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캐쉬백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 벤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장편영화 치고는 흔치 않게 벤이 없는 곳의 이야기는 전혀 보여지지 않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나레이션으로 그의 감정이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 특히 수지에게 차이고 사진을 태우려 하는 이 장면이 가장 벤의 시점을 잘 표현하고 있다.

<수지와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태우려 하는 벤>

수지와의 사진을 한장씩 넘겨보던 벤은 라이타를 꺼내(담배를 피우지 않는 벤이 라이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조금 이상하지만... 영화상의 편의를 위한것이라고 남자답게 포용해주도록하자) 사진을 태우려 한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촬영된 앵글을 보자. 위의 두컷을 보면 벤과 사진을 두 인물이라고 설정하면 둘 사이의 오버 더 숄더로 촬영된다. 기본적인 문법에서 만약 벤의 감정으로 갈 거라면 벤의 어깨를 걸쳐 사진을 보여주는 샷은 어쩔 수 없다고 쳐도 벤의 표정이 드러나는 컷은 위처럼 로우앵글(Low angle)이 아닌 아이레벨(Eye level)로 촬영되어야 맞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로 사진 대신 한 인물일 경우이다. 실제로 위의 컷에는 사진은 인물이 아니므로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진을 걸쳐서 찍은 벤의 반응샷 역시 똑같이 벤의 감정이라고 봐줘야 할 것이다. 실제로 위의 두 컷은 사진을 보고 있는 벤의 모습을 아래위에서 보여주면서 벤과 사진의 일직선인 새로운 아이레벨을 만들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난 개인적으로 로우앵글이 아이레벨보다 감정적인 샷을 만들어낸다고 믿는데 그런 면에서 위의 장면이 더 효과적이라고 보여진다.

<벤은 사진을 태운다. 아니 태우지 않는다>

그리고 사진이 나오는 단독샷 (이것은 벤의 시점샷이라는 설정이겠쥐?)에서 사진에 불이 붙는다. 드디어 벤이 사진을 태워버린 것이다. 용기있는 남자 벤.
아 하지만 그 직후의 컷에서 사진에 불을 붙이지 않은 것이 드러나면서 벤의 소심함이 내 가슴까지 전해져온다. (괜찮아 토닥토닥)

이것은 관객을 속이는 트릭으로서 작용하지만 실제로는 벤의 망설임을 표현한다. 이것이 이 영화가 전반적으로 벤의 1인칭으로 표현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며 관객들에게 계속해서 벤의 시점으로 모든 것을 보여준다는 뜻이다.

실제로 위의 장면에서 사진을 태우면 관객들은 아 태워버리는구나 생각하지만 이후의 샷으로 태우지 않았군! 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리 표정이나 셔레이드로 망설임을 보여줘봤자 설명할 수 없는 벤의 복잡한 심경을 그대로 관객에게 느끼게 해준다. 이런 트릭의 표현이 있었기에 더 디테일한 감정을 연출 할 수 있었다.






2009/04/17 - [video grammer] - 영상문법 - 플래쉬 백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에서와 똑같은 방식의 플래쉬 백이다. 특히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에서 보여준 플래쉬백을 통한 비꼬기 똑같이 보여주고 있다.

<수지에게 차인 벤에게 충고를 하는 친구 숀>

벤과 숀이라니.. 포스팅하려고 하니까 이름이 짧아서 좋다... 팅팅탱탱 게임할때도 유리하겠군 극중이름이 반니스텔루이 요딴식이면 쓸때마다 길어서 짜증나..

아무튼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알려진 벤이 수지에게 차였다는 사실. 그 직후 학교에서 친구 숀은 벤에게 충고를 한다. 그 충고의 내용이란 바로 벤이 끝내주는 여자를 만나면 수지가 다시 돌아올거라는 내용이다.

이 대사는 3가지 기능을 하고 있다.

첫번째로 대사 직후 벤의 나레이션과 함께 보여주는 숀의 과거를 통해 익살을 유발한다.

<따귀,물,물,따귀,물을 맞는다>

숀의 충고를 듣고 벤이 '숀의 성공적인 여자관계가 상당히 인상적이었죠'라고 말하면서 영화는 숀의 과거를 보여준다. 여자들에게 따귀를 맞고 물을 맞고 또 물을 맞고 따귀를 맞은 직후 같은장소에서 다른여자에게 물을 맞는 장면.

이걸 언어로만 바꾸자면 숀의 대사가 이어지고 벤이 말하기를 '숀의 성공적인 여자관계가 상당히 인상적이죠, 그는 매번 만나던 여자들이 따귀를 때리거나 물을 끼얹으며 이별을 고했으니까..'라는 정도의 설명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플래쉬백에서의 장면은 조금은 과장된 기법이긴 하지만 코메디라는 장르에서 거의 독점적으로 상요하고 있는 과장법을 코믹한 장면에서 사용한 것이기 때문에 또한 정석적인 문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이러한 코메디이외에 또, 숀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 이 대사와 플래쉬백을 연결한 것이 아니라. 영화 전반적으로 보여지는 숀의 여자 밝힘증, 하지만 또 여자에게 크게 인기가 있지는 않은 특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복선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영화에서 내러티브적으로 클라이막스의 사건에는 바로 이 숀의 대사로 설명되어진다. 젠킨스의 생일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벤과 수지. 하지만 벤이 새로운 여자를 데리고 나타나자 수지는 다시한번 벤의 가치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벤에게 다시 접근하고 키스한다.

이 사건이 가지는 타당성에 대해서 따져보면 샤론이 화를 내는것은 당연하다. 그는 옛여친과 이별했다고 말했고 샤론과 벤은 서로 좋은 감정을 가지기 시작했으므로. 하지만 수지가 자신의 현재 남친인 동생 젠킨스와 함께 나타나서 그 자리에서 이렇게 벤을 꼬시는 것은 조금은 납득이 안가는 상황이다. 영화에서는 수지가 젠킨스와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리고 실제로 그녀가 벤을 그리워했는지에 대한 정보를 전혀 제공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족한 인과관계를 우리는 앞에서의 숀의 대사로 알 수 있는 것이다. 벤이 멋진여자를 데리고 나타나면 수지는 경쟁심리에 벤을 다시 빼앗고 싶어질 것이다. 여자들은 서로 경쟁하니까.

이것은 여자에게 국한된 문제만이 아니다. 남자도 마찬가지다. 가치가 높은 것. 가치가 높고 가지기 어려운 이성에게 사람은 끌리게 되어있는 것이다.

즉, 단순히 재미있게 구성된 장면 같지만 이 플래쉬 백을 통해 코메디를 만들고 숀의 캐릭터를 설명하며 영화의 클라이 막스에서 일어날 사건을 암시하는 동시에 설명하고 있다. 상당히 좋은 장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위의 장면은 마치 이터널 선샤인에서 미쉘공드리가 보여주는 표현양식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 캐쉬백이라는 영화역시 상당히 스타일리쉬하게 표현된 영화이므로 이런 방식에 이질감은 없다. 이터널 선샤인에서의 표현이 피하고 싶은 파괴적인 느낌이라면 캐쉬백의 표현양식은 피할수 없이 빨려드는 느낌이다.

<간단하게 사운드 이야기부터 해보자>

수지에게 전화해서 다시 시작하자고 말하는 벤. 하지만 수지는 안된다고 말한다. 전화를 하는동안 천천히 들려주던 스릴러 영화식의 불길한 음조가 벤의 '녀석이랑 잤어?'라는 대사에 귀에 확연하게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수지의 '응'이라는 대답과 함께 벤의 일그러진 표정이 나오자 음조에 슬픈 멜로디가 더해진다.

그리고 결국 수지가 전화를 끊자 5초 정도의 '우퍼'라고 부를만한 쿵쿵쿵쿵 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무기력하게 보이는 벤의 가슴이 심하게 쿵쿵거린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관객의 무의식을 자극한다.

좋은 영화라면 영화의 음악도 이렇게 디테일한 연출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찍은 단편영화에 어쩔수 없이 기존의 곡을 통째로 삽입하는 것이 아닌. 이러한 순간순간의 감정을 디테일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음악이야 말로 진정한 영화 음악이다.

<전화를 끊은 벤은 뒤로 미끄러지더니 어느새 침대에 눕게된다>

꽤나 이터널 선샤인 같은 이런 몽환적인 표현. 수지가 자신을 떠나 다른남자를 만나지만 침대에 드러눕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벤의 심정을 적절하게 표현한다.

전화가 끊긴후 장소가 벤의 방으로 바뀌어 벤이 드러눕는다면 어떨까? 적어도 벤이 걸을 기운은 있구나라고 느껴질 수 있다. 이 표현과 비교하자면 현재의 표현 방법은 벤은 걸을 기운조차 없이 그저 침대에 드러누울 수 밖에 없다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영화의 전반에 걸쳐있는 벤의 무기력한 이미지에 딱 맞는 표현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어떻게 표현한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아마 세트를 하나 만든 것 같다. 학교 복도처럼 보이는 곳 뒤에다 벤의 방바닥처럼 보이는 벽을 만들어서 이동차 같은곳에 벤을 올려놓고 후진하면 찍은 것이라 생각된다. cg를 이용한 기법 같지만 세트라면 미쟝센이라고 생각해서 제목에 썼다.

그리고 전화를 하는 컷은 전체적으로 꽤 긴 롱테이크에 ARC를 사용해서 촬영됐다. 전화를 거는 벤의 쓸쓸한 뒷모습에서 시작해서 얼굴에 환한 빛이 들어왔다가 수지와의 대화가 절망적으로 이어지자 어둡게 처리되는 벤의 얼굴과 젠킨스와 잤다는 그녀의 말을 들은 벤의 표정이 정확한 타이밍에 촬영되도록 구성된 훌륭한 샷이다.

실제로 많은 영화에서 이렇게 인물의 뒷모습에서 시작해서 앞으로 돌아가는 ARC의 샷을 많이 보여주는데 확실히 감정을 전달하는데 효과적인 문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터널 선샤인이랑 비슷한 느낌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꿈에 대한 이야기와 꿈같은 이야기의 영화니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