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도 쉽진 않았기에, 원작 소설을 읽어 보았다. 읽다보면 코엔이 어떤 걸 넣고, 어떤 걸 빼고, 어떻게 변형시켰는지 적어도 보이긴 할 테니까.
코엔이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각색에 있어서 코맥 맥카시의 소설을 있는 그대로 영화화하는데 집중했을 뿐, 변형시키려고 하진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코엔이 2시간가량의 영화로 축소시키기 위해서 어떤 걸 뺐고 어떤 걸 넣었는지, 이 취사선택에 집중했다.
(코엔이 각색하여 영화를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코맥 맥카시였을까? ‘블러드 심플’에 영향을 준 제임스 M 케인, ‘밀러스 크로싱’에 모자 모티브를 준 데실 헤밋, 레이먼드 챈들러의 ‘빅 슬립’에서 영향을 받아 만든 ‘빅 레보스키’까지. 이렇듯 하드보일드 소설 작가들에게 영향을 받은 코엔으로서 현 시대 가장 하드보일드한 소설을 쓰는 코맥 맥카시야 말로 영화로 만들기에 가장 적격이지 않았을까)
물론, 취사선택 외에 소설과 다른 부분들도 있다. 소설의 텍스트를 영화의 이미지와 사운드로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조금씩 변형된 부분은 있되, 그것이 이야기 자체의 변형을 야기하진 않았다.
그럼 일단, 책에는 없고 영화에 있는 부분을 몇 군데 보자면,
1. 영화 초반에 등장한 보안관이 시거에게 수갑으로 목 졸려 죽어가면서 발버둥 쳤던 구둣발의 흔적들. 이미지만으로 전달되는 공포.
2. 시거가 약을 사러 들어가는데, 갑자기 거리에 세워져 있던 차가 폭파한다. 단순하지만 중요한 영화적 스펙터클.
3. 웰스가 시거에게 총 맞아 죽기 전, 갑자기 크게 울리는 전화벨 사운드로 긴장감을 증폭시키는 장면.
이 세 예시만으로도, 코엔이 좋은 이야기꾼만이 아니라, 좋은 연출가이기도 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반면 굉장히 영화적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알고 보니 책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기도 했다.
그 중 시거가 주유소 주인과 대화하면서 먹던 캐슈넛 비닐봉지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 꾸겨져 있던 비닐이 펴지면서 나는 괴이한 사운드가 내겐 굉장히 영화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연히 소설에 없고 코엔이 만든 거라고 생각했는데 ... 웬걸, 소설에 그대로 있었다.
‘시거는 남은 캐슈넛을 다 손바닥에 쏟아붓고는 작은 봉지를 손으로 뭉쳐서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꼿꼿이 선 채로 캐슈넛을 씹었다.’
-66p
이렇듯 코엔이 충실하게 이 소설을 영화로 옮길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이 소설의 세계관을 코엔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뜻할 것이다.
소설의 세계관은 굉장히 냉혹하다. 이야기 안에서는 피가 낭자하지만, 그 이야기를 이루고 있는 세계관은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만 같다.
그렇기에 이 영화 역시, 코엔 영화들 중에서 가장 냉혹하고 하드보일드 하다. 허나 이 소설 때문만은 아니다. 앞서 봤던 그들의 데뷔작 ‘블러드 심플’도 이에 못지않았으니까. 즉 코엔의 세계관은 애초에 코맥 맥카시의 세계관과 맞닿아 있었던 셈.
이야기는 단순하다. 돈 가방을 우연히 갖게 된 모스(조쉬 브롤린). 그 모스를 쫓는 살인마 시거(하비에르 바르뎀). 그 시거를 쫓는 늙은 보안관 벨(토미 리 존스).
이야기의 시점과 화자는 벨이다. 벨은 옛 시대에는 향수를 갖되, 현 시대에는 불만을 갖고 있다. 사실 불만을 넘어선 공포와 불안에 가깝다.
벨에게 현 시대는 시거 그 자체이기도 하다. 당최 불가해하고 어떻게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그런 ...
바로 여기서 난 코엔이 떠올랐다. 각각 54, 57년생인 조엘과 에단 코엔. 60대에 접어들기 직전인 2007년에 이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3 년 후, ‘더 브레이브’란 영화를 만들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현 시대의 서부극이고 굉장히 냉혹하다면, ‘더 브레이브’는 옛 시대의 서부극이고 어쩌면 동화에 가까울 정도로 따뜻하게 그렸다.
그래서 코엔은 벨과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벨이 옛 시대에 향수를 갖고 현 시대를 두려워했듯이, 코엔 역시 옛 서부극에는 따뜻한 향수를 품고 있고(‘더 브레이브’), 그들이 현재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서부극은 비정하고 하드보일드한 세계로 그려냈으니(‘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옛 서부극을 다루는데 있어서, 코엔이 그 시대상에 느끼는 향수보다도 그 시대상을 다뤘던 옛 고전 영화들에 대한 향수로 인해 더 따뜻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존 포드나 하워드 혹스에 대한 향수. 코엔도 영화를 좋아하는 한 명의 팬으로서)
보통 영화 제목이 주인공의 이름인 경우 그 인물의 얼굴을 보여주거나 주변을 보여주며 시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킥애쓰1은 조금 다르다. 주인공이나 그의 주변인이 아닌 전혀 엉뚱한 '엑스트라'를 보여주며 영화를 시작한다.
그리고 나레이션으로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저게 나냐고? 아니 저건 정신병력이 있는 엑스트라일 뿐이다'
시작부터 이영화는 영화에 대한 유머로 시작하고 있는 듯하다.
주인공의 나레이션이 들어가고 주인공이 등장할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지롱? 하는 듯.
이 유머러스한 화법은 굉장히 중요하다. 이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끌고 가는 방식이며 히어로 영화를 비꼬는 히어로 영화에 맞게 조금은 덜 진지한 화법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학교생활이 펼쳐지는데 사실 그는 전혀 아무런 문제가 없다.
피터처럼 왕따를 당하는 것도 브루스웨인처럼 트라우마가 있는것도 클라크처럼 외계인도 토니처럼 도덕성 결핍도 아니다.
위 장면이 재밌는 것은 주인공을 바래다준 아버지의 얼굴을 굳이 등장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히어로 영화에서는 항상 주인공의 집의 미장센이 중요하다. 그 히어로의 내면을 보여주는 공간이며 그가 왜 히어로가 되야만하고 어떤 내적 갈등을 겪는지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데이브에 방에 딱 보이는 것은 우선 시지프스의 신화로 보이는 그림?
이것은 어떤 운명에대한 도전? 같은 의미로 무모한 데이브의 히어로 되기라는 컨셉에 잘 맞는 그림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시지프스를 제외한 여자 그림.
주인공의 색마성을 보여주고 특히 총을 든 그림은 앞으로 힛걸의 등장을 예고하는듯도하다.
결국 조금 과장해서 해석하면 데이브는 힛걸같은 여자 히어로를 기다린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토니 스타크라는 색마 히어로는 있었지만 딸잡이 히어로는 없지 않았는가?
영어 선생님을 생각하며 딸을 치고 (여기까진 그래도 그러려니 한다. 영어선생님 꽤 섹시하지 않은가?) 아프리카 원주민을 보고 딸을..치다니..
아니 누가 요새 저런 사진을 보고... 딸을 치나?
고퀄 동영상이 널려 있는 인터넷 시대에 (굳이 데이브는 인터넷으로 저걸 보고 치다니...)
이 장면 역시 주인공의 호색함과 (나중에 데이브는 여친이 생기자 지킬 것이 생겼다며 히어로따위 그만두려고 한다...못난새끼) 한심함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다. 하지만 이 '한심함'이 바로 킥애쓰라는 히어로의 아이덴티티인 것이다. 이렇게 설정된 내츄럴본 한심함은 좀처럼 영화에서 깨지지 않고 끝까지 유지시켜야 하는 주인공 그 자체의 키워드라고 보여진다.
언제나 멋지게 등장하는 히어로의 발을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으로 표현하다니 대단하다.
그리고 오프닝 시퀀스에서의 할일인 '주요 등장인물 등장'도 신경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바로 주인공 데이브와 그의 가정, 학교 인물들만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주인공과 그와 이미 관련된 인물을 등장 시키고 적대자와 조력자는 이후에 등장한다.
<이 장면이 오프닝 시퀀스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곳이다>
데이브의 나레이션과 주변을 탐색하고 결국 이야기는 그의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에 대한 죽음 역시 상당히 유머러스하게 이야기한다.
이 장면을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매튜본 감독이 이 씬의 디자인을 상당히 창조적으로 설계 했다는데 있다.
3인의 식탁을 보여주던 카메라는 앞으로 전진한다. 그리고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시리얼로 다가간다.
그리고 별 의미 없던 시리얼은 묘비로 디죨브 되고 (이것은 영화영상 스토리텔링 100에 나오는 바로 그 유사합일 커트???) 데이브는 어머니의 죽음을 복수할거야!라고 외친다. 하지만 어머니의 죽음에는 복수할 만한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묘비는 다시 시리얼로 디죨브 되고 카메라가 뒤로 빠지면 어머니만 빼고 부자가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시리얼을 먹고 있다.
사실 이 장면 하나만 포스팅해도 될 정도로 기가막힌 카메라 워킹과 씬 디자인인데...
우선 카메라가 들어 갔다 나왔을 때의 두 장면의 차이를 통해 데이브의 내면을 설정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지만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 아버지와 내가 앉는 위치도. 식탁의 배치도... 심지어 그들이 먹는 시리얼도 그 포장의 디자인 까지도.
쿨하고 유머러스하게 보여지는 이 '어머니의 죽음'은 데이브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그는 어머니의 죽음 때문에 히어로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는 지루해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운동을 잘하지도 못하고 여자친구도 없다 그저 딸 삼매경에 빠지고 어머니가 죽었지만 그 복수를 위해 매달릴 일도 없다.
마치 대체 무엇에 빠져 열중해야 하는가?라는 현대인의 실재적 고민을 데이브는 '히어로가 되고 싶다'라는 방식으로 풀이한다.
그의 삶에는 대 이벤트가 필요한 것이다. 힛걸 같은 사람이 등장해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한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굉장히 영화적인 캐릭터다. 주도적이며 적극적으로 자신이 옷을 만들어 진짜 킥애쓰가 되려고 한다.
이로 인해 우리가 파악해야할 2편에서의 데이브의 시간은 짧아졌으며 민디의 이 초반 세팅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 생각된다.
민디는 후견인 몰래 훈련을 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한심하게도(데이브의 아이덴티티) 히어로를 포기하고 지루하게 살아가는 데이브를 훈련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굳이 이 세팅이 필요한가 다시한번 질문한다.
왜 킥애스1에서 2가 되는 시점에 분명 많은 시간이 흘렀다. (데이브는 여전히 고딩이지만 민디가 너무 커버렸는데... 이건 어떻게 설명할거냐?) 그런데도 이야기는 마치 1편이후 몇개월 직후의 이야기이다.
이 점은 분명히 아쉽다.
영화의 초반 시퀀스로 존재하는 민디의 데이브 훈련조교 세팅은 굳이 1편과 2편의 백 스토리로 존재하면 되지 않았을까?
2편이 시작했을 때 킥애스가 더 강해져있고 오히려 민디가 히어로를 포기한 상태로 중간부터 등장했다면 더 스피디하고 심플하게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물론 이랬으면 저랬으면 하는 것은 큰 의미는 없지만..)
그리고 데이브의 초반 캐릭터 설정에 실수가 있었다고 보여진다.
1편에서 데이브가 히어로를 포기하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여자친구' 때문이다.
그래서 초반에 영어 선생님을 생각하며 딸치는 장면이 의미가 있는 것인데.. 2편에서 위의 장면을 보면 1편 영어선생보다 핫한 선생을 보고도 데이브는 무성욕자처럼 행동한다.
그의 왕성한 성욕은 어디 갔는가?
아니 최소한 그의 성욕과 여자친구의 관계가 여전하기 때문에 히어로를 안하고 있다는 설정을 위해서는 여자친구와의 섹스씬이 반드시 들어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자친구 때문에 그만둔 히어로짓(?)인데 어째서 2편 초반에는 여자친구에 대한 언급은 있지도 않고 쩌리 취급하는지 모르겠다.. 여자친구 때문에 그만둔 일을 다시 하려면 그녀와 이야기하고 정리하는 것이 맞는 일 아닌가? 데이브가 병신에 찌질이지만 그 정도 논리적 행동은 할 사람으로 보여지는데.. 역시 캐릭터 세팅이 정확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초반 데이브가 삶을 지루해 해야하는데 섹스가 들어가면 그렇지 않을 것 같아서?
아니 오히려 섹스를 함에도 채워지지 않는 지루함을 표현했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만 이후의 쿨한 헤어짐이나 아무여자나 막건드리는 데이브의 난봉스러움이 표현이 되지 않았을까?
왜 1편에서 있었던 데이브의 성적인 면이나 히어로에 대한 탐욕스러운 갈망이 초반에 세팅되지 않았는가 안타깝다.
그리고 그는 TV를 보고 다시 히어로 활동을 하기로 결심한다.
이 세팅 역시 갑작스럽고 의아하다.
이 영화가 1편이면 그럴수도 있지만 이미 우리는 그가 왜 히어로를 포기했는지 알고 있다.
그것은 여자친구가 생겨서 성적 만족감과 행복감이 그의 삶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2편에서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지루하고 히어로 활동이 아니고서야 채워지지 않는다라는 세팅은 바로 이 오프닝 시퀀스에서 표현 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러한 점들은 전혀 표현되고 있지 않다.
그 이유가 바로 민디 매크리디에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 때문이고 여자친구와의 섹스씬의 부재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가 왜 히어로를 그만뒀는지 명확하게 설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갈망이 채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줬어야 한다.
이렇게 2편은 영화의 초반부터 데이브에 대한 관객의 몰입에 어느정도 실패한다.
<1편의 딸치는 장면의 패러디격인데...역시 안타깝다>
1편에서 주인공이 영어선생을 생각하며 딸을 치고 바로 곧바로 원주민 사진을 보며 1DAY 2 2DDAL을 보여주는 것처럼 비슷한 장면을 보여주려고 한다.
그러나 이 장면 역시 좋지 않다.
우선 저런 행위가 딸처럼 보여진다는 설정 역시 좀 진부하고 (1편에서의 유머러스함에 비해 상당히 진부하다) 데이브가 킥애스 의상을 저렇게 방에서 비비고 있는 장면 설정이 상당히 억지스럽다.
그는 왜 방에서 저렇게 의상을 비비고 있는가? 뭔가 묻었다면 화장실이 적절 할 것이다.
이 장면은 단순히 데이브가 딸로 오해받을 만한 행동을 취하고 아버가 오해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만들어 내기 위한 억지스러운 연출이다. 유머를 하더라도 웃기기위해 장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장면내에 자연스럽게 삽입해야 하는것 아닌가?
그리고 창을 통해 잠깐 보여지는 주인공의 방 역시 1편과 다르게 데이브를 보여주는 세팅이 없다.
뭐 이것을 안했다고 비난할 수는 없지만 그의 방에 보이는 그림까지 상당히 신경쓴 1편에 비하면 이런 디테일들이 빠지면 당연히 재미 없어지기 마련 아니겠는가?
그리고 역시 음악이 끝나고 데이브의 내적 고민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결국 초반 시퀀스를 통해 분석한 결과는 1편보다 2편이 유머스럽지 않다는 점...(이 영화의 장르가 히어로영화 비꼬기라면 이 유머러스함은 버려서는 안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더블 주인공으로 관객의 주의가 분산되야했고 두명의 이야기를 깊게 담아내는 것에 실패했다는 점
그리고 데이브의 캐릭터 설정이 1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드는 점이다.