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500일의 썸머가 재개봉 하니까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올려보자..

그래서.. 파워블로그가 되고 싶다..

하지만 난 안될거야 아마 난 최근 개봉작 같은거 잘 안쓰니까..

 

오늘의 이야기는 음향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음향을 크게 2가지로 외재음과 내재음으로 분류해보자.

내재음이 극중 캐릭터가 들을 수 있는 소리 즉 대사, 현장음 같은 것이라면 외재음은 극중 인물이 들을 수 없는 OST, 효과음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인물이 듣고 있는 음악은 수많은 영화에서 내재음과 외재음의 경계를 넘나든다. 넘나 경계를 넘나드는 것.

 

2009/09/12 - [영상문법] - 사운드 복선 - <포 미니츠, Vier Minuten>

2009/09/12 - [영상문법] - 페이드 아웃, 외재적 내재음 -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을 참고 하시고.

 

이제 21세기 최고의 변형 로코 500일의 썸머 이야기를 해보자.

시작부터 병신짓을 하고 있는 우리의 주인공 톰은 첫눈에 썸머에게 반한다.

 

 

<첫눈에 반한 톰. 그래 썸머라면 그럴 수 있어>

 

첫눈에 반해놓고 나레이션으로는 운명이라고 생각까지 해놓고 썸머에게 조금도 다가가지 못하는 우리들의 대변인 폭풍병신 톰.

 

<친구에게 썸머가 얼굴값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톰>

 

주인공은 톰이기에 썸머는 철저하게 썸의 시선의 객체로써 보여지게 된다.

 

위에서 첫눈에 썸머에게 반했던 톰이지만 그 즉시 회사동료에게 썸머가 얼굴값하는 싸가지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우리 찌질한 남자들은 모두 눈치채지만 톰은 그녀에게 말을 거는 것 자체를 포기한다.

 

하지만 주인공이 이렇게 행동하지 않아서야... 로맨틱 코메디에서.. 이야기가 진전 되겠는가? 그렇다 진전된다. 그런 면에서 확실히 이 영화는 변형 로맨틱 코메디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 영화가 그렇게나 재밌는 이유는 정말 씬 디자인이 죽여주기 때문이지>

 

 

<그림1>에서 엘레베이터를 타는 톰. 하지만 썸머가 곧바로 따라 탄다.

그녀에게 얼굴값을 하기 때문에 어차피 말걸어봐야 무시당할거라고 생각한 톰은 애써 그녀를 외면하며 다른 곳을 보고 있다. 그렇다.. 톰이야 말로 이 시대의 대변인이 아닌가... ㅠㅠ

 

하지만 썸머는 톰이 헤드폰으로 듣고 있는 스미스의 음악을 눈치채고 그에게 말을 건다.

스미스 음악이 좋다고... 취향이 비슷하다고.. 그저 그런 말을 하고 사라져버린다.

 

썸머의 이 때 마음이 어떤지 모르지만 우리의 톰은.. 이 말 하나로... 썸머에게 반해버린다..

그렇다.. 금사빠.. 아니 이미 반해있었으니까... 심쿵충이라고 불러야겠다...

 

이 대단치 않아 보이는 장면에서 2가지 주목할 만한 감독의 연출력이 있다.

음악과 엘레베이터라는 공간의 연출.

 

대단치 않아 보이는 장면이지만 사실 아주 중요한 장면이다.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이 처음으로 대화를 하는 장면. 이것을 어떤장소에서 어떤 상황으로 관객들에게 어떤 갈등과 결말을 들려줄 것인가?

 

먼저 공간을 살펴보자 <그림3>을 보면 굳이 엘레베이터가 닫힐 때까지 컷을 쓰고 있다.

2016/06/15 - [영상문법] - [영상문법] 클리셰 반복으로 강조하기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2015 매튜본 Matthew Vaughn>

에서 이야기 했듯이 영화에서 '문'이란 다른 세계로 가는 통로다.

 

이 영화에서도 톰은 엘레베이터 문을 통과하고 썸머역시 뒤따라 통과하고 그 문은 닫혀 버린다.

썸머가 뒤따라 왔기 때문이지만 톰이 굳이 엘베문을 통과하는 장면이 꼭 필요한가? 자르려면 자를 수도 있다. 하지만 자르지 않은 것은 바로 톰이 엘레베이터 문을 통과하고 그 공간은 곳 톰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세계가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썸머가 들어오고 문이 완전히 닫혀지고 난 후다.

 

문이 닫히고 둘만이 된 은밀한 공간에서 애써 같은 회사 사람을 무시하고 음악을 듣고 있는 톰. 멋지다.

하지만 썸머는 훅들어온다.. 그렇다 우리가 정말 무서워하는 우리마음에 흙발로 들어와서 마음을 풀어헤쳐 놓는 바로 그런 여자다.

 

그리고 둘만의 대화가 끝나고 썸머는 엘레베이터 문을 통과해 나가고 톰은 그대로인채 문이 닫힌다. 이 장면 역시 끝까지 보여주는 것이 그저 멍하니 바보같이 보이는 연출일 수 있지만 공간에 대한 상징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둘만의 공간에서 썸머는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녀는 이 때 톰을 사랑한 것도 아니고 그저 지나가다 들르는 세계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500일동안 톰은 이 세계에 갇혀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감독은 톰을 이 엘레베이터에서 탈출 시키지 않는다.

 

공간 이야기는 이쯤하고

사실 이 장면이 더 흥미로웠던 음악이야기를 해보자.

 

 

<음악이야기라 동영상첨부. 그런데 톰이 개찌질한 장면이 뙇>

 

 

이 장면이 바로 그렇게 영화들이 좋아하고 클리셰로 써먹은 내재적 외재음이다.

톰이 듣는 스미스의 음악은 썸머도 들을 수 있게 아주 작게 흘러나온다. 그래야 썸머가 이 노래를 듣고 톰에게 말을 거는 개연성이 생기니까.

 

그리고 톰이 헤드폰을 벗었을 때 관객에게 이 음악이 조금더 크게 들린다. 이것도 아직 내재음의 범위지만 카메라가 다시 엘레베이터 밖으로 나와서 문이 닫혀 있을 때도 이 음악의 볼륨은 그대로다.

 

그럼 감독이 이 내재음이었던 음악을 왜 외재음으로 편집 한 것인가? 그런 기술이 없어서? 그럴 턱이 있나 심지어 이 영화는 뮤지컬 영화로 분류되는데..

 

바로 이 스미스의 음악이 관객에게 들리는 순간 썸머가 톰에게 말을 거는 순간 톰이 썸머에게 홀리는 순간이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톰이 듣고 있던 작은 음악은 썸머의 훅공격에 그를 실신시키고 그 감정을 관객이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음악은 이제는 더이상 내재음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문'을 지난다.

문이란 무엇인가? 두개의 다른세계를 연결하는 통로이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굳이 문을 통과하는 장면이 보인다면?

우리가 볼일을 보기위해 화장실문을 통과 하는 것.

이런 것이 영화적으로 의미가 있을까?

의미가 없는 것은 굳이 보여줄 필요가 없다.

만약 영화에서 문을 지나는 장면이 있다면 그것은 인물이 다른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상징인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감독이 잘못한 것이다.

 

 

<혼잡하고 방향을 알수 없는 길거리. 에그시의 현재를 상징한다>

 

경찰서를 나와 해리를 만났다가 집에 돌아간 에그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엄청난 분노와 폭력이다. 아무에게도 술집에서 일어난 일을 말하지 않겠다는 에그시를 시험하기 위해 통신기를 붙여둔 해리는 그를 킹스맨의 거점으로 불러들인다.

 

그리고 이제 힘없고 약한 에그시는 킹스맨이 되기위해 수많은 문을 건넌다.

 

 

<양복점부터 킹스맨 훈련소까지 5개의 문을 지나는 에그시 이 시퀀스를 문 시퀀스라고 부르자>

 

 

해리의 부름으로 양복점에 도착한 에그시는 문을 열고 해리를 향해 걸어온다.

그러나 잘 보면 <그림1>과 <그림2>에서 벌써부터 2개의 문을 통과한다.

 

몇백억 이상이 들어가는 영화에서 굳이 문을 두번이나 통과하는 장면을 다 보여줄 필요가 있는가?

집을 나서 바로 해리를 만나는 장면으로 점프해도 되지 않는가?

그렇다 물론 이야기를 진행하는 데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단지 매튜본 감독은 ㅈ밥 에그시가 킹스맨이 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수많은 관문을 일찍부터 보여주고자 한다.

 

그림1,2를 통해 해리를 만난 에그시는 해리를 따라 의상 탈의실?로 들어간다. <그림 3,4>

이 때도 한번더 문을 통과하고 그림 5에서도 고속이동수단을 타기위해 문을 통과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림 6,7>의 문을 통과하면 그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킹스맨이 되기 위해 모인 '라이벌'들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장면은 명백하게 문이라는 클리셰를 도배해서 강조하고 있다.

킹스맨이 되기 위한 어려움을...

 

이 장면에서 문을 통과하는 장면을 생략해 보자.

집을 나와 야마카시를 한 에그시가 다음 장면에서 이미 해리앞에 서 있다면? 또는 아무도 없는 양복점 안에서 해리를 기다리고 있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탈의실문을 통과하고 또 고속이동수단문을 들어갈 필요 없이 킹스맨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다가 그 의자만 지하로 들어가서 바로 고속이동을 해서 훈련기관으로 도착했다면?

그리고 그 곳에 바로 라이벌들이 있었다면? 단 하나의 문도 통과하지 않고 이 장면을 연출 하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문이란 다른세계로의 통로이다.

에그시가 5개의 문을 지나면서 통과해야 하는 것은 물리적인 다른 세계이지만 결국 그가 이겨내야할 고난도 훈련들을 암시한다.

 

그리고 5개의 문을 물리적으로 통과해야 겨우 '귀족'라이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엄격한 차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영화장면의 해석은 언제나 이렇게 시작한다. 왜 이렇게 찍었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문제가 있나?

영화의 주인공은 크나큰 사건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그의 운명은 바뀌게 된다. 이 전환점은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 역시 그러하다.

 

영화 킹스맨에서 에그시는 어떤일을 겪게 되는가?

아버지가 죽는 사건 그리고 17년이 지나간 시점은 영화의 배경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에그시가 어떤 사건을 만나고 그의 운명에 변화가 온다.

이 글에서는 바로 그 운명의 전환점을 살펴 볼 것이다.

 

 

<감옥에 갇히게 되자 아무데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에그시는 킹스맨에 전화를 건다>

 

17년이 지나 성인이 된 에그시는 엉망진창으로 살고 있다.

어머니는 깡패를 집에 들이고 깡패 부하까지 들어와 있는 상황에 어린 여동생은 제대로 돌보지도 않고 있다.

 

에그시는 이후에 해리에게 어머니의 반대로 해병대를 그만뒀다고 했지만 과연 그랬을까?

자신이 해병대에 들어가있는 동안 깡패새끼들과 어머니와 여동생만이 있는 집이 걱정되서 그만둔 것은 아닐까?

 

아무튼 이런 이유를 뒤로하고 자신이 하고싶은 것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에그시는 방황의 나날을 보내다 결국 경찰차의 추격에 후진으로 도망치는 사고를내고 18개월이라는 형을 받게 될 위기에 처한다. 이 때 자신을 도울 사람이 아무도 없을을 아는 에그시는 17년전 받았던 목걸이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건다. 이것은 물론 킹스맨과 직통으로 연결되는 전화이며 바로 이 '전화 한통'이 에그시의 운명을 크게 바꿔 놓는다.

 

운명을 바뀌게 하는 전화통화에는 아직 이렇다할 연출이 없다.

감독은 직후 해리와 에그시의 재회 장면에서 에그시의 운명이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단 한 컷으로.

 

 

<사진이 여러장이지만 카메라가 움직이는 단 하나의 컷이다>

 

 

에그시가 전화를 끊고 장면은 경찰서 밖으로 옮겨진다.

그리고 그 밖에는 방금 에그시에게 같이 있던 친구들을 불지 않으면 18개월 징역을 살게 될거라고 말한 형사가 담배를 피고 있다. <그림1>

 

밖에서 담배를 피고 있던 형사는 전화를 받고 뭔가 명령을 들은 듯 불만스럽게 건물안으로 들어가고 그와 교차하며 에그시가 풀려난다 <그림2>

 

갑자기 풀려난 상황을 어리둥절 하며 계단을 내려오는 에그시를 앞에서 낮은 위치에서 찍으며 그의 뒤에 햇살이 빛나게 한다 <그림3,4>

 

그리고 계단을 내려오다 누군가 자신을 불러서 돌아보면 형사가 있던 그 자리에 킹스맨 해리가 똑같은 자세로 서 있다<그림5>

 

이 것을 단 한컷으로 연결한 의미는 무엇이며 각 그림에 대해 해석해 보자.

 

우선 그림 1에 형사가 있던 자리에 킹스맨 해리가 자리 한다는 것.

그동안 에그시를 끊임 없이 쫓고 괴롭혔을 경찰들의 자리에 킹스맨이 자리 할 것이라는 상징이다.

굳이 형사의 자리에 해리가 똑같은 자세로 기대 서 있는 것은 물론 디자인적 의미의 유희일 수 있으나 영화에서의 맥락을 따져보면 이렇게 해석된다.

에그시를 처벌하던 형사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에그시를 이끌어줄 킹스맨이 대신 자리하고 에그시는 더이상 형사들로 부터 자유로워 질 것을 암시한다,

 

경찰서에서 풀려나 어리둥절 하며 계단을 내려오는 에그시를 앞쪽에서 비추며 의도적으로 카메라를 낮게 잡아 에그시의 뒤에서 햇빛이 비추게 표현한다.

이 장면 역시 의도적으로 명확하게 해의 위치와 시간대를 조절해서 찍었다고 보여지며 암울했던 에그시의 삶에 서광이 비춘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상투적이지만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그림 5에서 해리가 등장하고 단 한컷으로 보여지면 장면은 다른 컷으로 넘어간다.

 

이렇게 분리해서 봐도 나름 명확해 보이는데 굳이 이것을 한컷으로 찍은 이유는 무엇일까?

왜냐하면 이것은 운명의 전환이기 때문이다. 그림1의 형사와 그림5의 해리가 하나의 쇼트안에서 같은 자리에 서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전환'이라는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 할 수 있다.

 

 

2009/09/13 - [영상문법] - 롱테이크 - <살인의 추억, Memories Of Mu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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