 꺾어 주는듯이 보인다. 왜일까..?
이 장면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장면이라서 해본건가? 아니면 위의 두 인물은 벤과는 다른 유형의 인간이라는 메타포인가?



인터벌 촬영의 개념을 퍼오려고 했는데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뭐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보통 초당 30이나 24장의 그림을 찍어내는 것이 정상속도라면 그보다 훨씬더 띄엄띄엄 찍는 것을 말한다. 30초에 1장씩 찍어낸다던지 1분마다 10장을 찍어내는...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나오는 꽃이피는 장면이나 일출과 일몰 장면을 촬영하는 기법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아무튼 시간을 멈추는 남자의 이야기인 캐쉬백에서 인터벌 촬영이 나온다는게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다.

<도시의 전경은 순식간에 낮이 된다>

위의 두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도시의 전경은 순식간에 밤에서 낮으로 바뀐다. 물론 하늘의 구름은 엄청난 속도로 흘러가고.

감독의 의도는 역시나 명확하다. 인터벌 촬영의 기본적인 의미. 즉,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벤의 나레이션과는 조금 상충된 의미인듯 하다. 벤은 자려고 해도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시간이 너무 남아돈다는 의미로 이야기하는데 장면은 그저 느낄새도 없을 만큼 하루가 빨리 지나가는 느낌이다.

명시적인 의미로 벤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굉장히 많았다는 의미가 가장 무난한 해석이라고 생각된다. 인터벌 촬영의 의미는 시간이 흘렀다는 의미가 되니까.. '벤의 나레이션과 합쳐서 벤이 잠을 이루지 못한 나날들이 계속해서 흘렀다'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하지만 조금 다른 해석을 해보자면 반어법적인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벤이 느끼는 지루함 넘치는 시간을 인터벌 촬영으로 인해 엄청나게 빨리 흘러가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벤이 느끼는 지루함을 오히려 반어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차는 안보이고 불빛이 지나가는 것으로만 보인다>

그리고 감독이 애초에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인터벌 촬영에서 왠지 모를 벤의 슬픔이 배어나온다. 도시가 경련을 일으키는 것처럼 파르르 떨고 있는 모습은 벤의 나레이션과 음악과 합쳐져서 아픔을 표현한다. 특히 나무가 바람에 떠는 모습이 굉장히 슬퍼보인다. 위의 사진처럼 밤에 촬영한 흐르는 불빛들은(사실 지금 내가 말하는건 셔터스피드를 느리게 하는 기법이지만) 슬픔을 표현하는데 자주 쓰이곤 했다.

벤이 시간을 멈출수 있고 느리게 할수 있고 빠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여기서도 복선으로 보여주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시간을 멈추는 영화니까 이렇게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또, 내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인터벌 촬영을 슬픔을 표현하는 표현기법으로 감독에게 받아들여진 것일까?

의도야 어쨌든 상당히 좋은 결과를 빚어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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