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20 - [video grammer] - 영상문법 - 영화의 첫번째 씬 그 의미 <포미니츠,Vier Minuten>에서 이야기 했듯이 영화의 첫번째 장면은 너무나 의미가 깊다.
어떻게 영화를 시작할 것인가? 무엇을 가장 먼저 보여줄 것인가? 관객이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할 것은 무엇인가?

<영화는 사람들의 발에서 부터 시작한다>

화면이 밝아지고 스틸장면이 약간 축소되더니 화면안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의 1분정도의 첫번 째 컷 처음으로 보여주는 것은 사람들의 '발'이다.

위의 세장의 그림처럼 처음에는 의자에 앉아있는 두명의 사람과 그 앞을 청소하고 있는 아주머니의 발이 함께 나온다. 그리고 카메라가 청소부 아주머니를 따라서 이동하다보면 갑자기 카메라 앞에 구두발이 음악의 빠른템포 전환과 함께 나타난다. 그들은 4명정도가 일렬로 서서 걸어간다. 그리고 또 그들이 화면에서 완전히 사라지면 옆에 구두를 벗어놓고 발톱을 깎고 있는 여인의 발로 화면이 이동한다.

하지만 화면은 이들을 모두 벗어나 무대위로 향한다.

영화가 시작하자 마자 보여준 발은 모두 4무리라고 생각된다.
청소부 아주머니
의자에 앉은 두남자
일렬로 걷는 4명의 남자
발톱을 깎는 여자

이중에서 의미가 있는 사람은 오직 한 무리다.

<무대위로 향했던 카메라는 다시 처음의 두남자에게로 돌아온다>

발들을 지나 처음으로 사람의 얼굴을 보여주는 카메라는 무대에서 춤추는 여성들로 향한다. 하지만 이 여성들 역시 큰 의미 없이 화면밖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이 여성들의 춤을 멈추게 한 클럽의 지배인 역시 주인공은 아니다.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의 첫번째 컷은 바로 이 영화의 주요인물을 보여주기 위해 흘러간다. 처음에 두남자의 발로 시작한 카메라는 클럽을 한바퀴 돌아 결국 그들의 뒤통수로 돌아온다. 이것은 바로 이 영화가 이들의 이야기에서 부터 시작할 것임을 관객에게 알리는것이다.

영화는 수많은 사람들의 발을 보여주었다. 관객은 당연히 본능적으로 카메라가 어딘가로 향하다가 멈출 것을 알고 있다. 영화의 카메라는 어떤 등장인물을 쫓아다니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카메라는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처음으로 얼굴을 보여준 댄서들과 지배인 역시 카메라에서 사라져 버린다. 대체 뭐야라고 생각하는 순간 카메라는 맨처음의 의자에 앉은 두남자를 다시 비춘다.

이것은 문맥적으로 파악해 봤을때 클럽에 몇몇의 사람이 아직 남아있다. 뒷청소하는 아주머니. 의자에 앉아있는 두남자. 어디론가 일려로 걷는 4명의 무리들. 한쪽에서 구두를 벗고 발톱을 정리하는 여성. 무대위의 댄서들. 그리고 그들에게 더 야하게 추라고 윽박지르는 클럽의 사장. 하지만 우리가 따라가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의자에 앉아서 농담을 주고받고 있는 이 두남자의 이야기다.

이것이 바로 이 롱테이크의 의미다. 카메라를 컷으로 나눠서 편집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들중에서 카메라가 멈추길 기대하는 관객의 심리를 위해서다. 컷을 나눴다고 생각해보면 이것은 앞의 다른 무리들을 너무 의미있게 보여준 것이다. 특히 누군지도 모르는 4명의 일행과 발톱을 깎는 여자.. 그들을 컷을 나눠서 보여줄 의미가 있는가?

하지만 여기저기 무빙하는 샷에서는 마치 이들이 주인공일수도 있다는 트릭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여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또한 현장의 분위기도 함께 보여줄 수 있다.


특히 이 영화를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굉장히 유머러스하고 쿨한 표현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 첫장면에 두명의 마피아가 청소하는 빗질에 다리를 드는 장면은 기가막히다. 이 장면은 영화의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형성하면서 앞으로 나올 이 두명의 마피아의 멍청하고 우스운 캐릭터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 노래는 진주가 리메이크했던 '난 괜찮아'아닌가? 노래를 들으면 너무 반가운데 이 노래역시 이후에 이 클럽이 다시한번 등장할 1시간정도의 뒤를 위해 복선으로 심어두고 있다. 이 노래에 맞춰서 춤추는 이 댄서들이 다시 똑같이 등장하여 관객들에게 주인공들이 이 클럽에서 마피아와 마주치는 사건의 인과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영화에서의 대화씬의 편집은 기본적인 똑딱샷에서 액센트를 주는 방향으로 많이 이뤄진다. 캐쉬백에서 벤과 샤론이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자.

<벤이 묻는다>

사실 클립해 놓은 영상전에도 약간의 대화가 이뤄진다. 기본적인 문법을 따라서 조금 넓은 샷에서 윗 사진처럼 타이트 한 샷으로 한번 변화한다.
하지만 특히 벤이 왜 하필 스페인어를 배우냐고 묻자 샤론은 자신이 평샌 런던에서 살았지만 언젠가 여행사에 취직해서 스페인어권 나라에 가고 싶다는 꿈을 이야기한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샤론의 얼굴로 더 타이트하게 달리인 한다.
이 무빙으로 인해 관객들에게 샤론의 이 대화에 힘을 실어주어 전의 이야기보다 중요하게 듣게 만든다. 또한 벤의 입장에서 샤론의 외모만이 아니라 그녀가 가지고 있는 꿈에 대해 알게 해서 그녀에게 다시한번 반하게 만든다. 물론 벤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그녀의 이런 매력적인 모습을 알게 해주기 위한 샷이다.

이런 부드러운 카메라 움직임에 의해 자세히 살펴보면 샤론이 꿈에 대해 이야기 하는 부분이 전에 없이 아름답게 표현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꿈에 대한 아름다움, 꿈을 가지고 있는 샤론을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해 무빙으로 표현한다.

<샤론에게는 없던 단독샷을 벤에게 준다>

그 이후 벤이 자신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어릴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이 꿈이었으며 언젠가는 화랑에 그림이 걸리고 싶다는...

샤론에게는 무빙을 주었지만 벤에게는 처음부터 단독샷을 준다.
이전까지 걸쳐왔던 샤론의 옆뒷모습을 배제하고 오직 벤의 얼굴만을 보여준다.

이것은 이 장면의 시점이 샤론이 아닌 벤의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벤은 혼자서 등장하지만 샤론은 항상 벤이 걸쳐서 나온다. 즉, 모든 장면이 벤의 중심으로 구성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기본적으로 벤의 나레이션으로 펼쳐진 이야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이 단독샷의 의미는 크다. 샤론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사랑, 꿈에 대한 것을 표현하기 위해 감독은 벤의 꿈을 독자적으로 표현한다. 벤의 시점에서 샤론의 이야기를 듣고 벤의 시점에서 자신의 꿈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위의 두번째 스샷을 보면 결국 다시 샤론을 살짝 걸쳐준다. 이것은 아마 감독이 벤이 자신의 꿈에 샤론을 포함시키고 싶어진 것을 표현하는 상징적 복선이 아닐까 해석된다.

결국 벤의 단독적인 꿈에 대한 이야기에서 다시 둘사이의 이야기로 발전한다. 그리고 샤론이 언젠가 화가를 만나보고 싶었다는 이야기 끝에 1분 24초쯤에 까페안에 흘러나오던 로멘틱한 BGM이 커진다. 그리고 샤론은 '정말 로멘틱하자나'라고 이야기하며 둘의 마음이 서로 깊어져 가는 것을 표현한다.

이 장면은 샤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벤이 처음으로 샤론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그녀에게 마음을 열게 되는 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독은 샷의 선택 카메라 무빙, 그리고 최종적인 BGM의 고조를 통해 이들의 감정의 연결을 관객에게 느끼게 해준다.




전에도 말했던 것 같지만 플래쉬백은 이제 더이상 하얗게 화면이 펑하고 터지면서 들어가는 방법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최근의 감독을은 부드럽게 등장인물들이 회상씬을 소개할 수 있도록 배려 하고 있다. 올드보이에서 문을 열때나는 종소리와 여성의 무릎 그리고 회상장면의 자전거 소리와 윤진서의 무릎으로 들어가는 회상씬이라던지 창밖을 바라보는 최민식의 모습에서 어느새 어린시절로 돌아가는 모습등이 바로 그 노력의 결과다.

영화 '캐쉬백'이 이터널 선샤인과 비슷한 표현양식을 보여준다고 말했었는데 특히 이 부분은 2009/02/16 - [video grammer] - 영상문법 - 꿈같은 표현 <이터널 선샤인> 장면과 거의 똑같다.

캐쉬백은 회상씬의 도입을 이터널 선샤인은 회상씬에서 돌아올때 세트의 미쟝센을 구축해서 표현한다.

<카메라가 왼쪽으로 이동하면 마트에서 벤의 어린시절 집으로 장소가 바뀐다>

동영상 클립을 보면 알겠지만 위의 네장면은 한컷이다. 왼쪽으로 이동하는 카메라의 움직임을 따라가다 보면 진열대의 바로 옆에 어린시절 벤이 앉아있는 집 벽으로 이어져 있다. 이것은 편집효과도 아니고 컴퓨터 그래픽도 아니며 위의 이터널 선샤인처럼 이 한컷을 위해 세트를 만든 것이다. 
 
대한민국의 영화도 이런 한컷을 위한 미쟝센 세트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잠깐 생각해봤다.

아무튼 이 장면은 벤의 속삭이는 나레이션을 따라 자연스럽게 회상씬으로 넘어간다. 사실 편집이라는 개념이 이제는 관객들의 머릿속에 확실히 잡혀있기 때문에 굳이 이렇게 하지 않고 그냥 컷으로 벤의 어린시절 모습으로 넘어가도 상관은 없다. 하지만 이런 표현이 영화를 더 고급스럽게 만들고 그로인한 지적인 재미를 추가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캐쉬백이라는 영화를 보면 계속해서 등장하는 이 벤의 회상씬들이 상업영화에서 이야기하는 인과구조 플롯에서 꼭 필요한가? 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즉 특히 이 장면의 벤의 회상은 마트에서 시간을 멈춰두고 여성들의 옷을 벗겨놓고 그림을 그리는 그의 취미의 이해를 돕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 시간을 멈춘다는 이야기만 하면 되는데 마치 그 이야기를 하다가 쓸데 없는 이야기로 파생된다고 볼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사건 중심의 고전적인 스타일의 영화가 아니라. 한 인간의 내면적 목소리에 관한 영화이다. 때로는 꼭 나와야하는 장면이나 이야기가 아니라도 충분히 재미있게 들을수 있을 정도로 이 영화는 여유있고 아름답게 보여준다.

그리고 단순히 눈에 보이는 인과관계가 아닌 좀더 심오하고 감정적인 인과 관계가 있을것이라고 여겨진다. 물론 감독이 그러한 면을 완벽하게 분석하고 작업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이러한 회상씬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벤을 더 잘알게 해주고 의도적으로 감정을 조절시킨 클라이막스가 아닌 진심으로 그의 사랑을 응원하게 만들어서 영화의 결말에 느껴질 희열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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