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의 개들 (1996)

Reservoir Dogs 
8.2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출연
하비 키이텔, 팀 로스, 마이클 매드슨, 스티브 부세미, 쿠엔틴 타란티노
정보
범죄 | 미국 | 99 분 | 1996-03-23
글쓴이 평점  




몽타주 시퀀스 : 여러개의 씬을 한번에 처리하는 방식으로 효율적으로 여러개의 시간대를 보여주는데 쓰인다. 영화사적으로 유명한 '시민케인'의 신문왕이 되어가는 장면등이 있다.


그래도 타란티노 감독이 '오렌지'에게는 좀 신경을 쓰긴 썼다. 어쨌든 갱들이 오렌지라는 뉴비를 괜찮은 도둑으로 받아들여줄수 있었다는 논리가 없다면 이후의 총싸움은 개연성이 없을 테니까...


이 시퀀스는 총 4개의 씬으로 되어있다. 친구에게 대본을 받아 집에서 연습하는 장면, 그리고 친구앞에서 그것을 자연스럽게 리허설 하는 장면, 그리고 갱들에게 드디어 시연을 하는 장면, 그리고 허구화된 이야기를 실제 이미지로 구성해 놓은 장면.







간단하게 말해서 이런 몽타주 시퀀스를 구성하는 것은 영화의 효율성 때문이다. 오렌지가 연습하고, 친구앞에서 시연하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서 갱들 앞에서 이야기 했고 정말 믿음직한 이야기로 그들을 완전히 속아넘겼다라는 이야기를 논리적이고 효율성있게 전달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란티노는 이 장면에서 조금의 연출을 더 가미한다. 


사실 이 영화에서 오렌지가 실제로 화장실에 들어서서 경찰을 맞딱드리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이것은 영화속에서 있었던 일인가? 아니다. 이 장면은 오렌지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졌으며 갱들의 머릿속으로 전이되는 장면이다. 하지만 사실 영화에서 굳이 이 장면을 넣지 않아도 이야기는 진행된다. 오렌지가 갱들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고 멋지게 속아 넘겼다는 이야기 자체는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 생생한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타란티노는 관객을 순간적으로 갱들의 시점으로 만들어준다. 오렌지는 갱들에게 그리고 동시에 관객에게 이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영화적 개연성을 위해 오렌지가 설득시켜야 하는 존재는 갱이 아니라 관객이다. 관객이 이 이야기를 납득한다면 갱들이 납득하는 것을 납득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반대로 관객이 아니라 영화속 갱들만 납득 시킨다면 관객들의 야유를 받아야 했을 것이다. 때문에 타란티노는 관객을 직접 그 존재하지 않는 화장실로 데려간다.


그리고 그의 연출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렌지와 경찰이 마주보며 대치한 순간 셰퍼드가 오렌지를 보며 미친듯이 짓는 순간 오렌지는 자신의 마음을 설명한다. 오렌지의 이야기의 클라이 막스이며 이것을 설득시켜야 하는 관객에게도 역시 영화적 클라이 막스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타란티노는 이 장면을 순간적인 공감각적 표현으로 만들어낸다. 

오렌지는 갱들에게 떠들고 있지만 그 장소는 화장실이며 이야기는 경찰들이 듣고 있는 것이다. 


오렌지가 이 장면을 설명할 때 갱들과 함께있던 술집이었다면 이런 긴장감이 표현이 되었을까? 절대 아니라고 본다. 타란티노가 대담하게도 이 영화를 전통적 의미의 영화들과 다르게 만들어 놓았지만 그럼에도 많은 관객들을 설득 시킨 것은 이러한 훌륭한 연출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연출하지 않지만 하고 싶은 것은 제대로 연출해서 보여주는 그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관객들은 종전의 다른 영화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를 납득할 수 있다.



용호풍운 (1988)

City On Fire 
9
감독
임영동
출연
주윤발, 이수현, 손월, 장요양, 유강
정보
범죄, 액션 | 홍콩 | 101 분 | 1988-12-16
글쓴이 평점  



저수지의 개들 (1996)

Reservoir Dogs 
8.2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출연
하비 키이텔, 팀 로스, 마이클 매드슨, 스티브 부세미, 쿠엔틴 타란티노
정보
범죄 | 미국 | 99 분 | 1996-03-23
글쓴이 평점  


왜 연도가 이따위로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용호풍운은 87년작 저수지의 개들은 92년작으로 알려져있다.


홍콩영화를 좋아했다던 타란티노는 용호풍운의 '범죄자로 가장한 경찰측 스파이'라는 모티브를 그대로 가져왔으며 또한 그로인해 무너져버리는 갱들의 이야기구조 또한 똑같다. 정말 쿨하게도 자신이 베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했으며 그렇다면 그가 '오마쥬'해서 변이시키고자 했던 두 영화의 연출 방식의 차이를 살펴보자.


<영화의 주인공은 누가봐도 '주윤발'이다>



우리는 영화 용호풍운을 주인공 '고추'의 시점으로 따라다닌다. 물론 영화가 대부분 그렇듯이 항상 고추의 시선만을 따라다니는 것은 아니다. 비밀경찰이었던 고추는 자신이 배신한 범죄자를 죽음으로 내몰고 그로인해 마음의 상처를 안고 은퇴한 인물이다.


하지만 영화의 내러티브가 항상 그러하듯 그렇게 지내고 있는 고추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비밀경찰 한명이 정체가 발각돼 죽임을 당하고 때문에 유경감은 믿었던 고추를 다시 이 세계로 끌어들인다.



<저항하는 고추를 다시 비밀경찰로 끌어들이는 것 역시 그의 '감정'때문이다>





자신이 속였던 범죄자와 정을 나누고 또 결과적으로 그를 배신하여 죽음을 맞게 했다. 그로인해 고추의 마음은 괴로웠고 그래서 비밀 경찰을 은퇴했다. 고추가 이세계를 떠난 이유가 '내적 갈등'이었다면 이번엔 똑같은 이유로 비밀경찰의 세계로 돌아온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죽어버린 비밀경찰의 장례식에서 울고있는 아내와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들고있는 아들을 바라보는 고추.


물론 이 외에도 유경감의 상황과 부탁이라든지 그런 외적 압력도 존재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를 강인하게 끌어당기는 것은 언제나 그의 '마음'이다. 이것은 영화가 개연성을 가지기 위한 일종의 일관성이다. 자신의 마음이 괴로워 경찰을 그만둔 고추가 다시 돌아오려면 다른 이유에서는 안된다. 아직까지 괴로운 자신의 마음에 무언가 매듭을 짓기 위해서 그는 경찰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영화의 표면상 이 장면에서 고추는 죽어버린 비밀 경찰의 유가족을 보며 동정심이나 아픈마음으로 비밀 경찰로 돌아가는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에서 죽음이 임박하자 자신의 정체를 밝히며 속시원하게 죽는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어쩐지 이 장면에서 고추는 무의식중에 임무수행중에 순직하기를 바란 것은 아닐까?

그가 그렇게 바라지 않았더라도 영화의 결말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버린다. 그것은 결국 이 영화가 매듭지어야할 방식이며 바로 고추의 정신적 갈등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방법인 것이다.


<한번 정을 주고 괴로워했던 고추는 다시한번 범인에게 정을 준다>





어째서인지 고추는 괴로워했던 과거를 잊고 다시한번 범인 무리의 한명에게 정을 준다. 물론 이것이 논리적으로 정을 끊을수 없는 고추라는 인물의 설정이며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캐릭터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너무나 바보같다. 정을 주게 되면 언젠가 자신은 경찰아니면 친구 둘중 하나를 배신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되며 고추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고추의 배신으로 갱들은 서로 총을 겨눈다>


이쯤에서 쿠엔틴 타란티노가 오마쥬한 <저수지의 개들>을 보자.



<이 영화의 주인공은 없다>


수많은 영화와 그것을 분석해놓은 서적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말한다. 영화의 첫씬은 매우 중요하며 해야 할 일도 많다.

영화의 시공간적 배경을 설명해야 하며 주제를 넌지시 드러내고 주인공과 특정 인물의 캐릭터를 설명해야 한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이 점을 과감하게 버림으로써 첫씬에서 영화의 주제를 드러낸다.


어떻게 드러내는지 궁금할 테지만 잠깐 용호풍운의 첫번째 씬으로 돌아가면 임영동 감독 역시 아주 평범한 스타일은 아니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인 고추를 등장시키지 않고 대신 주요한 살인 사건을 일으켜서 유경장을 등장시키며 고추는 그이후에 등장한다. 용호풍운의 첫 시퀀스는 주변의 상황으로 부터 고추를 찾아내서 따라가게 만드는 방식인 것이다.


다시 저수지의 개들로 올아오자. 영화가 시작하고 타란티노를 포함한 10명 남짓의 남자들이 커피숍에서 의미없는 수다를 떨고있다. 이건 뭐 여성 독립영화도 아니고 대체 이 수다의 종착지는 어디이며 목적은 무엇인가? 이 영화의 주인공은 누구이며 영화가 이 첫씬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 첫 번째 씬에는 영화의 시공간의 배경은 어느정도 있다.(미국말을 쓰며 팁을 주는 문화권이며 옷차림을 보면 현대라는 것을 알수있다.) 하지만 당최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수 없으며 이 씬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대사의 목적을 모르겠다. 영화 시나리오를 공부한 사람은 알겠지만 대사는 간결할수록 좋으며 적을수록 영화답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영화적 관점에 쿠엔틴 타란티노는 똥을 먹인다. (그래서 영화속 그의 닉네임이 똥 색깔인 '브라운'인지도 모르지..)

그는 이야기한다 "웃기지마 영화가 꼭 그래야만해? 아니야 영화 감독에겐 자유가 있고 모든 영화가 그러기에 그렇지 않은 영화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거야" 물론 이것은 진짜 그가 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냥 내가 들은 영혼의 대화랄까?


주인공도 없으며 대체 라이크어 버진이 걸레같은 여자의 이야기인지 팁을 줘야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그런 문제는 이 영화에서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타란티노는 정말 대담하게도 영화의 첫씬의 수많은 시간을 '허비'해버린다.

무의미하게 소비함으로써 영화 첫 씬의 의미를 재창조한다.


<스파이가 총에 맞고 그를 보살피는 친구가 있고 그 때문에 서로 총을 겨누는 이 모티브를 그대로 가져왔다>




그리고 영화는 같은 결말을 맺는다.


하지만 이 영화의 연출 방식이 다르고 주제가 다르듯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다르다.


<주인공인 '고추'와 주인공은 아닌듯 한 화이트>



똑같은 이야기를 가지고 영화의 시작이 달랐듯이 마지막 역시 다르다. 용호풍운이 마지막까지 감정적인 연출로 '고추'의 내면을 중시했다면 타란티노는 오렌지가 비밀경찰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총에 겨누지만 경찰에게 포위된 상황에서 그의 얼굴을 보여준다. 


영화의 해석은 저마다 다르고 타란티노 감독의 뜻을 완벽하게 알수는 없겠지만 <저수지의 개들>은 영화 내내 심각하지 말라고 한다. 영화가 한 인물을 따라가며 감정이입하는 체험이 될 수도 있지만 단순히 맥주를 마시며 잡답하면서 보는 오락거리도 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영화속에 특별한 주인공을 설정하지 않았으며 한 인물에게 감정이입할 틈을 주지 않았다.(이 부분은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지만 인물을 촬영하는 방식이나 물리적 시간을 어느 인물에게 오랫동안 부여했는가와 관련있다.)


용호풍운이 고추의 삶을 간접체험하여 그의 내적 갈등을 느끼게 하는 영화라면 저수지의 개들은 그야말로 저수지에서 개들이 싸우는 장면을 보는 단순잼이다. 체험잼vs단순잼.




어쩌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쿠엔틴 타란티노가 아닐까? 첫씬에 등장하고 죽었다는 말만 나오는 '브라운'이라는 인물은 사실상 '영화'를 고지식하고 무겁게 바라보는 인물들에게 똥을 끼얹고 있기 때문이다.

 


콜래트럴 (2004)

Collateral 
7.5
감독
마이클 만
출연
톰 크루즈, 제이미 폭스, 제이다 핀켓 스미스, 마크 러팔로, 피터 버그
정보
범죄, 스릴러 | 미국 | 120 분 | 2004-10-15

 

오프닝 시퀀스 - 외재음과 내재음의 경계를 이용한 감정이입

 

 

 

영화가 시작되고 빈센트 - 톰 크루즈의 모습에서 부터 시작된 bgm은 택시기사 맥스 - 제이미 폭스를 따라다닌다.

택시를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맥스를 따라 bgm은 자연스럽지 않게 다른 곡으로 변화한다.

 

이것은 영화속에 존재하지 않던 사운드(디제시스를 벗어난)인 bgm이 맥스의 카오디오를 통해 나오는 음악으로 설정이 변경 된 것이다. 외재음을 내재음으로 바꿔버린 이 방식은 맥스가 톰 크루즈를 만나 첫번째 살인이 벌어지기 까지 20여분간 계속된다.

 

이 영화속 음악은 맥스가 여자 승객과 사랑에 빠지는 감정을 지원하며 다시 등장한 톰크루즈로부터(순간적으로 음악은 다시 톰크루즈로부터 시작되어 외재음으로 변한다)시작되어 첫번째 피살인자가 택시위로 떨어질 때까지 계속된다.

 

물론 이러한 사운드 운용의 방식이 20여분간 외재음에서 완벽하게 내재화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랬다고 한다면 택시 안과 밖의 볼륨의 조정이 더 섬세해야 했으며 재등장한 톰크루즈를 따라 음악이 시작되어서는 안된다.

 

어쨌든 마이클 만 감독의 이러한 사운드 연출 방식은 여러가지 효과를 가진다.

첫 번째로 영화의 음악이 맥스를 따라가게 만들면서 관객에게 무의식적으로 맥스에 동화되게 만든다. 이것은 영화속 이야기가 해냈던 역할을 지원하는 방식인 것이다.

여자 승객과 빠른길 내기를 하는 맥스에게 관객들은 택시기사로서의 정열과 전문성, 그리고 그의 명석함이라는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이러한 논리적인 감정동화의 효과와 마찬가지로 비논리적으로 음악을 통해 우리를 맥스에게 빠져들도록 설정한다.

 

히치콕의 스릴러를 대하는 방식 - 서스펜스와 서프라이즈

 

테이블에 누가 시한 폭탄을 장치했다. 이후에 사람들이 들어와 대화를 나눈다.

만약 관객이 시한폭탄을 설치한 사실을 알고있다면 대화 내내 서스펜스가 발생한다, 반대로 관객이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폭탄이 터진다면 관객에게 그것은 서프라이즈(충격)으로 작용한다.

 

스릴러 영화의 긴장감을 조성하는 가장 중요한 이 두가지 방식에서 마이클 만 감독은 대체로 서스펜스의 방식을 취한다. 당연한 것이지만 관객에게 매번 놀라게 하는 식의 연출은 마술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속에서 두번 관객에게 정보를 숨기는 연출을 한다.

 

첫번째는 바로 앞에서 이야기 했던 첫 피살자가 택시위로 떨어지는 장면이다. 관객에게 톰크루즈가 킬러라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택시위로 떨어진 시체는 관객에게 상당한 충격과 공포를 제공한다. 20여분간 관객에게 톰 크루즈의 정체를 설명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 충격의 순간을 관객과 맥스가 동일선상에서 느끼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맥스는 갑자기 떨어진 시체를 보고 너무 놀라서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감독은 관객과 맥스의 동일 시점을 통해 이야기 한다.

별개의 이야기지만 순간적으로 시체의 시점샷을 한쇼트 보여준 방식으로 빠른 리듬감을 생성하고 관객들의 무의식에 복합적 감정을 심어주었을거라 기대한다.

 

 

두번째 서프라이즈 쇼트는 바로 맥스와 빈센트의 총격전 장면이다. 마치 사무라이 영화에서 두사람이 칼을 휘두르며 지나가고 나서 한사람이 쓰러지는 장면처럼...

계속해서 총을 겨누고 있는 빈센트의 상반신을 비추다 바닥에 떨어지는 탄창을 통해 빈센트의 죽음을 암시한다. 첫번째의 서프라이즈 방식과는 다르게 이 장면의 연출은 어느정도 감정적으로 해석된다. 관객에게 빈센트의 패배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마지막까지도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게 만든다. 그리고 영화속 주제를 드러내듯 빈센트의 죽음마저 고요하게 표현하기 위해서인듯 하다.

 

영화속 주제 - 대도시속의 무관심과 인간 감정의 빈곤을 통해 우리는 잘 살고 있는가를 묻는다

 

 

 

 

 

 

 

 

 

계속해서 보여지는 도시의 이미지는 미학적으로 영화를 보는 재미를 창출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빈센트의 말처럼 LA에서는 옆에서 사람이 죽어도 아무도 관심이 없다. 수많은 사람에 둘러쌓여 살지만 고독하다.

 

 

"그럼 아는 사람만 죽여야 하나? 누구였는지 무슨 상관이야. 르완다라는 곳에서는 하루에도 수만명이 죽어가 맥스 너는 그 사람들한테 관심이나 가진적 있어? 르완다 사람은 모르고 트렁크속 시체는 알아?"

빈센트의 쿨한 자기합리화이다.

이러한 킬러의 논리는 마이클만 감독이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듯하다. 영화속에서 빈센트가 수많은 사람을 죽이지만 우연히 사건현장을 발견한 형사 이외에는 어떤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사람들의 신고나 총성을 듣고 출동하거나 하는일이 전혀없다)

지금 너희들이 영화를 보고 있는 이시간에도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 그런데 너희는 고작 영화속 허구의 인물의 죽음에 대해 걱정하고 있지. 비록 감독이 의도적으로 거리두기를 하지는 않지만 영화속의 주제는 이처럼 날카롭다.

 

 

 

 

 

마지막에 죽어서 홀로 남겨져 있는 빈센트를 보여주는 이 쇼트가 영화 콜래트럴에서의 최고의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좌석에서의 시점으로 보여주는 이 쇼트를 통해 과연 LA의 사람들이 이 사람을 보고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그냥 자리에 앉아 졸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열차는 게속해서 달린다. 아무런 일이 없는 것처럼.

 

캐릭터 - 빈센트

 

 

 

 

 

LA는 수많은 사람이 살지만 서로에게 관심이 없어 고독해서 싫다는 그는 꽤나 이중적인 인물이다. 실제로 사람들의 무관심은 그의 직업에 아주 도움이 되고 자신이 죽이는 사람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들의 무관심속에 고독하게 죽는다. 그의 이중성을 보여주기 위해서인지 택시안에서 유리로 그의 얼굴을 반만 가리는 쇼트가 꽤나 지속된다. 그리고 나중에는 균열이 생긴 앞유리에 그의 모습을 가리는 미쟝센으로 관객에게 빈센트라는 인물을 전부 드러내지 않는다. 감독은 결국 끝까지 이 빈센트라는 인물에 대해 추측을 하게 할뿐 확실히 알게 해주지 않는다.

정장을 입은 그의 모습은 꽤나 멋지고 언젠가부터 영화속 킬러들의 유니폼이 되어버린 것 같다. 여자의 옷차림을 보고 법조인이라는것을 단번에 알아맞춘 맥스의 캐릭터를 생각하면 빈센트의 이 의상은 LA에 부동산 일로 출장온 남자의 의상으로 적절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캐릭터 - 맥스

 

 

 

택시를 깔끔하게 하고 빠른길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그는 꽤나 전문성이 있어보인다.

하지만 택시안에서 몰디브 사진을 보며 현실도피하는 그는 우유부단한 생각많은 캐릭터이다. 여자에게 번호를 묻지도 못하며 어머니에겐 거짓말을 하고 12년간 일해온 택시기사를 임시직이라고 자기자신마저 속이고 있는 인물.

그의 의상에 대해 말을 한다면 정말로 12년간 일을 하며 리무진 회사를 차리려는 뜻을 가진 사람이라면 별나 보이더라도 턱시도를 입고 택시를 몰지 않았을까? 그의 티셔츠와 후드는 택시기사라는 현실에 안주한 맥스 자체를 표현하는 듯 보인다.

빈센트인척 하고 잃어버린 자료를 다시 받으러가는 장면에서 안경을 벗는 맥스의 모습은 이 영화에서 손꼽히는 볼거리이다. 이 한 장면을 위해 맥스에게 안경을 씌운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정도.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빈센트가 죽고 열차에서 내리는 맥스의 모습에서 갑자기 안경이 사라지는데 이것은 그냥 실수로 보여진다.

 

 

택시의 의미

 

택시라는 공간은 맥스에게 알과 같은 것이다.

지금은 자신을 보호해주고 있지만(경제적으로) 언젠가 깨고 나가야할 공간이다.

그러나 그는 교대로 운전하는 차를 청결하게 닦고 휴가마저도 택시안에서 사진을 보며 상상할 정도로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 그것을 맹렬하게 지적하는 것이 빈센트이며 영화에서 몰디브섬의 사진을 여자에게 줘버리는 내러티브는 맥스가 곧 껍질을 깨고 나갈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실제로 맥스는 사고를 내서 택시를 부숴버린다. 영화가 끝나고 만약 관객에게 맥스가 택시회사로 돌아 갈것인가 리무진 회사를 차릴것인가 묻는다면 아마 후자를 대답할 것이다. 관객에게 이미 택시라는 알을 깨고 나온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영화속 한국의 이미지

 

 

 

24시간을 일하고 자주 범죄에 연루되어 있지만 미국 영화속에서는 항상 죽임당하는 역할이다. 그래도 극악 범죄자로 그려지지 않는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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